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잠수 기록]
지난 월요일 플로리다에 사는 한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가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세운 심해 잠수 기록을 깨려다가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30년 전 멕시코 만에서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225피트의 잠수 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 남성은 월요일에 같은 장소에서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잠수를 세 번 시도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167피트까지 갔다. 두 번째 시도에서 191피트까지 갔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216피트까지 잠수했는데, 수면으로 올라오던 중 폐가 파열해 잠수용 선박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에서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사실은 자신이 최고 기록을 세웠을 때 산소통과 오리발을 ‘둘 다’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10)
20. [마지막 문장]
역사학자는 사십 년 동안 유대인 농담의 기원을 탐구한 일천 페이지짜리 필생의 역작을 집필하다가 동맥류로 사망했다. 역사학자가 책상 앞에 앉아 원고 위에 엎드려 죽은 것을 그의 아들이 발견했다. 마지막 한 문장만 덧붙이면 완성될 원고였다.
역사학자의 아들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책을 완성하여 아버지를 기리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에 넣기에 적절한 문장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아들은 문장 하나를 적었다가 지웠다.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문장을 하나 적었다가, 그것도 지웠다.
그리고 또 문장 하나를 적었다가 지웠다.
그리고 또 적었다가 지웠다.
아들은 문득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마지막 문장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장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은 마지막 챕터와 책 전체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전에 나온 모든 문장과 문체 측면에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문장은 아버지의 문장, 아버지의 원칙, 아버지의 지성, 곧 아버지의 ‘삶’에 비추어 충분히 가치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그렇다, 이 마지막 문장은 아버지의 인생과 필생의 업적을 대변해야 한다!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책을 완성해줄 마지막 문장이 손에 닿을락 말락 맴돌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완벽한 마지막 문장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더듬었다. 한 달 동안. 일 년 동안. 십 년 동안. 마침내 사십 년이 흘렀고 그는 한 단어도 쓰지 못한 채 책상 앞에 앉아 동맥류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은 그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원고를 읽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장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마지막 문장으로 의도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문장을 하나 더 덧붙이면 쓸데없는 사족이 되어 우스꽝스러워질 것이었다. 책은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연구서가 되었고 심지어 창피할 정도였으므로,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불태워버렸다.
그러기는 했지만 역사학자의 손자는 지금까지도 할아버지가 쓴 원고의 강렬한 마지막 문장을 똑똑히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더없이 ‘압도적인’ 마지막 문장이었던 것이다.
(43-44)
28. [해설]
일본 홋카이도의 외딴 지역에서는 구백여 년 전부터 오래 전에 유실된 윤리학・형이상학 분야의 고문서에 대한 해설서를 현자들이 대를 이어 쓰는 전통이 있었다. 각 해설서는 후계자가 쓰는 해설서의 일차 자료로 사용되었다.
14세기 무렵 한 현자는 대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해설서들이 윤리적・형이상학적 답을 내놓는 대신에 질문만 해대고, 명확히 밝혀내는 대신에 더 모호하게 만들고, 기쁨을 주는 대신에 슬픔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자는 자신의 해설서에 이런 내용을 적으면서 모두가 해설을 그만두기를 호소했다. 이 해설서는 후대에 [중단 해설]로 알려졌다.
그의 후계자는 심혈을 기울여 스승의 해설서를 공부하고 나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 아무것도 적지 않은 백지를 쌓았다. 스승의 지혜를 받들어 해설을 완전히 거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가 쌓아놓은 백지는 [백지 해설]로 알려졌다.
그의 후계자 타쿠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해설도 여전히 해설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은 해설을 패러디하고 해설을 거부했지만, 그것 자체로 어엿한 해설이었다. 타쿠는 자신의 통찰을 종이 한 장에 적고 종이와 자기 몸에 산 채로 불을 질렀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후대에 물려줄 자신만의 해설이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이는 [불 해설] 또는 [해설없음 해설]로 알려졌다.
이쯤 되자 홋카이도 외딴 지역의 현자들이 해설을 완전히 그만두는 일이 원래 짐작했던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후략]
(64-65)
52. [코닉스버그 관]
억만장자 은행 재벌 코닉스버그는 당시 일곱 살이던 그의 아들이 최고의 학교를 ‘골라 갈 수 있게’ 세 곳의 쟁쟁한 경영대학원인 하버드, 스탠퍼드, 와튼 스쿨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했다. 15년이 흘러 아들이 경영대학원에 지원할 무렵 세 학교에는 각각 ‘코닉스버그관’이 세워지고 ‘코닉스버그 정원’이 가꿔져 있었다. 아들은 세 곳 중에서 코닉스버그관의 높이가 가장 높은 와튼 스쿨에 진학했고, 개강 첫날 수업을 마친 뒤 그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코닉스버그 정원에 깔린 푹신한 뿌리덮개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두 다리만 잃고 목숨을 건졌다. 코닉스버그의 넉넉한 추가 기부금을 받은 와튼 스쿨은 그때부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와튼 스쿨은 전 세계에서 장애인 접근성이 가장 높은 경영대학원 캠퍼스를 자랑한다.
(114)
89. [연민을 느끼다]
명성이 자자한 스위스 역사(力士)*의 아들은 여러 가지 신체적 기형을 지니고 태어났다. 역사는 한창 때 173킬로그램도 우습게 들어올리고 자유자재로 다루었지만, 이제는 우람하고 힘이 펄펄 넘치는 자기 몸이 역겹게만 느껴졌다. 역사는 아들에게 연민을 느껴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게 내버려두었다. 연민에 빠진 역사는 거의 아들처럼 약해졌고, 곧이어 아들만큼 약해졌고, 잠시 후 죽어버렸다. 검시관은 그의 사망 원인을 이렇게 적었다. “아들에 대한 역사의 연민”. 두말할 것도 없이 아들이 자라나 아버지의 사연을 알게 되자, 그에게는 여러 가지 신체적 기형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이 발생했다.
(198)
* 김승옥의 단편 [力士] 참조
Inherited Disorders
Adam Ehrlich Sachs
Regan Art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