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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미국에서 나온 프리모 레비 전집(총 세 권, 번역가 열 명)의 번역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문학번역의 실태를 짚어본 칼럼이 있다. 칼럼을 기고한 팀 파크스(Tim Parks)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둘 다 잘 아는 작가다.


http://www.nybooks.com/daily/2016/01/19/tumult-of-translation-primo-levi/

http://www.nybooks.com/daily/2016/02/02/long-way-from-primo-levi-translation-truce/

http://www.nybooks.com/daily/2016/03/15/translation-paradox-quality-vs-celebrity/


프리모 레비는 스스로도 문체가 간결하다고 자처했지만, 사실은 구어체와 문어체, 현학적 문체와 엄정한 과학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며 구사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하고 번역자가 적절히 해석하고 전달할 줄 알아야 하는 까다로운 작가라고 한다.


특히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고 어원이 같은 단어(cognate)를 그대로 옮긴 경우들을 문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영역본에 "an ankylosed arm"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탈리이어 원문의 "un braccio anchilosato"는 관절이 뻣뻣해진 팔이라는 뜻인데 생활하면서 어쩌다 느끼는 가벼운 불편감부터 팔을 쓰지 못할 정도의 증상까지 아우르는 매우 일상적인 어휘라고 한다. 그런 반면에 영어의 ankylose는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에 어긋나게 불필요하게 눈길을 끄는 단점이 있다.


*영어권 사람들은 익히 알 법한 얘기라서 생략되었을 텐데, 똑같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이탈리아어(그리고 대부분의 로망스어)와 영어에서 뉘앙스가 다른 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어는 라틴어가 조금씩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났고 단테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언어로 정립되었다. 영어는 내력이 훨씬 복잡하다. 영국에서는 독일 등지에서 건너간 앵글로색슨 족이 게르만어족의 고대영어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노르망디에서 프랑스인이 침입해 지배하면서 프랑스어 어휘를 많이 받아들이게 된다. 한때 프랑스어(지배 계층과 문학의 언어)-영어(서민)로 언어 계층이 나뉘어 있기도 했다. 영어에서 게르만어 유래 어휘는 쉽고 구어적이고 라틴어(라틴어에서 직접, 또는 프랑스어를 경유하여 도입됨), 프랑스어 유래 어휘는 어렵고 문어적이며 학문의 언어라는 인식이 있고 실제로 언어생활에서 그렇게 쓰이고 있다. 정확히 대응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한자어와 고유어의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렇듯 실제 언어 사용을 고려하지 않은 번역문을 파크스는 "translationese"라고 부른다. 해결책으로 내가 떠올린 것은 1) 시간을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시간을 많이 투자할수록 각각의 요소에 대해 심사숙고할 수 있고 더 나은 번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책을 이런 식으로 번역하다가는 출간이 영원히 미뤄지니 딜레마다.), 2) 공동 작업 (양쪽 언어의 원어민이 작업하면 좋겠지만, 적어도 텍스트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과 우리말 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함께 작업하기만 해도 결과물이 충분히 좋을 것이다.). 파크스는 해결책으로 번역자가 좋은 편집자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크스 자신도 번역을 해보았기에 양쪽 텍스트에 깊숙이 파묻힌 상태에서 이상한 부분을 번역자 스스로 알아채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알고 있는 것이다.


파크스는 오늘날 문학번역의 풍경도 비판했다. 레비 전집의 번역 품질은 들쭉날쭉한데 훌륭하게 번역된 작품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원래부터 유명했던 대표작들만 거론되었다. 이는 편집자에게 텍스트와 적절한 번역자를 짝지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판매 촉진에 도움이 되는 스타 번역가에게 중요한 작품을 맡기는 관행 때문이란다. (이탈리아의 어느 메이저 출판사는 시장 조사 결과 대중이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번역료를 낮추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파크스의 이런 비판에 대한 전집 번역자 중 한 명의 반론과 재반론도 실렸다.

