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사회주의 고전의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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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라는 말은 생소한 단어이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사회주의지만 뭔가 다른 좋은 사회주의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어떤 분이 말하듯 옛 소련의 붕괴로 지구상에 정통 사회주의의 불빛이 사그라든 21세기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 만한 새로운 대안 사상이 태동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그것도 철저히 실패를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더 개선된 사회주의를 말하며 꿈을 꾸고 있다. 이 책이 과연 대안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조금은 머리가 아픈 내용들이 즐비해 있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나는 이것이 대안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자본주의 또한 정답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자 했고, 마치 내가 이 책을 읽고 소위 빨갱이 사상에 물들지 않을까 조심하며 읽고자 했다. 물론 이 말을 진심으로 믿으면 안 될 것이다. 합리적, 이성적, 객관적 관점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선입견 없이 읽어 나갈 것이다.

 

먼저 용어부터 정리하고 가자. 길드(guild)라는 뜻이 무엇인가이다. 길드라는 이름은 중세에서 따왔다. 중세 내내 기독교 문명권 지역에서 산업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는 독립 생잔자 혹은 상인이 생산이나 판매를 규제하는 연합인 길드Gild 혹은 길드Guild였다. 그 뜻은 '협회(조합)', 또는 '중세 시대 기능인들의 조합'이라고 정의 된다. 중세 길드는 산업에 한정되지 않았고 소도시에 존재하던 인민 연합의 공통 형태였다. 산업적 목표뿐만 아니라 사회적 목표와 자선, 교육을 위한 길드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기능이 무엇이든 모든 길드는 강한 종교적 바탕 위에서 본질도 그런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중세 길드 시스템은 부상, 조직, 쇠락의 길로 걸어가 결국 해체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길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언급하려면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말해야 한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경제를 확립시켰다. 이에 따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주요한 사회계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해가면서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과 모순이 첨예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사상과 운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이들 중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외에, 위로부터의 국가 중심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연합체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적으로 바라본 사회주의-민주주의 이념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길드 사회주의이다.

 

초기 길드 사회주의는 중세에 길드가 생산과 유통을 통제했던 것처럼 노동자가 스스로 산업을 경영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질서를 대체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었다.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려면 생산자가 자기 노동을 다시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 전통 중 길드에 주목하여 노동자들이 이를 복원해서 생산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자본 독재도 아니고 국가 독재도 아닌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말처럼 쉬운지는 모르겠다.

 

길드 사회주의의 기본 구상은 자본가의 지배가 사라진 사회에서 작업장에 뿌리내리고 산업 전체로 확대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결사체 길드가 생산 활동을 책임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길드가 생산자의 이해만이 아니라 소비자까지 포괄하는 공동체 전체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서처럼 국가기구가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고, 길드의 연합체인 전국 길드가 기존 국가의 역할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극히 소수의 인원이 대다수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는 거짓된 대의민주주의에 반해 산업별 자발적 조직인 다양한 길드 평의회를 통해 스스로 자신이 속한 산업과 생활의 모든 부분을 자유롭게 통제하고 주인이 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길드 사회주의는 역사 발전 법칙과 계급투쟁을 논거로 삼는 독일과 러시아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경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자 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도 대중자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면서도 국가사회주의의 폐단을 지양하는 체제, 즉 진정한 사회주의 또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20세기 초의 길드 사회주의 운동이었는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아래 얼마만큼 적용될지는 사실 미지수이다.

 

이 책 해제 부분에 가면 재미있는 아이러니를 소개하는데 지금 유럽과는 달리 사회주의 세력이 오랫동안 배제되어온 미국에서 요즘 사회주의가 뒤늦게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2016년과 2020년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버니 샌더가 이 바람을 일으켰다. 이 바람으로 각종 여론 조사에서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답변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더는 자본주의를 통한 생존과 자기실현을 밎지 못하게 된 젊은 세대 가운데에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이들이 많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 위기를 오직 민주적 사회주의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에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중국은 이를 저주받은 단어로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우회로라는 논리를 대며 실제로는 적나라한 자본주의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을 마주 대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체재로 나아가야 할지 요즘 정치를 보며 고민이 된다. 소득의 분배가 상위 2-3%에 결집되어 있는 현실 속에 중국식 체제를 감수하지 않으려면 자본주의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체재란 결국 누군가의 권력이 들어가 결국 그 사회에서 힘을 발휘해야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 권력과 힘을 부여하게 될 때 사회주의가 겪은 실패나 아픔을 겪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소비에트 연방의 와해됨은 사회주의의 부실을 말해주는 실증적 모델이다. 이런 가운데 길드 사회주의가 어떤식으로 대인이 될지는 독자로선 그런 지식이 부재하여 잘 모르겠다. 러셀은 그의 책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내가 지지하는 길드 사회주의는 여전히 존중할 만한 기획으로 보이며, 나는 그 학설이 다시금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왜 그는 이토록 길드 사회주의를 찬양했는지 모르지만 이 책은 인간의 희망이 담긴 유튜피아적 책이기도 하기에 시간이 될 때 다시금 정독하며 고민을 해보리라.

