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쪽지 - 여섯 살 소녀 엘레나가 남기고 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키스 & 브룩 데저리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김 할머니가 별세했다.
연세의료원에서 생명연장치료로 연명하시던 분이, 가족들의 존엄사신청으로 세간에 화제를 모으던 분이다.
그분은 생명공급장치를 떼 놓고도 2백여일을 더 살아계셨다.
세상에 어느덧 국내 최초이 존엄사 인정논란이 잊혀질 듯 싶은 시기에,
또 다시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셨다.

삶과 죽음이란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사람과, 이제 막 세상을 보기시작한 생명의 귀중함을 같다.
그들의 인생이 짧던지, 길던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그들은 사람이다.

‘남겨진 쪽지’-여섯 살 소녀 엘레나가 남기고 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나왔다.
노블마인에서 펴냈고, 키스&브룩 데저리크 씨가 저자로, 나선숙 씨가 옮겼다.

저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딸 그레이시와 살고 있다. 2006년 늦가을 큰 딸 엘레나가 뇌종양으로 투병한 일기를 인터넷에 전하며 세간에 화제를 불러 모았다.
2007년 늦여름 엘레나의 마지막 삶에 기록들은 모아지고, 2008년 출간되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누군가를 떠나 보낸 이들의 경험들은 정말 숭고하고, 또 한없이 슬프고 감동적이다.
게다가 불치병으로 긴 투병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말이다.

우리 아버지는 지난 2002년 간암으로 추석을 보내고  이틀째 되던 날 별세하셨다.
가족들에게는 어떤 말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간절하게 보내는 사랑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 동안 6개월여 투병생활에 대한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남겨둔 자식이 못 내 안쓰러운 듯 쳐다보시는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엘레나. 분홍색을 좋아하며 하트를 그리던 아이.
이제 겨우 여섯 살의 나이에 인생의 소중한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 벅찬 경험을 이야기한다. 근데, 그저 체념하고 울적이며, 비관하는 이야기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가족들의 격려와 사랑으로 9개월간의 치료를 견디며, 또 사랑을 함께 나누고자 노력하며 소중한 경험과 기억을 남기며 떠났다.

살아나가고 싶다는 희망을 놓지않고, 매 순간순간 즐거움과 마주하는 방법을 말한다.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매번 말해도 부족한 말들.

분홍색 레이스달린 웨딩드레스에 너무 기뻐하고 좋아던 아이.
집안 곳곳에 자신만의 필체로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쪽지로 이곳저곳에 남겨놓았다.
가방, 서랍장, 책장, 앨범 등등....
자신의 받은 사랑을 이렇게나마 되돌려 주고 싶었던 어린 천사.

(p187)
오늘은 내 믿음과 하느님의 계획에 의문이 생긴다. 시들어가는 엘레나를 보면서, 이게 ‘하느님의 계획’일 거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 가장 순수한 생명 하나를 읽어버릴 수 있는 이 일에서 무슨 목적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내 앞에 펼쳐지면 바로 이렇게 된다.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며, 신념적으로 기준을 삼던 신앙적 희망에 배신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죄 많은 사람이라서, 불완전한 인간이라서 말이다.

평생을 고생만 하시던 아버지의 간암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게다가 어떤 치료가 가망없는 4기 말기 간암.
아직 결혼도, 취업도 제대로 못한 대학 4학년. 그저 자식 하나 잘 키우시겠다는 맘으로 온갖 고생을 마다 않으시던 아버지.

그를 위해 난 아무런 일도 도와드릴 수 없음이 너무나 힘들었다.
때론 신을 원망하고, 때론 술에 의지해 미친듯이 분노해 봐도 현실은 달라질게 없었다.
엘레나의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 기분이였을거라 생각했다.
그 어떤 주변의 위로도 그 순간은 듣고 싶지 않았다.

(p209)
하루만 보고 그날이 힘든 날이었닥 생각하지 말아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들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오늘 하루가 내게 주어진 것을 신에게 감사하세요.

긴 (투)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맞다.
몇 개월 간병으로 지친 몸과 정신.
밤샘 3일째.
비몽사몽간에 난 밤새 아버지와 함께 뒤척였다.
그 순간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에게 유일한 약인 진통제를 간호사에게 요청해야 한다. 결국 4일째, 난 다른 가족에게 SOS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긴 투병에 아픈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왜 이런 일이 내게 오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이런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움에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루. 삶이 주어진 하루.
오늘 살아가는 하루가 바로 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하루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가 있었다면 또 다른 선택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분의 살아본 성품상, 결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귀찮게하지 않으시려는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루.
이 글을 쓰며 또 다시 나를 다그친다.
간병하는 아버지 곁을 떠나는 그 순간.
단 한 시간이라도 자유로운 하루를 원하던 그 원망의 순간.
결코 잊이 않으리라던 순간의 소중함을 그 동안 또 잊어버린 것이다.

(p300-301)
부모가 돼보지 않은 사람은, 부모가 되어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아이 잃은 부모심정을 10만분의 1이라도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중략).
참으로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천사라서 하늘이 더 일찍 데려간 게 아닐까. 하늘에서 어떤 명을 받고 잠시 내려왔을 뿐이리라. 누군가에게 사랑을 일깨워주라거나, 누군가에게 행복과 기쁨을 듬뿍 안겨주고 오라거나, 누군가에게 미처 알지 못했던 순수를 깨닫게 해주라는 그런 사명이 아니었을까.

신에 대한 또 하나의 경외감이다.
이는 저자의 글도 아니고 옮긴이의 말이다.
남겨진 쪽지라는 책을 읽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느낌을 적은 글.

짧은 생의 죽음은 곧 이렇게 책으로 인터넷으로 알려져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소아암재단으로 아이들에데 또 다른 희망을 선사하고, 가족간에 사랑과 아이들에 대한 꾸준한 보살핌으로 사랑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남겨진 쪽지는 어쩌면 책을 읽는 내내 내 가슴속에 담겨져 왔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또 삶에 회의가 들고 힘들고 지치며, 사랑을 의심하고 부정할 때 슬그머니 기억의 저편에서 엘레나의 쪽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라고, 지금 삶에 감사하고, 내가 바로 살아가는 사명을 기억하라고.....

ps. 책 속의 책
내 아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50가지 방법.....
정말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또 왜 이 책이 어떤 감흥을 주는지,
지금 실천하는 마음이 왜 소중한지 정말 소중하고 감동이 깊이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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