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1770년 작은 역사 1
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 / 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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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42년 전 '한양'을 품다
익숙하면서 또 낯설다

 

최근 김훈의 <흑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육아 중이라 맘껏 읽지 못하고 겨우 읽고 있다. 작가의 후기에는 일산에 이사 온 후, 자유로를 타고 한강을 따라 서울로 드나들며 '절두산'을 보며 작품을 구상했다 한다. '절두산'은 천주교가 금지된 시절 '사학죄인'들을 사형한 장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를 타고 서울로 드나들며 '절두산'을 한 번 즈음은 접했을 것 같다. 그러나 스쳐지나면 그것은 하나의 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한양 1770년> 그림책을 받아 들고 펼쳐보는 순간 조선시대 '잠두봉'인 '절두산'이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인 것 처럼, 조선의 수도는 '한양'이라는 너무나 익숙한 정보는 흥미가 없을지도. 그러나 이 책을 한 쪽씩 넘기면서 우리가 알고 있고, 들었고, 보았던 '한양'의 또 다른 삶의 풍경이 신선하게 다가 올 것 같다.

 

1770년 정월, 조선은 지금의 서울 만큼이나 삶의 욕망과 꿈이 엉겨붙은 공간이다. 영조46년 곧 손자인 정조가 왕위를 계승 할 것이다. 문화 군주에 대한 자부심 만큼 풍부한 조선의 문화가 꽃피던 시절이다. 책 첫 장면은 조선을 비롯해 청나라의 위용을 자랑하고, 무사 중심의 에도 시대인 일본, 프랑스 대혁명, 영국 산업혁명을 일목요연하게 펼쳐 보인다. 다음 장은 한양 도성도를 22개로 표시하고, 22개 삶을 담아내고 있다.

작은 보름날 문 밖마다 액막이 제웅을 달라고 사내 아이들이 야단이다. 대보름엔 연을 날려 액을 보내고, 더위를 팔기위해 거리는 또 한 번 야단법썩을 떨것이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남대문이 여닫히는데 따라 한양의 일상이 진행된다. 이 책은 저자거리의 거지에서 시골 양반들의 나들이 행렬, 채소와 젓갈을 파는 장수들, 관청이 늘어선 육조거리에서 남촌 박생원의 아침상까지 소개한다. 일흔일곱의 영조 임금의 바쁜 일상도 엿 볼 수 있다. 사도세자가 죽고, 세손이 동궁 자리에 올랐지만,여전히 임금은 나랏일을 의논하고, 책을 출간하고, 신하들과 공부를 한다. 궁궐은 최고의 관청이며 왕실 가족과 주요 관리들의 활동 공간이다. 할 일도, 직업도 각양각색인 궁궐엔 밥 전문가인 '반공', 튀김 요리 전문가인 '탕수색'이라는 별난 직업도 있다.

이제는 '종로'다. 사람이 구름처럼 모인다하여 '운종가'라고 했다. 한양의 종로를 품은 서울의 종로도 여전히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고, 흩어진다. 곶감, 얼레빗, 담뱃대 등 시전에서 파는 물건 19가지를 그림으로 펼쳐 보인다. '상업의 발달' 코너에는 시전의 발전 배경과 상권 순위를 쉽고, 세밀하게 그림으로 전달해 준다. 한양 한복판에 있었던 절터는 살아지고, 백탑은 남았다. 백탑 아래 마을에 살았던 북학파 친구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는 변하는 세상 문물을 받아들이고, 사회 개혁을 주장하던 시절이다. 조선 전기와는 달리 후기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그 틈에서도 여인들은 화려한 치장과 소설책으로 제한적인 사회 활동의 욕구를 해소했다.

이런저런 '한양'을 쏘다니다 보니 벌써 대보름 달빛 아래 광통교에 이르렀다. 각자의 소원을 가슴에 품고, 한양 거리에는 초저녁부터 인산인해다. 그림은 이제 우리를 서울로 옮겨 놓았다. 북촌과 남촌을 가르는 한강, 유리 상자에 보존된 백탑, 서울 시민들의 산책로가 된 성곽, 광화문 광장, 고층 건물 숲 사이로 여전히 보름달은 뜨고 진다.

 

타 지역에서 바라봤던 서울은 복잡하고,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린 무서운 곳이었다. 혼자서 과제를 위해 서울에 왔을때가 벌써 십년이 넘었다. 두렵고, 무서움에 움찔했던 시절. 결혼으로 서울과 근접한 도시에 살면서 자주 서울을 쏘다녔다. 여의도 공원, 남대문, 북촌, 경복궁, 광화문, 종로 등. 조금씩 가까이 갈 수록 서울은 호기심을 전하는 도시인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개별적인 욕망과 꿈을 안고 가난하거나 혹은 부에 넘치게 살아가는 도시 서울은 조선과도 닮았다. 한양을 품은 서울은 개별적인 삶들을 품고 그때 처럼 살아내고 있다.

 

그림책으로 이렇게 많은 참고문헌을 표기 한 책이 있을까? 정승모 인류학자와 강영지 일러스트레이터가 2년간 이 작업에 몰두했다 한다. 그림책이 보여주는 방대한 한양의 정보가 차고 넘쳐 소화불량에 걸릴까 염려가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부터 어른까지 읽을 수 있다. 소장해 두었다가 허기가 질때 조금씩 맛보면 좋을 것이다. 작은역사 시리즈로 보림이 또 하나의 그림책 역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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