 

이 책의 한 문장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 세력들을 어떻게 평가하든, 조직된 노동자들이 산업에 대한 통제를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요구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실이다. 이 요구는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산업 시스템이 강력하게 구축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제기되며, 특정 형태에 제한되지 않고 각국의 기질과 전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요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1830년대 영국의 오언주의노동조합운동, 유럽 대륙의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미국의 초기 혁명가와 개혁가 등을 통해 노동운동 역사 내내 간헐적으로나마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제기되는 요구는 더욱 보편적이면서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노동계급 조직의 긍정적 성취에 굳건한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선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이는 더 이상 단순히 유토피아적이지만은 않은 건설적이며 실천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p19

 

길드인은 사회의 핵심 가치란 인간적 가치이며, 사회란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결집한 연합체들의 복합체로 간주되어야 하고, 사회의 목적은 구성원의 좋은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 여긴다. 더 나아가 길드인은 통치 형태가 피치자의 수동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바탕을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사회는 완전히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상태에 있을 경우에만 건강을 유지할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서 완전히 민주적이고 자치적이라 함은 모든 시민이 원하기만 한다면 사회의 정책에 영향을 끼칠 '권리'를 지녀야 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런 권리를 실제 행사할 수 있도록 가능한한 최대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런 개념은 정치라 불리는 사회 행위의 일부 특별한 영억만이 아니라 사회 행위의 모든 형태에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하고, 정치 문제만큼이나 특히 산업과 경제 문제에도 완전히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길드 사회주의의 민주주의관에서 관건이 되는 주애한 전제일 것이다. p22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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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법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51가지 심리학
폴커 키츠.마누엘 투쉬 지음, 김희상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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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독자들을 유혹한다. 그 유혹 문구 중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심리학 분야 60주 연속 1위", "전 세계적으로 100만 독자", "폴커 키츠 최고의 역작", "최고의 심리학자가 다양한 실험으로 입증한 51가지 심리학 법칙"이란 문구가 나온다. 특히 눈에 익은 교수가 이 책을 추천하며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이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시사/교양 프로를 우연찮게 봤는데 김경일 교수의 강의가 명강의처럼 들어와 마음을 뺏어 버렸다. 김교수는 이 책을 이렇게 추천한다. "수많은 심리학책 중 단연코 돋보이는 수작이다! 북미에 말콤 글래드웰이 있다면, 독일엔 폴커 키츠가 있다!"

일단 김교수에 대한 신뢰로 이 책을 택하였고, 서평 기회를 얻어 보게 되었다. 물론 요즘 나오는 책은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출판사 마케팅 부서에서 이런 기획을 잘하여 포장하는 부분은 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일단 대하였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는 다르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매우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가독성 있게 책이 편집되어 나왔다. 철학책이나 심리학 책을 쓸 때 어려운 용어로 무장되고 복잡한 논리로 책을 쓰면 그 가치가 올라 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본다. 실용주의 시대이다. 또한 글이란 독자의 이해에 다다르지 않으면 그 책은 그 저자의 자만심을 만족하게 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러면에서 독자인 나는 이렇게 요리를 해주는 책이 반갑고 좋다. 물론 이 책에는 심리학자가 쓰는 어려운 용어가 보인다. 그러나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 이 책의 심리적 전문성도 얻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일상의 심리 정글을 헤쳐 나가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게 틀림없다. 심리학자가 쓰는 말을 배우고 사용하라! 세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인생의 거의 모든 상황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일상에 응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독일에서 가장 신뢰받는 심리학자 듀오(폴커 키츠, 마누엘 투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만 건의 상담 사례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51가지 문제에 대한 심리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책소개에서도 말하듯이 뻔한 조언이 아닌, 실험으로 증명된 심리 법칙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해하기 어렵거나 낡은 이야기는 빼고, 바로 지금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와 그 해결책에 주목하며 지금 필요한 삶의 지혜를 주고 있다. 일단 이 책은 어디를 펴든지 상관이 없다. 목차를 보고 맘에드는 부분부터 읽고, 그 다음 관심가는 파트에 얼굴을 파묻으면 된다.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다. 요즘 정치만 아니라 코로나와 백신에 관한 음모론이 온갖 미디어와 SNS를 장식하고 있다. 심지어 공영방송 자체도 음모론의 주체로 사용되어 국민을 속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 파트 3(25번)를 보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널리 퍼지는 이유'에서 '환상오류'가 원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파트 5(37번)에서는 '위급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따르는 심리'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방관자 효과'가 무엇임을 가르쳐 준다. 또한 요즘 아내가 직장 생활 가운데 동료 때문에 힘들다고 하기에 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꼴도 보기 싫은 직장 동료와 잘 지내는 법'(파트 1, 25번)이 있는데 이 법은 바로 '점화 효과'를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충고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 왜 그럴까하며 궁금하다면 파트 2(16번)에서 '충고의 밑바닽에 깔린 자기중심적 관점'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임을 보라고 말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려 하는 '투사'가 심리적 근저에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생각과 생활습관과 경험을 고스란히 남에게 적용시키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투사projection에 대해 말하기를 "투사는 자신의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서 추구하는 심리이다"고 정의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절대로 다른 이에게 충고하지 말라"고 답변을 준다. 그 이유는 인간은 충고보다는 "위로를 얻으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 힘들어 할 때 충고라는 악수(惡手)보다는 위로라는 호수(好手/바둑ㆍ장기 따위에서, 잘 둔 수)로 상대방을 대해야함을 이 부분에서 배우게 된다.

