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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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를 벗겨낸 블랙의 양장본 표지가
더 깔끔하고 심플해 보인다.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 "
-소설가 한강 추천-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굉장히 끌렸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슬픔을 그려낸 아름다운 서사로 가득한 소설일거라고 상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감정이 충만하지만, 결코 감상적이지 않은 소설 속에서 낯선 슬픔을 만난다. 슬픔을 다루지만 아이들과 아빠 각자가 그것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엄마를 떠나보내며 온전히 사랑만이 남는다. 초반에 등장하는 까마귀가 이해되지 않아 작품 설명을 읽고 다시 펼쳤다.

여섯 살 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 이후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써 나갔다고 한다. 2015년 발표한 첫 소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으로 딜런 토머스 상과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2019년 출간된 두번째 소설 <레니>는 부커상과 웨인라이트 상 후보에 올랐으며 고든 번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5년 발표된 이 소설을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책인 것 같다.
아내이며 아이들의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들부터 천천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작별 의식을 치루는 과정을 그렸다. 16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지만 페이지마다 시적인 표현이 가득하고 까마귀, 아빠, 아이들이 오가는 이야기가 혼란스럽고 낯선 구성이었다. 풍부한 공백으로 스미는 슬픔들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다.

제목에 대하여
작가 맥스포터는 에밀리 디킨슨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유명한 시의 첫 구절 "희망은 날개 달린 것"에서 따온 문장이다.
제목이 멋스러운 이유는 시의 첫 구절을 인용한 거였다. 역시!!^^

그 다음 궁금증은 "까마귀"의 라는 존재의 등장이다. 마지막까지 읽고 가장 첫 장의 인용문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까마귀가 내포하고 감추고 있는 것들..

작가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여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에 남은 자국의 깊이 또한 사랑일수 밖에 없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우린 원격조종 자동차와 스탬프 세트를 가지고
노는 꼬맹이들이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알았다.
우린 "엄마 어디 있어요?'하고 물을 때
아빠가 솔직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아빠가 우리를 우리 방으로 데려가서는 침대에 앉아 자기 양옆으로 앉아 보라고 말하기 전부터 뭔가가 변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이제
아빠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용감한 아이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짐작했고 이해했다.

우린 거울을 치약으로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고 엄마한테 엄청 혼이 나곤 했다.
우린 몇 년동안이나 거울에 치약을 묻혔고
침을 뱉었고 게다가 양치질은 너무 자주 했고, 그래서 우리집 거울은 새하얀 반점들로 얼룩덜룩 엉망이었고, 우린 둘 다 그것으로부터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을 느꼈다.
슬쩍 빼놓고 말하지 않은 다른 일들도 많다. 우린 의자에 오줌을 쌌다. 우린 서랍을 절대 닫지 않았다. 우린 엄마를 그리워하려고, 계속 엄마의 손길을 원하기 위해 이런 짓들을 했다.

아빠에 대해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진지파였다. 조용하고 의뭉스러웠으며, 쿨한 것과는 애처로울 만큼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가능한 최고로 심하게 아빠를 놀려줘야 했다. 엄마도 그러길 원했을 거라고, 우리는 확신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최선의 방식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의 비통한 나날들이 까마귀의 깃털이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표현되는 시적인 감성이 충만한 소설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를 생각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가며 엄마를 기억한다. 그리고 슬픔의 근원으로 부터 서서히 이별하려 애쓴다.

처음 읽을 때 방해스럽던 까마귀의 존재는 마지막에 사라지고 나서야 그 동안의 어두운 분위기를 담당하는 하나의 매개로 사용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을 알았다. 추락하는 삶을 붙잡기 위해 사랑을 남기는 따스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슬픔을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문장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시처럼 노래처럼 잦아드는 작은 슬픔 가운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다. 사랑한다는 말로서 온전해 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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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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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고, 생각까지 올바른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작년 한 해 작가들과 만나는 강의에서도 느끼고, 블로그를 하면서도 종종 부딪치는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쌓아 올린 방송작가 박애희의 필력은 소소한 에세이에서도 힘을 발한다. 전문적이거나 문학 작가가 아니어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정혜윤 피디의 책도 그랬고, 얼마 전 읽은 김진애 건축가의 글이 그랬던 것처럼..
박애희작가는 방송작가였으니 얼마나 글맛이 좋을까.^^

