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이너스 2야 - 제2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1
전앤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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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속도감 있게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읽는 이'의 호기심은 '첫 문장'에서 작품을 읽는 속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열여덟 살인 '나'라는 주인공은 "양파는 만만한 생명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프닝 문장은 독자에게 '왜?'를 제시하고, 스토리의 궁금증을 발열한다. 열여덟 살과 양파의 상관관계는 무엇이지? 등교 전, 양파 백 개를 까야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지? 덫에 걸린 독자는 그 의문을 찾아 <우리는 마이너스 2야>라는 스토리의 길에 들어선다.


청소년 또래의 갈등 관계를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으로 가볍게 읽고자 했었다. 여느 작품처럼 부모의 이혼이나 왕따를 극복하는 과정기를 그렸다고 짐작하며 읽다 멈칫 했다. 중국집 '미주홍'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딸 '홍미주'는 태어나 9살까지 윤택한 이모네에서 성장했다. 이후, 장사하느라 바쁜 부모 곁에서 살기 시작하며 자아 정체감에 혼란을 겪는다. 늘 스스로 외롭게 살던 시기를 지나, 고등학교에서 호감가는 친구 '윤이서'와 어울렸지만 배신의 상처로 예전의 고독을 자처하며 학교 생활을 한다.


엄마의 카드를 몰래 빼내 흥청망청 쓴 댓가로 아버지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등교 전 양파를 까야했던 미주. '빚 청산의 마지막 날' 신호등 앞에서 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등교해서 같은 반 '김세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날 부터 '세아'의 혼령이 미주에게 '빌려준 500원을 갚아'라며 붙어 다닌다. 귀신의 등장이라니 '이 무슨 허무맹랑한 호로장르?'인지.

뜬금없는 영혼의 등장은 스토리의 에너지를 저해하나 했는데, 작가는 참 영리하다. 귀신의 등장으로 관심을 확 끌며, 묘하게 키득거리는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를 인물을 통해 담아낸다. '세아'의 혼령은 전생에서 할 수 없었던 행위들을 마음껏 펼친다. 미주의 치매 할머니와 고스톱을 치며,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들어준다. 미주를 힘들게 했던 '윤이서'를 놀려주고, 이란성 쌍둥이 남매 '세아'는 동생 '세정'과 친구가 되어 달라며 '미주'에게 부탁한다. 늘 혼자였던 '미주'는 죽은 '세아'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며 자신의 존재성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마이너스 2야>라는 작품은 1318문고판으로 분류되어 있다. 주인공 '미주'를 중심으로 이란성 쌍둥이 '세아&세정', 친구들 무리속에 외로운 '윤이서'를 통해 청소년들의 혼란스런 감정,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공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 작품에 있어 나이의 분류가 어디 있을까? 읽는 동안 나의 청소년기도 보이고, 그 시절의 감정이 '미주'를 통해 투영되는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불운한 상황을 겪어내고, 내 탓도 아닌데 억울한 누명을 쓴 것 같이 풀 죽어 살아가는 삶일 경우 청소년기는 더 없이 자아 존재감에 상처를 입는다.

이 작품은 가볍게 읽다가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아동 폭력으로 인한 성장기 후유증, 가정폭력, 학교폭력, 교내 따돌림 등의 시대적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작가의 활동 범주를 짐작하면 작품 속의 대화 내용이 생활 밀착형이라 문제의 접근이 유연하고, 생각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힘이 있다.


주인공 미주가 양파를 좋아하는 이유는 끝없이 까도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도 껍질이 중요하지 보이지 않는 마음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 양파 껍질 까듯 인생을 살고 또 살아도, 관계를 맺고 또 맺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연결이 삶의 존재성이고, 관계 속에 내가 보이는 아이러니를 열여덟이 지나고 한참을 살아내야 깨닫는 지점이 오는 것을 미주도 알게 되겠지? 오랜만에 보잘 것 없는 마이너의 삶들도 함께하면 서로의 존재를 채워 줄 수 있다는 따뜻한 작품을 만났다.



껍질과 껍질과 껍질이 쌓여 갔다. 벗겨 내도 알맹이는 없다. 그게 바로 내가 양파를 좋아하는 이유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건 언제나 껍질. 마음 따위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데 어쩌라고.

<우리는 마이너스 2야 ㅣ 목격자 8쪽>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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