이렇게 이 책은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심리학 도구들을 손에 쥐어주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다. 이 책은 마음의 법칙을 알려준다. 마음의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있는 사람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 이유는 "심리학은 결국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수백만 명의 삶에서 찾아낸 마음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독자에게 다가온 그 내용 중 마음의 법칙 한 두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꼴도 보기 싫은 직장 동료와 잘 지내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 점화 효과라고 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함일까?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도식'이라는 말이 필요하다. 금요일 저녁, 부부가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중이었다. 서로가 눈빛이 오고 가는 과정 중에 옆집에서 이웃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이때 당신이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3가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1. 관절통이 정말 심각한 모양이군. 젊은 나이에 참 안됐다. 2. 관리비 청구서가 벌써 도착했나? 3. 섹스를 하면서 저렇게 꼭 소리를 질러야 하나? 어떤가? 독자들은 무엇을 상상하고 생각했는가? 각자의 생각으로 3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도식'이라고 한다. 특히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최근에 겪어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을 도식화한다. 범죄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집안에서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도둑이 들었다고 짐작할 것이다. 공포 영화를 봤다면 귀신을 생각했을 것이다. 웃음을 이끌어내는 심리도 비슷하게 이걸 사용한다. 개그맨들은 우리 머릿속의 있는 어떤 도식에 대한 상활이나 말을 꾸며낸다. 그런 다음 연상되는 결과가 아닌 엉뚱한 반전을 만들어 폭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처럼 도식을 활성화하는 것을 두고 '점화 효과'라 부른다. 점화는 어떤 도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프로세스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면 '눈은 무슨 색인가?-흰색, 구름은 어떻게 보이나?-하햫게, 집은 맞은편 벽은 어떤 색인가?-흰색'이란 답을 낸다. 이제 결정적인 물음을 던지면 즉 '암소는 뭘 마시는가?' 이 질문에 대대수는 '밀크'라고 대답한다. 앞선 물음이 점화 효과를 일으켜 '하햫다'는 도식을 활성화 시킨 것이다. 정답은 물이지마 우리의 뇌는 흰색의 액체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점화는 이처럼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기본 태도를 갖게 만드는 탁월한 방법이다. 따라서 평소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직장 동료와 잘 지내기 위해선 출근에 앞서 다음과 같은 단어를 되뇌이면 된다. '편안하다, 유쾌하다, 재미있다, 예의바르다...'고 두뇌를 도식화 해버리는 것이다. 연구 결과 실험자들이 미리 '배려'나 '공정함' 같은 단어들로 점화되었을 때 실제로 함께 게임을 하며 서로 협력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만약 중요한 면담을 앞두고 있다면, 상대를 될 수 있는 한 많은 긍정적인 단어로 점화시킨 후에 만나라는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쉬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회가 있으면 이런 방법을 써먹으면 좋겠다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하나 관심이 간 대목은 파트 5(37번)에 나오는 심리학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따르는 심리가 무엇때문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으로 청소년들이 어이없게 목숨을 잃는 경우를 보았다. 그 원인은 바로 위와 같은 심리 때문이다. '연기 실험'은 이런 심리를 잘 보여준다. 실험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간에 갑자기 문틈이나 창문으로 연기가 스며들도록 했다. 실험 공간에 혼자 남아 있을 때는 대부분 서둘러 대피한다. 그런데 다른 방에서 실험 하기를 연기자를 대부분 앉혀놓고 연기가 피어 올라도 차분하게 앉아 있도록 연출했다. 심지어 연기가 자욱해져 서로 볼 수 없는 지경까지 갔지만 실험자는 다수의 행동에 따랐다. 사람들이 조용하면 ‘뭐 별일 아니구나’라고 자동으로 생각한다. 이런 효과를 우리는 ‘다중의 무지’라 부른다. 누구도 흥분하지 않으면 우리도 흥분하지 않는다. 2001년 9월 11일 우리는 엄청난 테러 사건을 목격했다. 뉴욕에서 첫 번째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받기 직전, 빌딩에서는 신속히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동요하지 말고 모두 사무실에 남아 구출을 기다리라는 안내였는데 이것은 그 빌딩의 비상사태 대비 매뉴얼이었으며, ‘전문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매뉴얼에 따르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본능에 따라 계단을 뛰어 내려갔던 근무자들은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으며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의 본능과 감각을 믿었던 이들뿐이라니 가슴 아픈 얘기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이 불확실하다고 생각될 때 다른 사람의 정보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메우려 한다. 비상상황에서는 고민할 시간도 촉박하다. 그럴 때 심리학자인 저자는 말하기를 무조건 '본능을 따르라'고 말한다. 또한 방관자 효과를 기억하며 스스로 판단을 내려 행동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분명 만취한 운전자가 관광객을 태우고 달린다. 그리고 큰 사고가 난다. 기자들이 묻기를 한눈에 봐도 위험한데 거기 타는 사람들은 뭐죠? 답은 간단하다. 남들이 타니까! 위험헤 보이지만 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배와 버스에 오르 내리니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백신 사망자가 오늘 날짜로 벌써 1,882명이 되었다. 중증은 14,012명이다. 전체 이상반응 숫자는 454,395명이다. 이정도면 가습기 살균제 사망보다 엄청난 숫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가만히 있고, 여전히 백신에 대해 사이비 교주를 추종하듯 추종할까? 그건 바로 정부가 말하는 바를 그냥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신뢰하고, 또한 생각없이 그저 많은 이들이 따르기 때문이다. 실제 백신 사망자는 그 숫자가 5만명을 넘는 다는 말이 있다. 내가 아는 지인들의 소식을 총 합하면 벌써 6명이다. 그 중에 백신 부작용자가 4-5명 된다. 그런데도 백신을 왜 의심하지 않고 그저 안 맞으면 안 된다는 각오로 맞는가? 그건 바로 '방관자 효과' 때문이며 파트 4(36번)에 나오는 '동조 현상' 때문이다. 동조는 인간이 자신을 집단에 맞추려는 경향을 뜻한다. 싫으면 싫다고 해야하는데 사람은 집단에 자신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빌린다. 그리고 '집단 압력'이란 심리에 갇혀 버린다. 또한 전문가라는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에게 강하게 쏠리는 현상이 있다. 이런 영향을 '정보 영향'과 '규범 영향'이라고 한다. 자신이 받아들인 정보와 규범되어진 틀을 벗지 못하는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히틀러 시대에 본회퍼의 스승도 주변의 많은 이들도 제다 히틀러를 동조하며 지지했다. 이때 본회퍼라는 인물은 그런 정보 영향과 규범 영향을 벗어나 주체 의식을 가지고 판단하여 그를 제거하고자 했다. 우리에겐 이런 주체성이 필요하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자기 신뢰」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천재란 무엇인가? 단순히 아이큐가 좋은 자가 아닌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이다.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의 말에 그대로 순응해서는 안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또한 "내 본성에서 나오는 법을 제외하고, 그 어떤 법도 신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옳은 것은 자기 기질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는 말을 하였다.

