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 대한민국 스토리DNA 27
김진명 지음 / 새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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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을 들락거렸던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역사의식이 부족하고 표출하는 것조차 억압당하던 시절에 이렇게 당당하고 멋진 이야기를 써냈다는 것에 이미 감명을 받았다. 언제나 새움 출판사는 기대 이상의 책으로 감동을 준다. 김진명 작가의 30년 전 첫 장편소설을 양장본 두 권으로 재출간했다. 읽는 재미외 깨닫는 기쁨을 함께 한다는 다짐으로 대한민국 스토리DNA라는 구성으로 문학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아직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새움 서포터즈 덕분에 얻은 좋은 기회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마주하며 자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을 읽고 가슴이 요동친다. 현실인지 픽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정치적인 그의 필력은 우리 역사속에서 대립하고 은밀하게 거래하는 세계의 정보 전쟁에 가까운 듯 쉽지않은 갈등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여전히 한반도의 정세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상황은 지금이나 그때나 변한 것이 없는 듯하면서도 급박하게 변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없이 오히려 가상의 소설의 세계보다 더 예측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 책에서 굵직하게 던지고 있는 내용은 결국 평화로운 통일로 가기 위한 노력과 그 이후에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것이다. 또한 언제까지 미국의 등에 기대어 정치적인 세력을 보장받지 못하고 살것이며, 우리 민족만의 중요한 생각과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과 하나라는 사실을 잊고 불필요한 관계를 청산하고 우리만 잘 살고 싶은 이기적인 생각이 팽배해져 있는 세대이다. 오히려 통일이 되는 것을 꺼리고 세계 강국과의 충돌이나 외교적 불화를 두려워하는 안타까운 나라에 살고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작은 일에도 나라를 생각하며 내재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불태웠던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거릴 정도로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중요한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 가치를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하루 나의 삶에 지쳐 살아온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이란 상식적으로 즐기고 사는 거예요"
"인생이란, 상식적으로 지키고 살아야 할 것도 약간은 있는 법이지"
순범의 독백이 조명등 빛 사이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개인이든 국가든 힘을 가지려고 노력해야만 하고 이러한 노력만이 장기적인 안전의 기틀이 되는 것은 역사의 정한 이치이다. 지난 날의 역사 속에서도 같은 나라 혹은 민족이면서도 갈라져 있었던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다시금 결합하여 강성해지는 국가는 비록 갈라져 있을 때라 하더라도 당장 눈앞의 상호 위협과 안전보장에 급급하여 주변의 강대국과 제휴하여 같은 민족에게 대응하는 경우는 없었다.」

「순범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말할 수 없는 울분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천재가 우리 땅에서 외국의 앞잡이들 손에 목숨을 잃도록 수수방관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는 미약한 민족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 그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었던 것인가?」

정치적 음모 속에 희생당해야 했던 황망한 죽음이 얼마나 많았을지 참담한 자괴감이 느끼는 경우를 나도 역사책을 읽다가 대면한 적이 있다.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김훈 작가의 <흑산>을 시작으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로 이어지는 역사책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정치적 논란과 무능한 조정은 왕의 목숨도, 충신과 천재들의 목숨도 지켜주지 못했다. 정조가 더 오래 살아서 정약용의 형제들과 손을 잡고 계획대로 정치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정치적 당파싸움으로 제대로 정치적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사라진 정조대왕의 역사를 마주할 때마다 이루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회의가 일어나곤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천재 물리학자 이용후 박사와 대통령의 긴밀한 핵발명에 관련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대한 음모와 배후에 포진한 검은 세력 뒤엔 강대국과 손을 잡은 국가 정보기관이 있었고 그 하수인의 죽음을 캐던 권순범 형사 주변의 이야기들이 지루할 틈없이 긴박함을 더해간다.

힘이 없는 민족이기에 속에서 솟아나는 울분을 참기만 했고, 평화를 원하는 민족이지만 분명히 죄를 지은 상대에게는 죗값을 당당히 치르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죄지은 자들은 용서를 구하고 그에 합당한 일을 하도록 했어야 마땅하다. 숨겨서 되는 일이 아니었고 같은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일이었다. 힘이 없이 당했던 것은 민족으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힘든 역사이다.