http://www.nybooks.com/daily/2016/03/28/primo-levi-minefield-an-exchange/


팀 파크스는 이탈리아에서 문학번역을 가르치는 영국인이다. 30여 년 전에 아내를 따라 이주해서 이탈리아에서 죽 살고 있다. 존 쿳시, 재닛 맬컴 등이 기고하는 {NYRB(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 자주 기고한다. 우연히 [NYR Daily](NYRB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린 글을 읽다가 번역 이야기도 많고 글도 좋아서 연달아 몇 편을 읽게 되었다. 파크스의 작품으로는 소설도 있고, 이탈리아에 관한 논픽션과 에세이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논픽션만 두 권 소개되어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문학이론서와 서평집(NYRB에 실린 글들도 수록했을 것이다)이 재미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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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08-1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입니다. 덕분에 Tim Parks라는 번역학자를 알게 되었네요. 번역 논쟁은 어떤 하나의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반론과 재반론으로 계속되죠. 그게 또 번역의 본질적 속성 같습니다~

nuncius 2016-08-19 19:2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죠. 그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
 

비교적 최근에 구한 독립잡지 {더 멀리}를 과월호부터 읽고 있다.

잡지를 실시간으로 읽는 습관이 없어서 모아놨다가 책처럼 읽는 편이다.

시인들이 만든 잡지. 읽으면서 우리말이 참 아름답다고 새삼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창간한 잡지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4호(2015년 11/12월호)에도 좋은 글이 많았다. 구현우 시인의 [산타클로스의 이별 선물]을 읽었다. 결말에 이르러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

[전략]


검게 때가 탄 붉은 옷을 보며 산타클로스는 올해의 마지막 굴뚝으로 들어간다 아이의 잠든 표정이 곧 울 것 같다고 또는 금방 웃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편지를 읽는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산타클로스는 말없이 결심한다 너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주겠다 고맙구나 내 죄책감을 덜어줘서


루돌프를 두고 나온다 모범적인 아버지를 들고 나온다 지붕을 뛰어다니며 굴뚝을 막으며 다짐한다 루돌프와 아이가 친밀해질 나의 집, 나의 아이야 네가 희망을 주거라 은밀하게 너도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봐 주어라 슬픔이 또 다른 슬픔으로...... 희석될 때까지 말이다


산타클로스의 이별선물

구현우

더멀리 4호

2015

=====


갖고 싶은 것을 적는 편지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적는 아이의 마음.

"굴뚝을 막는" 산타-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슬픔이 또 다른 슬픔으로...... 희석될 때까지"


구현우 시인의 다른 시:

http://dacapolife.com/tag/%EA%B5%AC%ED%98%84%EC%9A%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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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이너(George Steiner)는 인간이 이토록 많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설명 불가능하며 '비경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인류의 역사는 항상 가장 생존에 유익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런데 인류는 왜 6,500개나 되는 언어를 만들어 내어 그토록 많은 소통의 문제를 겪고, 또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통에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책을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지만, 번역을 둘러싼 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들은 여전히 남는다. 왜 그렇게 많은 자연 언어들이 존재하는가? 왜 인간은 그토록 오래전부터 번역해 왔고, 지금도 번역하려 하는가? 번역 활동과 작업의 철학적 또는 인간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쯤 되면 번역이라는 것이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됨으로 인하여 발생한 필요에 의한 것인지, 혹은 인간이 본래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본래 타자의 말을 '번역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가 불분명해진다. 어쩌면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우리가 번역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물음인지도 모른다.

(89-90)


1970년대만 해도 번역은 언어학의 하위분야, 보다 구체적으로는 응용언어학의 하위분야로 인식되었다. 언어학을 토대로 번역에 접근한 학자들은 번역을 전적으로 언어학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였으며 대체로 '원문과 등가의(equivalent) 텍스트를 생산해 내는 것'으로 번역 작업을 정의하였다.

(14)


그러나 한국어와 같이 소위 '제한적 영향력을 가진' 언어의 경우, 국내의 번역사들이 양방향의 번역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홍보활동을 할 때, 홍보자료를 한국어에서 영어나 불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영어권 화자나 프랑스인이 아닌 한국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었을 경우에 이를 번역하는 사람도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시 한국의 번역사들이다. 이것은 모국어 방향으로만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서구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다른 점이기도 하다.