"잠들기 전 철학 한 줄(이화수 저)"이라는 책을 읽었을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글을 읽고 마음에 감동이 되어 이 글을 담아 두었다. 그 내용을 끝으로 본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자신의 의견에

별가치를 두지 않는 다는 사실은

참 의아한 일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왜 나는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할까?

[동조현상] 동조는 인간이 자신을 집단에 맞추려는 경향을 뜻한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이 불확실하다고 생각될 때 다른 사람의 정보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메우려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일치된 행동을 자주 보이게 된다. 앞에서 예로 든 회의 상황처럼 모두가 동료의 기획안을 칭찬하면 정말 자신의 생각처럼 나쁜 점이 있는 건지 갑자기 불안해진다. 그리고 일단 불안해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빌려온다. 모두 입을 모아 말하지 않던가, 끝내준다고!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옳은 정보를 가졌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자신의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며 순응한다

p. 208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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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 - 조영남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
조영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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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고백록이란 말을 들어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이 그것이다. 특히 이 세 권 중에 루소의 고백록은 명사 문광훈 교수에 의하면 "놀랍도록 솔직하고, 놀랍도록 회고적"이라고 말한다. 낯뜨거운 내용도 그냥 노출시켜서 가히 놀라운 자서전이라고 하는데 목표만 세웠지 아직 책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세계 5대 자서전이란 말을 보게 되어서 무엇이 더 포함되었나 하고 봤다. 여기에 톨스토이는 없고 괴테의 <시와 진실>, 한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이 추가 된다. 특히 덴마크 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에 의하면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내가 본 자서전 중에서 최고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궁금한 인물이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 우리 시대의 광대이며 기인이며 트러블 메이커라고 불리는 특별?한 존재가 자전적 회고록을 썼다고 하기에 굉장히 관심이 갔다. 일단 조영남이란 가수는 다른 가수와 다른 포스가 있다. 또한 한 인간으로서도 기이하게 행동하는 모습에 그 한 사람의 삶이 궁금했다. 그런 찰나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도 풀어주니 너무 고맙다고 해야할까? 그의 인생이 암튼 궁금했는데 만능 엔터테이너의 기원과도 같은, 괴짜와 같은, 그의 버라이어티한 삶을 이렇게도 자세히 스스로 밝혀주니 인간이란 존재를 해부해보는 쾌감까지 느끼게 된다.

 

전 아내였던 영화배우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함으로 조영남이란 존재가 은연 중에 부각되는 것을 보며, 조영남은 물건 중에 물건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재미 있는 일화를 보았었는데 전 아내가 여우조연상을 타자 조영남은 "가수 이장희가 해보라고 해서 꽃다발을 무명으로 세 번 보냈다가 배달 기사가 그쪽에서 한 번만 더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조영남은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최고의 복수"라 말을 함으로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망언 논란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윤여정은 매우 탁월한 선택을 하며 이혼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존재는 함께 사는 것이 매우 힘들기에 차라리 버리는 카드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이 말은 서로가 헤어짐으로 각자의 삶이 특별하게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

 