나의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쉽게 용서를 했더니 다른 곳에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다니는 일을 보았다. 쉽게 용서해주는 것이 착하고 평화로운 처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후회가 일어났다. 좀 더 강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러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서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조국이란 뭐고 민족이란 또 뭐에요? 그런 걸 들먹이는 사람들은 언제나 바보들이죠. 세상에 그런 것들은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은 한때의 기분이고 환상이에요. 아버지는 있지도 않은 조국과 있지도 않은 민족의 환영에 사로잡혀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신 거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단위는 국가 아닙니까?"
"국가가 국가다워야죠. 아무리 몽매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뿌리치고 들어간 사람을 죽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예요?" 」

책장을 덮고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자가 단숨에 될 수는 없었지만 3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치밀한 구성과 현실적인 외교 문제들이 속시원하게 풀리고 있었다.
역사는 재해석되기도 하고 후대에 의해 평가받게 된다. 이 소설은 오랜 시간 속에 가리워진 역사를 통째로 갖다놓은 것처럼 지금의 현실과도 동떨어지지 않아 현실감이 넘쳤다. 소설처럼 그대로만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강대국이 떨만큼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길에 북한이 좀 더 적극적인 수용을 하고 우리가 그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을 했을까?


지난 역사 속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앞으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위해 육중한 책임감과 선명한 윤곽을 잡아나갔으면 좋겠다.
과연 누가 이것을 이루어야하는 것일까?
모두 함께 가야할 길을 정치하는 특정 사람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주고 있었는지도 생각해본다.
역량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무너뜨리는 역사를 반복하지 말고 함께 가는 나라가 되어 아름다운 무궁화 꽃을 피우고 가꾸는 민족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놀라운 작품 속에 함께 숨을 죽이며 몰입해서 읽었던 며칠 동안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도 없었다. 멋진 무궁화꽃을 그려낸 처연하고 숙연해지는 후회없는 며칠이었다.
산책길에서 바라 본 무궁화 꽃이 다르게 보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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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 - 내 인생에 주어진 단 한 가지 의무
이지현 외 지음 / 내가그린기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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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행복에 관해 풀어놓은 책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소소한 이야기들과 잊었던 아픔과 추억들이 버무려지는 따끈하고 진실된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게 된다.

누구나 내가 가진 것보다는 남이 가진 것을 더 크게 바라볼 때가 있다. 그리고 내게 없는 것을 바라고 그것을 가지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나면 행복은 잠시 뿐이고 허무한 감정과 더불어 더 큰 욕망이 샘솟는다.
나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들이 사람사는 그대로의 모습이라 익숙했다.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아픈 사람은 건강을, 건강한 사람은 돈을, 결혼한 친구는 혼자만의 시간을, 미혼인 친구는 남편과의 시간을, 자식 때문에 속이 썩는 엄마에겐 무자식이 상팔자이지만, 불임부부에겐 아이가 있는 것이 행복이다. 실직자는 안정적 직장을, 직장인들은 직장을 떠나야 행복하단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그림의 떡같은 존재이다. 건강할 때는 챙기지 않고 있다가, 호되게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숨쉴 때 모르는 공기의 고마움처럼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게 있는 것들로 인해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로 한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은 끝이 없어서 하나를 가지면 만족을 하기 보다는 둘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그것을 갖는다고 해서 멈춰질 행복이 아닌 것이다. 끝없는 추구를 통해 행복으로 향해 가는 기차칸의 수만 늘어날 뿐이다.

아홉 명의 작가 모두가 다른 환경에서 각각의 고난을 이기고 치유하며 행복해진 진심들을 그러모은 책이다.
각자의 아픔을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토해내고 치유하며 행복으로 가는 발걸음을 향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삶이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나의 행복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없이 다른 사람의 행복에 함께 박수쳐주고 기뻐해 줄 수 없음을 잃고 나서 알게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진다.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에 온 걸까
불행하지 않으면 그저 다행이라고 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행복이 뭔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우선이라는 것
그저 내 마음이 편안하면 그것으로 다행인 시간이었다.
그 다음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힘든 일이 해결되고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 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세상에 온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을 얻으려고 애쓰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일.
행복을 얻으려고 멀리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위로받고 견딜 수 있었던 세상. 그걸 행복이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따스함이 그리워서
위로하기 위해 세상에 왔는지도..♥

결국은 모두가 행복이라는 말...
너무 포괄적인 말을 세미하게 나누고 싶었다.
따스한 사람의 온기와 위로
그리고 재미있고 즐거움을 찾아가는 일
어느새 내 옆에 행복이 앉아있겠지~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
끝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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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 - 탈모 심리 픽션 에세이
부운주 지음 / 동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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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돈 벌어서 가발해 줄께"
점점 약해지는 모발, 힘없이 빠지는 머리카락은 애기 솜털처럼 가늘어졌다. 앉아 있으면 휑해진 정수리가 더 잘보이니 딸의 눈에는 안타까운 모양이다.
"너는 젊을 때 잘 챙겨먹어!!^^"

