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섯 살, 신경외과 레지던트인 폴 칼라니티는 폐암 4기 선고를 받는다. 얼마간은 치료 효과가 있어 종양이 더 자라지 않고 조절되는 듯했지만, 곧 손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저자는 투병 중에 태어난 어린 딸과 아내를 남겨두고 첫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올해 1월에 책이 나왔다.


출간 전부터 아픈 사연이 미국의 매체들에 소개되었고 크게 주목받았던 책이다. 최근 죽음에 관해 꽤 유명한 저자들이 쓴 좋은 책이 여럿 나왔다. 이 책도 아마 금방 번역되겠지 싶다. (지금 이걸 새소식으로 올리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저자는 오래 전부터 글을 쓰고 싶어했다고 한다.


책의 일부가 출간 당시 {뉴요커}에 실렸다.

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my-last-day-as-a-sur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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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멏 달이나, 몇 년이나 남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앞으로 할 일이 정해질 것 같았다. 3개월 남았다고 하면,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면 된다. 1년 남았다고 하면, 계획을 세울 것이다(책을 쓰자). 10년 남았다고 하면 진료실로 돌아가면 된다. 인간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는 소용이 없었다. 그 하루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내 주치의는 이렇게만 말했다. "딱 부러지게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으셔야 합니다."


나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암을 진단받기 전, 나는 언젠가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제인지 몰랐을 뿐. 암을 진단받은 뒤에도 언젠가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언제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제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사실 이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심란해진다. 하지만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는 것이다.


http://www.nytimes.com/2014/01/25/opinion/sunday/how-long-have-i-got-left.html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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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Hubert Selby, Jr.(1928-2004)는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장편소설 {Last Exit to Brooklyn}과 {Requiem for a Dream}을 썼다.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제목은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까운 사람이 일러주기를 문맥상 '비상구'가 아니라 고속도로 '출구'가 옳다), [레퀴엠]이다. (작가는 두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꽤 오래 전 영화인 [브루클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제목만은 자주 들어봤다. [레퀴엠]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초반에 젊고 아름다운 청춘들이 꿈꾸는 미래가 조금 비현실적이지 않나 싶었지만, 그들이 타락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화면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원작 소설이 있는지 몰랐고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영화가 나왔음에도 셀비의 소설은 번역출간된 적이 없는 듯하다. -> 수정: 현재 유통 중이진 않지만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와 {레퀴엠} 번역본이 나온 적이 있다. 16년 4월에 자음과 모음에서 새 번역이 나왔다. 그런데 제목은 여전히 '비상구'란다. 실제로 맨하탄에서 케네디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Last Exit to Brooklyn'이라는 표지판이 있다고 한다.)
































[레퀴엠]을 본 지 10년도 더 지나, 프랑스어 선생님이 어떤 문학 이론서에서 보고 귀뜸해준 셀비의 소설 {악마 The Demon}(1976)를 읽었다. 선생님이 권해준 의도도 그렇고 내가 읽은 의도도 이 소설, 나아가 이 작가의 작품 전체를 번역할 만한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읽고 나서 번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셀비의 다른 작품을 도저히 더 읽을 수 없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주인공 해리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상사들의 총애를 받는 직원이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 취직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고, 회사에 입사해서는 일을 잘해야 안다는 압박, 어서 결혼해서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라는 압박을 받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억누르고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그들이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삶을 차근차근 꾸려가는데,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 괴리에서 쌓인 긴장감이 각종 일탈 행위로 이어진다. 1970년대 뉴욕과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2010년대 한국인의 눈에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이 무서웠다.


처음에는 해리의 일탈 행위가 가까운 사람이면 몰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뭔가에 지독하게 집착하고 몰두하다가 싫증을 느끼고 '취미'를 갈아치운다. 그러다가 선을 넘어버린다. 폭력에 눈을 뜨고, 마지막에는 잔혹한 범죄로 발전한다. 이 과정을 구어적 문체와 치밀한 심리묘사로 따라가는데 읽는 내가 무서웠다. 악마의 몸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평범함에서 악으로 직선으로 치달았어도 물론 무서울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감정 기복도 심하고 일탈했다가 정신 차렸다가 다시 억눌린 에너지를 발산하느라 읽는 이까지도 롤러코스터를 타며 마음 졸여야 한다. 그렇게 휴지기에 영위하는 정상적인 생활은 더 심한 일탈의 욕구를 부풀어오르게 한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주인공이 결혼 전에 직장 생활을 하는 시점부터 시작되는데, 아주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억눌려 있는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장편

Last Exit to Brooklyn, 1964

The Room, 1971 (셀비 작품 중에서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The Demon, 1976

Requiem for a Dream, 1978

The Willow Tree, 1998

Waiting Period, 2000


단편집

Song of the Silent Snow, 1986

(영국에서는 일곱 권이 전부 펭귄모던클래식으로 나와 있다.)


The Demon

Hubert Selby, Jr.

