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에서 나온 프리모 레비 전집(총 세 권, 번역가 열 명)의 번역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문학번역의 실태를 짚어본 칼럼이 있다. 칼럼을 기고한 팀 파크스(Tim Parks)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둘 다 잘 아는 작가다.


http://www.nybooks.com/daily/2016/01/19/tumult-of-translation-primo-levi/

http://www.nybooks.com/daily/2016/02/02/long-way-from-primo-levi-translation-truce/

http://www.nybooks.com/daily/2016/03/15/translation-paradox-quality-vs-celebrity/


프리모 레비는 스스로도 문체가 간결하다고 자처했지만, 사실은 구어체와 문어체, 현학적 문체와 엄정한 과학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며 구사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하고 번역자가 적절히 해석하고 전달할 줄 알아야 하는 까다로운 작가라고 한다.


특히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고 어원이 같은 단어(cognate)를 그대로 옮긴 경우들을 문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영역본에 "an ankylosed arm"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탈리이어 원문의 "un braccio anchilosato"는 관절이 뻣뻣해진 팔이라는 뜻인데 생활하면서 어쩌다 느끼는 가벼운 불편감부터 팔을 쓰지 못할 정도의 증상까지 아우르는 매우 일상적인 어휘라고 한다. 그런 반면에 영어의 ankylose는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에 어긋나게 불필요하게 눈길을 끄는 단점이 있다.


*영어권 사람들은 익히 알 법한 얘기라서 생략되었을 텐데, 똑같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이탈리아어(그리고 대부분의 로망스어)와 영어에서 뉘앙스가 다른 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어는 라틴어가 조금씩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났고 단테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언어로 정립되었다. 영어는 내력이 훨씬 복잡하다. 영국에서는 독일 등지에서 건너간 앵글로색슨 족이 게르만어족의 고대영어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노르망디에서 프랑스인이 침입해 지배하면서 프랑스어 어휘를 많이 받아들이게 된다. 한때 프랑스어(지배 계층과 문학의 언어)-영어(서민)로 언어 계층이 나뉘어 있기도 했다. 영어에서 게르만어 유래 어휘는 쉽고 구어적이고 라틴어(라틴어에서 직접, 또는 프랑스어를 경유하여 도입됨), 프랑스어 유래 어휘는 어렵고 문어적이며 학문의 언어라는 인식이 있고 실제로 언어생활에서 그렇게 쓰이고 있다. 정확히 대응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한자어와 고유어의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렇듯 실제 언어 사용을 고려하지 않은 번역문을 파크스는 "translationese"라고 부른다. 해결책으로 내가 떠올린 것은 1) 시간을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시간을 많이 투자할수록 각각의 요소에 대해 심사숙고할 수 있고 더 나은 번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책을 이런 식으로 번역하다가는 출간이 영원히 미뤄지니 딜레마다.), 2) 공동 작업 (양쪽 언어의 원어민이 작업하면 좋겠지만, 적어도 텍스트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과 우리말 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함께 작업하기만 해도 결과물이 충분히 좋을 것이다.). 파크스는 해결책으로 번역자가 좋은 편집자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크스 자신도 번역을 해보았기에 양쪽 텍스트에 깊숙이 파묻힌 상태에서 이상한 부분을 번역자 스스로 알아채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알고 있는 것이다.


파크스는 오늘날 문학번역의 풍경도 비판했다. 레비 전집의 번역 품질은 들쭉날쭉한데 훌륭하게 번역된 작품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원래부터 유명했던 대표작들만 거론되었다. 이는 편집자에게 텍스트와 적절한 번역자를 짝지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판매 촉진에 도움이 되는 스타 번역가에게 중요한 작품을 맡기는 관행 때문이란다. (이탈리아의 어느 메이저 출판사는 시장 조사 결과 대중이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번역료를 낮추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파크스의 이런 비판에 대한 전집 번역자 중 한 명의 반론과 재반론도 실렸다.

http://www.nybooks.com/daily/2016/03/28/primo-levi-minefield-an-exchange/


팀 파크스는 이탈리아에서 문학번역을 가르치는 영국인이다. 30여 년 전에 아내를 따라 이주해서 이탈리아에서 죽 살고 있다. 존 쿳시, 재닛 맬컴 등이 기고하는 {NYRB(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 자주 기고한다. 우연히 [NYR Daily](NYRB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린 글을 읽다가 번역 이야기도 많고 글도 좋아서 연달아 몇 편을 읽게 되었다. 파크스의 작품으로는 소설도 있고, 이탈리아에 관한 논픽션과 에세이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논픽션만 두 권 소개되어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문학이론서와 서평집(NYRB에 실린 글들도 수록했을 것이다)이 재미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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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08-1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입니다. 덕분에 Tim Parks라는 번역학자를 알게 되었네요. 번역 논쟁은 어떤 하나의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반론과 재반론으로 계속되죠. 그게 또 번역의 본질적 속성 같습니다~

nuncius 2016-08-19 19:2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죠. 그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