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업가 김대중]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웹툰 서적이 나왔다.
스튜디오 질풍에서 제작하고 그린하우스에서 펴냈다.
책 뒷편엔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님의 추천사가 있다.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될 명사, 김대중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평생 “행동하는 양심”으로 헌신했습니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겪고, 6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40여 년간 망명, 감시, 연금당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좌절하거나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국가 부도 사태의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민주적 시장경제와 IT 정보화로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생산적 복지정책으로 국민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전 국민의 의료, 연금, 고용, 산재 사회보험을 전면적으로 실시했습니다. 현재 코로나 19 사태 대응에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로부터 모범국으로 인정받게 된 것도 김대중 대통령의 의료사회보험제도와 공공 의료정책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미국 뉴스위크지는 김대중 대통령을 “나라와 사회를 변화시킨 11인의 세계적 트랜스포머의 한 사람”,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될 명사 36명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고 추앙했습니다.
웹툰, <청년사업가 김대중>은 이런 위대한 대통령이 되게 한 섬마을 소년의 꿈과 청년사업가의 신념과 의지를 인간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웹툰 출판 작업이 쉽지 않은데, 이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양균화 본부장, 국제평화영화제 염정호 위원장, 스튜디오질풍 이호 대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김성재 /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
사실 내가 기억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시절에 관한 것이다.
국가부도사태라는 아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분이라는 게 어쩌면 전부일련지도 모르겠다.
결이 좀 다른 이야기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여정은 정말 드라마와 같다.
1967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첫 대결을 펼친 것이다.
이후 야당의 새로운 지도자로서 경쟁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게 된다. 어둠의 5공화국 신군부가 본격적인 활동으로 인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죄로 구속돼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다시 정치여정을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 직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역시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한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후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당선됐다. IMF 구제금융 신청 2년만에 최종적으로 탕감조치를 받았다. 공과사야 후대의 몫이지만, 아직도 그 시기에 관해서는 워낙 드라마적인 내용이 많아선지 영화로 많이 그려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