Open Road Media

2011(1976)

His friends called him Harry the Lover. But Harry would not screw just anyone. It had to be a woman... a married woman.
(1)

And Harry followed his mother obediently, and happily, feeding off the joy that his being there made possible. He was making her happy and this in turn made him happy, and making his mother happy was something that he would try to do from time to time - or at least want to try - but somehow he could never seem to accomplish it, at least not on a consistent basis. For some unknown reason something always seemed to happen to prevent him from bringing the smile to his mother`s face, or if he did, he usually did something that would, at least, turn how the corner of her smile.
(23)

One morning he noticed that Linda wasn`t smiling. He didn`t know if it was just for the moment, that morning or had not been for a length of time. He wanted to ask her if anything was wrong, but was afraid. He was afraid she would tell him, and he knew that whatever it was, it was his fault. A couple of times he almost got the question out of his mouth, but the words just died on the vine. He just could not sit there and listen to her tell him what was wrong and how he was responsible for the pain on her face and in her heart.
(171)

There was a pressure within him that he could not define nor understand. He only knew it was killing him and his answer was not working.
(175)

The haunted look increased, and he was not only more morose most of the time, and quiet, but he was always apologizing for something. And not just in words, but in actions and attitude. She had the inescapable feeling that he was apologizing for his existence and was pleading with her, and Harry Junior, to tolerate him. He seemed to be constantly in pain.
(191)

From time to time there must have been individuals who wondered what it would be like to kill someone and then went out and killed a stranger. They never get caught. It`s almost impossible. Only fate could change that. And Harry knew that fate was indifferent and would not oppose him.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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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st Exit to Brooklyn’는 1990년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영화 제목과 동일합니다. 출판사는 ‘시대문학사’입니다.

nuncius 2016-03-27 23:0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온라인 서점 외엔 미처 찾아보지 않았는데 {레퀴엠}도 나온 적이 있네요.

cyrus 2016-03-27 23:1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책이 알라딘에는 검색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다사줘 2023-01-0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파고로 읽어보려고 더룸을 구입했는데 인용부호가 없어 불가능하네요. 정확도도 떨어지고요. 난감하네요@@
 


벤치에 앉아 나목들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어떤 시간은 빨리 흘러가버리고 어떤 시간은 견뎌야 한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변기를 붙들고 구토하는 하룻밤은 영원과 같다. 아무도 그 견딤을 돕거나 대신해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따금씩 확인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견디는 힘이란 따로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몸의 일부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다.
(166)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강
열림원
2009(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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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University library he wandered through the stacks, among the thousands of books, inhaling the musty odor of leather, cloth, and drying page as if it were an exotic incense.
(14)

In his extreme youth Stoner had though of love as an absolute state of being to which, if one were lucky, one might find access; in his maturity he had decided it was the heaven of false religion, toward which one ought to gaze with an amused disbelief, a gently familiar contempt, and an embarrassed nostalgia. Now in his middle age he began to know that it was neither a state of grace nor an illusion; he saw it as a human act of becoming, a condition that was invented and modified moment by moment and day by day, by the will and the intelligence and the heart.
(201)

Stoner
John Williams
Vintage
196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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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mories Look at Me}(2011)는 손바닥만 한 판형에 60쪽의 아주 짧은 회고록이다. New Directions 출판사에서 2006년에 출간한 시 전집 {The Great Enigma: New Collected Poems}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어차피 시집도 읽을 예정이라면 전집을 사는 편이 낫겠다. 이 작은 책은 시를 전혀 읽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하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스웨덴어판: {Minnena ser mig}(1993)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박수영)은 우리말로 된 여행기(3년에 걸친 유학 이야기지만 여행기의 본질을 잘 담아냈다)로는 드물게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트란스트뢰메르(1931-2015)의 시구를 만났을 때 나는 노벨상을 받은 그 시인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 알고 있었다. 몇 줄의 시구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최근 온라인 서점을 뒤적이며 놀다가 요즘 논픽션이 인기가 좋고, 시인들이 쓴 산문이 인기가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이고 편향된 느낌일 뿐이다. 어쨌든 그래서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시인의 책이 있는지 검색해보다가 트란스트뢰메르의 유일한 산문 작품을 찾었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책을 받아 보니 분량이 너무 적었다. 내용은 생애 최초의 기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고교 시절까지를 다룬다. 만약 나중에 시집이 나온다면 그 안에 곁들이기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대표 시선집이 나와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새로운 기획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바라며 이렇게 구석에 적어둔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내용인데 마침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이윤기 소설에 비슷한 이야기가 거론되었던 터라 아래 옮겨 본다.

My maternal grandfather, Carl Helmer Westerberg, was born in 1860. He was a ship`s pilot and a very good friend of mine, seventy-one years older than myself. Oddly enough, the same difference in age existed between him and his own maternal grandfather, who was born in 1789: the storming of the Bastille, the Anjala mutiny, Mozart writing his Clarinet Quintet. Two equal steps back in time, two long steps, yet not really so very long. We can touch history.


(4)
Memories Look at Me
Tomas Tranströmer
New Directions
2011

아기 돌날 아침, 일가붙이 되는 이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들었더란다. 돌아가면서 그날의 주인공인 아기를 안아보기로 하는데, 맨 먼저 아기를 안은, 집안의 상어른인 아기의 증조부는 도무지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기려 하지 않더란다. 아기와 아기 증조부의 얼굴을 번차례로 훑어보던 한 사람이, 아기가 증조부님을 많이 닮았네요 하니까, 아기 증조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 아기가 나만 닮은 것이 아니고, 내가 보니 내 증조부님도 틀림없이 닮은 것 같다 하고 응수하시더란다.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연세가 많기는 하나 증조부는 당신의 증조부와 당신의 증손 사이에 접속사처럼 살아 있다. 할머니는 내게 물으셨다. 아기가 증조부 말씀을 기억하면서 오래 살아 제 증손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다면, 증손자 돌날 아기 안고 덕담하던 증조부의 증조부는, 이런 덕담 속에서나마 도대체 몇 년을 더 사는 셈이 되느냐? 선후를 요량하며, 중간에서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56-57)
뿌리 너무 깊은 나무
내 시대의 초상
이윤기
문학과 지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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