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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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첫사랑>과 <무무>로 만났다. 독서모임의 첫 도서였기에 민음사 책을 호기롭게 구입해서 읽었다. 어느 새 6년 전이라 분위기와 제목은 또렷하지만 내용은 가물거리는 책과 작가이다. ^^;;



오랜만에 만난 러시아 문학 <파우스트>는 분명히 아는 책 제목같으면서도 생소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들어왔던 <파우스트>는 일반적으로 괴테의 작품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괴테의 작품도 읽지 못했으므로 차라리 어떤 편견없이 읽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작품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파우스트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작가정신

김영란 옮김

세 편의 중단편이 실린 책으로 200여 페이지의 아주 읽기 적당한 두께감이었다. 며칠 전 400페이지도 넘는데다가 내용도 벅찼던 독서 정체기를 혹독히 만났었기에 차라리 고맙게도 잘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세 번의 만남>이라는 소설은 사냥을 나갔던 호젓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을 홀로 마음에 품은 주인공이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장소에서 그 여인을 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흠모하던 그 여자 곁에는 멋진 남성이 함께 있었으므로 그는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마음만 키워간다.

얼핏 읽다보면, 애인이 있는 여자를 마음으로 품은 남자의 말도 안되는 질투이야기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숨은 뜻이 있을 터이다. 서정적인 이야기와 감각적인 문체는 시를 읽는 듯이 부드럽고 깔끔해서 읽어내는 데 신비한 힘이 있었다.



익숙한 그 저택을 지날 무렵 어느덧 주위는 짙은 어둠에 싸인 채 하늘에는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한마디로 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에 있었다.

보리수들은 마치 소멸해가는 산책로로 나를 부르는 듯 했고 어슴푸레한 그림자 속으로 나를 유혹하는 듯햇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푸른 색으로 부드럽게 반짝이는 별빛이 높은 곳에서부터 은밀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별들은 마치 고요한 시선으로 주의 깊게 이 머나먼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잠 못 이루는 따스한 밤이 기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밤은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소리를 이 예민한 정적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의 만남.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여인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인연은 그 여인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고 마음으로 부끄러움에 젖어 결국 질투심이었음을 고백한다.




궁금하던 책은 바로 <파우스트>라는 표제작이자, 괴테의 작품과 똑같은 책제목을 당당히 꺼내 든 소설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친구에게 보내는 아홉 통의 편지로 전개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이반 투르게네프 자신이 얼마나 괴테의 작품을 사랑했고 <파우스트>에 빠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인생을 강렬하게 흔드는 문학작품을 만났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기묘하게도, 혹은 선명하게도 바꿔주는 힘이 있는 듯하다.

괴테의 작품은 읽지 못해서 비교를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나중에 꼭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고향집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파우스트>를 발견한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시 만난 책<파우스트>에 대해 청춘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문학이 주는 심장의 격동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젠가 내가 외국에서 가져온 책들도 발견했어.

괴테의 <파우스트>도 있더군. 자네가 기억할지 모르지만, 한때 난 <파우스트>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암기한 적도 있었어.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어. 나에게 그토록 낯익은 이 작은 책을 발견했을 때 그 느낌이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내 청춘이 눈 앞에 되살아나 환영처럼 어른거리더니 온몸의 혈관을 따라 불길처럼, 독약처럼 뛰어다니는 거야.

그런데 내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게 되었는지 아나?바로 이렇다네. 지금 난 즐거운 감정을 과장하고 쓸쓸한 마음은 밀어내려 애쓰고 있거든.

하지만 젊었을 때는 반대였다네.

우수와 권태는 보물처럼 아끼고, 쾌락의 폭발은 애써 잠재우려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지금껏 쌓아온 나의 모든 인생 경험에도 이 세상에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남아있다는 느낌이야. 더구나 그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어릴 적 첫사랑 벨라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지만 사는 일에 바빠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파벨은 <파우스트>를 읽어주기로 약속하고 만남을 갖는다. 낭독하는 시간과 책 선물을 받은 벨라는 문학을 접한 뒤 새로운 욕망에 휩싸인다.

