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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 - 조영남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
조영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세계 3대 고백록이란 말을 들어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이 그것이다. 특히 이 세 권 중에 루소의 고백록은 명사 문광훈 교수에 의하면 "놀랍도록 솔직하고, 놀랍도록 회고적"이라고 말한다. 낯뜨거운 내용도 그냥 노출시켜서 가히 놀라운 자서전이라고 하는데 목표만 세웠지 아직 책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세계 5대 자서전이란 말을 보게 되어서 무엇이 더 포함되었나 하고 봤다. 여기에 톨스토이는 없고 괴테의 <시와 진실>, 한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이 추가 된다. 특히 덴마크 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에 의하면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내가 본 자서전 중에서 최고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궁금한 인물이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 우리 시대의 광대이며 기인이며 트러블 메이커라고 불리는 특별?한 존재가 자전적 회고록을 썼다고 하기에 굉장히 관심이 갔다. 일단 조영남이란 가수는 다른 가수와 다른 포스가 있다. 또한 한 인간으로서도 기이하게 행동하는 모습에 그 한 사람의 삶이 궁금했다. 그런 찰나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도 풀어주니 너무 고맙다고 해야할까? 그의 인생이 암튼 궁금했는데 만능 엔터테이너의 기원과도 같은, 괴짜와 같은, 그의 버라이어티한 삶을 이렇게도 자세히 스스로 밝혀주니 인간이란 존재를 해부해보는 쾌감까지 느끼게 된다.
전 아내였던 영화배우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함으로 조영남이란 존재가 은연 중에 부각되는 것을 보며, 조영남은 물건 중에 물건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재미 있는 일화를 보았었는데 전 아내가 여우조연상을 타자 조영남은 "가수 이장희가 해보라고 해서 꽃다발을 무명으로 세 번 보냈다가 배달 기사가 그쪽에서 한 번만 더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조영남은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최고의 복수"라 말을 함으로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망언 논란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윤여정은 매우 탁월한 선택을 하며 이혼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존재는 함께 사는 것이 매우 힘들기에 차라리 버리는 카드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이 말은 서로가 헤어짐으로 각자의 삶이 특별하게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
이 책은 사뭇 그래도 진지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철없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도 아낌없이 노출하여 자신의 속사정을 밝혀 준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원고 한 편 한 편이 소중하고, 진심을 다해 써야 한다는 걸 안다. 나이 때문에 이 글이 내 자전적 얘기의 마지막 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p16
이 책을 위해 조영남은 장장 10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 43회차에 걸쳐 <중앙SUNDAY>에 연재를 했는데 연재되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이 솔직한 고백에 열광적인 반응과 격려 찬사를 보이는가 하면 거침 없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질타와 더불어 온갖 야유를 하기도 했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 보듯이 "이 책에 실린 텍스트는 한 인간의 삶이 이뤄낼 수 있는 최대치의 성취와 시련, 극복과 좌절 등을 두루 다루고 있고, 거기에 보기 드문 인사이트와 성찰이 따라붙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토록 버라이어티한 모티프와 에피소드를 가진 삶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책에서 다뤄지는 서사의 볼륨은 압도적이다."는 표현이 맞는거 같다.
이 책을 독자가 읽기 전에 아내가 먼저 읽었는데 읽은 부분을 얘기해 주는데 참으로 한 존재가 이렇게도 많은 만남과 에피소드가 있나할 정도로 이 책은 해학스럽고 실로 놀랍기도 하다.
