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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서덕 지음 / 넥스트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쓰다
사전적 의미는 뭘까?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다.”
그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아빠 나 힘들어”
아들이 잠자기 전에 불쑥 던지는 말이다.
잠시 긴장한다.
‘뭐가 초등학교 2학년을 힘들게 했을까?’
잠시 머릿속에 든 생각이다.
온갖 추측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헤치고 지나간다.
왕따, 학교폭력, 학업진도, 담임선생님, 차별, 공부, 숙제, 여자친구?
“아빠 나 바이올린 하는게 힘들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방과후 교실에서 하는 바이올린 수업이 버거운가 보다.
어렵지, 당연히 어렵지, 음악이란게 내 손가락으로 정확한 음을 만들고 표현하는건데.
힘들지, 힘들어서 음악을 하는 게 사실 즐거워서하는 사람보다 많겠지.
그래서 많이들 하고 많이들 포기하고 그렇게 살아가는게 아닐까?
하지만, 당장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동안 들인 시간과 비용이 먼저 떠올랐다.
“그럼 힘들지, 음악이란게 쉽게 누구나 할 수 없잖아. 천천히 꾸준히 노력해야지. 지금 기초라서 더욱 힘들 거야, 응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열심히 따라해야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허한 말이 나왔다. 대답치고는 궁색하다. 아들에게 해준 말치고는 도움이 안되겠다.
이래서 좀 더 머리 크면, 중2가 되면 대화가 단절되나보다.
수많은 상담심리책자들이, 그 동안 살펴봤던 철학심리책이 이런 대답은 아니라고 했건만.
난 또 어쩔 수 없는 평범한(?) 부모가 되고 말았다.
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서덕 지음. 넥스트 북스에서 펴냈다.
저자는 애쓰다 힘든 자신의 삶의 단편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자신만의 경험담에서 나온 진솔한 이야기가 와닿는다.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란, 정말 모든 직장인들이 다 같지 않을까?
상사와 부하, 팀원과 팀장, 부장과 임원이 되기까지 수많은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삶.
저자는 광고카피라이터였다. 그리고 다시 카피라이터다.
대학수업에 들었던 시 잘 쓴다는 칭찬에 그는 만족했다.
취업을 위한 도전을 거쳐 인턴이 되고, 광고회사에 취업해 어느새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8년의 직장생활.
저자는 더 성공하기 위해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참아왔다.
카피라이터라는 일의 특성상 온통 새로운 문구를 생각해야 하고,
회의에서 발표하고, 의견듣고, 까이고, 후배의견에 밀리고, 등등 저자 역시 직장인으로 버겁고 힘들어도 잘 해내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예의없는 후배, 까다로운 직장상사와의 인간적인 관계문제로 괴로워도 잘해보려고 참으면서. 내 안의 나를 분리시켜나갔다. 가면속의 모습들로 착한 선배, 일 잘하는 팀원이 되고자 억눌린 내 안의 감정과 울분, 화를 참았다.
그러나 참고 버티는 것도 습관이 된다. 힘들어도 왜 힘든 줄 모른 채 피곤함을 억누르고, 괴로워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마음의 병을 키운다. 공황장애, 발작이다. 가슴이 이유없이 뛰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어떤 때는 숨을 쉴 수 없다. 눈 앞이 캄캄하다.
아이디어가 없는 날이면 자동차 사고라도 당했으면 싶다. 병원에서 며칠 누워있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를 직장생활 잘하는 A와 내 안의 진솔한 나B로 나눠 생각하기도 했다. 애쓰는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 왔다고 말했다.
츠네가 우울증에 걸렸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사람입니다.
사실 우울하다는 말은 내 삶의 무기력이 찾아왔다는 게 아닐까?
애쓰고 노력해 온 삶에서 나를 내려놓는 법. 나를 찾은 법.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
그 동안 잊고 살아온, 나를 챙기는 법을 찾는 책이다.
시사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실천하고 있다.
뇌종양 암을 제거하고 재활치료중에 생각한 삶의 의미를 담아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처럼, 삶의 목적을 위해 열심히 뛰다보니 뒤돌아볼새가 없는 이들은, 결국 한 번쯤 넘어지거나 쓰러지고 나서야 온전히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고 있다.