이 책은 사뭇 그래도 진지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철없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도 아낌없이 노출하여 자신의 속사정을 밝혀 준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원고 한 편 한 편이 소중하고, 진심을 다해 써야 한다는 걸 안다. 나이 때문에 이 글이 내 자전적 얘기의 마지막 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p16

 

이 책을 위해 조영남은 장장 10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20213월부터 12월까지 43회차에 걸쳐 <중앙SUNDAY>에 연재를 했는데 연재되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이 솔직한 고백에 열광적인 반응과 격려 찬사를 보이는가 하면 거침 없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질타와 더불어 온갖 야유를 하기도 했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 보듯이 "이 책에 실린 텍스트는 한 인간의 삶이 이뤄낼 수 있는 최대치의 성취와 시련, 극복과 좌절 등을 두루 다루고 있고, 거기에 보기 드문 인사이트와 성찰이 따라붙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토록 버라이어티한 모티프와 에피소드를 가진 삶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책에서 다뤄지는 서사의 볼륨은 압도적이다."는 표현이 맞는거 같다.

 

이 책을 독자가 읽기 전에 아내가 먼저 읽었는데 읽은 부분을 얘기해 주는데 참으로 한 존재가 이렇게도 많은 만남과 에피소드가 있나할 정도로 이 책은 해학스럽고 실로 놀랍기도 하다.

 

조영남이란 존재가 대중에게 각인된 이유는 특유의 자유분방한 삶의 스타일에서 야기된 몇몇 사회적 스캔들 및 해프닝 때문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때마다 좋든 싫든 극적인 모티프와 에피소드들이 한 인간이란 존재에 나이테처럼 축척되어 늘 화제와 풍문의 생산자로 대중에게 다가가니 그를 아니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인 나는 조영남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적이 있다. 최유라와 함께하는 '라디오 시대'를 통해 그는 그만의 진솔함과 내면의 따뜻함을 보게 되었다. 라디오에는 현재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는 그때마다 숙연한 모습으로 라디오를 진행한다. 물론 그 숙연함이 어떤 것인지는 본인만 알고 그가 몰래 얼마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는지 모르지만(책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하며 이때만큼은 인간적 모습이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조영남 노래 가운데 '모란동백'을 좋아한다. 조용남은 자신의 장례식 발인 때 이 곡을 조가(弔歌)로 불려졌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그의 진심을 본다. 나 또한 못 치는 기타로 부를 때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실제 조영남은 1998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가진 <데뷔 35주년 기념 빅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도중 목이 메이고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여 몇 차례 중단했다 다시 부르는 흔치 않는 장면을 보여줬다. 사실 조영남의 행적을 생각하면 그에게도 저런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생경스런 모습인데 아무래도 그 또한 인간이기에 삶이 주는 허무함과 아픔과 시련 속에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지 않나 싶다.

 

유별나며 참 많은 에피소드

 

그의 글에 보면 여러 사람과의 만남과 함께 매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대통령과의 오찬은 가히 최고의 조영남다운 모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해 볼까한다.

 

조치원 훈련소에서 6개월 훈련을 마치고 육군본부로 올라왔을 때 어느 날 중대장으로부터 육본 참모장 김창범 소장 앞으로 가보라는 전갈을 받게 된다. 이 행사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는데 밥풀데가 겨우 하나를 달은 때라 별 두 개나 다신 소장님께 질문을 하지 못한 가운데 박정희라는 대통령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어떤 노래를 불러야 될지는 이미 김소장님과 얘기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박대통령 앞에 서는 순간 조영남은 퍼뜩 머리를 굴리며 "‘나는 지금 임금님 앞에 섰다. 그렇다. 나는 왕의 남자가 되어야 한다.’ 왕의 남자가 되려면 어때야 하는가. 딱 한 가지다. 최고의 노래를 선물해야 하는 것이다. ‘황성옛터따위의 고리타분한 노래로는 최고의 노래 선물이 못 된다. 획기적인 노래를 불러야 한다." 하며 기타의 A 마이너 코드를 쫭! 내려 긁는 가운데 생각지도 않은 각설이타령을 불렀다. 조영남에 의하면 우리의 역사, 우리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최상의 노래이며 아리랑과 거의 맞먹는 노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가 무엇인가?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라는 내용이다. 박장대소가 나왔지만 분위기는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후에 불렀던 박대통령이 좋아하는 황성옛터를 불렀는데 가사마저 까먹게 된다. 결국 그는 바로 퇴장을 하게 되고, 이후 다음 날 아침 여지없이 헌병 백차가 기상나팔 소리와 동시에 들이닥쳐 조영남을 헌병대로 끌고 갔다. 헌병 장교로부터 직접 심문이 이어졌는데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왜 대통령의 신청곡 황성옛터를 세 번이나 거부했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각설이 타령 중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는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다행히 친구 장교가 해명해 주어 남한산성에서 감옥행을 면하고 돌아왔지만 참으로 기이한 인물이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 오찬때의 일이다. 이때 조영남은 식상하게 대통령을 공략하기 보다는 영부인을 공략하는 게 폼이 날거라 생각하며 아부 떠는 말을 하였다. "대통령님! 저는 가수 조영남입니다. 그리고 영부인님 너무너무 아름다우십니다. 신문이나 TV에서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뵙게 돼서 무한 영광입니다. 영부인님께서 저한테 아무 말씀이나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밖에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럽니다"하며 말을 했는데 영부인은 뜻밖의 반응으로 너무나 수줍어 하시며 한 말씀도 안 하셨다고 한다. 급 당황한 조영남은 이번엔 대통령을 향해 축하하는 말로 주제를 잽싸게 바꿔 말을 이어갔는데 처음 했던 말은 잘 이어져 갔지만 그다음 말이 정말 철없이 해버리게 된다. 제발 백담사 같은 델 가시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해버렸다. 당시 전임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백담사로 갔다 온 뉴스로 요란 법석이었던 때였는데 그 말을 한 것이다. 이제 여기서도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직 군부 시절이니 까딱하다가는 인생 종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영부인이신 김옥숙 여사께서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환하게 웃으시며 조영남 앞으로 와서 하는 말이 어머 조 선생님은 늘 그렇게 재미있으셔요하시는 것이었다. 조영남은 이때 "나는 휴! 죽었다 살았구나 싶었습니다."고 말했는데 참으로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으로 버라이어티한 스토리며 인생이다. 앞으로도 그는 많은 풍문을 남길 것으로 본다.