조영남이란 존재가 대중에게 각인된 이유는 특유의 자유분방한 삶의 스타일에서 야기된 몇몇 사회적 스캔들 및 해프닝 때문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때마다 좋든 싫든 극적인 모티프와 에피소드들이 한 인간이란 존재에 나이테처럼 축척되어 늘 화제와 풍문의 생산자로 대중에게 다가가니 그를 아니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인 나는 조영남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적이 있다. 최유라와 함께하는 '라디오 시대'를 통해 그는 그만의 진솔함과 내면의 따뜻함을 보게 되었다. 라디오에는 현재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는 그때마다 숙연한 모습으로 라디오를 진행한다. 물론 그 숙연함이 어떤 것인지는 본인만 알고 그가 몰래 얼마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는지 모르지만(책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하며 이때만큼은 인간적 모습이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조영남 노래 가운데 '모란동백'을 좋아한다. 조용남은 자신의 장례식 발인 때 이 곡을 조가(弔歌)로 불려졌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그의 진심을 본다. 나 또한 못 치는 기타로 부를 때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실제 조영남은 1998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가진 <데뷔 35주년 기념 빅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도중 목이 메이고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여 몇 차례 중단했다 다시 부르는 흔치 않는 장면을 보여줬다. 사실 조영남의 행적을 생각하면 그에게도 저런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생경스런 모습인데 아무래도 그 또한 인간이기에 삶이 주는 허무함과 아픔과 시련 속에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지 않나 싶다.
유별나며 참 많은 에피소드
그의 글에 보면 여러 사람과의 만남과 함께 매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대통령과의 오찬은 가히 최고의 조영남다운 모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해 볼까한다.
조치원 훈련소에서 6개월 훈련을 마치고 육군본부로 올라왔을 때 어느 날 중대장으로부터 육본 참모장 김창범 소장 앞으로 가보라는 전갈을 받게 된다. 이 행사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는데 밥풀데가 겨우 하나를 달은 때라 별 두 개나 다신 소장님께 질문을 하지 못한 가운데 박정희라는 대통령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어떤 노래를 불러야 될지는 이미 김소장님과 얘기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박대통령 앞에 서는 순간 조영남은 퍼뜩 머리를 굴리며 "‘나는 지금 임금님 앞에 섰다. 그렇다. 나는 왕의 남자가 되어야 한다.’ 왕의 남자가 되려면 어때야 하는가. 딱 한 가지다. 최고의 노래를 선물해야 하는 것이다. ‘황성옛터’ 따위의 고리타분한 노래로는 최고의 노래 선물이 못 된다. 획기적인 노래를 불러야 한다." 하며 기타의 A 마이너 코드를 쫭! 내려 긁는 가운데 생각지도 않은 ‘각설이타령’을 불렀다. 조영남에 의하면 우리의 역사, 우리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최상의 노래이며 ‘아리랑’과 거의 맞먹는 노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가 무엇인가?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라는 내용이다. 박장대소가 나왔지만 분위기는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후에 불렀던 박대통령이 좋아하는 ‘황성옛터’를 불렀는데 가사마저 까먹게 된다. 결국 그는 바로 퇴장을 하게 되고, 이후 다음 날 아침 여지없이 헌병 백차가 기상나팔 소리와 동시에 들이닥쳐 조영남을 헌병대로 끌고 갔다. 헌병 장교로부터 직접 심문이 이어졌는데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왜 대통령의 신청곡 ‘황성옛터’를 세 번이나 거부했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각설이 타령 중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는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다행히 친구 장교가 해명해 주어 남한산성에서 감옥행을 면하고 돌아왔지만 참으로 기이한 인물이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 오찬때의 일이다. 이때 조영남은 식상하게 대통령을 공략하기 보다는 영부인을 공략하는 게 폼이 날거라 생각하며 아부 떠는 말을 하였다. "대통령님! 저는 가수 조영남입니다. 그리고 영부인님 너무너무 아름다우십니다. 신문이나 TV에서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뵙게 돼서 무한 영광입니다. 영부인님께서 저한테 아무 말씀이나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밖에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럽니다"하며 말을 했는데 영부인은 뜻밖의 반응으로 너무나 수줍어 하시며 한 말씀도 안 하셨다고 한다. 급 당황한 조영남은 이번엔 대통령을 향해 축하하는 말로 주제를 잽싸게 바꿔 말을 이어갔는데 처음 했던 말은 잘 이어져 갔지만 그다음 말이 정말 철없이 해버리게 된다. 즉 ‘제발 백담사 같은 델 가시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해버렸다. 당시 전임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백담사로 갔다 온 뉴스로 요란 법석이었던 때였는데 그 말을 한 것이다. 이제 여기서도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직 군부 시절이니 까딱하다가는 인생 종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영부인이신 김옥숙 여사께서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환하게 웃으시며 조영남 앞으로 와서 하는 말이 ‘어머 조 선생님은 늘 그렇게 재미있으셔요’ 하시는 것이었다. 조영남은 이때 "나는 휴! 죽었다 살았구나 싶었습니다."고 말했는데 참으로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으로 버라이어티한 스토리며 인생이다. 앞으로도 그는 많은 풍문을 남길 것으로 본다.
