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황홀 - 우리 마음을 흔든 고은 시 100편을 다시 읽다
고은 지음, 김형수 엮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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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의 마그마는 저 우주에 산재하고 있는 암흑물질 가운데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별들의 가능성과 연결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나는 항상 뜨겁다.

 

나는 내 무수한 시들의 어제 그제 없는 가난과 내 시들의 내일 모레 글피의 무일푼으로 시 이전을 산다.

마침내 한 편의 시가 오리라.

그렇게 오는 나의 시가 나이다.  나는 없다.

 

아, 내 시는 내 조국의 안과 밖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미래일 것이다.

 

- <고은의 시 이야기> 중

 

 

 

 

 

 

노벨문학상에 거론되며 기대와 아쉬움을 수십차례 논했던 詩의 위대함은 무엇인가?

詩를 받아들이는 독자인 나의 가슴떨리는 충족이 아닐바에 노벨문학상이라고 위대함일까?

 

오랜세월 시인을 알지만, 시의 접근이란 생각만큼 친숙함이 아니다.

대중적인 친근함 보다는 이념적인 시적조예가  필요할 것 같은 시인의 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육아중에 박웅현이라는 광고인의 <책은 도끼다>를 만나며,

시인 고은의 詩語에 매료되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낯선곳>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순간의 꽃>​

 

 

시인 생활 56년. 시집 여럿.

<시의 황홀> 표지 날개에 시인의 이력이다.

보리는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지고, 뛰어난 선승일 수록 선문답이 짧던가?

시가 짧고, 여백이 많으나 심장이 흔들린다.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순간의 꽃> 한 토막

 

 

 

낮게 낭독하다. 연필로 옮겨 적는다.

 

하늘에는 거미줄이 자라고

때때로 별빛이 거기 걸리며 내려온다

 

 

우리네 삶이 우열을 가리는 어리석음이 있으나,

거미줄에 거리는 별도 맘대로 부르지 못하니 참으로 평등이다. 

시 구절을 적어내리며 내 삶이 위안이 되더라.

 

 

서명이 아주 흡족하다.

'시의 황홀'

 

개인적으로 영어단어 중 inspiration을 참 좋아한다.

영감. 한자로 靈感 도 좋아한다.

 

시인의 詩를 읊다보면 내안의 '영감' 충만해진다. '시의 황홀'을 경험한다.

 

계속 읊어보자.

 

 

달밤에는 백 리까지 한마을이다 

 

<달밤> 일부

 

 

앵두나무 두 그루

앵두꽃 피어

다 일 나가고 빈집인데

그 집 가득히 빛내주고 있다

 

<앵두꽃> 일부 ​

 

 

사소한 어떤 빛도 사소하지 않다는 걸 시인은 알려준다.

달빛을 앵두꽃 빛에 이렇게 예민 할 수 있다니 ..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국밥을 사 먹는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누군가 SNS에 올렸다는 글이다.

엮은이 김형식은 '브레히트의 살아남은자의 슬픔'으로 원죄의식, 벗어날 수 없는 자기혐오!에 대해 말한다.

시는 제목이 없다.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여수 旅愁 158> 전문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아버지> 전문

 

 

 

 시를 읊다 미소짓고, 사색에 자빠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시인이 다 헤진옷을 보고 뭉클했다고 한다.

늘상 없는 살림에 구멍한 옷을 꿰매던 아버지, 굶주림에 두려움을 알았을까?

입 열지 않는 아버지는 "밥 뭇나? 밥 무라!"가 자식에게 제일 많이도 하셨다.

그렇게 자식에게 할말이 없나 야속했는데, 그게 아버지 생의 가장 큰 두려움이고, 가장 큰 극락이었겠지.

이젠 그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시인은 프롤로그에 이렇게 기록한다.

1950년 전란 이후 내 사상의 기축이 된 허무가 고대 인도의 無와 노장세계의 無爲 그리고 19세기 말

서구 니힐리즘 따위가 아닌 조국의 폐허에서 그 폐허의 언어로서의 한 自生이었다.

 

.....

 

전쟁고아로서의 고독만이 내 시의 무국적성을 낳았다.

 

...

 

나는 의식에의 역류 속을 살때가 많다. 물살을 거스르는 고기인 것이다.

나는 무의식의 청소년으로 산다.

.. 또한 별들이 진화되지 못한 원시의 天文에 내 하잘것없는 심신이 닿아있는사실을 깨닫고 있다.

 

전쟁고아의 고독, 의식의 역류, 진화되지 못한 원시의 심신.

학살의 목격, 반복된 자살의 실패, 파도 절벽에서의 3년, 10년의 절 생활.

공감되지 않는 삶의 깊은 고뇌의 늪에서 정화되어 발산된 시어들은 독자 심신의 정화수다.

 

오랜벗 김형수 시인이 평생 써온 고은 시인의 詩 중 100편을 골랐다.

위로를 나누는 공공의 힐링 언어로 사용되기를 바라며..

 

<시의 황홀>을 내놓았다. 참으로 적절할때 위로가 되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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