 

쎄시봉이라는 무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그는 이렇게 대중들에게 이미 공인으로서 자리잡은 인물이다. 조영남이란 존재가 살아온 인생과 동시대인들의 얘기를 통해 들여다본 그는 어쩌면 개인주의자’, ‘탐미주의자또는 독고다이의 이미지를 깨버리는 시간이 되지 않나 싶다. 별난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세계관은 가히 안드로메다 은하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삶에서 우리는 삶이란 정형화된 것이 아닌 매우 다양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그의 삶은 문제 투성이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 그런 사람 한 둘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지 않으면 너무 재미 없어지지 않냐는 말이다.

특히 이 책에 전 아내였던 윤여정이란 여성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부각시켜 주는 글이 나온다. 조영남은 자신의 실책과 부정으로 결혼 생활이 파탄 났음을 재차 인정하면서 결혼 생활을 할 당시 윤여정의 헌신에 대해 고마움을 이렇게 피력했다.

 

윤여정은 아이도 잘 키우고 살림도 썩 잘했다. 그땐 플로리다에 한인 식품점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밥상에 두부 지짐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윤여정이 콩을 심어 두부를 만든 것임이 틀림없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음식을 탁월하게 잘 해냈다. 그뿐 아니라 어느 날은 나의 와이셔츠를 재봉틀로 직접 만들어 줬고 양복저고리도 만들어 줬는데 와이셔츠는 레코드 재킷에 사진으로 남아 있지만, 저고리는 간직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내조 아카데미상이라도 있었더라면 당연히 월드 베스트 내조상을 받아야 할 만큼 윤여정은 실로 내조의 여왕이었다.” p349

 

그는 이 글을 이어 이런 말을 했는데 한심하지만 재미가 있다. "그렇게 잘 살던 우리가 헤어지게 된 것은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순전히 내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나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지랄발광을 쳤기 때문이다!"

 

그렇다. 조영남은 인생을 지랄발광처럼 살고픈 남자다. 그러나 윤여정은 선량한 성품의 여성이다. 읽다보면 참으로 잘 헤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만 그럴까도 생각해 본다.

 

화투 이야기로 끝을 맺어본다. 그의 인생에 화투가 항상 화재이며 그림에도 늘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니 부친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이다. 학교를 다녀오면 반드시 록백꾸(육배이라는 화투 놀이) 몇 판을 쳐야 밖에 나가 놀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바로 생각이 났다. 그 뜻이 무엇인가? 맹자 어머니가 맹자(孟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즉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권사의 가짜 꿀 얘기 또한 매우 재미있고 교훈을 주기도 한다. 조영남의 모습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학대학이라는 곳을 갔지만 불교에도 끄적거리며 살아온 그의 인생이 지조 없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그 누군가가 그려주지 못하기에 그가 그려간 인생은 그의 그림문제처럼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이 책은 그가 보여준 인생과는 다르게 선입견 없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를 통해 내 삶을 투영해 본다면 반드시 무언가는 인사이트(insight)를 얻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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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좋은 이유 - 도덕성의 근원
로버트 오브리 하인드 지음, 김태훈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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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명제가 확실하게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선(옳음)과 악(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은 이 책에 의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한다. 성장하게 되면서 우리는 그 차이점에 대해 많이 알게 되지만, 막상 실제 상황에 부딪히면 그렇게 선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서로가 합의점을 찾고 갈등 가운데 '당위성'을 결정할 때 그 기준점이 무엇이냐이다. 서로 상치되는 '권리'를 비교해서 평가하며 하나의 결론을 내릴 때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이나 가족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사회 전체에도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기준이 매우 중요한데 그 기준점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도덕률의 주요 근원이 되어 왔다. 그래서 많은 사회에서 도덕률은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부여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도덕률과 사회 규범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면 개인은 보통 목사나 다른 전문 종교인으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여의치 않을 때는 최소한 조언이라도 구했다. 유럽 사회에서 교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도덕률을 준수하도록 권장했는데 첫째 이승이나 다른 삶에서 신의 보상이 있다고 약속하거나 신의 보복이 뒤따른다고 위협하는 것이었다. 둘째 간접적 방식으로 교회에서 정한 '고결한 인격'으로부터 사소한 일탈도 결국 다 알려진다고 말하며 도덕적 제재를 해왔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며 현대 사회가 세속화 되면서 더 이상은 종교가 가르치는 도덕률은 물론 자신이 살아왔던 사회의 도덕률이 권위와 더불어 구속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도덕률의 변화가 찾아 왔는데 그건 일반적인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개인의 이동 또한 증가하였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소비지상주의가 증가하고,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나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세계관이 변화되고 있다. 즉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서로 다른 철학적, 종교적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일이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이에 저자는 이 책에서 도덕률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지를 깊이 있게 논의한다. 도덕성의 근원과 관련하여 역자 또한 궁금한 것이 있었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도덕성의 개념적 근거에 관한 것이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인간의 도덕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인간의 본성인가, 사회인가? 아니면 초월적 존재인가? 도덕성은 애초에 선한 특성이 지배하는가 아니면 악한 특성이 지배하는가? 인간의 도덕성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천적 잠재력을 갖고 태어나는가? 도덕성은 어떤 시대, 사회나 보편적인 것인가, 아니면 특정 시기와 사회에 따라 특수적인 것인가?"