사실은 벨라의 문학적 소양을 알고 감정에 빠질 것을 걱정한 엄마가 시나 소설을 읽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다.

"밤새 한숨도 못잤어요. 머리가 아파서요. 바깥공기라도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아 나온 거예요."

그녀는 말했어.

"어제 내가 읽어드린 책 때문인가요?"

내가 물었어.

"물론이지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책 속에는 피하려해도 피할수 없는 무엇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머리가 불타는 것 같아요."

문학작품 속에서 자신의 삶의 단면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신이 빠져든 소설을 작품 세계로 반영하여 승화시킨 자전적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결혼한 여인에 대해 한 남자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은 투르게네프 자신이 유부녀를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실제 경험이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욕망에 굴복하느냐, 도덕적 의무를 지키는 인간의 삶의 선택하느냐 하는 주제를 던진다. 서정적인 문체와 자연의 아름다운 묘사에 빠져들어 모처럼 낭만적인 소설 속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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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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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는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한쪽 팔을 다친다. 접합수술을 받은 후 엄마의 지나친 간섭, 학교에서의 따돌림, 첫사랑의 실패 등 모든 상황은 애니를 실패한 인생, 혹은 실수투성이 인생으로 만들어 버린다. 간호사 생활을 하며 일상을 누리던 중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음이 찾아온다.

사제간의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그리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 소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조금 다르다

이 소설은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잔잔한 성찰의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폐 한쪽을 떼어주려 수술실에 들어간 애니는 자신이 천국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파울로는 죽었을지 살았을지가 너무 궁금한 애니의 앞에 다섯 명의 인연이 차례로 다가온다. 애니의 인생을 돌아보며 풀지 못했던 질문들을 하나씩 대답하고 공감하며 모든 상처를 쏟아내고 보듬어준다.

'다친 사람은 나야'라고 생각했다.
무언의 분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애니는 더 외로워졌고 괴로움도 커져갔다. 로레인이 울수록 딸은 점점 할 말을 잃었다.
한동안 모녀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

"아이들은 부모를 필요로 하면서 삶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부모를 거부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부모가 된다."

온통 힘든 삶속에 상처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애니는 사실 그 이름 속에 '용기'가 숨어 있다. 엄마가 이름을 지었을 때 애니 에드슨 테일러라는 여자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했다. 63세에 최초로 나무통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살아남은 여자였다.
"용기"라는 단어를 아주 희귀한 것처럼 여겼고, 자신도 딸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애니라는 이름을 지었다.

"애니, 우린 외로움을 두려워하지만 외로움 자체는 존재하지 않아. 외로움은 형태가 없어. 그건 우리에게 내려않는 그림자에 불과해. 또 어둠이 찾아오면 그림자가 사라지듯 우리가 진실을 알면 슬픈 감정은 사라질 수 있어"
"진실이 뭔데"
"누군가 우리를 필요로 하면 외로움이 끝난다는 것. 세상에는 필요가 넘쳐나거든"

"비밀. 비밀을 지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비밀이 우리를 통제하는 거지"

"아기는 숨을 못 쉬었어요. 열기구 사고 후 파울로가 숨을 못 쉰다는 말을 듣자 다시 그 일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어요. 예전에 하고 싶었던 말을 했어요.
'내 폐를 가져가요. 내가 그를 위해 숨 쉴 수 있게 해줘요. 그의 목숨만 구해주세요"

애니의 사연을 따라 가다보면, 삶과 죽음에서 마주하게 되는 삶과 인연,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알아간다. 아는 것은 이해하게 되고, 그 마음은 곧 공감으로 이어진다. 그 공감은 또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으로 풍요롭게 만든다.