표지는 봄을 만끽하는 벚꽃의 향연이었다. 중간에 엽서같은 속지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벚꽃을 연상시키는 표지가
봄처럼 따스하고 화사하게 마음을 밝게 해 준다.
책을 읽다보면 갈피에 엽서 몇 장이 감춰있다.

"파도가 인생을 삼키는 시간을 통과하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후회와 자책의 시간을 애도하고 다정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법을 대화하듯 소곤거린다. 내가 함께 보았던 드라마나 방송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방송작가로서 마주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흥미로웠다. 어떤 부분에서는 새로움이 깃들어 읽다가 공감도 하고, 아는 아야기에는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나 눈물도 맺혔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소설도 좋고, 사람 냄새나는 일상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에세이도 즐겨 읽는 편이다.
작가의 이름을 잘 모르지만 방송에서 보이는 연예인의 뒤에서 이름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물 속에서 숨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냐. 물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간단다"
<엄마는 해녀입니다> 고희영

해녀들의 숨의 길이는 날 때부터 달라지고 수확하는 해산물이 달라지고 수입이 달라지기에, 바다에 들어가면 '조금만 더' 숨을 참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욕심이 난다. 야속하게도 숨의 한계는 절대 노력하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자신의 한계를 잊고 숨을 참는 순간, 물숨을 먹게 되고 바다는 목숨을 앗아간다. 해녀들은 그것을 보고 자란다. 이 때문에 나이든 해녀들은 후배들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
해녀도 아닌 나는, 그말이 어쩐지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어쩌면 어른이란, 강철처럼 단단한 존재가 아니라 삶의 한계와 나약함을 껴안은 채 그 안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다는 일이 그런거라면 조금 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징징거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다.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유쾌하지 않고 씁쓸할 때, 나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질 때 하소연을 하고 싶어지는 거다.

"다 큰 당신이 징징거리며 엄마를 찾느다면 000은 당신의 옷장에서 꺼낸 스키니진과 스니커즈를 신고
"그만 징징거리고 맛있는거나 먹으러 가자"라고 한마디 툭 내뱉을지 모른다. 타박하지도 야단치지도 않고 말이다.-----
'어른아닌 어른,71살의 청춘 윤여정을 만나다' 김도훈 <허프포스트코리아>편집장, <<한겨레>>

나도 누군가 나이든 내게 징징거린다면 다 들어 주고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는 말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 살고싶다.
박애희 작가의 글이 내 마음같아 내 글인지 작가의 말인지 모르게 뒤섞이는 재미에 빠져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이 즐겁다.
조금은 어긋나야 묘한 긴장감에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하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언급했던 영화와 방송, 그리고 음악과 책들이 궁금해진다. 방송과 인터뷰를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공감이 되는 책이었다.
예를 들면 배우 이정은이나 슈가맨의 양준일의 이야기, 그리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눈이 부시게>의 아야기를 들추니 다시 감정이입이 되어 버린다. 누구나 사랑을 받으며 당당하게 살고 싶은 삶이기에..
<비긴 어게인> <윤식당>,<물 속에서>진은영의 시, 영화<위아영> 장한나 인터뷰 등..
장한나가 스승으로 받은 큰 가르침이야말로 인생의 올바른 지혜를 터득하게 한 것같아 부럽고 위대해보이고 존경스러웠다.

방송 작가로서 경험했던 일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살아오면서 줄줄이 사탕처럼 매달린 이야기들이 소복소복 담아져 있다.
표지부터 제목 그리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써 내린 에세이 덕분에 안온한 봄으로 가득찬 기분이다.

