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사회주의 고전의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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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라는 말은 생소한 단어이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사회주의지만 뭔가 다른 좋은 사회주의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어떤 분이 말하듯 옛 소련의 붕괴로 지구상에 정통 사회주의의 불빛이 사그라든 21세기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 만한 새로운 대안 사상이 태동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그것도 철저히 실패를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더 개선된 사회주의를 말하며 꿈을 꾸고 있다. 이 책이 과연 대안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조금은 머리가 아픈 내용들이 즐비해 있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나는 이것이 대안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자본주의 또한 정답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자 했고, 마치 내가 이 책을 읽고 소위 빨갱이 사상에 물들지 않을까 조심하며 읽고자 했다. 물론 이 말을 진심으로 믿으면 안 될 것이다. 합리적, 이성적, 객관적 관점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선입견 없이 읽어 나갈 것이다.

 

먼저 용어부터 정리하고 가자. 길드(guild)라는 뜻이 무엇인가이다. 길드라는 이름은 중세에서 따왔다. 중세 내내 기독교 문명권 지역에서 산업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는 독립 생잔자 혹은 상인이 생산이나 판매를 규제하는 연합인 길드Gild 혹은 길드Guild였다. 그 뜻은 '협회(조합)', 또는 '중세 시대 기능인들의 조합'이라고 정의 된다. 중세 길드는 산업에 한정되지 않았고 소도시에 존재하던 인민 연합의 공통 형태였다. 산업적 목표뿐만 아니라 사회적 목표와 자선, 교육을 위한 길드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기능이 무엇이든 모든 길드는 강한 종교적 바탕 위에서 본질도 그런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중세 길드 시스템은 부상, 조직, 쇠락의 길로 걸어가 결국 해체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길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언급하려면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말해야 한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경제를 확립시켰다. 이에 따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주요한 사회계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해가면서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과 모순이 첨예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사상과 운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이들 중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외에, 위로부터의 국가 중심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연합체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적으로 바라본 사회주의-민주주의 이념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길드 사회주의이다.

 

초기 길드 사회주의는 중세에 길드가 생산과 유통을 통제했던 것처럼 노동자가 스스로 산업을 경영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질서를 대체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었다.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려면 생산자가 자기 노동을 다시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 전통 중 길드에 주목하여 노동자들이 이를 복원해서 생산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자본 독재도 아니고 국가 독재도 아닌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말처럼 쉬운지는 모르겠다.

 

길드 사회주의의 기본 구상은 자본가의 지배가 사라진 사회에서 작업장에 뿌리내리고 산업 전체로 확대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결사체 길드가 생산 활동을 책임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길드가 생산자의 이해만이 아니라 소비자까지 포괄하는 공동체 전체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서처럼 국가기구가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고, 길드의 연합체인 전국 길드가 기존 국가의 역할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극히 소수의 인원이 대다수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는 거짓된 대의민주주의에 반해 산업별 자발적 조직인 다양한 길드 평의회를 통해 스스로 자신이 속한 산업과 생활의 모든 부분을 자유롭게 통제하고 주인이 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길드 사회주의는 역사 발전 법칙과 계급투쟁을 논거로 삼는 독일과 러시아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경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자 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도 대중자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면서도 국가사회주의의 폐단을 지양하는 체제, 즉 진정한 사회주의 또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20세기 초의 길드 사회주의 운동이었는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아래 얼마만큼 적용될지는 사실 미지수이다.

 

이 책 해제 부분에 가면 재미있는 아이러니를 소개하는데 지금 유럽과는 달리 사회주의 세력이 오랫동안 배제되어온 미국에서 요즘 사회주의가 뒤늦게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2016년과 2020년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버니 샌더가 이 바람을 일으켰다. 이 바람으로 각종 여론 조사에서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답변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더는 자본주의를 통한 생존과 자기실현을 밎지 못하게 된 젊은 세대 가운데에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이들이 많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 위기를 오직 민주적 사회주의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에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중국은 이를 저주받은 단어로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우회로라는 논리를 대며 실제로는 적나라한 자본주의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을 마주 대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체재로 나아가야 할지 요즘 정치를 보며 고민이 된다. 소득의 분배가 상위 2-3%에 결집되어 있는 현실 속에 중국식 체제를 감수하지 않으려면 자본주의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체재란 결국 누군가의 권력이 들어가 결국 그 사회에서 힘을 발휘해야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 권력과 힘을 부여하게 될 때 사회주의가 겪은 실패나 아픔을 겪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소비에트 연방의 와해됨은 사회주의의 부실을 말해주는 실증적 모델이다. 이런 가운데 길드 사회주의가 어떤식으로 대인이 될지는 독자로선 그런 지식이 부재하여 잘 모르겠다. 러셀은 그의 책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내가 지지하는 길드 사회주의는 여전히 존중할 만한 기획으로 보이며, 나는 그 학설이 다시금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왜 그는 이토록 길드 사회주의를 찬양했는지 모르지만 이 책은 인간의 희망이 담긴 유튜피아적 책이기도 하기에 시간이 될 때 다시금 정독하며 고민을 해보리라.

 

이 책의 한 문장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 세력들을 어떻게 평가하든, 조직된 노동자들이 산업에 대한 통제를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요구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실이다. 이 요구는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산업 시스템이 강력하게 구축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제기되며, 특정 형태에 제한되지 않고 각국의 기질과 전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요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1830년대 영국의 오언주의노동조합운동, 유럽 대륙의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미국의 초기 혁명가와 개혁가 등을 통해 노동운동 역사 내내 간헐적으로나마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제기되는 요구는 더욱 보편적이면서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노동계급 조직의 긍정적 성취에 굳건한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선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이는 더 이상 단순히 유토피아적이지만은 않은 건설적이며 실천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p19

 

길드인은 사회의 핵심 가치란 인간적 가치이며, 사회란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결집한 연합체들의 복합체로 간주되어야 하고, 사회의 목적은 구성원의 좋은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 여긴다. 더 나아가 길드인은 통치 형태가 피치자의 수동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바탕을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사회는 완전히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상태에 있을 경우에만 건강을 유지할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서 완전히 민주적이고 자치적이라 함은 모든 시민이 원하기만 한다면 사회의 정책에 영향을 끼칠 '권리'를 지녀야 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런 권리를 실제 행사할 수 있도록 가능한한 최대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런 개념은 정치라 불리는 사회 행위의 일부 특별한 영억만이 아니라 사회 행위의 모든 형태에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하고, 정치 문제만큼이나 특히 산업과 경제 문제에도 완전히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길드 사회주의의 민주주의관에서 관건이 되는 주애한 전제일 것이다. p22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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