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나는 감독이다 (체험판)
에비사와 야스히사 작/오경화 역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나는 감독이다.
최근 유행했던 나는 가수다에서 따 온듯한 익숙한 제목이다.
표지를 살펴보면 야신 김성근의 포즈와도 흡사한 모습이다.
난 야구를 잘 알지 못한다.
실제 어릴때부터 스포츠를 그리 즐기는 성격도 못되고, 워낙 급한 성격탓에 1회 초구부터 9회말 투아웃까지 볼 여유가 없다. 차라리 경기 결과가 궁금하면 스포츠 뉴스에서 하는 하이라이트를 살펴볼 뿐이다. 이런 나는 지금도 변함없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야구를 이토록 재미있게 펼쳐볼 수 있게 만든 저자의 노력들이 참 대단하다.
물론 9회말 투 아웃의 박진감을 기대할 순 없지만,
절대 공식에 따르지 않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흔하게 보는 스포츠 영화공식은 영웅의 등장으로 모든 일이 풀리다가 갈등재현, 그리고 절정의 한 방으로 승리....뭐 이런 공식^^중간에 살짝 사랑이야기도 들어가고....ㅠㅠ)
아, 참 이 원작이 1979년 작품이다. 감독이란 제목처럼 밋밋하지 않는 소설의 무게가 느껴진다.
에비사와 야스히사. 그는 이 작품 말고도 F1 지상의 꿈, 귀향, F2 그랑프리, 미식예찬 등의 작품을 남겼다. 책을 보면서 작가 역시 야구선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야구세계를 잘 표현했다.
허구의 팀 엔젤스는 만년꼴지를 도맡아하는 리그 최약팀. 선수들이 승부와 관계없이 즐기는 야구탓일까? 타자들이 6연 타석 안타를 치는 동안 1점을 못낼정도로 형편없는 야구를 하는 프로리그 팀이다. 아마야구도 아니고, 어찌 즐기면서 야구를 한다는 건지 참 의아하다.ㅋㅋ
이런 팀은 코칭 스탭들이 선수와 의기투합해 감독의 역할마저 빼앗고, 그저 감독의 역할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인듯, 특히 열의를 잃어버린 감독은 경기의 출전선수를 점쟁이에게 점을 쳐서 결정 할 정도(?)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히로오카 타츠로'
이 책은 그의 이야기다.
엔젤스 이 팀의 수장이 된 그가 펼치는 반전의 이야기.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빠른 전개로 그려낸다.
그는 엔젤스 팀의 수석코치였다. 명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그는, 일본 최고의 강팀이자 명문인 자이언츠에 유격수로 입단 후. 입단 첫해 타율 3할 1푼 4리를 기록 하며 신인왕을 획득했다. 화려한 수비로 명성을 떨쳤지만 팀의 감독과 충돌로 자이언츠에서 버림을 받았다.
이후 그는 명목상 선배였던 코치를 감독으로 한고 자신이 코치로 들어간다는 조건으로 엔젤스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게 다다. 그는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선배의 뒤를 이어 감독이 되었다.
히로오카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패전이 잇따르면 감독을 갈아치우는 게 프로야구 구단주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구단을 떠나는 것이 선수가 아닌 감독이라는 것을 선수가 알게 되는 순간부터 선수들은 감독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오랫동안 나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 p.26
책은 이제부터 흥미로워진다.
감독과 선수, 코치와의 신경전은 참 대단하다.
사회속의 굴러들어온 돌, 그 갑과 을의 관계설정은 항상 흥미롭다.
막장드라마의 대부분은 그 결과들이 힘의 관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머리싸움이기 때문이다.
일단, 코치들. 이들은 선수협과 일체감을 심어주며 화기애메한 관계를 이어가며, 성적부진의 일말을 보여준다. 감독 그 명예는 인정하지만 선수들은 우리에게 맡기라는 기존 코치의 도발적 선언.
참고 기회를 살피라는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코치들이 이끄는 팀은 여전히 꼴찌를 못 면한다. 구단주 역시 안달이 난 상태에서 코치는 스스로 감독권한을 반납한다.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하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감독권한을 제대로 부여받은 히로오카 감독은 기본을 강조한다.