한 군데 매듭이 지어지면 그 상처로 모든 것이 정체되어 결국 내 안의 모습이 기형처럼 틀어지게 된다. 메마른 인생살이지만 알게 모르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천국에 가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내 삶에 함께 했던 사람과 만나는 천국여정을 통해 작가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랑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온다. 사랑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온다. 사랑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거나 더 거부하지 못할 때 온다. 이것들이 사랑에 대한 다양한 진실이다. 하지만 애니의 경우 10년가까이 오래도록 아무 기대도 없었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던 게 사랑의 진실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인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인생이 그 다음 인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든 끝은 시작이기도 하다는 것.
단지 그 끝을 지금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이다.

인생사는 베틀에 걸린 실처럼 얽혀서 우리도 모르는 방식으로 촘촘하고 어설프게 짜여간다.
이따금 어떤 일의 결과를 놓고 우리는 자신을 책망하며 후회를 늘어놓는다.
그 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 때 거기를 그 시간에 가지 않았다면,
그 때 도중에 멈추지 않았다면,
그때 그것을 했더라면, 안했더라면, 안만났더라면.....
우리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도 이따금 인생이 힘들 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 선택에 후회를 했던 적이 있었다. 자책감에 시달려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서 앞을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지난 과거에 발목을 잡혀두지 않으려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내 탓이 아니다...
사람에게 속은 내가 잘못이 아니라 나를 속이려 했던 그 사람이 잘못이다. 용서를 하기 위해, 화해를 하기 위해, 나 자신을 덜 미워하고 멀리서 바라보기 위해, 바닥에서 제대로 일어나 걷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던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 되었다.
결국,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내 삶과 화해를 하는 순간 가슴에 응어리처럼 홧병처럼 나를 힘들게 하던 감정이 사라졌다.

사고 당시 애니의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탓하는 애니에게 말하는 한마디가 감동이다.
애니는 자신이 졸라 신혼여행에서 열기구를 타기로 해서 사고가 났다고 자책이 심했다. 파울로는 말한다.
"바람이 불었어"라고...
그렇다.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때에
예기치 않았던 바람이 불었던 거다.
누구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생이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후회하고 자책할 시간에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더 안아주고 공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천국에서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매일 뭔가를 잃어.
때론 방금 내쉰 숨결처럼 작은 걸 잃고
때론 그걸 잃고는 못 살거 같은
큰 걸 잃기도 하지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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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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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를 독서 정체기에 빠뜨렸던 책이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와 광활한 대륙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용은 많고, 내가 알아야 할 중국의 숱한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에 따른 갖가지 문화유산의 이야기들을 따라가기 벅찼다. 조금씩 나눠 읽다보니 보통 하루이틀정도에 끝나는 책을 일주일 가량 붙들고 읽었던 것 같다.

사실 읽어도 전부를 읽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 무지랭이가 읽기에는 내용이 방대했다. 중국편을 전부 읽은 것도 아니고 이번 실크로드 답사는 오아시스 도시마다 약간씩 다른 도시의 이야기들이다. 유홍준 작가님께서도 실크로드 답사기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가 많이 낯설기도 했지만 한두차례의 답사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이다. 보통의 답사기를 쓸 때는 대여섯차례를 다녀온 뒤 집필하셨다고 한다.
작가님조차 낯설고 버거운 실크로드의 답사를 내가 한번 읽어서 뭔가 알아내기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누란의 미인 발굴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한참 뒤에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누란의 미녀는 완벽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신은 모직물과 양피로 된 옷을 입고 가죽 신발을 신고 짚으로 만든 바구니가 뚜껑에 덮여있을 정도로 복구가 가능했다. 무려 3900년 전의 시신이었고 사망 당시 나이는 40~45세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몇 천 년동안 사라지니 않은 미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랍고 너무 신기했다.

"이 쿰타크 사막은 두 가지로 이름높다. 첫째는 신선 시내 중심가에서 불과 1킬로미터 밖에 덜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세계에서 도심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막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모래 입자가 아주 고와서 바람에 이동하는 유동사막으로 모래 언덕이 바람결따라 굽이치는 물결무늬를 그리며 무한대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모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녹음은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은 옮기지 않고 산다."

