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들은 전통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지켜야 할 전통의 내용이 과연 어떤 것일까?
보수주의자들은 ‘뿌리없는 것‘에 대한 깊은 혐오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보수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뿌리 없음이며, 전통적 보수주의와의 단절이다.
게나 고둥이나 다 보수주의자라고 목청을 돋우는 이 부박한 시대에 우리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장엄하게 사라져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176p》
《이념의 문제라고만 하기에는 한국의 이른바 진보파는 그 뿌리부터 너무 보수적이다. 장준하, 함석헌, 문익환,
계훈제, 김수영, 리영희 등 실천과 이론으로 한국의 재야와 진보진영에 뚜렷한 영향을 끼친 분들이 해방 직후 또는 한국전쟁 전후에 보인 행적을 보자.
장준하는 극우민족단체 민족청년단 간부, 함석헌은 신의주반공의거의 배후이자 공산주의가 싫어 월남한 사상가, 문익환은 미군 통역장교, 계훈제는 우익 반탁진영의 행동대장, 김수영은 의용군에 나갔다가 탈출하여 남쪽을 택한 반공포로, 리영희는 국군 장교 등이었다. 이 정도 경력이라면 이 관제 ‘빨갱이‘들의 사상적 검증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닐까?
그들은 민족분단의 특수상황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184p》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덕목인 도덕성, 일관성, 책임감, 지혜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당치 않은‘족속들이다.그들은 한번도 정녕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적도 없고 희생한 적도 없다.-185p》
예전에 일독할때는 분노로 읽었지만
지금은 같은 문장이라도, 한홍구 교수의 주장에
심취해서 맹목적으로 빠져들진 않는다.
합리적 사실관계 외 한쪽의 주장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젊은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현대사 공부를 대중화시킨 훌륭한 책이라 생각한다.
난, 대한민국의 진정한 보수를 아직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책임있는 진보의 노고도 열렬히 응원한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일제 말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 행위에 의해 말살되고,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와중에 진보 학자들이 박멸되었지만 죄우날개가 꺾인 새처럼 뒤뚱거려 힘겹게 달려온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기에 말이다.
그 저력의 ‘뿌리‘는 뽑히지 않았기에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할 그날을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