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살해와 제사 편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인생은 번식과 죽음의 방대한 움직임이다. (....)
삶이란 본질적으로 과잉이며 낭비이다.(....) - 97쪽
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많은 낭비와 가장 큰 위험(그것은 힘의 정도(양)와 관계한다.)을 추구한다. 우리는 설마 하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그럴 만한 힘이 없을 경우이다. 힘만 있으면 우리는 곧 낭비하고 위험에 몸을 내맡긴다. 힘과 수단만 갖추어지면 우리는 누구나 끊임없이 낭비하며, 부단히 위험에 직면한다. -98쪽
내가 태어나서 죽기까지 길게 보면 8,90년,
평생동안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낭비하는 모든 에너지와 자원을 생각하게 한다.
먹고, 입고, 배설하는 그 모든 일이 본질적으로
소모하는 것이고, 과잉이며, 낭비라는 것이다.
동물들과 비교해볼 때 인간의 삶이란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움켜쥐고, 짜내며 서로를 못살게 구는 오만한 최상위 포식자일 뿐이다.
생각하는 머리를 떼놓고 육체만 바라봤을 때 우리가 소위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생명체보다 우월한 것이 뭐가 있을까? 그저 죽음의 낙엽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한낱 단백질 덩어리인 것을.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하지 않는 사실 ˝죽음만이 곧 세상의 청춘˝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모든 생명체는 공평하다.
기실 독서란 우리가 힘이 없어 체험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체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독서란 다른 사람의 모험이 자아내는 존재 상실의 위기를 고통을 치르지 않은 채 한번 느껴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오직 허약함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못할 뿐인 저 깊은 곳의 명령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다름 아니라 우리가 열정적으로 읽는 이야기들이 말해 주고 있다. 문학은 사실 종교의 후사를 잇는 종교의 상속자이다. 제사는 한편의 소설이며, 다른 말로 하자면 피를 보는 소설과 다를 것이 없다. 거칠게 보면, 제사는 한편의 연극, 예컨대 오직 동물 또는 인간 제물이 죽음에 이르는 연기를 마지막 에피소드로 집약시킨 드라마이다. -99쪽
이 책은 제목만큼 지적으로 에로틱하지만, 그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찬찬히 품을 들여야 할 만큼 쉽지 않다. 위의 발췌는 ˝금기는 범해지기 위해 거기에 있다.˝ 라는 바타유의 명제를 책읽기에도 적용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에 대한 문장은 어디서 만나도 늘 반갑다.
하지만 더욱 더 반가운 이유는 나를 포함하여 ˝소설을 읽는 행위˝에 대해 의문을 품는 많은 독자들에게 그 심궤를 파고드는 탁월한 해석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만이 간접적으로 우리의 ‘금기‘를 위반하는 욕망을 충족해 주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심연을 건드린다.
그리고 집단의 무의식속에 있는 본성을 독특한 관점으로 엮어낸다.
나조차도 평소 인지하지 못한 내 머리속 가장 미세하고도 심원한 영역을 언어로 풀어낸다.
하루키가 ˝인간정신의 지하2층˝이라고 언급한 바로 그 부분을 세밀하게 조탁한 언어로 대중을 이해시킨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쓰는 것도 능력이지만,
어려운 것을 그 함의가 지닌 본연의 뜻을 다치지 않게 ‘어렵게 상세히 풀어내는 것‘도 훌륭한 글임을 또 한번 깨닫는다.
육체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얼굴을 만져보고 몸을 쳐다본다.
변검처럼 하루에도 수십개의 페르소나를 바꾸며 살고 있는 그 가면뒤에는 나의 민낯이 있을까?
그 민낯이 바로 내 자신일거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을 본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만큼이나 어렵다.
* 사진의 필통은 서니데이님의 <소잉데이지>에서 구입한 제품입니다. 이쁘고 폭신하고 공간도 넉넉해서 책 읽을때에는 늘 가지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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