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닷가의 하루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김수연 지음 / 보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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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침묵,

눈먼 어부와 강아지의 하루를 바라본다.

 



 

익숙한 활자 속에 묻혀 일상을 살아간다.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차고 넘치는 정보와 지적 욕망은 읽는 것에 탐닉한다.

읽지 못한 날은 어떤 큰 일을 놓친 듯이 불안하고, 누군가에게 뒤쳐져 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읽어야만이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그러다 무심코 들여다보는 그림책 <어느 바닷가의 하루>는 불편한 속내를 보이게한다. 이게 뭔가? 작가는 뭘 말하고자 했는지? 끝내 난 활자를 달아주지 않은 작가에게 원망을 투덜거린다.  "뭐야 이게… 강아지와 눈먼 어부가 어쩌라고."

 

그리고 하루종일 넘기고, 들여다보고, 넘기고… 깊이 바라보았다.

어느 바닷가, 새벽. 눈먼 어부와 강아지의 하루가 시작된다. 16컷의 그림은 스토리의 단순함으로 처음에는 낯설었다. 바다의 굉장한 에너지를 표현한 것도 아니고, 화려한 색감으로 흥미를 유도하지도 않았다. 푸른 물빛 바탕에 검은 선. 어부의 노란 모자. 강아지의 붉은 빛이 색의 전부이다. 그렇다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다만, 은근하게 다가서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잔잔히 가슴 깊이 퍼져온다.

 

어스름한 새벽. 그 서늘한 바닷가에 눈먼 어부는 자신을 인도하는 강아지와 함께한다. 갈매기가 그물을 뜯어내자 강아지는 부리나케 쫓는다. 자신이 갈매기처럼 날 수 있는 듯이 온몸을 다한다. 그 사이 어부는 물고기를 품에 안고 사투를 벌인다. 모자가 벗겨지고, 물에 빠진다. 어느 틈에 강아지가 쫓아와 어부를 돕는다. 망태에 물고기를 담고, 강아지가 앞서고 어부는 뒤 따른다. 그들은 내일도 이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작가는 엔딩의 메시지를 "우리들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됩니다"로 맺는다.

'우리들'이라는 글에 눈이 멈춘다. <어느 바닷가의 하루>는 결국,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몇 번 그림책을 뒤적일 때는 밋밋한 이야기였다. 활자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보였다. 눈 먼 어부의 눈이 되어주는 강아지, 믿음으로 따르는 눈 먼 어부. 늘상 이득 관계로 맺는 인간사를 뒤돌아 보게한다. 스토리의 단순성만큼 그림의 전달력도 단순하다 여겼지만, 나무에 새겨진 바닷가의 물결은 절제력 있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움직임은 역동적이고, 얼굴 표정에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다. 작가의 깊이있는 표현력에 이제야 감탄이 나온다. 마음이 복잡할 때, 이 작품을 깊이 들여다 보시길. 명상의 깊이만큼 잔잔한 평온이 찾아 올 것이다.

 

 

◈이 책은 2006년 제7회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우수상과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미술관에 주관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상을 수상했다. 2007년 발행되었다. 올해 11월 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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