어떤 일이 닥쳤을 때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다양하다. 회피와 무관심도 있지만 적극적이고 긍적적으로 가능성을 배제하는 사람도 있다.
제목을 읽으며 탈모라는 질병을 소재로 자전적 에세이를 쓰다니 적지않게 놀랐다. 나 역시 젊은 시절의 영양부족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탈모 전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어지다보니 더없이 초라해지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생각해서 어떤 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할 틈없이 살았다. 내 몸을 위해 양질의 프로틴을 챙겨먹고 발모제를 바르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못했기에 더 서글펐다. 실제로 풍성한 머리카락이 주는 자신감과 머리숱이 적은 사람의 심적 위축은 심리학적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우울증을 동반한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의 자전적 픽션 에세이지만 읽다보면 주인공 지현의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는 장면에서는 함께 마음이 아파 눈물을 글썽거리게 된다. 빡빡이, 대머리, 문어라고 웃어넘기는 분위기 때문에 더 꽁꽁 싸매야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

특이한 병을 앓게 된 작가는 한참 예민한 청소년기에 갑자기 시작된 원인 모를 탈모증상을 겪게 된다.
중3 여학생, 긴머리를 찰랑거리며 미모에 관심이 많을 때 50원 동전 만큼 비어지기 시작하던 머리카락은 100원 500원 동전의 크기만큼 순식간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개월이 되는 날에 머리카락이 모두 사라지는 끔찍한 일을 겪는다.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지고 정수리 탈모가 시작되는 것 만으로도 속이 상하고 외출할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데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난치병이라니,,,
병원 치료를 받으며 희망을 기대했지만 머리카락은 다시 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전신탈모증으로 번졌다.
결국은 가발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삶으로 선택이 아닌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받은 놀림과 충격으로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게 되고, 더운 여름에도 비니를 써야하는 사람들의 고충...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환경과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주변의 공감적 반응이 굉장히 중요하다. 탈모로 인한 불안과 대인기피증을 시작으로 마음의 고통을 떠안고 살아간다.

"머리카락이 빠진 그날부터였다. 탈모량에 비례해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참혹했다. 피부과 의사의 말대로 독하게 마음먹고 두피를 빡빡 문지른 결과는, 그러나 너무나도 잔인했다. 화장실에서 일어난 조용한 학살에 내 가슴은 쇠망치로 내려친 유리처럼 으깨져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예전처럼 머리를 감지 못하게 되었고, 두번 다시는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두피를 빡빡 문지를 때의 야릇하고 절묘한 감촉을 맛볼 수 없었다.
"응, 쟤 머리 봐라. 밥맛 떨어진다'
"푸하하,여자애가 대머리?대박인데"
"진짜 불쌍하다. 탈모가 저 정도면 나중에 결혼도 못 할 거야"
"우리 나이에 탈모라니 진짜 안 됐다. 내가 쟤라면 진심 자살한다"
"야 대머리의 매력이 뭔지 아냐?
헤어날 수 없는 매력. 헤어(hair), 머리카락.흐흐"
"너는 그 나이에 탈모냐? 그것도 여자애가. 참 기막힌 일이네"

사람의 불행을 보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단계는 여러가지가 있다. 위의 대화처럼 하이에나들처럼 덤벼들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심으로 조용히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
지현이도 치료받으러 다닌 병원에서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친구와 만나게 된다. 그 둘의 우정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청명이라는 친구는 늘 지현이를 위로한다. 먼저 탈모증을 앓은 선배처럼... 여섯 살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고 치료와 부작용의 반복으로 전신 탈모증이 일찌감치 오게 된 청명이는 처음 탈모증으로 힘든 지현이에게 언니처럼 살갑다. 그 속엔 어릴 적부터 상처와 싸운 고된 삶으로부터 배워 온 어쩔수 없이 받아들어야 하는 운명같은 고백같아 마음이 아팠다.