수비의 기본기조차 잊어버린 선수들. 경기중에 딴 생각에 실수는 잦고, 경기가 끝나고나서도 승패엔 큰 관심도 없다. 그저 술과 마작, 여유를 찾고자 할 뿐이다. 어찌보면 또 다른 돈벌이를 찾는 이도 있고. 시즌후엔 온천여행이나....ㅜㅜ
겨우 선수를 다그치고 팀내 질서를 세우고, 술먹고 마운드에 오른 선수를 징계하면서 조금씩 긴장하는 선수들. 그들은 프로이지 않은가. 겨우 몇 승때문에 구단주는 흥에 겨워 감독에게 샤브샤브 파티를 제안한다. 감독은 단칼에 이를 거절한다.
강하게 만드시려거든 절대 선수들을 칭찬하지 마세요. 그들은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닙니다. 단지 야구를 해서 이긴 겁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명심하세요. 선수들의 본분은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 이기는 야구를 하는 겁니다. 선수들이 항상 그런 생각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진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p.85
지금껏 그들은 지는데 너무 익숙해진것이다. 다만 개개인의 성적이 조금 오르면 연봉협상에서 5%를 7%의 기대수당을 올려달라는 징징거림으로 이를 해결해 왔던 것이다.
선수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아끼는 선수라도 말이죠. 항상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너무 쉽게 구해줘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도 돈은 입으로 버는 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죽을힘을 다해 버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p.153
결국 자신은 감독의 로봇이 아니라는 선수들. 코칭스탭과 함께 저항이 들어오고, 또 다시 시작된 그들만의 즐기는 야구, 감독의 사인을 무시하고, 시합보다는 개인 타이틀을 위해 도루를 감행하는 이들.
지각하고, 실책할 때마다 벌금으로 이를 각성케 하고, 과감한 트레이딩으로 선수들의 긴장감을 심어주면서 감독의 권한과 역할에 선수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다.
히로오카는 철저한 준비를 통한 생각하는 야구, 기본을 중시하는 야구, 이길 수 있는 야구를 추구했다.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야구선수였다. 감독의 의향을 미리 읽을 수 있는 독심술을 지닌 선수. 바로 완전한 준비를 통해서만 만들수 있는 "우연성을 배제한 야구"를 추구했다.
엄청난 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다. 착각 하지 마. 기본을 확실하게 마스터 해. 본인이 파인 플레이를 펼쳤던 순간을 떠올려봐. 아무리 대단한 플레이라도 냉철하게 분석해보면 그것이 몇 가지 기본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p.177
기본에 충실한 야구, 이기는 야구, 바로 인생의 법칙과도 유사하다.
번역한 이는 축구는 전쟁에 비유하고, 야구는 인생에 비유한다고 했다.
9회말 투아웃의 순간에도 희망을 갖고 덤비는 자세.
투쓰리 풀카운트까지도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야구는 희망이자, 인생의 축소판인 셈이다.
이 책은 야구를 모르더라도(사실 용어때문이라도 약간의 기초지식은 있어야 한다),
한 손에 쉽게 들고 한 순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속도감과 긴박함이 있다.
물론, 전개가 빠른것도 있지만 야구 다큐(실제 선수들의 이름과 팀이 거론되기 떄문이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야구인의 가족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이 야구시즌을 끝내고 나서 갖는 시간들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음시즌을 준비하고, 때론 휴가를 즐기거나, 연봉협상에 나서기도 하고, 트레이드, 재활훈련에 돌입하고, 이런 점들이 잘 녹아있다.
특히 승부조작.
야구게임의 승부조작은 아직 없없지만 축구게임은 이미 경찰조사까지 이뤄지지 않았는가.
시대가 흐른 지금 2012년도에 말이다.
스포츠토토가 도입된 이후 이런 사례는 야구, 축구, 농구, 기타 경기에서 없을리 만무하다는게 소문이였다. 거액의 투기꾼들이 몰려드는 데 힘든 훈련에 지친 선수들이 몇 푼의 돈에 쉽게 자신의 기량을 속인다는 속설.
이 책 한권에 야구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다양하다.
야구의 기본기와 훈련, 그리고 전술들. 히트앤런과 투수의 감정조절, 홈런 한방의 효과와 도루의 영향, 외야들의 플레이가 투수에게 미치는 경기흐름을 맛깔나게 표현했다.
단순히 TV에서 즐겨보던 선수들의 플레이가 다 감독과 연관된 사인에 비롯되는 현상.
고의 사사구를 던지면 왜 그렇게 흥분하고 몰려들던 선수들 역시 감독의 예견일까?
책 한권에서 인생을 배운다더니,
신임 감독의 용병술과 인간관계론, 그리고 리더십.
자신을 믿고 맡기는 조력자이자 구단주에게 믿음을 주는 야구, 성과로 말하는 야구.
히로오카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친 여름 땀 흘리며 읽을 만한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