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투쟁은 내가 겨루어야 할 상대가 나와 비등하거나 나보다 더 우월한 존재여서 나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 때만 정당화된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에만 경쟁과 투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10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가 보는 세계에서 살아 있는 것들은 자신의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증대시키기 위해 싸웁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들이 서로 힘을 겨루는 세계이고, 니체는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을 긍정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 세계는 비록 우리에게 가혹한 시련을 가할지라도 우리가 자신을 단련시키고 성숙시키도록 돕는 친구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계에 감사하면서 그것을 사랑합니다. 니체는 이렇게 세계에 감사하고 그것을 사랑함으로써 세계와의 분열과 대립을 넘어선 상태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보았습니다.
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가 말했습니다.

나는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나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깊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자주 자문해왔다.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의 본성이 가르쳐주는 바로는, 일체의 필연적인 것은 높은 입장에서 그리고 거시적인 의미에서 보면 유익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것을 견디는 것을 넘어서 사랑해야 한다. ‘운명애amor fati‘,이것이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의 본성이다.
그리고 나의 오랜 병약함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건강보다도 병약함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덕을 입었다. 보다 높은 건강, 그것을 제거하지는 않는 모든 것에 의해서 보다 강해지는 것 같은 건강을 나는 이 병약함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철학조차도 이 병약함에 빚지고 있다. 큰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 (중략)
나는 그런 고통이 인간을 ‘개선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을 깊어지게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중략) 
우리는 그런 위험한 자기 지배의 단련 속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8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이 얼마든지 운명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믿느냐‘라는 질문에는 보통 어떤사람들이 긍정적인 답을 할까요? 또 부정적으로 답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긍정적으로 답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은 반면, 부정적으로 답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성공한 것은 모두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 여기지만, 실패한 사람은 자신이 실패한 것은 부모를 잘못 만났거나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할것입니다.
7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