"많이 힘들었지?4개월만에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 정말 힘들겠구나. 돌이켜보면 나도 머리카락이 처음 빠질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
청명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메아리였다. 성량은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격이 다른 깊은 울림이 담겨 있었다. 밤하늘 은은한 달빛이 진득한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지듯 포근한 목소리는 나비처럼 나폴거리며 내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우리는 발자국을 따라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돌아오는 내내 청명과 나 사이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청명이라고 해서, 아픔을 먼저 겪었다고 해서 특벽한 말을 해줄수는 없다. 진정으로 끔찍한 충격은 원래 그런 법이다. 별다른 말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는 걸 나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하지만 따뜻한 침묵 속에서, 청명과 나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의학과 의사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어주게 될 사람의 속에 흐르는 눈물과 웃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 그 안에 감추인 슬픔과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하지 않은 어느 한 구석에 가발로 위장한 듯이 무작정 덮어놓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맞춰살기 위해
숨은 노력을 해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진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일이지만, 여성으로서 대머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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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네임 - 이름이 지워진 한 성폭력 생존자의 진술서 너머 이야기
샤넬 밀러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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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스탠퍼드 대학교 캠퍼스에서 밀러를 성폭행하다가 붙잡힌 브록 터너는 여러 면에서 완벽한 유죄였다. 목격자가 있었고, 터너는 도주했으며 현장에는 많은 증거가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완벽한 유죄의 피해자는 오히려 재판과정에서 마주한 상상을 초월하는 고립감과 수치심에 휩싸인다. 가해자는 유망한 수영선수라는 이유로 여론의 안타까움을 샀고 결국 6개월 선고에 감형을 받아 징역 3개월이 고작이다.

이렇게 묻힐 뻔한 이야기는 밀러가 2016년 재판에서 낭독한 가해자에게 쓴 편지 형식의 <에밀리 도의 피해자 의견 진술서>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흘동안 1100만명 이상이 읽었으며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의회에서는 낭독회가 열렸다. 마침내 이 진술서는 캘리포니아주의 법을 바꾸게 했고, 담당 판사의 파면을 이끌어냈다. 밀러에겐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을 용기를 얻었다는 편지가 쏟아졌다.

재판과정에서 어의없는, 사건과 추호의 관계도 없는 여성의 인권을 조롱하는 질문들이 오갔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가해자는 수영을 잘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는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오랜 시간 이름을 잃고 침묵하던 밀러는 진술서에 당당한 목소리로 속시원하게 퍼붓는다.

"나는 요리를 잘합니다. 그것도 기사에 넣으세요"

신원 보호를 위해 4년간 '에밀리 도'로 살았던 밀러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드러낸다.
이 책은 성폭력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문화를 조명하고 피해자가 좌절할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된 사범 시스템을 고발한다.

누군가는 싸울 때 맞닥뜨리는 어지러운 현실에 대해 필요한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다. 용감하고 강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밀러는 사건의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문학으로 전환했다는 점이 놀랍다.
성폭력의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경찰과 수사관, 검사와 판사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처음으로 당신이 혼자 남겨진 수난. 당신에게서 빠져나온 무언가. 내가 어디에 갔던 거지. 뭐가 사라졌지. 그것은 침묵 안에서 억눌러진 공포다. 위는 위이고 아래는 아래이던 세상과의 작별. 이 순간은 통증도 히스테리도 울부짖음도 아니다. 당신의 내부가 차가운 돌로 변해가는 시간이다. 알아차림과 짝을 이룬 완벽한 혼란이다. 천천히 성장하던 사치는 이제 끝이다.
잔인한 각성의 순간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돈만 있으면 감방 문이 활짝 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폭력이 발생했을 때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면 이 여자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폭력이 일어났을 때 남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면 사람들이 그 남자를 동정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내 끊긴 기억이 그에게 기회가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피해자가 된다는 건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몰랐다."

"마지막으로 모든 곳에 있는 소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끼는 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의심하거나 묵살할 때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매일 싸웠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싸움을 멈추지 마세요.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 작가 앤 라모트의 말처럼 "등대는 구해줄 배를 찾으려고 섬 전체를 달리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서서 빛날 뿐입니다"
내가 모든 배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오늘의 발언을 통해 당신의 약간의 빛을, 당신을 침묵시킬 수 없다는 작은 깨달음을, 정의가 이루어졌다는 작은 만족을, 우리가 어딘가에 도달하고 있다는 작은 확신을, 당신은 중요하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함부로 만져서는 안되는 존재이고, 당신은 아름답고 매일 매순간, 이론의 여지없이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아야하고, 당신은 강력하고, 누구도 당신으로부터 그것을 빼았을 수 없다는 크나큰 앎을 흡수했기를 바랍니다."

멋진 연설문과 견줄 수 있는 통쾌하고 뚜렷한, 자신의 이름에 잠식되지 않고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진술서였다. 얼마나 모진 시간을 견디다가 강해질 수 밖에 없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름을 잃고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숨어지내면서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자신을 난도질하는 기사를 보며 소리죽여 얼마나 울었을지...