(25)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한다(B. Mossop). 아무리 훌륭한 번역사가 번역한 글도 다른 번역사에게 보여주면 반드시 수정이나 개선의 여지가 눈에 띄게 된다. 좋은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처럼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번역이란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42-43)


번역사는 첫째, 하나의 원문을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하며, 둘째, 그중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번역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Pym 인용)

(57-58)


평행텍스트(parallel text)란 '목표언어로 쓰인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텍스트'를 말한다. 예를 들어 '비만'을 주제로 하는 한국어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번역사는 우선 비만에 대해 영어로 쓰인 텍스트들을 참고하게 되는 이것이 바로 '평행텍스트'이다. 이를 통해 목표언어권에서 어떤 어휘로,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평행텍스트는 번역문이 아닌 목표언어권의 저자가 쓴 정통텍스트(authentic text)라야 한다.

(64)


번역의 이론과 실제 간에는 항상 일정 정도의 간극이 존재해 왔다. 다시 말해 번역에 관하여 논하는 사람들과 실제 번역을 하는 사람들 간에는 항상 괴리가 있었다. 실무번역사들은 실무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이론들을 비난해 왔으며, 실제로 번역이론가들이 제시하는 상당수의 주장들이 실무적으로는 아예 적용이 불가능하거나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경우가 많았다.

(67)


뿐만 아니라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의 대문호들이 인류에게 남긴 고전들은 한 번 번역되고 그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재번역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성과 메시지 전달 위주의 실용번역의 영역에서는 매우 드문 일로 이는 문학번역이 단순한 메시지 전달이 아닌 작품의 끝없는 다시 읽기의 과정임을 드러낸다.

(69-70)


번역이란 무엇인가

이향

살림 (살림지식총서 33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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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 Sachs - Inherited Disorders 발췌역




{뉴요커}에서 날마다 보내주는 이메일에는 (주로 새로 올라온) 몇 편의 기사 링크와 요약문이 들어 있다. 거기서 [A Writer’s Justification]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읽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활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a-writers-justification

내가 처음으로 읽은 Adam Ehrlich Sachs 글이다. 제목의 justification은 ‘자기합리화’와 ‘행의 길이를 가지런히 맞춤’의 중의적 표현이다. MS 워드에서 소설을 쓰면서 다른 무엇보다 오른편의 행 길이를 완벽하게 맞추는 데 집착하는 작가 지망생의 모습을 익살맞게 그려냈다. (이 글은 종이 잡지에 실리지 않았고 웹에만 올라와 있다.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Sachs는 첫 소설(집) {Inherited Disorders(물려받은 질환/장애의 대물림)}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117편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변주한다. 각 에피소드의 분량은 한 단락짜리도 있고 수 페이지짜리도 있는데 길더라도 일반적인 단편 분량보다는 적다. 독립적인 내용이어서 순서에 무관하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가 한 에피소드의 도입부에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디어 중 하나를 직접적으로 서술한 문장을 만났다.


You think you’re learning something from someone; you always realize too late that you’re just turning to him. When you learn a little bit from someone, you’ve turned into him a little bit, and when you learn a lot from someone you’ve turned into him completely.

(103)


부자 간의 애증 관계는 우리에게 낯선 소재는 아니다. 그런데도 카프카식 유머와 다채로운 변주 덕분에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아무리 애써봐도 아버지의 기대에 못미처 슬퍼하는 아들, 아버지의 못다한 꿈을 대신 이루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들, 아버지의 관심사에 평생 집착하는 아들,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늙어갈수록 왠지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넓은 의미의 부자 관계로 볼 수 있는 사회와 개인, 기성 시스템과 창의적인 개인의 관계도 다룬다. 아들이 두 명, 세 명인 경우도 나오고, 스승과 제자, 영향을 주고받는 예술계 선후배로도 확장된다. 코끼리의 부자 관계, 5대에 걸친 실험쥐의 진화, 아버지나 아들 노릇을 하는 앵무새와 로봇도 나오고, 아들끼리의 만남, 아들 바꿔치기 모티프도 나온다.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이 죽어서 슬퍼하는 줄 알았는데 아들을 낳은 적이 없는 부조리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등장인물의 직업은 시계공이나 사업가나 살인자도 있지만 학자와 예술가가 가장 많다. 그리고 현학적인 비평가와 학계를 풍자하는 내용도 자주 나오다 보니, 일부러 고급 어휘를 사용한다. 이런 고급 어휘가 영어에서 발휘하는 효과는 우리말로 충분히 옮기기 어려울 수 있다.


