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딱 오늘이다. 섬뜩 할 만큼 절묘한 타이밍이란 그해 추석 전날의 사건을 말하지 않을까?

14~5살로 기억하니, 이십년도 훨씬 넘은 날의 하루는 나이가 들수록 신기하다.

 

어려운 살림에도 명절엔 꼭 새옷을 장만했던 시절이다. 여느날 처럼 우리 삼남매는 새옷을 구입해서는

가계 마루에 걸터앉아 엄마랑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난데없이 몇년간 소식도 없으시던 외가의

친척 할머니께서 근방 한의원을 방문하고, 들르셨다고. 인사를 나누고 가계를 거쳐 방에서 과일을 대접하려는 순간.

우리는 전쟁이 터진줄 알았다. 가계 식당 냉장고를 밀고 트럭이 돌진해서 들어온 것이다.

 

그랬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찰나는 잊을 수 없다.

느닷없이 할머니께서 방문하지 않았다면, 우리 삼남매와 엄마는 큰 사고를 당했거나, 죽음에 이르렀을 줄...

 

 

기억에 있건, 없건 삶에서 죽음의 순간을 한번 즈음은 경험 하지 않을까?

 

 

 

<일 분 후의 삶>은 죽음 직전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12명의 생존자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기자 출신의 저자는 논픽션의 서술에 능숙한 느낌이다.  자칫 괴담으로 들릴 수 있을 법한 생존의 이야기는

 존재에 대한 가치를 죽음의 문턱에서 깨닫는 감동과 몰입을 담아내고 있다.

 

항해사로 등반가로 비행 조종사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 들었다가, 하수구에 빠져 9일간 입구를

찾아 헤맸다는 사례까지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 할 수 없는 생의 회귀가 신비로웠다.

 

해양 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김학실씨는 첫 항해로 들떠 있었다. 얼마가지 않아 결함으로 배가 폭발하고,

바다에 빠진다. 헤엄을 못치는 학실씨와 동기 영은은 선배 항해사가 건내준 튜브에 의지해서 선장님의

지속적인 위로와 혜안으로 목숨을 건졌다. 결국 선배 항해사와 선장님은 영면하셨다.

 

경남 거제의 임강룡 선생은 1990년 곡물을 이송하던 배 조수였다. 갑판에서 순간치는 파도에 쓸려

 바다로 떨어졌다. 홀로있다 순간 일어난 상황이라 배는 모르고 떠났다. '끝났구나' 하며

삶을 정리하는 순간. 100살에서 150살로 추정되는 거북이의 등이 그를 받쳐주었다.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7시간을 거북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구조되었다.

 

남양주의 조성철 선생은 1995년 12월 28일 망년회 자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어처구니없이

경험한 일이다. 9일만에 생존하여 세상의 빛을 만나게 된다. 눈을 뜨니 사방은 온통 어둠,

독한 오염물 냄새만 진동했다. 망년회를 했던 곳에서 하수구 맨홀은 1분도 되지 않았다고.

그곳에서 더듬더듬 거렸던 시간이 9일이다.

 

창원의 이경섭씨는 아홉살에 친구를 구하기위해 얼음물에 뛰어들었다가 숨을 거둔 후 소생한다.

영어강사로 유명한 이보영씨 어머니는 건국이래 최초의 여성 비행조종사 김경오 선생이다.

첫 딸을 순산하고, 4개월만에 교환 비행 제안을 받고서 현해탄을 건너던중 사고가 발생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바다를 향해 가던 중 비행기가 순행하였고, 오사카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기계결함이 발견되었다.

 

유망한 태권도 사범을 하다 전기감전으로 생의 모든 것이 달라지거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프로복서의 이야기는

오직 자신을 들여다보는 생의 몰입에 직면하는 과정을 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대면해 보았다. 두해 전, 일년간의 투병으로 죽음을 맞은 아버지의 염을 지켜보며

담담해지더라. 살아 힘들었던 삶이 죽음에 이르러 고요하고, 편안해 보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지의 삶이 저러했더라며 생각했지만, 죽음 역시 삶과 다르지 않을진데.. 다행이다 싶었다.

 

죽음을 직면한 12명의 생존자들은 그날의 경험들로 인해 삶에 대한 희망의 존엄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 같다.

힘들면 흔히들 '팍 죽고만 싶네, 이래 살아서 되겠나'등 죽음은 끝날 것 같이 말한다.

그러다 살아서 극복하지 못한 삶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끝은 아니다. 남은자의 슬픔은 윤회한다.

 

개인적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라틴어를 늘 수첩에 새기고 다닌다.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 저 12명의 생존자만이 겪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삶의 동행에서 순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생존하거나, 죽음에 이르거나.. 生死를 맞이하는 태도가 오직 나이다.

 

 

 죽음 만큼이나 삶이 두렵다면, 죽음 앞에서도 역시나 두렵다.

죽음을 극복한 자들의 삶에 대한 존재가치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일분 후의 삶>을 통해 또 깨닫는다.

 

 

 

 

순전히 행복한 사람과 순전히 불행한 사람은 없다.

행복한 때와 불행한 때가 있을 뿐. 일생에는 행복과

불행이 뒤섞여 있다. 시절에 따라 그 비율이 조금씩

달라질 뿐. 가장 큰 행복은 괴로움이 가장 적을 때,

가장 큰 불행은 기쁨이 가장 적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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