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 438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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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찾아서#정호승신간시집#정호승미발표시집#창비시선
나는 글로 읽어내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좋다. 그 중에서도 노래가사처럼 감정이 드러나는 시를 으뜸으로 좋아한다. 오랜만에 창비에서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발간한다는 소식에 서슴지않고 응모했는데 당첨되었다. 그 어떤 책들보다 기쁘게 받아 읽었다.

당신을 찾아서-정호승

쉽사리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자연의 숨소리와 작은 움직임만으로 시를 지어내고 그 속에 인생을 담아 빚어내는 시들을 읽따라 읽으면 시인의 마음을 닮을 수 있을까. 이번 시집의 처음에 나오는 시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같은 제목의 시 세편이 나란히 나온다. "새똥" 작은 새들의 움직임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새똥을 맞는 일이 흔치않다. 날아다니는 새의 배설물로 눈을 맑게 씻었다는 표현을 한참 생각해본다. 제부도에서 새우깡을 높이 들고 갈매기를 기다리다가 새똥을 맞은 적이 있었다. 눈에 떨어졌는데 안경을 끼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도 새똥으로 내 눈을 씻었다면 맑은 세상을 보며 시를 한수 지었을까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 때는 뜨끈한 새똥을 대신 맞아준 안경이 얼마나 고맙던지 나는 아마도 안경에게 고맙다는 시를 지었을텐데.. 내가 좋아하는 별을 시로 적으셨다. 별을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그립고 사랑스럽다. 그렇게 반짝이는 별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된다. 사랑을 하면 반짝이는 별빛으로 남고싶은데 때론 고독하게 외롭고 사무치게 그리워서 슬프고 어두운 별도 된다. 그 모습을 시인은 정확하게 시로 그려냈다. 하늘에서 보면 얼마나 작고 작은 먼지같은 존재들일까. 서로가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면 좋겠다.

슬퍼서 눈물이 나려고하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늘 위로해 주는 별빛은 내 눈에서 쏟아져 내리기도 했었지. 밤하늘의 별빛을 오랜만에 보러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표제작 "당신을 찾아서" 이 시는 왠지 구슬프고 애틋한 느낌이다.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길래 평생을 찾아 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나지 못했을까. 만나지 못했기에 더 아름다운 사랑으로 간직하며 더욱 간절하게 찾아다니며 영원히 쓰러져 잠이 들 수 있는 것일까. 이해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픈 당신이야기. 나이들수록 슬펀 드라마도 영화도 보기가 힘들어진다. 자꾸 눈이 여려져서 눈물이 흐르는게 이젠 버겁다. 한바탕 울고 웃을 수 있던 나이도 지나는 모양이다. 이젠 웃으며 행복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세상을 꿈꿔본다.
촛불​

어머니 아흔 다섯 생신날
내가 사들고 간
생일 케이크에 초를 하나만 꽂고
단 하나의 촛불을 켰다.
생명도 하나
인생도 단 한번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하는게
어머니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번이 어머니의 마지막 생신이라는 생각에
눈물로 생신 축가를 불러 드리자
어머니가 마지막 토해낸 숨으로
촛불을 훅 끄시고
웃으셨다 쓸쓸히
촛불은 꺼질 때 다시 타오른다고
어머니 대신 내가 마음 속으로 말하고
촛불이 꺼진 어머니의 초를
내 가슴에 꽂았다

열세번의 시집을 내는 동안 창비에서는 열번째 시집이고,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 100여편이 미발표되었던 신작시라고 하니 더욱 새롭게 읽혀진다. 당분간 여기에 실린 시들을 필사할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연약한 인생이지만 낮은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가치있는 삶을 성찰하게 만들며 겸허한 삶의 자세를 배우게 해 주는 시들의 묶음을 읽으면 나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다. 시를 써 오신 세월과 삶의 성찰의 모습이 고스란히 시인의 아름다운 인생의 회고록처럼 담겨진 시집이다.
시들의 언어를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며 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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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잘라드립니다 - 하버드 교수가 사랑한 이발사의 행복학개론
탈 벤 샤하르 지음, 서유라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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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잘라드립니다#심리학도서#심리학에세이#행봇학개론#탈 벤 샤하르
걱정은 자르고,
인생은 다듬고,
불행은 펴고,
우울은 씻겨 드립니다.