쎄시봉이라는 무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그는 이렇게 대중들에게 이미 공인으로서 자리잡은 인물이다. 조영남이란 존재가 살아온 인생과 동시대인들의 얘기를 통해 들여다본 그는 어쩌면 ‘개인주의자’, ‘탐미주의자’ 또는 ‘독고다이’의 이미지를 깨버리는 시간이 되지 않나 싶다. 별난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세계관은 가히 안드로메다 은하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삶에서 우리는 삶이란 정형화된 것이 아닌 매우 다양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그의 삶은 문제 투성이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 그런 사람 한 둘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지 않으면 너무 재미 없어지지 않냐는 말이다.
특히 이 책에 전 아내였던 윤여정이란 여성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부각시켜 주는 글이 나온다. 조영남은 자신의 실책과 부정으로 결혼 생활이 파탄 났음을 재차 인정하면서 결혼 생활을 할 당시 윤여정의 헌신에 대해 고마움을 이렇게 피력했다.
“윤여정은 아이도 잘 키우고 살림도 썩 잘했다. 그땐 플로리다에 한인 식품점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밥상에 두부 지짐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윤여정이 콩을 심어 두부를 만든 것임이 틀림없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음식을 탁월하게 잘 해냈다. 그뿐 아니라 어느 날은 나의 와이셔츠를 재봉틀로 직접 만들어 줬고 양복저고리도 만들어 줬는데 와이셔츠는 레코드 재킷에 사진으로 남아 있지만, 저고리는 간직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내조 아카데미상이라도 있었더라면 당연히 ‘월드 베스트 내조상’을 받아야 할 만큼 윤여정은 실로 내조의 여왕이었다.” p349
그는 이 글을 이어 이런 말을 했는데 한심하지만 재미가 있다. "그렇게 잘 살던 우리가 헤어지게 된 것은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순전히 내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나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지랄발광을 쳤기 때문이다!"
그렇다. 조영남은 인생을 지랄발광처럼 살고픈 남자다. 그러나 윤여정은 선량한 성품의 여성이다. 읽다보면 참으로 잘 헤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만 그럴까도 생각해 본다.
화투 이야기로 끝을 맺어본다. 그의 인생에 화투가 항상 화재이며 그림에도 늘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니 부친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이다. 학교를 다녀오면 반드시 록백꾸(육배이라는 화투 놀이) 몇 판을 쳐야 밖에 나가 놀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바로 생각이 났다. 그 뜻이 무엇인가? 맹자 어머니가 맹자(孟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즉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권사의 가짜 꿀 얘기 또한 매우 재미있고 교훈을 주기도 한다. 조영남의 모습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학대학이라는 곳을 갔지만 불교에도 끄적거리며 살아온 그의 인생이 지조 없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그 누군가가 그려주지 못하기에 그가 그려간 인생은 그의 그림문제처럼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이 책은 그가 보여준 인생과는 다르게 선입견 없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를 통해 내 삶을 투영해 본다면 반드시 무언가는 인사이트(insight)를 얻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