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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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내 오랜 운명

 

"…… 내 시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언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암호이기는 더더욱 반대합니다.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다면 고요하기를 바랍니다.

매화처럼 희고 고요하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2014년 앵두꽃 자두꽃 피어 화사한 봄날      도종환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접시꽃당신 中

 

 

 

 

 

시인의 이름만 쳐다봐도 떠오르는 시는 당연 '접시꽃당신'이다.

문학소녀라며 웃으게 소리를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내며 이 시를 중얼거리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렇게 읽었던 시는 살아오는동안 시에 대한 감성이 달라지고, 시에 대한 낯설음이 싫어지고, 멀리하며 소홀했던 것 같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접어들며 내가 떠오른것은

뉴스 정치보도에서 접하는 시인의 얼굴이었다.

 

내가 시인의 詩를 잊고 살았던 세월만큼 시인은 또다른 삶의 길에 속해 있으니, 참 재미있다.

그렇다고 그가 시인이 아닐까. 국회의원 시인^^;

 

 

2014년 개정판을 내놓으며, 시인은 역시 "시는 내 오랜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시인이라는 운명은 벗어 날 수 없는 '도종환 시인'의 詩를 오랜만에 읊고, 필서해 본다.

 

 

이 더위에 詩 나부랭이를 읽고 있을 여유가 있냐만은 더덥, 춥던 계절은 부질없다.

사는동안 흔들림없는 삶이 어디 있으며, 맘 다잡고 꼿꼿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은 날들이 몇일?

끝에서 부터 읽던, 앞장 부터 읽던 순서도 상관없이 내맘 닿는대로 읽어도 괜찮은 것이 시집의 장점이 아닐까.

 

서명에 이끌려 '흔들리며 피는 꽃' 가장 먼저 만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112쪽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  사는 동안 굴곡없이 사는 삶이 어디있겠나 싶다가도

한번씩 찾아오는 나와 다른 삶의 우월함을 느끼면 저절로 좌절하는 맘에 이런 구절들은 맘에 안도감을 전해준다.

어떤 삶이 더 좋다고, 어떤 삶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꽃의 한 살이나, 인생의 한 살이다 같으리라.  

 

 

무더운 여름 한낮을 보내고, 잠든 아들 곁에서 찾아드는 외로움과 우울함에 시집을 들춰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21쪽 '꽃잎 中'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글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29쪽 '희망의 바깥은 없다. 中'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116쪽 '저녁 무렵 中' 

 

 

시집을 들고는 줄줄 읽어 내렸다. 맘에 닿으면 멈춰서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고, 소리로 읊었다.

시인의 말처럼 시가 무겁지 않아서 좋았고, 고통스럽지 않았다. 편안한 친구를 만난듯이 읽다가 눈물을 적시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남겨준 유일한 선물인 고목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버지의 삶을 반추해 본다.

홀로 덩그러니 남아 외로움을 삭히며 살아가는 어머니도 떠올려보고, 각자의 가정살이에 바쁜 형제들도 그리워본다.

다들 가난한 집안에서 복잡다단한 사연속에 살아온 다섯 식구들의 삶은 이제 흩어지고, 그 세월이 추억이 되어버린 지금.

'참 가난했었구나' '어쨌든 나락으로 치닿지 않기위해 애썼구나' 그런 생각에 눈물이 핑돈다.

 

 

그대여 흘러 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그대 잘가라 中

 

'그대여 흘러 흘러 부디 잘 가라'는 첫 구절에서 내생이 있다면, '아버지가 부디 평안한 삶에 안착하기를' 바래본다.  

 

 

 오랜만에 시가 위안이 되고, 친구가 되어준 여름 몇날 몇일.

루신의 '고향'을 인용하여 쓴 시인의 '산벗나무' 구절에서 절망도 희망도 나름의 무게가 있음을 배운다.

이 시를 읽으니, 내가 좋아하는 '잡보잠경'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경박해지지 않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요란하지 않았다

묵묵히 묵묵히 걸어갈 줄 알았다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면서

 

42쪽 산벗나무 中

 

 

편안한 싯구절 따라 함께 동행하는 송필용 화가의 그림이 내 안의 감성에 진한 터치를 하는 것 같다.

시와 그림의 만남이 그래서 더욱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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