어느 답사나 마찬가지지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 곳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중국의 오랜 역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장소의 유적지와 쇠퇴하고 번성했던 나라들의 역사 이야기가 읽어나가기 벅찼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중국의 역사를 배제할 수 없기에 공존했던 나라의 역사를 알아가는 여정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작가님은 한두장 넘길 때마다 화려한 곳곳의 사진을 남겨서 유적지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고 환상적인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볼거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볼 만한 것은 각종 나무인형인데, 훙미롭게도 당시엔 페지의 재활용이 성행해서 페지로 망자에게 옷을 입히고 모자와 신발을 만들어주었으며, 나무 인형의 팔을 보면 종이를 꼬아서 만든 경우가 많다. 이것4이 오늘날에 와서는 페품이 아니라 엄청나게 중요한 생활사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다양한 문화재와 더불어 비숫한 예로 우리 나라 고구려나 통일신라에 있었던 문서와 문화재 이야기를 함께 곁들여 호기심을 자아낸다.

중국은 학자와 시인을 기리는 일에 끔찍할 정도로 지극해서 유작을 빛내는 동시에 위업을 기리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우리는 조상들의 학문적 위업을 기리는 데 너무 무심하고 새로운 것들과 유행에 너무 바삐 움직이느라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를 가든 유적지 입구에 당도하기 전에 멀리 떨어져서 주변 경관과 함께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내가 천수산석굴을 가면서 석굴이 홀연히 나타나기를 벼르고 별렀던 것은 바로 유적지 전체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답사와 기행문의 섞어 유적지와 문화, 역사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작가의 감성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묻어나서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책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다.

여행이나 유적지 답사의 즁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고작은 여행에서 여러가지를 보고 배울 수 있다. 문화유산 답사는 특히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광할한 중국 대륙의 땅에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경이로운 장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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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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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를 처음 읽은 것은 출간 50년 후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역주행의 신화로 세상이 떠뜰썩하던 몇 해전이었다. 2016년 즈음 큰 기대로 읽었던 책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없이 지루하게 읽혀졌고, 그저 그런 소설로 제목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소설로 <스토너>를 꺼내면 의아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야겠다는 결심으로 2018년에 책을 사두고 차일피일 미뤄졌다.

스토너를 처음 만날때 내 모습은 때론 절망적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희망적이기도 했다. 어둡고 깊은 터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으로 혼자 애쓰며 헤쳐나오던 시기였다. 내가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로 스토너의 슬프고 고독한 인생을 마음에서 밀어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독히도 나와 닮아 있는 연민에 지루하다고 멀찍히 두고 바라보는 책이었다.

이번에 <스토너>를 다시 읽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에 감사한다.
<스토너> 초판본은 절판되었던 1965년 표지를 그대로 복원한 의미있는 사전 서평단 이벤트에 내 이름이 올라 기뻤다.
의미있는 책을 소장하게 되는 일은 굉장히 가슴이 벅차오르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다.

4년 전과 후의 내가 작게나마 어떤 성장의 진동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마음잡고 정독을 해 나갔다.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가 대학에 입학하고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교수가 되어 사랑하고 결혼하며 쇠락해가는 가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남들에게 인생소설이라는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지루함이 아니라 젼혀 새로운 소설로 다가왔다.
마지막에는 나도 모르게 가슴 속 진하게 올라오는 뭉클함으로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특별한 어떤 장치나 반전이 통쾌하게 그려지고 독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뿜어져 나오는 잔잔한 이야기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 되었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 스토너의 변화와 성장처럼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그려지는 이디스의 부분은 아쉬웠던 부분이라서 내가 여성 스토너가 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디스를 남자로 바꿔서 이입해 읽어보기도 했다.)

