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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 전염병 - 왕실의 운명과 백성의 인생을 뒤흔든 치명적인 흔적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평점 :
2년 이상 전 세계를 마비시켰던 코로나19가 이제 ‘엔데믹(endemic)’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도 해제되었고 실외 마스크 해제도 566일만에 해제되었다. 마스크 쓰는 것을 상당히 갑갑해 하는 입장에서 반가운 처사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편안하게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코로나가 닥치면서 전염병에 대한 신간 책을 세 권이나 보았다. 전에는 그저 역사속의 전염병이며, 오늘날 시대도 일부 사람들에게만 있는 전염병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의 전염병이 되어서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 특히나 이번 마지막 변이 코로나라고 말할 수 있는 오미크론에 나와 내 가족이 걸렸다. 감기 정도로라고 언론은 떠들기도 했는데 내가 걸리고 나니 이건 감기가 아닌 전염병이었다. 물론 내 가족은 나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오미크론 증상이 대부분 나타났고, 후유증도 한 달 이상이나 지속되어서 고통중에 있다. 다행히도 살아 남았음에 감사하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지금은 8-90% 정도 회복되었다.
앞서 세 권의 책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적인 시선으로 코로나를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책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 속의 전염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오미크론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이 책은 더이상 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언론에서 매일 확진자 통계를 내기에 이제 지겹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이 신간으로 나오면서 또한 오미크론에 걸리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역사 속에 있었던 전염병이 매우 궁금해졌다.
때마침 한 TV에서도 태조 이방원을 다루고 있고, 조선 역사에 대한 책을 몇 권을 읽으면서 조선이 매우 궁금하던 차에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 신병주 교수님이 철저한 고증과 사실적 기록에 입각해 조선시대 전염병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다루어 주기에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전염병의 유행과 대응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통찰력을 줄 수 있는지 충분하게 제시해 주는 책이다.
인류와 전염병의 역사는 사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메르스와 신종플루가 있었으며, 중세에는 흑사병과 천연두, 에이즈가 유럽을 휩쓸었다. 이와 더불어 급변하는 기후와 불량한 위생 상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였다. 우리 역사도 돌아보면 전염병은 끊임없이 찾아와 왕실의 운명과 백성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연대기 자료는 물론이고 16세기를 살아간 조선의 선비 같은 경우 《양아록》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런 개인의 일기나 문집 등에 조선시대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전염병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 또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회적 격리, 의학적인 방법의 동원, 의료인 양성, 전염병 발생 지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 등과 같은 것을 보면 현재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어 정말 놀랍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유행하면 기본적으로 격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한양에 전염병이 발생하면 일단 환자나 시체를 도성 밖으로 추방한 것이다. 성 밖에서 전염병에 걸린 환자를 전담하던 곳은 활인서(活人署)였다. 동소문 밖에 동활인서를, 서서문 밖에 사활인서를 두고 의무원과 의술을 행하는 '무당'인 '의무'를 배치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무의탁 병자를 돌보는 일을 맡다가, 역병이 유행하면 따로 '여막'을 가설하여 환자를 돌봤다고 한다. 활인서에서는 약물 치료보다는 죽 등의 음식물을 공급하여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했으며, 또한 귀신을 겁주어서 쫓아내는 방법도 동원되었다. 요즘 시대야 미신이라고 치부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것은 매우 합당한 처방전과 같은 것이다. 또한 전염병을 예방하고자 역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여제가 상시적 또는 임시적으로 진행되었고 전염병이 발생하면 왕은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으로 자책하고 제사를 지내었다.
그러나 굿을 하고, 제사를 지내도 역병의 유행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는데 결국은 의학적인 치료 방법이 동원되었다. 허준은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해 명의의 반열에 올랐으며, 숙종 때의 어의 유상은 숙종의 두창을 치료한 공으로 종 2품직까지 올랐다. 그리고 정약용은 홍역 극복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한 책인 《마과회통》을 남겼다. 이 책을 남긴 이유를 보니 짠한데 본인이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았고 자식들을 천연두로 잃은 아픔이 있었다. 무려 6남 3녀 중 4남 2녀를 전염병으로 잃었다. 그래서 남다르게 천연두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책을 보면 요즘에도 유행하는 언어가 조선시대에서 온 말임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홍역을 치렀다' '학을 뗐다' '에이, 염병할 놈' 등의 말은 그 옛날 전염병의 지긋지긋한 기억에서 전달되어진 언어라고 한다. 그만큼 전염병이 우리 역사에 큰 아픔을 남겼다는 말이다.
전염병은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코로나가 처음 찾아 왔을 때 왜 우리 시대에 이런 병이 있는 거지 하며 화가 나기도 하였는데, 전염병은 미래 의학도 우습게 여기고 지금도 변이 코로나로 계속 우리를 공격하리라고 본다. 다행히 조금 많이 풀려서 자유를 얻었는데 이 자유가 어떤 전문가에 의하면 가을에 또 온다고 하니 우울함이 마음에 가득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런 거 같다. 팬데믹은 과거에도 지금도 찾아 와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죽음을 안겨 주지만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전염병을 극복하며 끈질기게 삶을 이어나갔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펜디믹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르지만 인간은 또 다시 극복할 것이며, 이겨내야 할 것으로 본다.
책은 참으로 볼 거리가 많고 역사적 지식과 상식을 충분히 주고 있다. 읽고나면 팬데믹을 대하는 방식이 남다르게 보일것으로 본다. 가장 흥미있게 읽은 것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인물이기도 한 《양아록》의 저자인 조선의 선비인 이문건에 관한 육아 일기이다. 양아록은 직접 손자를 기르면서 기술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육아일기이다. 일기에는 당시 유행했던 전염병으로 고생한 손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집안 식솔에 대한 기록도 있는데 대부분이 전염병에 걸렸다고 기록된다. 가장 먼저 노비 소근손이 걸린데 이어 다른 식솔들이 이어 걸렸는데 다행히도 모두들 좋아졌다고 한다. 오미크론과 같은 전파력이다.
더 놀라운 것은 홍역을 앓은 손자의 증후가 현재 코로나와 비슷한 증후가 겹친다. 그 내용이 <홍역탄>에 시로 이렇게 표현된다.
경신년 2 월 홍역 이 사람 을 괴롭힌다/손자 또한 앓았는데/열이 많이 나고 숨이 거칠어졌다/ [...] 쉽게 피로를 느끼고 핏기가 없으며 밥을 좋아하지 않고/마실 것만 찾아 설사할까 걱정한다/병에 걸려 일너날 때까지 열흘이 걸렸는데 이제는 병이 다 나은 듯하다/홍역이 다 나았으니 누가 가장 기뻐하겠는가/머리카락 하얗게 센 할아버지 아니겠는가
과거 선조들이 전염병을 극복해 나간 역사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코로나 끝자락에 서있는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배우고 미래를 슬기롭게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얻는 자료가 되면 좋겠다. 신병주라는 작가의 책에 자꾸만 손이 가도록 만들어준 책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