저자 역시 서울대학생들의 해외탐방활동을 도왔던 기억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한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찾는 ‘나’라는 개성이, 하나 둘 사라져 직장에서의 무미건조함에 잊혀짐을 이야기한다.
결국 사회생활 속에서 스스로의 착한 가면을 쓰고 견디기만 하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탈이 난 것이다. 공황장애는 누구라도 올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개인간의 감정차이와 스트레스 해소에 따라 다르다.
저자 역시 직장에서 공황장애를 이야기했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나도 그래”였다. 마치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기처럼 말이다. 정작 당사자는 숨도 못 쉴정도로 힘겨운데 말이다.
세상 살다보면 정작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겠어라는 애써 위안삼는 자세를 말이다.
우리의 문화가 지금까지 그래왔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며, 누구에게나 포기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포기할 수 있다.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내 길이 아니라면 일찍 포기하는 게 좋다. 뭐 어떤가 삶이 하나의 길만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최근 수능성적이 발표됐다. 어차피 언론지면엔 두 가지 이야기다. 수능만점자와 수능점수에 충격받아 자살한 아이들. 뭐지? 어차피 사는 인생 다 ‘대학생’이 되란 말인가? 일찍 취업하면 안되나? 뭔데 점수로 인생을 평가하고, 가늠하고, 서열을 매긴단 말인가?
이처럼 애쓴 학생을 위한 책은 없다. 애쓰다 잠시 쉼을 이야기하면 안되나?
직장인은 왜 계속 일하나? 워라벨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책의 저자 역시 이 점을 길게 이야기한다. ‘사는 게 다 그렇지’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는 사실 너무 애쓰며 사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정신이 아프고, 인생의 모든 게 고달파지는데 쉬면 좀 안되냐고. 쉼이 왜 게으름과 연관되어지는건데, 애쓴 만큼 숨의 권리도 있는 거라고. 거창하게 사회와 문화와 이웃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를 위한 삶의 한 쉼표를 주는 거라고.
쉼은 결코 자포자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 숨이 붙어 있으니 쉼이 필요한거지, 숨 조차 붙이고 싶지 않다면 뭐 평생 쉼아니겠는가. 살아서 조금이나마 다시 용기내어 다시 도전하는 저자처럼, 스스로 환경에서 벗어나는 최대의 효과는 쉼이고 회피다.
왜 어렵고 힘든상황을 마주치려 하는가? 극복하려 하는가?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미 만랩의 악당영웅처럼, 데빌이 되어 무수한 희생자를 남기는 데 왜 나까지 상처입고 부딪히려하는가? 피하자. 애쓰지 말자. 무리하게 헤쳐나갈 상황이 아니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인생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직장이 거기 뿐이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의 일터를 가진 곳을 찾아 떠나면 되는 것이다. 일의 만족도를 높이는, 내 인생의 해피함을 느끼는 곳으로 찾아가고, 내가 만들 수 있으면 만들면 되는 길인데 말이다.
저자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 애쓰는 것이 괴롭지만 여전히 애쓰는 사람들, 힘들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만드는 사람들, 망가질까 두려워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 지금 애써서 괴롭다면, 잠시 쉬었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무리하게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의 바람처럼, 우리 모두 너무 애쓰지는 말자. 내 삶을, 내 인생을 좀 먹는 애쓰는 일이라면 하지 말자. 그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많은 데 왜 굳지 어렵게 헤쳐 나가려 하는가?
괜찮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내 인생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 찾아서 할 수 있는 삶이다. 개인의 즐거움을 맘껏 누려도 좋다. 굳이 조직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은 살지 말자.
왠지 직장인이라선지 더욱 공감되고, 왠지 모를 동질감과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 책에서 너무 애쓰는 사람들이라면 꼭 전달해주고 싶다. 이 책을 전해주며 읽어보라고 전해주고 싶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꼭 사서 전달해준다면 이 역시 저자에게 또 다른 애쓰는 상황을 만회시켜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