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슈탐,

앞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띠지의 문구는 항상 눈을 잡아끈다. '스타일리스트'라…
작가를 두고 여러 수식어를 봤지만,  독.보.적.스.타.일.리.스.트 라는 띠지의 문구가 무척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책을 들었다. <아그네스>

 
왜, 그를 두고
스위스 문단의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라고 부르는지,
그의 데뷔작 <아그네스>를 읽으며 감 잡았다. 


 

나에 대한 소설을 써.”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어떤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나도 몰라.” 내가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전혀 제어할 수 없어. 어쩌면 우리 둘 다 실망하게 될 거야.” 

 _<아그네스> p63

 
발상도 놀랍고, 그 용기가 대단하다.
나에 대한 소설, 연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명 궁금은 하겠지만 나라면 정말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특히, 아래의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궁금했다. 그 느낌이 어떨지…

 

공원을 갔다 오고 며칠 되지 않아 내 소설은 미래로 진입했다. 이제부터 아그네스는 내 피조물이었다. 새롭게 얻은 자유가 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았다. 나는 아버지가 딸의 장래를 설계하듯 그녀의 미래를 계획했다. (p79)

 

나는 분명 내 생각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모든 것이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마치 절대로 떠날 수 없는 골짜기를 걷는 기분이었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면 저항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를테면 어떤 불가항력이 존재해서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마다 용수철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p103)  
 

행복은 점으로 그리고 불행은 선으로 그리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우리의 행복을 묘사하고 싶다면 쇠라처럼 무수히 많은 작은 점들로 그려야 해.
그리고 그 행복은 거리를 두어야만 볼 수 있을 거야.” 

<아그네스> p89

 

그리고, 인상적인 엔딩.
(엔딩 한 장을 두고 나는 3시간, 참았다. 왠지 아껴 읽고 싶었다)

 

나는 불을 끈다. 그리고 국립공원에 하이킹 갔을 때 아그네스가 찍은 비디오를 본다.

운전하는 내 모습,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는 나를 뒷좌석에서 찍은 장면이다. 와이퍼, 이따금 우리 앞에서 가고 있는 자동차, 내 뒤통수, 운전대를 잡은 내 손. 마침내 나는 아그네스가 나를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내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돌아보기 전에 화면은 끊긴다.

<아그네스> p203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들이 많지만,
나는 곧장 <희미한 풍경>을 들었다.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페터 슈탐
그를 좀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ps. <아그네스>에 나오는 주인공 남자,
좀 나빴다. 음… 나쁜남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절판


"젊음이 뭔지 아나? 젊음은 불안이야. 막 병에서 따라낸 붉고 찬란한 와인처럼,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넘쳐 흘러버릴지 모르는 와인 잔에 가득찬 와인처럼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불안한 거야. 하지만 젊음은 용기라네. 그리고 낭비이지. 비행기가 멀리 가기 위해서는 많은 기름을 소비해야 하네. 바로 그것처럼 멀리 보기 위해서는 가진 걸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고 대가가 필요한 거지. 자네 같은 젊은이들한테 필요한건 불안이라는 연료라네."

-61쪽

처음 이땅에 도착했을 때 공항 밖으로 펼쳐진 삭막한 풍경을 보고 '내가 너무 멀리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땅은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그 어떤 곳들과는 전혀 다른 장소입니다. 어쩌면 타임머신을 타고 태초의 별에 온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로켓을 타고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이곳은 상막하고 광활합니다. 그리고 왠지 자꾸자꾸 춥습니다.
-65쪽

난 당신이 실제로 보고 싶어하던 곳에 오기위해 수천 개의 언덕을 넘고 수천 개의 강과 바다를 건너고 수천 개의 폭포를 바라보고 수천 개의 태양과 달을 보고 그리고 수천 개의 바람을 맞으며 이곳까지 온 거라고. 난 당신에 칭찬받고 당신의 사랑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돌아가면 꼭 칭찬해주세요.

-69쪽

"그건 설득해서도 강요해서도 안 되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아쉽게도 아들은 화산에는 관심이 없지만 미국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기 인생을 살고 있어. 그러니 다행이지. 사실 즐겁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도 무의미한 것이니깐. 나는 내 아들을 나처럼 살게 하고싶지 않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이 세상을 살게 하고 싶어. 물론 아들놈도 우리 가업을 물려받지 못한 걸 미안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난 상관하지 말라고 했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반짝이는 보석을 만드는 일이야."

-95쪽

우리가 함께한 순간은 세월이 될 거야.

지금에도 또 먼 훗날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건 지나간 시간들일 거야.

넌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많을수록 사람은 잘 살게 돼 있다는 걸 나는 믿어. 나이가 들면서 현실을 지탱하는 저울보다 기억을 지탱하는 저울이 말을 더 잘 듣게 돼 있거든.

-171쪽

"마리, 그럼 마리에게 여행을 한다는 건 뭔가요?"

마리는 와인으로 붉게 물든 입술을 냅킨으로 닦으며 내게 말했습니다.

"생선, 나에게 여행은 단순히 풍경과 문화를 접하는 게 아녜요, 여행은 인생의 커다란 한 부분이에요. 인생을 행복하게, 윤기 나게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여행은 내 눈동자고 피부이고 손가락이에요. 그리고 여행은, 즐거운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던 내 인생의 바퀴를 좀더 풍요롭게 굴러가게 해주는 추억들이에요."

-22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옆에 있어주세요. 하고픈 이야기 너무 많은데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멀리서 기정이 우네요. 누군가 떠나가고 있어요......