"길고 주름진 얼굴이 예전에는 얇은 가죽처럼 강인해 보였지만, 지금은 아주 오래돼서 바짝 말라버린 종이처럼 약해 보였다. 스토너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시는구나. 1년, 2년, 아니 10년 뒤라도 선생님은 돌아가시는 거구나. 때 이른 상실감이 몰려와서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해 여름에 그는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장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자신을 문학적인 세계로 인도해준 스승의 죽음을 감지하며 상실감을 느끼고, 전장에서 죽음을 맞은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며 씁쓸해하는 스토너의 마음에 애틋해졌다.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다가 가까운 친구나 지인의 죽음을 바라보고나면 크게 와닿을 때가 있다. 상실감은 인정하기 싫은 죽음의 공포와 충격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없는 슬롯을 땅에 묻으며,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도 울어줄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망자의 고독에 울음으로 보낸 사람은 스토너였다. 친구였으며, 동지였으며, 스승이던 교수 슬론의 죽음으로 함께 보낸 젊은 시절도 땅 속에 묻고 애착관계가 떨어져 나가는 마음에 가엾기도 했다.
죽음이 주는 상실감을 견디고 나면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도 한다. 남은 삶을 더욱 가치있게 살고 싶어지므로.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

나도 나이 마흔에 아이와 둘이 세상에 떨어져 나와 살면서 남들이 일찍 알고 배워버린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스토너의 마음에 내가 얹어질 수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스토너의 서툰 사랑에 묻어가게 되었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스토너의 인생에 대한 관점과 모습이 비쳐진다.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를 향한 마지막 인사에 눈물이 났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
우정을 원했다. 친구를 가까이 두고 친밀한 우정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열정적인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게되면 포기할 것도 있고 혼돈 속에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사람이 있을까?
삶을 다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마지막 시간에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을 관조하게 될 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있을까?

한동안 김훈 작가에게 빠져서 <자전거여행>을 읽으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구절이 있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더욱 평탄하다."

인생을 돌아보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지만 어느 순간 안정된 평지에 이른다. 결국 마지막에는 그것들이 땅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기고 더욱 평탄한 길이 나온다는 표헌은 힘든 여정에 들어선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스토너>를 읽고나서 희망과 절망의 쌍곡선이 결국은 죽음 앞에서 평지가 되는 것이라는 절묘함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너무나도 평범한 일생이기에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세월의 뒤안길을 돌고 돌다가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마주한 누이같은 소설이라는 말에 동감이다.

자신의 삶을 실패라고 할 것도 없다. 희망과 사랑에 배신당하고 실패하고 실망과 불신을 만들고 나의 의도와 다른 삶을 살게 될지라도 결국은 그 자체로 나의 삶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며 스스로 관조하는 삶을 만들어간다.
결국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치열한 삶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어떤 쓸모도 없음을 느끼며 자신의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이 고요히 힘이 빠지며 침묵하는 삶으로 종결되는 스토너의 마지막 순간처럼 그것이 우리의 인생일지 모른다. 빛처럼 환하게 비추다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것...
찬란한 빛 주변에 어둠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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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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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두 부분이 교집합처럼 만났다. 일부 과학에 관련한 전문 지식과 젠더에 관한 부분이다. 과학 중에서도 생소한 진화심리학이라니...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읽었다.

과학 중에서는 그나마 생물학 쪽이 조금 나은 편이고, 남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심리학에도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남의 생각을 마음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굳이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상대를 다 아는 듯 말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중과 여고를 나와서 절대 여대는 가지 않겠다고 대학은 공학을 가긴했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는 조신하고 남자는 씩씩하다는 고정관념을 귀에 박히게 듣고 자란 세대이다. 남자답게 호탕한 웃음을 짓는 여자친구가 부러웠고, 섬세한 남자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마도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갖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이 책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인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성 지식인의 시선으로 쓰고 있다. 고정된 인간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일반화된 문장들을 간과하지 않고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여성으로서 당연하게 찾고 반문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이러한 문제는 미국 남성이나 한국 남성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아직 우리 사회에 저자처럼 민감한 부분을 소신있게 파고 드는 여성 지식인의 부재도 안타깝다. 인식의 전환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부분인데 나의 경우에는 딸을 키우면서 앙성평등, 혹은 젠더감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춘기인지라 종종 나의 꼰대근성을 고쳐 먹곤 한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남성 과학자들이 논하는 세계가 혼란스럽고 터무니없음에 어떤 가설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성차별적 언사와 괴롭힘을 당한 여성을 대변한다.