가까이에서 당한 일은 아니지만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본 간접경험을 떠올려 보아도 한편으로 기울어져 수사하고 단정짓는 일이 어이없이 빈번하다. 이렇게 싸우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함께 빛을 모아 강해지고 스스로 지킬 힘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폭력과 공포, 성범죄를 태하는 태도에 대해, 분노하고 왜곡된 것들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말하고 들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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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아서 - 가장자리에서의 고백
정용철 지음 / 좋은생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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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폭우처럼 쏟아져내리는 소리에 새벽부터 잠이 깼다. 장마.. 원없이 빗소리를 듣는 기간이라 빗소리는 내게 음악같다. 빗소리에 기대어 펑펑 울 수 있어 좋던 시절. 비인지 눈물인지 구분짓지 않아도 함께 흐르는 빗물과 닮은 눈물. 시원한 빗소리에 속이 뻥 뚫리는 통쾌함들이 버무려진 회한의 빗소리.
지금은 빗물에 떠밀려간 슬픔을 잠시 멀리에서 감상한다.
난 슬픔이 많은 사람이었나보다. 제목대로라면 사랑이 많아서??^^

좋은 글을 자주 대하는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번쯤 읽어보았을 <좋은 생각>의 편집과 발행을 하신 정용철 님의 글이 소복히 담긴 책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생각을 마음에 담았다가 꺼내면 글이 된다. 그렇기에 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의 내어 놓기 위해 생각을 고치고 다듬어도 막상 꺼내기는 쉽지 않다. 몇 번을 꺼냈다가 담았다 반복하고 내 생각과 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게 된다. 생각과 마음과 글에 드러나지 않고 겉돌게 되면 곧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제목부터 아스라히 전해지는 애틋한 감정이 일었다.
사랑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다는....

깊은 밤에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자신의 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러워진다. 밤에는 모든 것이 조용하고 사위가 고요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주로 책을 밤에 보게 되는 이유, 특히 여름 밤은 일찍 잠들기 아깝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원하고 조용해서 내 시간으로 찜하기 좋다. 밤에 쓴 편지는 아침에 읽고 찢게 된다는 예전의 말을 떠올린다. 그만큼 밤은 모든 감성을 일깨우는 시간이다. 낮에 듣는 음악소리보다 작은 소리를 틀어도 더 또렷히 들리는 밤의 음악을 느끼며 주변에 따라 나의 소리를 줄이고 낮추는 겸손을 배운다.

"밤의 음악은 소리를 줄이지 않아도 스스로 낮아지고 부드러워진다. 이것이 밤에 대한 음악의 예의인 것 같다.--밤의 음악"

나는 주로 시를 읽거나 글을 읽으면서 나의 경험을 끌어올린다. 언젠가 류시화님의 시<소금인형>을 읽으며 아름다운 소멸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우리의 죽음은 사라짐과 잊혀짐 속의 소멸을 말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화초를 바라보며 소멸과 생명이 공존함. 미미하지만 존재에 대한 것을 생각한다. 언젠가 소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기쁨도 모두 함께 소멸하게 될 것이다. 사는 동안 누리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마음으로 느낀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이나 허무를 걱정하기 보다 삶에 충실해야 한다. 삶이 선명해야 한다. 있음의 가치에 충실할수록 두려움과 불안은 힘을 잃는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소멸의 이편에 있는 동안 우리, 있음의 기쁨을 최대한 누리자.
--있음"

기다림 속에 배어있는 그리움, 그 둘이 함께 모여 사랑이 아닐까..사랑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했다. 작가님도 기대는 욕심이고 기다림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나와 같은 생각의 결을 가진 분의 글을 읽자니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기대를 더 많이 하며 살까?
기다림을 더 많이 하며 살까?
기대보다는 믿고 기다려주는 일.
알면서 실천이 쉽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소중한 것일수록 함부로 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신은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태어날 때 다 가르쳐 주고 잠시 비밀로 해 둔다고 한다. 그 비밀의 문이 열리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면 된다.--기다림"

블로그라는 공간에 글을 쓰다보니 자꾸 쓸 말을 찾게 되고 듣는 것을 잊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적게 말하고 좀더 귀기울여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말과 글 속에 숨어있는 침묵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마침내 선명해질 때 그것이 나의 생각이 된다. 홀로 떠들어대는 언어라는 것이 나의 것인지 의심이 들 때 잠시 멈추고 침묵하는 시간이 자주 있기를 바란다. 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언어들이 빛나는 시간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좋은 생각>이라는 책을 읽을 때처럼 조용히 나에게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애쓰며 살아온 나 자신에게 슬며시 밀어주고 싶은 사랑스런 말들이 위로해주는 책이다.
사랑많은 사람이 슬픔이 많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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