인터뷰에서 Sachs는 영향을 받은 작가로 카프카, 베케트, 리디아 데이비스 등을 꼽았는데, 실제로 이 책을 읽고 카프카의 {판결(Das Urteil)}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베케트의 부조리와 오해, 어긋난 소통의 요소도 두드러진다. 간결한 서술 속에서 시치미를 뚝 떼며 아이러니와 통찰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데이비스의 영향이 보이는데, 데이비스 작품보다는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키득거려서 주변 사람들이 대체 무슨 내용이냐고 궁금해했다. 사실 위에 적은 내용보다도 그저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는 개인적 감상을 강조하고 싶다. 전통적인 소설이나 장편소설만 좋아한다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형식의 실험에 탁월하게 성공한 실험적 작품이면서도 전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점을 높이 산다. 꼭 소개하고 싶어서 몇 편을 고르면서 무척 고민해야 했다. 우열을 (또는 내 마음에 드는 순위를) 가리기 어려웠고 각기 별개의 에피소드임에도 한 권의 책으로 함께 읽는 시너지 효과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다음 링크에서 책에서 발췌한 에피소드 몇 편을 읽을 수 있다.

http://nplusonemag.com/issue-23/fiction-drama/nine-inherited-disorders/

http://www.newyorker.com/magazine/2016/02/01/the-philosophers

http://harpers.org/archive/2016/06/posturing/


인터뷰와 다른 글:

http://www.adamehrlichsachs.com/other-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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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잠수 기록]

지난 월요일 플로리다에 사는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가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세운 심해 잠수 기록을 깨려다가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30 멕시코 만에서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225피트의 잠수 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남성은 월요일에 같은 장소에서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잠수를 시도했다. 번째 시도에서 167피트까지 갔다. 번째 시도에서 191피트까지 갔다. 번째 시도에서는 산소통과 오리발 없이 216피트까지 잠수했는데, 수면으로 올라오던 폐가 파열해 잠수용 선박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에서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사실은 자신이 최고 기록을 세웠을 산소통과 오리발을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10)



20. [마지막 문장]

역사학자는 사십 동안 유대인 농담의 기원을 탐구한 일천 페이지짜리 필생의 역작을 집필하다가 동맥류로 사망했다. 역사학자가 책상 앞에 앉아 원고 위에 엎드려 죽은 것을 그의 아들이 발견했다. 마지막 문장만 덧붙이면 완성될 원고였다.

역사학자의 아들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책을 완성하여 아버지를 기리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에 넣기에 적절한 문장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아들은 문장 하나를 적었다가 지웠다.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문장을 하나 적었다가, 그것도 지웠다.

그리고 문장 하나를 적었다가 지웠다.

그리고 적었다가 지웠다.

아들은 문득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마지막 문장은 마지막에서 번째 문장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은 마지막 챕터와 전체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전에 나온 모든 문장과 문체 측면에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문장은 아버지의 문장, 아버지의 원칙, 아버지의 지성, 아버지의 비추어 충분히 가치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그렇다, 마지막 문장은 아버지의 인생과 필생의 업적을 대변해야 한다!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책을 완성해줄 마지막 문장이 손에 닿을락 말락 맴돌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완벽한 마지막 문장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더듬었다. 동안. 동안. 동안. 마침내 사십 년이 흘렀고 그는 단어도 쓰지 못한 책상 앞에 앉아 동맥류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은 그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원고를 읽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마지막에서 번째 문장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마지막 문장으로 의도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문장을 하나 덧붙이면 쓸데없는 사족이 되어 우스꽝스러워질 것이었다. 책은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연구서가 되었고 심지어 창피할 정도였으므로,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불태워버렸다.