세계 최고의 행복학 교수도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사실/^^

많은 사랑을 받은 하버드 강의와 베스트셀러 저서 등을 통해 전 세계 사람에게 행복을 찾는 법을 전해온 저자 탈밴 샤하르.(?)생소한 이름이지만 그가 주는 메세지는 친숙했다. 행복 전문가도 때로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데, 동료 심리학자가 아니라 동네의 단골 이발소에서 그 누군가를 찾아냈다. 머리를 깎아주며 오랜 세월 쌓아온 지혜를 아낌없이 베푸는 그의 이발사에게서..

걱정을 잘라드립니다
-탈 벤 샤하르

단골이 되면 머리를 자르거나 염색을 하거나 펌을 하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된다. 오랫동안 이발하러 다니던 곳 역시 이웃에 사는 남녀노소 모든 이에게 머리 손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재공하는 모임장소로 자리를 잡았다. 느긋한 태도와 따뜻한 환대, 빛나는 재치와 통찰력있는 지혜는 빠른 변화와 첨단 기술로 점철된 현대사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가치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작은 공간에서 오가는 대화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편안한 미용실에 가면 내 머리를 만지는 사람과 하물없는 대화를 한다. 서로 질문을 하기도 하고 별뜻없는 이야기라도 하면서 관계가 깊어진다.

부드러운 손길은 우리 몸의 고통을 줄이고 평온함을 유도하는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다른 사람과 손길을 주고 받을 때, 우리 몸에는 흔히 '사랑 호르몬'이라고 불리며 따스하고 편안한 기분을 이끌어내는 물질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문득 커다란 손바닥으로 손주들의 팔과 등을 쓰다듬으며 '지금 사랑의 기운을 불어넣는 중'이라고 말하곤 했던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이발소나 미용실에서 내 머리를 온전히 맡기고 있는 순간의 접촉이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머리를 만지다보면 스르르 잠이 오기도 하고 마음에 있던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놓기도 한다.

나 역시 한군데를 오래 다니는 편이라 그 곳에 가면 지난 번에 이어 원장님의 아들 이야기도 듣고 헤어스타일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아들로 인해 며칠 고민하고 힘들었는데 장애있는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바꿀래? 이 한마디에 자기 고민이 쏙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하던 원장님이 떠올랐다.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털어낸다. 그리고 일상의 작은 것에서 배우는 지혜로운 삶의 가치를 안다.

자신의 존재와 감정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기란 쉽지않다. 여유를 가지고 속도를 늦춰야 하는데 그 장소가 어쩌면 이발소나 미용실이 될수 있다. 머리를 만지면서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사각거리는 가위소리와 함께 마음 문을 열게 된다.
사람들이 직접 내뱉는 말 외에도 대화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경험이 담겨있다.

이발사라는 직업의 큰 장점은 손님들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멋지다고 말해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머리 손질을 마치고나서 듣게되는 칭찬 한마디가 관계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상승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커피나 차를 대접받는다. 손님에게 직접 내다주는 음료는 단순히 커피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려는 작은 배려이다.

잔잔한 삽화들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세계적인 심리힉자조차 동네 이발사로부터 배울게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 일상의 따스함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미용기술을 배울 작정이었다. 남자의 머리손질은 한달을 넘기먼 지저분해져서 자주 이발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잘라주시던 부모님 생각도 나고, 가끔 딸아이의 머리를 손질해 주던 기억과 처음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독특한 설정의 심리학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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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
슛뚜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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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일상을찾아틈만나면걸었다#슛뜨#여행에세이
나는 깨달았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45만이 사랑한 유튜버 슛뚜가 걷고, 쓰고, 찍고, 머물렀던 여행의 모든 순간을 담았다.
21개 도시에 남긴 슛뜨의 발자국을 따라 에세이는 시작한다.

