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2. 화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사건>
이 이야기는 39년 동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원섭 씨는 강원도 춘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만화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2년,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 해 파출소장의 딸이었던 윤소미 양(가명)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남성의 체모 3개와 하늘색 연필, 검은색 머리빗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체모의 DNA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마을에서 의심되는 용의자들의 체모를 모아 육안으로 비교하는 다소 엽기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는 당연히 제대로 진전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며칠뒤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정원섭 씨가 결국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당시 왕국만화방에서 일하던 미성년자 여자 2명이 만화방의 주인이었던 정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하였고, 현장에서 발견된 검은색 머리빗 또한 정 씨가 사용했었다고 진술을 하였다. 또한 같은 마을에 살던 주민이 당시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된 정 씨의 부인을 도와주기 위해 빨래를 하다가 옷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던 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또 다른 물품이었던 하늘색 연필이 정 씨의 아들 정재호 씨의 연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과 정 씨 본인의 자백으로 그는 이 사건의 범인이 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는데, 당시 했던 자백은 경찰의 고문과 협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결백을 많은 사람들은 외면했지만, 딱 한 사람 이범렬 변호사만이 그를 위해 당시 사건을 조작한 증거를 가져가 재판을 했지만 그의 결백을 입증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정 씨는 교도소를 나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악착같이 버텨 198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석방된다. 출소한 이후에도 힘든 생활은 나날이 이어져갔지만 자신을 믿어주었던 이 변호사를 자주 찾아가고는 했는데, 1996년 그는 이 변호사로부터 한 쪽지를 받게 된다. 그 쪽지는 1972년 당시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이었다. 복사기가 흔한 시절이 아니라 손수 필사한 것을 준 것이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이 변호사는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다. 정 씨는 계속해서 자신의 재심을 도와줄 변호사를 찾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던 중 1999년, 고 이범렬 변호사를 존경하던 후배 변호사들이 그를 도와 재심 신청을 하지만 또 기각당한다. 이때 재심을 신청하기 위해 조사하던 중 1972년 당시 정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던 두 소녀 모두 경찰들에게 협박당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를 모아 재심을 신청했지만 역시나 기각당했다. 그러나 2005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서 정리 위원회‘에 요청해 재심 신청에 성공해 2008년 11월에는 춘천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011년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는다. 39년만에 정 씨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 씨와 가족들이 평탄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형사지원금 9억 6000만원은 그동안의 빚을 갚는데에 써버려 정 씨 가족들에게 돌아간 돈을 얼마 없었고, 후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갑자기 줄어든 손해배상 소멸시효 때문에 그마저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뒤, 정원섭 씨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지병과 합병증으로 2021년 3월 28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챕터를 읽는 내내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나잇대라 그러신지 만약 이게 우리 가족이었다면, 우리 아버지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열정과 중간에 재심이 기각되었을 때에도 오히려 변호사들을 위로해주던 정 씨의 마음을 감히 내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의 그런 태도는 배우려고 해도 배울 수 있을까. 그의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티고자 하는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만 같다. 그렇게 열심히 했음에도 결국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 같아 정말 안타깝고 마지막 구절을 읽고서는 솔직히 눈물도 조금 났다. 정말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마냥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일, 아니 당장 오늘 우리에게도 저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런 사실도 너무 무섭고 저 당시에는 경찰권력이 저런 고문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는 게 언제 들어도 놀랍다. 박정희 정권 때에는 눈부신 성장도 있지만 그와 비례하는 어두운 면도 참 많다고 느껴진다.
고문 없는,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때 나를 경찰들이)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팼지. 무지무지하게 팼어, 똥이 나오도록. -정원섭 씨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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