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6. 토
2인조 카빈 연쇄 강도 사건
처음 읽었을 때에는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맞을까 기대를 했다면 후반에는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꼈다. 초반에는 2인조 카빈 연쇄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이 사건의 용의자인 문도석과 이종대는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어 출소 후에는 그 인연을 이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데 전과자에 딱히 배운 것은 없으니 둘이서 다시 강도짓을 시작한다.
초반에는 가벼운 수준의 강도짓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이 많아져 점점 대담해지고 카빈 소총까지 소유하며 범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결국 경찰에게 꼬리를 밟혀 점점 수사망이 좁혀져오니 문도석은 자신의 아들과 본인 모두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종대는 같이 자살하자는 문도석의 제안을 거절하고 인천의 자신의 집으로 간다. 문도석은 결국 아들을 살해한 후, 자신도 자살을 한다.
이종대는 자신의 집으로 가나 그 집으로 경찰이 오자 자신의 아내, 아들 둘을 인질로 삼는다. 약 17시간의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이종대는 대치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자수한다. 이때 카빈 연쇄 강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종대도 자신의 아내와 아들 둘을 살해한 후 본인도 자살한다. 후에 이 사건은 언론에서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를 쓰며 약간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기사가 나오게 된다. 아이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말이다.
맨 첫 줄에서도 썼듯이 과연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까, 결말은 무엇일까 하며 사건 자체에 집중했다면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는 가족들의 ‘동반자살‘에 대해 나오며 약간 주제가 반전되는 느낌을 준다.
약간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분노도 조금 느꼈는데 안그래도 이 둘이 한 범행 자체가 유족들에게는 큰 상처이며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놓고 마지막에는 세상 제일 비겁한 방법으로 회피한 것 같아 너무 화가 났다.
세상이 비겁하다고, 자신들이 가장이라고 가족들의 목숨이 본인의 것인 것 마냥 행동한 게 너무 화가 났다. 게다가 그걸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며 결정권이 없던 가족들이 마치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표현한 것도 소름이었다.
하지만 더 소름이었던 건 나도 예전에 그런 비슷한 사건을 뉴스에서 볼 때 그들의 표현에 말려 그렇게 느꼈던 기억이 나 정말 짜증나고 내가 잘못되었구나 다시 깨달았다. 보통 ‘동반자살‘은 9세 이하의 자녀와 한다는데 딱 보기에도 부모에게 저항하기 힘든 나이이지 않나. 그런 걸 보면 정말 이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런 종류의 사건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러한 ‘동반자살‘은 동반자살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새겨야겠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 동반자살이 아니다. (…)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아이의 이름을 다시부른다. 이 이름이 ()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만 그런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아이들이 살해되어야 하는가. 아직도 숫자가 부족한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희생은 최초의 한 아이만으로도 이미충분했다. 부족한 건 언제나 행동뿐이다. - 울산지방법원 2020. 5. 29. 선고 2019고합365 판결 [살인]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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