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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ㅣ 사회탐구 그림책 2
케이트 밀너 지음,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4월
평점 :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일들이 많다.
미얀마 로힝야사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기에, 왜 쫓겨나고 핍박받아야하는지 모른다.
오갈 곳없는 그들에게 국제사회도,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왜?
시리아는 아직도 전쟁중이다. 내전이란 이름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그 안은 작은 세계대전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유엔도 미국도 우리나라도 그저 남의 나라 불구경이다.
내 나라, 내 조국을 잃고 난 이들이 가야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저 태어난 곳이 전쟁터고, 가난에 찌들어 있는 분쟁국가였다.
어른들의 치열한 다툼속에서 오늘 하루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케이트 밀너 글과 그림에, 보물창고에서 펴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글은 가장 정제되고 세련되지만, 내용은 슬프다.
‘난민’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
너라면 무엇을 가져가겠니?
너라면 얼마나 오래 걸을 수 있겠니?
아이들에게 아무도 이런 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해하기 싫고, 이해할 수도 없다. 왜 싸우는지, 우리가 왜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하는지 모른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아니면 눈 뜨고보니 혼자 남아있을련지도 모른다.
그저 하루 하루 이끌려 다니며 생존을 위해 살아남아야했다.
책은 난민의 고달픈 삶을 그림과 간단한 글로 표현한다.
갑자기 떠나는 날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계속 걸어야 했다.
어딘지 모르는 장소에서 먹고 자고, 다른 사람무리속에서 쪽잠을 자야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독자들인 아이들에게 의견을 계속 묻는다.
너라면 무엇을 가져가겠니?
너라면 얼마나 걸을 수 있겠니?
너는 예전에 살던 집이 그리웠던 적이 있니?
우리가 ‘난민’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서 질문은 역지사지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책 제목의 난민이란 단어가 몹시 서글프다.
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라는 제목처럼 그들 역시 행복한 삶, 평화로운 하루를 보장받고 싶었을테지만, 현실은 비참하다. 누가 그들을 난민으로 부르고 싶겠는가?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있고, 인격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는 삶의 일상을 어른들의 욕심으로 망가뜨린 이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내 땅에서 내가 살 수 없는 현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6.25전쟁속 피난행렬속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세대가 있었다.
이북5도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있다.
남남갈등, 남북갈등, 색깔론, 공산당, 남녀갈등, 세대갈등, 빈부격차, 지역이기주의 님비, 좌절속에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세대에게 미래는 없다.
저자는 난민이라는 아픔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결국 우린 그 난민을 생각할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도 조금의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인격체이다.
그들의 판단이 필요한 일도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 주변에만 머물러서도 안되는 이유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미세먼지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옆에 또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 공해, 전쟁, 기아, 지구 온난화, 해수면상승, 가라앉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다. 마치 세계가 한 가족이라면, 100명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라면 평화로울 수 있을까?
국제 사회, 지구촌, 세계화의 이름으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난민 인정과 처우에 대한 입장은 서로 다르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가려고하는 곳에 양해를 구해야하지만 강요할 수 없다. 인권은 상호 호혜적 작용이다. 싫어하는 이들에게 당연한 권리를 주장만 할 수는 없다. 권리와 의무를 함께 이야기 해야한다.
무조건적 혜택을 인권이란 이름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있는 국제사회의 의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구성원들의 규칙들이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의견들이 다르다면, 눈여겨 봐야한다. 난민을 바라보는 동정의 눈빛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담겨야한다.
미국 윌가의 금융권은 수익극대화를 향한 금융화를 말한다. 수익의 정점이라는 혜택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근로자 고용창출없이도 가능한 금융화에 몰두하는 사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최저생계 혜택은 미국에 없다.
단 한 번 시리아의 화학제조공장을 공격한 미국와 유럽은 서로간의 유리한 방향을 찾아 누군가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정보만 받고 방치했다. 이라크전쟁처럼 있지도 않았던 일에도 재무적 관점에서 찾아 나서던 이들이 시리아처럼 별 소득없는 일에는 인권유린이라는, 화학전이 생길 것이라는 사전조치할 명분이 있었지만, 러시아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이라서 선뜻 나서지 않았다.
유엔의 존재이유는 결국 선진강대국의 입맛에 맞춰서 명분 찾기에 바빴다. 핵무기 무장에 대한 북한제제는 신속하고 강력하게 이뤄졌다. 시리아는 화학문기를 실전에 사용했음에도 러시아의 반대로 아무런 제제도 없고, 평화유지군파견도 없고, 그저 유엔조사단파견에 그쳤다.
이 책 한 권에 모든 난민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인간이 신을 믿는 순간, 우린 다툼의 여지가 생겼다. 내가 믿는 신을 위해, 정권을 유지하고자, 돈을 찾아서, 국민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인간 스스로를 인정하고 주체적인지 못한 사이, 우린 신을 방패삼아, 그를 무기삼아, 그의 뜻을 찾겠노라 외치며 당당하게 맞서 서로 싸우고 있다. 그 사이 노약자와 아이들이 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는 없다. 모두 같은 종교적 믿음안에 있기를 강요당하고, 우리 지역만은 이방인, 이교도가 들어와서는 안된다. 인간의 이기심이 재앙을 부르고 있다.
난민을 향한 최소한의 사람됨을 위한 도움의 손길은 필요하다. 우리 교육에서도 사회속의 성장을 위한 지구촌을 향한 시선을 알려줘야 한다. 소통을 위한 건전한 대화로 참여를 통한 구성원의 발전을 의논해야 한다. 행복한 지구촌을 만들기 위한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