나의 경우에는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나, 성차별적인 언사로 모욕이나 굴욕을 당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생각이 점차 깨우쳐지자 세상에 그 어떤 자연의 법칙까지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공부하듯 읽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성차이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나눌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러한 과학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작가의 논증들은 시의적절하게 남성과학자들의 문장을 파고들어 통쾌하다. 미국 사회에서도 과학자들의 논증에도 깔려있는 성차별이 이토록 가혹한 것인지 놀랍기도 했다.

일부다처제와 전통적인 엄격한 일부일처제 모두에서, 여성의 성에는 족쇄가 채워지는 반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는 남성의 성에도 제약을 가하지만, 성적 이중 잣대를 통해 남성에게 바람피울 수 있는 약간의 재량권을 준다.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해서는 종종 독서모임의 주제로도 떠오른다. 남성의 자유로운 성적 관념에 비해 족쇄를 채우고 성차이에 대한 결정이 그 자체로서 이념적이이다. 나 역시 여자와 남자가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며 왜?라는 질문을 해 보지 못했다. 여자라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남자니까 우선시 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은 아무래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빠와 남동생을 우대한 습관이 배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큰 댁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 나를 낳은 엄마는 딸을 낳아 죄인처럼 살다가, 그 이듬해 남동생을 낳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고 했다. 그 때에는 웃으며 지나는 에피소드에 불과 했지만,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한 성차별이었을까?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남성와 여성을 나란히 툴애 가두지 않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민감하다.

버스의 수사는 라이트의 수사처럼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그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성규범이 자연의 이치임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두 진화심리학자 모두 성차별화를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를 떠받들고, 성적 이형성이 두드러진 사회들이 가장 평등주의적이지 않으며,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경제, 교육,직업적 기회를 줄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무시한다. 남성과 여성이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성차별화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 사회들이 평등주의 사회에 근접한 사회이기 쉽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는 어떤 편에서도 옹호하는 주장이 없다. 하지만 억울하게 차별적인 언사나 모욕을 퍼붓는 사람들이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페미니즘에 올바른 이해는 사회를 제대로 보고 어떤 주제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설픈 이념의 해석은 더욱 논란의 여지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직면할 때 제대로 된 개념의 숙지가 필요하다.

진화심리학이 드물게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경우에는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위상을 남성 위에 놓으려는 시도인 줄 아는 무지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현대 페미니즘은 대체로 예로부터 두 성을 분리해온 장벽들을 허무는 일과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우선 순위와 열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며칠을 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어도 어려운 과학 논문에 따른 성차별적 논증에 대한 반박의 글들이 어려웠다. 굉장한 혼란도 오고 공부하는 셈치고 읽고 쓰고 고치고 ...

그래도 아직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읽을 때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응수하며 접어 놓은 책장을 다시 펼치면 또 생소해지는 부분들이 있어 다시 읽어봐야했다.

평소에 관심을 갖는 부분이 아니었던지라 나름 꽤 진보했다고 여겨진다고 해도 복잡한 여러 이론들을 한번에 이해하고 제대로 나의 주관을 세우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남성과 여성을 판에 박힌 정형화되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르친다면 반박정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읽어야 할 책에 얼떨결에 편승해서 저자의 생각과 의도와 동떨어진 글을 쓰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방대한 지식인의 서사에 뛰어들어 작게나마 나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생각에 동조해 볼 수 있어서 통쾌하기도 했다.

작가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는 책이다.

이런 오만한 주장들을 만날 때면, 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으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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