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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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서 선생은 '나는 글쟁이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문사(文士)이다.' 스스로 칭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홍준 선생을 뵈면 '유쾌한 개구쟁이'를 떠올립니다. 한 강연장에서 성별도 연령도 아우르며 몰입시키는 문화이야기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창비에서 출간된 잡문집 역시 뭉클한 감동에 유쾌한 웃음, 몰랐던 문화 전반의 성과, 시대를 함께한 예술가들의 스토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맺은 인연의 뿌리가 다양하게 뻗어나가 많은 이들의 삶에 영감을 준다는 것을 말입니다.

책에는 많은 문화예술 인사들의 인연을 담고 있지요. 너무도 유명한 백남준 작가, '타는 목마름으로' 시인 김지하, 얼마전 떠나신 김민기 선생과의 사연을 풀어냅니다. 잘 몰랐던 신학철 화가나 판화가 오윤님에 대한 글과 그림은 놀라웠습니다. 신학철 화가의 <모내기>는 '공안비평'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이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유홍준 선생은 재판이 진행되는 전 과정을 한 번도 빠짐없이 방청했다고 기록합니다.

미술평론가로서 '비평적 증언'의 중요성 때문이라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비평가'로서의 책임감, 한 예술가의 삶과 사상을 배제시키지 않는 중요함을 또 느꼈습니다. 책에는 작가들의 작품 사진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신학철의 <마지막 농군>, <되새김>, <질경이>에 대한 해석과 작가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지게꾼>이라는 그림에 넋을 놓았습니다. 원본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판화가 오윤에 관한 이야기에 홀라당 빠졌습니다. 40세라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셨다네요. '민중미술'가로 이오덕 선생의 책 표지도 제작하셨고, 벽초 문학세계를 미술세계로 이어왔다는 글에 눈이 번쩍 했습니다. '벽초 홍명희, 임꺽정'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오윤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유홍준 선생의 이런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영감을 톡톡 던져주는 매력이 좋네요.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써온 글중 시의성 있는 글만 한 권으로 편집했다고 합니다. 다섯 장으로 나누어 개인사를 말하는 듯 하지만, 다 문화예술 혹은 역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장<인생만사>, 2장<문화의 창>, 3장<답사 여적>, 4장<예술가와 함께>, 5장<스승과 벗>으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부록으로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 <나의 문장수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력서가 제공되어 글쓰기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아주 유용 할 것 같습니다.

자료로 <감옥에서 부모님께 보낸 편지>, <대학 3학년 때 시험 답안지>, <김지하 형이 옥중에서 지도한 글쓰기>를 읽다보면 청년시절 저자의 모습도 상상이 되고, 본인의 학문이나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노력의 청순함이 기특해 보이도 했네요. 청년시절의 유홍준은 어떤 사람이었나? 떠올려보며 혼자 키득거려도 보았습니다. 감옥에서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맏이로서 남동생으로 아들로서 갖는 책임감과 자신의 상황을 또렷하게 인지하는 내용들이 또 깨침을 줍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출소하는 날, 리영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참으로 신기했어요. 그 인연으로 유홍준 선생의 결혼 주례를 하셨다는 사연은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혼인서약' 내용에 '나라'를 '사회'로 고쳐쓴 사진을 보면서 언어의 쓰임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군요. 리영희 선생님 참 대단한 분이셨어요. 언론을 통제하는 현정권에 더욱 생각나는 분입니다. 저서들 찾아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이 책 읽기 시작하면서 연필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내용에 줄을 긋고, 되새김하고, 한자도 찾아보고, 따라 쓰기도 했습니다. 곁에서 작가님이 이야기 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재미가 철철 넘치네요. 담배와 헤어지는 이야기며, 영감님 관객의 작품평까지 기록하고, 지랄같이 꽃이 피었다는 시골 할머님의 말도 글로 풀어내어 웃음을 짓게하는 글쓰기의 유쾌함이 독자에게 즐거움입니다. 통문관 이겸로 선생님의 편지글이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터치 감상을 위한 관심과 노력, 달항리와 사소하게 보았던 정자에 대한 설명에서는 정말이지 눈이 확 뜨였네요. 조선왕조실록을 대중들이 다 이용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문화재청장 시절의 성과도 처음 알았습니다.

밑줄을 긋고 읽으며, 영남대 교수로 학생들과 허수아비를 만들어 민속원 농장에 설치한 사연에 그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진작에 교수님을 알았더라면 영남대로 도강이라도 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구에 살면서 놓친것이 참 후회가 됩니다. ㅎㅎㅎㅎ


스터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저의 책꽂이에서 생각나면 펼쳐보는 책이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땅의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가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통해서 좀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긴 인생사를 읽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될까 싶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유명한 말.

'꽃'을 그냥 '꽃이네'로 끝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꽃에 이름 붙이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춤과 문학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술평론가로 가르치는 교수에 강연자, 글쟁이로 우리나라 구석구석 문화의 내력을 알리는 강연자로 이땅에 유홍준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는 민중과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작품들의 서사가 전부입니다. 저자가 만났던 인연들, 작품들, 사소하게 스쳐지나간 우리 땅의 곳곳에 일상의 예술을 기록한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게 그거일 수 있으나, ‘나라‘라는 말에는 파쇼 냄새가 나지만

‘사회‘ 라는 말에는 인간의 윤리가 살아 있다는 차이 아니겠어."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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