그러기는 했지만 역사학자의 손자는 지금까지도 할아버지가 원고의 강렬한 마지막 문장을 똑똑히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더없이압도적인마지막 문장이었던 것이다.

(43-44)



28. [해설]

일본 홋카이도의 외딴 지역에서는 구백여 전부터 오래 전에 유실된 윤리학・형이상학 분야의 고문서에 대한 해설서를 현자들이 대를 이어 쓰는 전통이 있었다. 해설서는 후계자가 쓰는 해설서의 일차 자료로 사용되었다.

14세기 무렵 현자는 대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해설서들이 윤리적・형이상학적 답을 내놓는 대신에 질문만 해대고, 명확히 밝혀내는 대신에 모호하게 만들고, 기쁨을 주는 대신에 슬픔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자는 자신의 해설서에 이런 내용을 적으면서 모두가 해설을 그만두기를 호소했다. 해설서는 후대에 [중단 해설] 알려졌다.

그의 후계자는 심혈을 기울여 스승의 해설서를 공부하고 나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 아무것도 적지 않은 백지를 쌓았다. 스승의 지혜를 받들어 해설을 완전히 거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가 쌓아놓은 백지는 [백지 해설] 알려졌다.

그의 후계자 타쿠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해설도 여전히 해설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은 해설을 패러디하고 해설을 거부했지만, 그것 자체로 어엿한 해설이었다. 타쿠는 자신의 통찰을 종이 장에 적고 종이와 자기 몸에 채로 불을 질렀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후대에 물려줄 자신만의 해설이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이는 [ 해설] 또는 [해설없음 해설] 알려졌다.

이쯤 되자 홋카이도 외딴 지역의 현자들이 해설을 완전히 그만두는 일이 원래 짐작했던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후략]

(64-65)



52. [코닉스버그 ]

억만장자 은행 재벌 코닉스버그는 당시 일곱 살이던 그의 아들이 최고의 학교를골라 있게 곳의 쟁쟁한 경영대학원인 하버드, 스탠퍼드, 와튼 스쿨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했다. 15년이 흘러 아들이 경영대학원에 지원할 무렵 학교에는 각각코닉스버그관 세워지고코닉스버그 정원 가꿔져 있었다. 아들은 중에서 코닉스버그관의 높이가 가장 높은 와튼 스쿨에 진학했고, 개강 첫날 수업을 마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코닉스버그 정원에 깔린 푹신한 뿌리덮개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만 잃고 목숨을 건졌다. 코닉스버그의 넉넉한 추가 기부금을 받은 와튼 스쿨은 그때부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개선하는 총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와튼 스쿨은 세계에서 장애인 접근성이 가장 높은 경영대학원 캠퍼스를 자랑한다.

(114)



89. [연민을 느끼다]

명성이 자자한 스위스 역사(力士)* 아들은 여러 가지 신체적 기형을 지니고 태어났다. 역사는 한창 173킬로그램도 우습게 들어올리고 자유자재로 다루었지만, 이제는 우람하고 힘이 펄펄 넘치는 자기 몸이 역겹게만 느껴졌다. 역사는 아들에게 연민을 느껴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게 내버려두었다. 연민에 빠진 역사는 거의 아들처럼 약해졌고, 곧이어 아들만큼 약해졌고, 잠시 죽어버렸다. 검시관은 그의 사망 원인을 이렇게 적었다. “아들에 대한 역사의 연민”. 두말할 것도 없이 아들이 자라나 아버지의 사연을 알게 되자, 그에게는 여러 가지 신체적 기형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이 발생했다.

(198)

* 김승옥의 단편 [力士] 참조



Inherited Disorders

Adam Ehrlich Sachs

Regan Art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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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 E. Sachs의 첫 책 - Inherited Disorders
    from 눈치우스 2016-06-19 22:47 
    {뉴요커}에서 날마다 보내주는 이메일에는 (주로 새로 올라온) 몇 편의 기사 링크와 요약문이 들어 있다. 거기서 [A Writer’s Justification]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읽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활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a-writers-justification내가 처음으로 읽은 Adam Ehrlich Sachs의 글이다. 제목의 just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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