또 다른 궁금증 하나는 "도덕성의 실용적 성격에 관한 것이다. 도덕성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지켜야 할 지침인가, 아니면 인간관계의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사회적 기술의 일종인가? 도덕성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싫든 좋든 다수의 사람이 공유하는 것을 따라야 하는가? 도덕성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떤 긍정적인 힘을 제공해 주는가, 아니면 결국 손해만 안겨주는 것인가? 도덕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역자 서문 중에서, 14쪽

도덕성에 대해 저자는 단순히 풀어 나가는 것을 넘어 학술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고 있음을 본다.

특히 심층적인 질문을 이렇게 던지는데 "선은 왜 좋은가?", "우리는 왜 선에, 그리고 도덕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다?", "인간에게 도덕성은 어떤 의미인가?"를 논리적, 경험적, 신학적, 철학적, 윤리학적 심리학적 관점 속에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 하인드는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문제에 대한 대답이 세 가지라고 말해 준다.

그것은 자연 선택,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문화적 요소의 상호작용 그리고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맺는 인간관계를 천착해 보면 '선'이 왜 좋은 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이 세 가지로 인하여 선은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한 엄연히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견해를 밟아 나간다. 첫째, 현대 사회에서 생각하는 다양한 도덕적 문제에 대한 접근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둘째, 도덕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에 대해서 다룬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을 바탕으로 기술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마무리를 하면서 이전의 장들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하며 책의 결론을 맺고 있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지키는 도덕률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고, 우리에게 밀려오는 다양한 도덕적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디에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보면 저자가 어떤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논리적 귀결을 얻기 위해 여러가지의 것을 가져와 철학적으로 해부하고 설명하는 부분이 독자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즉 조금은 난해하며 복잡스러움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자신이 "선이 왜 좋은지"에 대해 속속들이 파헤치는 것을 통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만하다.

독자인 나는 이 책을 통해 도덕성의 근원을 저자 자신은 어디에 두고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본성이 착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에 대해 저자 자신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궁금했다는 것이다. 우선 독자가 익히 알고 있는 동양철학에서 맹자의 성선설이 옳은가 아니면 순자의 성악설이 옳은가에 대해 궁금증이 아직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입장이다. 아시다시피 맹자는 하늘의 뜻과 사람의 본성은 일치한다고 보았기에 당연히 인간은 선하다고 보았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人爲)이다"라고 하여 선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순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교정하는 방법으로 '예(禮)와 교육'을 주장했다. 악한 본성을 이기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해야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인 존 로크(John Locke)는 원래 인간은 태어날 때 선한 존재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무의 상태인 백지상태로 태어나 주위 환경의 영향에 의해 점차 인간으로서의 성격이나 특성이 갖추어 진다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양에서는 고자(告子)가 백지설과 비슷한 ‘성무선악설’을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도덕률의 기반은 선과 악이라는 본성적인 기본 바탕 위에 '교육과 문화, 생활 환경, 종교'가 도덕률을 가져와 사회를 구성하고 규범을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도덕률의 토대를 존 로크가 생각하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아래의 글은 저자의 결론적인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자연적인 것이 반드시 옳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옹호한 생물학적 및 심리적 접근방식이 도덕 계율의 토대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문화가 상충할 때 생물학적 및 심리적 접근 방식에 의해 제시된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최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접근 방식은 한 사회 내에서도 도덕적 문제가 인간 본성의 복잡함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도덕 계율, 관습, 사람들의 인지된 권리와 의무 간의 갈등으로부터 그리고 이것들이 상황과 세계관에 따라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는 다양한 방식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지적하고자 한다. p335-336

최종 결론은 "선善"이란 인간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며, 좋은 것이며 문화적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른 견해를 취하기도 하지만 결국 "선善"을 추구하려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서로 입장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덕성 #선 #악 #근원 #자기체계 #도덕계율 #자유의지 #성선설 #성악설 #존로크 #백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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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 중심을 관통하는 13가지 질문과 통찰력 있는 답변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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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사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사 중심부를 관통하는 13개의 명장면과 ‘역사의 급소’에 해당하는 통찰력 있는 질문・답변으로 매우 정갈하게 편집되었다.