슛뜨..유튜브를 하지 않는 나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여행을 원하지만 다녀보지 않다보니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부드러운 벨벳같은 책 표지가 고급스러워 느낌이 좋다. 홀로 때로는 친구와 함께 다니는 여행 중에 사진으로 남긴 이야기들을 모아 에세이로 엮었다. 화려한 도시들과 정감있는 골목들까지 구석구석 다양한 배경들이 아름답다.

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슛뜨

코펜하겐 길거리를 걸으며 느낀 특징 두가지는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고,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편집숍이 발에 챌 듯이 입점해 있다는 것. 차보다 자전거가 많다는 건 정말 좋아보였다. 매연도 없고 소음도 없었다.

그런 실수에서 비롯된 시체스의 만남은 우리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어디를 가나 바다를 쉽게 만날 수 있었고 가끔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것도 저렴한 교통비와 예쁜 풍경 덕분에 꽤 괜찮은 여정이었다.

스페인 시체스의 분홍빛 건물 과감한 페인팅이 인상적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비긴어게인이 떠올랐다. 음악 연주를 하는 버스킹은 낯선 도시에서 친숙함을 선사할 것 같다. 음악이란 그런 것일까.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리를 잡고 앉거나 서서 음악을 듣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함께 어우러져서 리듬과 함께 흥겨워지는 풍경이 설렌다.

여행이란 계획하지 않았던 일정에서 더욱 신비한 묘미를 마주하게 되는 법. 작가 역시 어그러진 일정 속에서 가게 된 도시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도심 속의 풍경과 달리 미처 닿지 못했던 곳에서 헤매다 만난 새로운 광경은 멋진 여행을 선사해준다.

여행이란 어디를 다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하는 여행인가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나라를 거닐지라도 나와 맞지않는 사람과 며칠을 함께한다면 괴로운 나날이 될 것이고 그저 그런 평범한 동네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즐거운 여행으로 남게된다.

거리를 나서면 어제와는 또 다른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매순간 사소한 모험과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고 예상치못한 작은 실수가 오히려 색다른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여행.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 일상이 만들어주는 여행지에서의 시간들을 사진과 함께 담아냈다. 젊은 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삼삼오오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 다니는 여행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유가 있어야 여행을 다닌다는 생각을 갖으면 여행을 실천하기 어렵다. 마음의 여유는 오히려 여행에서 얻어오는 것 같다.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안다고 여행도 다녀본 자만이 그 맛을 알게될 것이다. 마냥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떠나고 싶다. 막연한 여행이 두렵기도 하지만 약간의 용기를 낸다면 새로운 곳에서 마음의 여유과 낯선 곳에서 값진 일상을 얻는다.

