꼬꼬무2
2022. 11. 15. 화

2. 요도호 납치 사건

이 사건은 1970년에 일어났다. 같은해 3월 15일, 일본에서 과격한 좌파였던 적군파의 리더 시오미 다카야가 체포당한다. 이에 반발한 적군파가 후쿠오카로 이동하던 국내선을 하이재킹한다. 이 국내선에는 130여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고 적군파는 이들을 인질로 삼았다. 이 국내선의 이름이 요도호였고, 요도호의 최종 목적지는 평양이었다. 요도호의 기장이었던 이시다 기장은 기지를 발휘해 후쿠오카에 잠깐 머무르나 일본 측은 승객들 중 노약자들만 풀어주는 결과만 얻고 요도호는 다시 평양으로 향하였다. 이때 공군관제사였던 채희석 씨는 중앙정보부에게 평양으로 향하던 요도호를 김포공항으로 유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반공이 심했기 때문에 북한 측에게 사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요도호가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것은 성공하나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적군파와 대치상황을 펼치게 된다. 며칠간의 대치 끝에 당시 일본의 운수성 차관이었던 야마무라 신지로가 대신 인질이 되는 조건으로 승무원과 조종사를 제외한 인질들을 풀어주게 된다. 결국 요도호는 평양으로 향하였고, 적군파는 북한으로 망명했다. 다행히도 요도호에 타고 있던 차관, 승무원은 무사히 풀려나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가지 웃긴 사실은 적군파가 협박할 때 사용한 무기와 폭탄들은 장난감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외교적으로 한국에 빚을 진 일본은 1호선 건설비용을 무상에 가까운 낮은 이자로 차관해주었고, 이 과정에서 인력과 자원 등의 도움을 준다. 그리고 항공기 강취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인 하이재킹 방지법이 생기고 보안검사를 철저히 하게 된다. 당시 사건에 큰 공헌을 한 이시다 기장과 야마무라 차관은 각각 총리에게 표창을 받고, 후에 정치적 지원을 받는 등 영웅 칭송을 받았다. 북한으로 망명한 9명의 적군파는 현재 4명 생존해있고 일본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sns까지 하고 있으며 조국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나 그건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요도호를 김포공항으로 오게 한 채희석 씨는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중앙정보부 측에서 이 일에 대해 함구하라고 협박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총명받던 관제사였지만 그 일을 다시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몇십년이 지나서야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었지만 100여명의 인질을 구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흥미진진하다‘, ‘재미있다‘ 였다. 어떤 교훈을 생각하기 전에 그냥 이 사건의 전개자체가 마치 한 영화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채석희 씨가 요도호를 김포공항으로 돌리는 과정이 정말 긴장됐는데, 한 순간이라도 실수하면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건 자체는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고 이시다 기장, 야마무라 차관 등 많은 사람들의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분들이 영웅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그만큼 또 활약을 했던 채석희 씨가 그들과 같은 영웅임에도 피해를 보기만 한 것은 너무 안타까웠다. 엄청난 대접을 받아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범죄자처럼 숨어버리고 자신의 꿈조차 포기한 것은 너무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떠한 일이든 이런 ‘숨어버린 영웅‘ 이 존재하지 않을까. 꼭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그런 영웅들을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지금도 당신들의 마음속에 ‘내일의 죠‘는 살아 있나요?"

20대 젊은 나이에 ‘우리들은 내일의 죠‘라고 외치며 요도호에올랐던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인지 궁금했거든. 얼마 후 평양에 살고 있는 적군파로부터 답글이 달렸어.

"처음에는 칠전팔기라는 의미였지만 만화 마지막 장면에서 ‘하얗게 불타 재가 되어버린 죠‘를 보고 ‘인민의 재‘로 살아야 한다고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의 죠‘는 지금도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 P103

나에게 닥친 모든 일은 그냥 숙명이라고 여겼어요. 그저 희생자가 1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자랑이에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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