세계사에 약한 사람이라면 이런 책은 반갑고도 고마운 책이다. 목차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먼저 평소 좋아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해 나온다. 만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오래 살았다면 자신이 지배한 광대한 영토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렸을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그렇지 않았을 거로 본다. 이유는? 마케도니아로 대표되는 당대 그리스 세계에 그토록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체제와 지식, 경험 등이 결정적으로 부족했다고 본다. 사실 "우수한 그리스 문명이 오리엔트와 인더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라는 견해는 오늘날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보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전에도 동서 문화・경제 교류는 꾸준히 있어 왔고, 그러한 과거 유산"이 오히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따라서 알렉산드로스가 오래 살았더라도 광대한 영토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리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러면 역(逆)으로 돌아가서 ‘고대 그리스 세계의 변방에 머물렀던 국가 마케도니아는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그리스 전역을 제패하고 대제국 페르시아를 무너뜨리면서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저자는 두 가지 비결을 꼽는데 첫째,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핵심에 들지 못하고 변방에 머무른 탓에 무사안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도전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 필리포스 2세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로 이어지는 위대한 영웅 군주의 출현으로 잠재력과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제국 안에서 ‘왕의 길(Royal Road)’로 불린 도로망을 정비하였다. 이 도로는 학자들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까지 이어지던 오리엔트 통상로를 기초 삼아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통상로를 통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대규모 군대가 통과하는 군사도로가 되어 페르시아를 몰락하게 하였다. 즉 페르시아는 이 통상로를 통해 자신을 크게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그 교역로 탓에 역설적으로 알렉산드로스 군대에 치명적 일격을 당한 뒤 몰락하게 되었다.


이런 부분들이 흥미를 더해가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바이킹이라는 대목에서도 주목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건 바이킹은 왜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도 ‘최초 발견자’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까이다. 여기에는 바이킹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된다. 바이킹은 전 유럽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바이킹은 유럽을 확실히 지배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정복과 통치를 위한 체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킹은 사실 약탈자보다는 상인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상인은 상거래로 이익을 얻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영토를 차지하고 다스리고 경영하는 일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구나 바이킹은 신대륙에서도 정착에 성공하지 못하고 철수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최초의 ‘신대륙 발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바이킹의 활동 영역은 상당히 넓은데 대항해를 가능하게한 이유가 이 책에 나온다. 그건 바로 '롱십longship'이라는 배 때문이었다. 가늘고 긴 모양의 이 배는 홀수가 낮다는 특징이 있는데 롱십에는 노가 달려 있었을 뿐 아니라 100명 넘는 승조원이 탈수 있었으며, 원거리 항해에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견고함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세계 역사에 급소들을 파헤쳐서 거시적으로 세계역사를 보게 한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에도 오랫동안 인도에 비해 크게 뒤처졌던 영국의 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전국시대에 일본이 유럽의 군사혁명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는데 그 비결이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들어가서 선교하는 ’예수회’의 무기 판매 덕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려준다. 즉 예수회는 종교단체의 얼굴과 함께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일본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역 상인의 얼굴로 들어온 것이다. '죽음의 상인'으로 예수회가 불리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에 판매한 주요 상품이 ‘무기’였기 때문이다. 아! 이걸 어떡해 봐야할지 모르겠다. 잠깐 그 배경을 더 살피면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은 포르투갈 선박이 싣고 오는 군수품에 눈독을 들였다. 예수회는 대포, 초석, 탄약 등을 조달해준 대가로 영주에게서 선교권을 얻어냈다. 그런데 이런 예수회를 통해 일본은 '군사혁명'에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유럽의 군사혁명을 불가능에 가까운 속도로 따라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에 보듯이 오랑케들이 총을 들고 우리나라를 침범하는 무기가 되었다. 예수회에 대한 좋지 않는 비하인드가 많은데 이들이 참된 종교인인지는 늘 의구심을 가진채로 보고 있다.

세계 역사에 대해 이렇게 한 눈에 살펴보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니 무언가 역사적 지식으로 무장된 느낌이다. 역사지식에 약한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우선 상식적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한 문장

질문: 19세기에 범선을 몰아내고 유럽 각국의 주요 운송 수단이 된 증기선은 어쩌다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었나?

답변: 증기선이 전 세계에서 활약하게 된 19세기 후반은 제국주의 시대였다. 따라서 항구 건설은 제국의 운명을 건 중대 사업이었으며,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한 영국은 전 세계 항로, 주요 항구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결국 영국의 독보적인 해운업 발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편 기존의 국제 무역은 각 지역에서 강점이 있는 토박이 상인들이 릴레이경기를 벌이는 방식으로 상품을 전달함으로써 성립되었다. 그러나 증기선이 보급되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즉 인도 항구에서 영국 배에 화물을 실으면 그대로 한번에 영국까지 운송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운송 인프라를 독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교역에서는 운송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운송 인프라를 장악하면 가격을 교섭하고 상업 규칙을 설정할 때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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