나역시 젊을 때 많이 다니지 못했던 여행이 내내 동경이 되고 환상으로 남아있다. 딸에게 늘 하는 말이 친구들과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말이다. 함께 다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할테지만 낯설고 새로운 세상이 주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을 담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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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녀 새소설 4
김하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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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두 여자의 간절함이 빛의 위로가 되다.
<새소설>은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 시리즈이다.자음과 모음의 새소설 시리즈는 지난번 안보윤 작가의 [밤의 행방]을 인상깊게 읽었다. 이번엔 그 뒤의 작품으로 네번째 번호에 안착한 소설 김하서의 [빛의 마녀]이다.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젊고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취지답게 신선함에 빠져들게 되는 마법같은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마녀가 나오는 제목처럼 SF소설인가 했다. 니콜의 시선으로는 경어체로 서술을 했고 태주의 이야기는 예사말로 서술을 해서 교차편집되는 듯하게 서로 엇갈려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니콜은 영국과 독일에서 사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해서 문득 외국작가의 소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국적이면서 환상적이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선함과 악함을 끌어내는 오묘하고 독특한 설정과 반전이 매력적인 책이다.
자신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기혐오’와 ‘피해의식’ 속에서 결국 비정상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은 과연 상처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갖고 살아가는 선의 방식 안에 때때로 들끓는 악의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으로라도 잠시 나쁜 생각을 해 보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행동으로 실천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우린 악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스로 마녀가 된 니콜의 회고록 같은 이야기. 그리고 태주가 잃어버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천사원의 어린 천사는 한 손가락을 잃어야했고 초희라는 미성년자 엄마의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뻔한다. 태주는 자신의 아이를 살리고자 다른 생명이 제물로 사라져야함을 서슴지않고 감행한다. 그리고 그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초희 뱃속의 아이는 살아있음으로 살아가야 하고 자신의 아이는 이미 죽음에 이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남의 생명을 뺏아 다른 생명을 살게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악마의 속삭임이란 어쩌면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마법이 뭔지알아?"
'믿는거야.'

의미심장한 말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아이잃은 엄마 태주는 26시간 만에 하늘 나라에 가버린 자신의 아이를 놓지 못한다. 그 엄청난 상실감을 처절하게 그려냈다. 니콜은 또 다른 모습으로 마녀가 되었다. 그 둘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빛이 되어 위로를 해가는 과정이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며 이국적이다. 진짜 마녀라도 있어서 홀린 듯 궁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혼자 살아남은 어미의 애끓는 가슴. 유리 조각이 깔린 길을 온종일 걸어 피투성이가 되어도 갈기갈기 찢긴 마음의 고통을 대신하지 못할 거예요. 사람들은 그녀를 바라볼 뿐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어요. 그녀의 불행이 자기에게 옮겨붙을까 봐 달아나기 바빴죠.
사람들의 염려는 틀리지 않아요. 불행은 회색 먼지 같아서 누구의 어깨에나 내려앉아요. 그게 불행의 법칙이에요. 부자든, 가난하든, 젊었든, 늙었든, 공평하게, 예고 없이, 순식간에 악의 꽃을 피우죠.
p.27-28

아주머니는 벽에 머리박는 애를 떼어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한테 엄마처럼 다 해주면 돼. 먹여주고 치워주고 재워주고."
당신이 틀렸어. 엄마는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지않아. 아주머니는 우는 아이를 무성의하게 한팔에 하나씩 안아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 내려 놓았다. 엄마는 한순간도 아이를 짐짝 옮기듯 하지 않아.
엄마는 아이를 그리워하며 먼 가시밭길을 걸어가,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아이를 생각하며 웃음을 짓지. 살은 녹아내리고 머리칼은 새하얗게 변해 바람에 날아가. 비 바람 소리처럼 처연하게.
p.101

그 순간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있는 그 자를 보며 깨달았네. 나를 배신한 건 아내가 아니라 내 삶이었다는 것을 말이야.
니콜, 속이고 있다고 믿지만 속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네. 인간이야말로 불가해한 존재야. 끊임없이 자신을 속이고 또 속지. 그렇게 삶에게 잠식당하는 거야.
p.166

삶의 참혹한 비밀은 투명한 젤리 속에 감춰져 있었죠. 모든 소중한 것들은 너무 쉽게 으스러지고 뭉개져버린다는 것을 당신은 아나요?
삶은 때로 부서지기 쉬운 젤리와 같다는 걸. 젤리가 으깨지고 나면 깨닫게 되겠죠. 삶 속의 진짜 당신 모습을.
p.214

그날 나는 그림자가 사라진 듯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어요. 내가 잃어버린 건 무엇이었을까요. 분명한 건 누구도 생의 함정을 피해갈 수 없을 거라는 거예요. 당신도 나처럼 소중한 걸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삶의 그림자라는 걸 알려주고싶어요.
기억이 떠오르나요? 당신도 모르는 사이, 무얼 잃어버렸는지.
p.244

