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부인 The Collection Ⅱ
벤자민 라콩브 글.그림, 김영미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The Collection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감각


나비 부인 MADAME BUTTERFLY

 

 

 

 


이 책은 영유아들을 위한 그림책이 아니다. 특히 1904년 만들어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더욱 그렇다. 벤자민 라콩브에 의해 그려진 이 탁월한

그림책은 아코디언처럼 펼쳐지게 되어 있고, 마냥 즐겁게, 즐겁게 만은 볼 수 없는 예술 작품이다.

   

 - <르몽드 데 아도>

 

 

그림책 <나비부인>이 도착했을 때, 박스에서 끌어냄과 동시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게 뭔가? 이게 무슨 그림책인가?" 숨을 꼴딱거리며 펼치는데, 아들이 자기도 보겠다며 덤벼들었다.

"만지지마! 찢어지면 알아서 해"라는 엄포를 놓았던 기억.

아마 그림책의 규모나 그림에 압도되어서 하나의 흠찝도 내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던 것 같다.

 

 

그래, 압도되었다. 그림책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대작이라서 무대예술공연중 가장 장엄한 것이 '오페라' 아니던가?

푸치니의 대표적 오페라로 넓리 알려진들 한번도 접한적 없는 오페라에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나비부인'이라.

음악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생각지도 않게 그림책으로 나는 난생 처음

프랑스 일러스트계의 대표적인 신예작가 벤자민 라콩브(Benjamin Lacombe 1982~   )가 해석한 '나비부인'을 만났다.

 

 

동양적 감수성을 이 젊은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묘사 할 수 있었을까?

공감의 영역을 넘어 본래 동양에서 살아왔을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그림 장면장면에 몰입을 유도한다.

 

 

서막 4장에서 3막 13장 까지 진행되는 스토리는 총 76쪽으로 병풍형식으로 진행된다.

몇 개의 평을 들춰보니 '아코디언 처럼' '파노라마 형식의 연결' '병풍'을 언급하듯이 책 길이는 10m가 넘는다.

뜨문뜨문 여백에 스토리를 압축하고, 오직 나비와 나비부인만을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몰락한 가문의 딸 '나비부인'은 먹고살기위해 '게이샤'가 되었다.

해외파견 근무 중인 미군 장교 핑거튼 중위는 관습적으로 파견기간 함께 결혼해서 살만한 여자를 고른다.

결혼이 금지된 게이샤를 선택한 핑거튼 중위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어린 게이샤에게 거짓믿음으로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문화적 차이와 사랑의 방법이 다른 부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다. 파견근무가 끝난 핑거튼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일본을 떠났고, 나비부인에게는 돌아오겠다는 거짓약속만을 남기고 본국에서 나비부인과는 정반대의 혁신적인 여성과 다시 결혼한다.

홀로남은 나비부인은 잉태한 아이를 출산하고, 핑거튼 중위를 끝임없이 기다리고 기다린다.

결국 나비부인은 새로운 아내와 찾아온 핑거튼 중위에 대한 거짓믿음을 깨닫고, 간직한 단칼로 자결한다.

 

 

서막 2장의 내레이션은 핑거튼 중위의 욕망이 만들어낼 비극의 복선을 깔고 있다.

"파닥파닥 날다가 우아하고도 섬세하게 내려앉는 이 나비는 이제 내것이 될 것이다.

내가 나비의 날개를 산산조각 내게 될지라도....."

 

 

 

 

 

핑거튼 중위의 내레이션을 따라 나비의 흔적을 쫓아 독자는 서서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어린 게이샤가 나비로 환생이나 한듯이 작가 라콩브는 '나비'로 부터 몽환을 끌어낸다.

설렘과 기대, 행복, 고통, 영혼의 흔들림, 절망과 배신의 감정은 나비부인을 대신하는 것 같다.

 

작곡가겸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인 류형선의 서평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불편한 감정이 그것이다.

대중적 감각과 시류의 흐름에 뛰어난 푸치니의 능력은 한국의 기지촌 여성이 일본 게이샤의 옷을 빌려 거만한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소재로 조롱당하는 불쾌감에 <나비부인>이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라콩브의 그림책 '나비부인'을 통해 어린 나비 부인의 인생과 애틋한 이미지를 접하면서 내면화된

'서양 오리엔탈리즘'의 불편함을 벗고 화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참 다행이다. 어떤 쟝르도 근접한 적없이 그림책으로 '나비부인'을 첫 대면하여 책에 담긴

나비부인의 스토리에 대한 감정적 순환을 겪어냈으니 오직 한여인의 인생사에 집중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젊은 이국의 작가는 어떻게? 라는 질문은 맨 마지막 장에서 발견했다.

"많은 것을 도와준 세바스티엥 페레즈, 오페라와 많은 것을 접하게 해준 어머니, 감사합니다."

 

서양한 젊은 일러스트레이션 신예 작가는 어머니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 접속으로

백년도 넘은 세계적인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자신의 색체로 자신만의 이야기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기발할고, 에너지 넘치는 그림책을 푸치니가 본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니 재미있다.  결국 무한한 예술적 창작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접속과 체험만이

공유의 예술로 승화 할 수 있다는 것을 '벤자민 라콩브'의 <나비부인>을 만나며 각인된다.

 

 

보림출판사는 저를 참 놀랍게 합니다.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애정이상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독자들의 시각적 경험을 확대 할 줄은 몰랐습니다.

 

The Collection 시리즈들을 몇권씩 접 할 때마다 그림책의 스토리와 독특한 기법, 창의적 묘사들에

감탄은 했지만, 베자민 라콩브의 <나비부인>은 개인적으로 좀 충격이었습니다.

보림은 왜 이런 책을 또 출간했을까요?


이런 속된 말은 좀 그렇지만, 돈도 안될 것 같은 작품을 내놓은 것은 출판사측에선 모험이 아닐까 감히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나무들의 밤>이 그렇고,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그리고 <나비부인>은 더더욱 그럴것 같은 생각.

저의 생각이 편견이고, 빗나간 예측이라면 참으로 다행이지요.


다만, 보림출판사의 더 컬렉션 기획에 참으로 고맙다는 독자로서의 인사를 하고 싶군요.

참으로 풍부한 시각적 업그레이드, 감성의 자유로움, 그림책의 고정관념을 넘어서게 해주어 너무나 고맙고, 기쁩니다.

충만한 그림책 감성이 오롯이 어린 제 아들에게 옮겨 갈 수 있겠지요.


이제 <나비부인>을 떠올리면 푸치니의 오페라가 아니라

보림출판사의 벤자민 라콩브의 <나비부인>을 떠올리게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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