그 노래가 딱 내 마음이었어라우. 품에 안겨 내가 그 노래를 부르면 그 사람은 내 귀에다 대고 또 부르고. 그 노래만 들으믄 그냥 몸이 녹았어. 둘 다 음악을 좋아했는디, 밤에 잘 때는 어먼 것 안 듣고 주로 <아들을 낳기 위한 발라드>, 이런 것만 들었오 우리는.

<아들린을 위한 발라드>라는 피아노곡을 떠올린 나는 헤헤 웃었고 그는 깔깔댔다.

시인들은 왜 시를 쓰나 몰라. 유행가가 있는디...... 뭔 말이 필요 있다요. 무작정 좋은디, 유행가처럼 그냥 좋고, 더욱 좋고, 또 좋은디.

 <나는 여기가 좋다> '밤눈' 51~52p
  

 

<나는 여기가 좋다> 이색리뷰대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사실 계속 단편 '밤눈'을 떠올렸다.

이 '밤눈' 하나만 읽어봐도, 한창훈 작가님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텐데...^^

밤눈 내리던 날...마주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찬찬히 말하는 그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 같다.

 

 
눈이 따시다는 것을 나는 그 사람이랑 있으면서 알었소. 겨울에, 그 사람 품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탄불 갈러 나오면 이런 눈이 내리고 있었소. 그러면 물 흥건한 정지의 노란 탄불이며 잠시 두고 온 그 사람 품이 왜 그리 따시던지. 멍하니 눈 내리는 것 보다가 후다닥 들어가면 그 사람은 내 손에 묻은 물 한 방울 한 방울 일일이 닦아주고, 혀로 핥아주고. 흐흐. 산다는 것은 겨울에 따뜻한 것입디다.

그사람,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나는 우리 사랑이 성공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헤어졌지마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이요. 연애를 해봉께. 같이 사는 것이나 헤어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디다. 마음이 폭폭하다가도 그 사람을 생각하믄 너그러워지고 괜히 웃음이 싱끗싱끗 기어나온단 말이요. 곁에 있다면 서로 보듬고 이야기하고 그런 재미도 있겄지만 떠오르기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나오지는 않지 않겄서라우. 아, 곁에 있는디 뭐 하러 생각하고 보고 싶고 하겄소. 그러니 결혼해서 해로한 것만큼이나 우리 사랑도 성공한 것 아니겄소.

<나는 여기가 좋다> '밤눈' 60~61

  

책 뒷면, 이런 글귀가 있다. 

 
선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생생한 언어.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야무진 기운.

 

꼭 들어맞는, 표현! <나는 여기가 좋다>를 이래서, 권하고 또 권한다. 모두가 그 야무진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어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0-12-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색리뷰대회 대상도서가 이거였나요?
해라님은 리뷰를 되게 예쁘게 써서 정말 읽고 싶게 만들어요.
아, 이 책 어떡해...ㅜ

해라 2010-12-06 12:55   좋아요 0 | URL
10월 이색리뷰대회 도서였어요 :)

이 책은 정말 권하고 권하고 또 권해도 절대 과하지 않은 책!
두 엄지 다 들고 있어요 지금 :)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파트릭 모디아노 글, 도미니크 제르퓌스 그림,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점심시간 끝나고 그림책 하나를 만났습니다.
파트릭 모디아노 글/ 도미니크 제르퓌스 그림(dominique zehrfuss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부인이라고 하네요^^)의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얼마전 부터 표지가 너무 예뻐서 쓰담 쓰담,
곧, 읽고 말테다' 기회만 엿보고 있었거든요.


 

거참...^^

 정말 그 친구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더라구요 ㅋ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눈물도 흘리고...

그러던 슈라에게
반가운 소식이!!

 

"당신이 슈라요?"
"네, 그런데요."
"나는 오르치 남작부인의 기사요. 부인께서 당신을 데려오라고 하셨소. 부인은 당신의 편지를 받으셨어요.
부인께서 당신을 몬테카를로에 있는 댁으로 초대하셨소."

 
두둥!
슈라에게,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생길까요? 


 

 

슈라야,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라운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원래 표지를 벗기고 책을 읽지만, <드라운>은 유독 속표지가 맘에 든다
 

"거기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그려놨어.
네가 봤어야 하는데.
우리 둘이 애도 낳고,
크고 파란 집에 취미도 갖고,
씨팔, 완전 새로운 인생 말이야."
 
「오로라」중 p93 
 

단편 중 「오로라」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냐냥 님이 알려준 the ting tings에  'great DJ' 들으며 읽었는데 살짝 김사과 작가님의 <풀이 눕는다>를 읽었을 때 느낌이 생각났다 ('오로라'의 나와 너가, <풀이 눕는다>의 나와 '풀'같달까?^^) 음, 그 책도 좋았는데^^ 

 

 "디아스 씨의 문학을 완성하는 것은 ‘유머’다.
생동하는 캐릭터, 허를 찌르는 연쇄적인 유머, 빛나는 입담. 그는 “유머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기사전문보기 동아일보 

 

허를 찌르는 유머! 빛나는 입담 모두 적극 공감! 

 
_우리는 커다란 가로등 밑에 있고, 다들 꼬락서니가 하루 묵은 오줌 색깔이다. 이것이 바로 쉰 살쯤 됐을 때 내가 기억할 친구들의 모습이다. (p83) 

 

큭, 하루 묵은 오줌 색깔이라니...
큭큭대며 이런 문장 하나 둘 밑줄 긋다 보니 ㅎ <드라운>이 참고서 모양이 됐다.
역시, 주노 디아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