어려운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인정해야하는 마음 그리고 어떻게든 이겨내야하는 마음, 때로는 불의와 타협해서라도 남을 해쳐서라도 내 것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들이 복잡하게 얽힐 때가 있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상실과 연대하는 공통분모를 만들어 엄마로서 아이를 잃은 상실감, 생명의 소중함과 아픔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과 잃는 것 그리고 얻게되는 진심어린 위로들이 작가 특유의 문체로 전개된다. 진짜 마녀의 마법에 걸려 대단한 것이 나올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심리는 인간이 가닿지 못하는 신의 세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믿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마법의 순간이다. 간절히 원할 때 우리는 분별력없이 그 어떤 주술에 빠지듯이 끌려들어간다. 그 안에 있을 때는 마치 무엇에 홀린듯이 다른 것을 볼 수가 없다. 그 안에서 나와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안개 속에 갇혀 헤매던 자신을 보게된다. 빛의 마녀라는 이름처럼 잠시나마 동화 속에 빠지듯 마법의 주문이 이끌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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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쁘다, 내 몸 - 산부인과 전문의가 쓴 딸을 위한 내 몸 안내서
이민아 지음 / 더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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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쁘다내몸#이민아
산부인과 전문의가 쓴
딸을 위한
내 몸 안내서

내 몸 귀한 줄 알고, 평생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내 딸에게 권하고 싶은 내용들을 모았다.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던 여성의 귀한 몸에 관련하여 필요한 따뜻한 여자 몸 안내서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진료하며 직접 겪은 일들을 편안하게 이야기해준다. 어릴 때부터 자주 칭찬하고 내 몸을 이쁘게 가꾸며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예민하게 키워내는 것.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숨기지 않게 해야 한다. 작은 피브 트러블에도 치료를 받으면서 진짜 예민한 우리 몸안이 아플 때는 숨기고 알리지 않아 병을 더 키우게 된다. 초경부터 정기검진을 가서 제대로 자궁의 위치를 함께 보고 엄마가 되는 소중한 곳을 지켜가며 내 몸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법을 터득하는 것. 누구도 가르치기보다는 꺼리는 이야기를 당당히 꺼내놓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문의라고해서 학술적이거나 강의형태가 아니라 딸셋을 키운 엄마로서 같은 여자로서 언니나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같아 공감이 된다.
오랜 임상 경험을 쌓은 산부인과 전문의인 동시에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성전문가 중의 한 분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들을 없애주고 싶은 이민아 선생님의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는 대목들이 따뜻하다. 초경부터 임신 그리고 폐경 이후의 우리 몸의 크고 작은 질병들에 대해 세세히 알려준다.

얼마 전 치과를 다녀왔는데 온 몸에 힘이 들어가서 치료마치고 나오면 온 몸이 뻐근하다. 산부인과도 치과만큼이나 꺼리는 병원이지만 누구라도 편안한 진료를 하고 이상한 여자취급 받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진료를 받는 세상이 되길 원한다.

자궁암 백신도 만12세 여자 학생들에게 백신을 무료접종해준다. 물론 후유증이나 부작용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다. 이왕 무료백신으로 접종할거면 남자 학생에게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ㅠㅠ

딸애를 데리고 산부인과는 마음 편히 다니도록 친구들까지 데리고 가며 두 번을 접종했다. 남자 학생까지 확대되지 않는 것은 지금도 속상하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마른 몸만을 이쁘다고 드러내놓고 다니는 화면때문에 요즘 아이들은 조금 살집만 있으면 감추기 급급하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내가 먼저 이해하고 아이과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당한 여성으로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기별로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 올바른 성가치관과 엄마가 된 그 이후의 관련된 전반적인 궁금증을 이 책과 함께 할수 있을 것 같아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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