"누군가를 지켜내는 순간,
인간은 가장 강해진다.
그 일이 너무 아프고 쓸쓸한 일이어도,
설령 자신의 생을 내주는 일일지라도,
그 순간 우리 삶은 비로소 가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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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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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번역가의 글은 정말 재밌다
정세랑(소설가)

일분 문학 팬들이 믿고 읽는 번역가이자 소소하고 중독성있는 글을 쓰는 작가 권남희의 에세이.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처럼 은근히 재미난 문체의 글들이 진솔하게 드러나며 쿨내 진동하는 사람냄새가 가식없이 읽혀서 좋았다.

권남희 작가는 30여 년간 300권 가까이 책을 번역해 낸 번역가라고 한다.
세상에!!!
내가 읽은 일본 소설 대부분일 것 같은데 번역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사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을 번역하고 매년 노벨 문학상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거론될 때마다 번역가로서 인터뷰도 쇄도한다고 한다. 번역가란 때론 고되고 또 다른 창조의 문학 분야를 담당하는 직업이지만 행복감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오래하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있는 권남희 작가의 일상이 돋보인다.

<이방인>을 통해 역자들이 번역으로 인해 얼마나 세심하게 작업하는지 역자노트에서 오래 보았기에 더욱 친근하게 읽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읽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미우라 시온 작가<사랑없는 세계>소설도 권남희 작가의 번역 소설이었으니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책을 고를 때 출판사를 보기도 하고 제목에 끌리거나 표지에 끌려 고르기도 한다. 때론 작가 이름만으로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 되듯이 이제는 번역가를 골라 읽게 될 것 같다.

"진상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이 직업의 큰 장점이다. 편집자는 말도 글도 이쁘게 하고 정중하다. 내가 나름 경력이 오래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생초보시절을 돌이켜 봐도 초짜여서 무시당하거나 서러움을 받은 기억은 없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직업군이 편집자다. 처음 주고 받는 메일에도 정이 뚝뚝, 처음 만났는데도 반가워서 수다가 술술. "

편집자와 번역가의 만남을 상상해 본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만남이라니 너무 설렌다.
책만 보지 말고 드라마를 보라며 아는 동생에게 추천받아서 다시 보기로 열심히 본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과 편집자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그런 드라마를 많이 보고 싶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수고를 알고 책을 귀히 여기고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지는 따뜻하고 다정한 세상을 꿈꿔본다.

"서로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추억 속의 사람들은 잠시 소환했다가 제자리에 돌려 놓는게 좋다. 긴 공백은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한다. 안부는 바람을 통해 듣도록 하자. 그 시절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50대가 된 지금도 하늘 아래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잘 지내요."

누군가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오랜 시간 공백이 있다가 만난 사람이 의외로 서먹할 때의 낯선 침묵이 나도 별루 좋지 않다. 마음을 오래 나눈 사람이라면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편안한 친구처럼 좋지만, 굳이 끄집어내어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작가의 말인듯하다. 그래도 나도 잘 지내요^^
같은 하늘아래 지내고 있을 나의 옛 동무들에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흔히 관계가 파괴된 후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하고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관계가 나빠진 것이지 사람이 나빠진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자신이 없다.
학교 다닐 때는 화장실 같이 갈 친구,
도시락 같이 먹을 친구,
그런 친구 관계가 절실히 필요하겠지만,
점점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사는데 불편이 없다.
그래서 귀차니스트인 나는 쉬이 관계를 끊는다.
이러다 세상과도 관계를 끊을 기세다."

예전엔 마당발처럼 사람관계가 풍성한, 발이 넓은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거저 얻어지는 관계는 없으니 그들이 얼마나 애쓰고 공을 들이며 사는 것인지 살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피곤한 관계도 있을텐데 직업상, 사업상 맺어지고 이어져야 하는 관계들...

진정한 친구를 얻기 위한 노력도 소홀하면 안되지만 변화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모되는 감정과 노력을 줄여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귀차니스트라고 했지만 어쩌면 편의하게 자리잡는 현명한 선택적 관계를 유지하는 팁이 아닐까.

"냄새에 민감하고 비위가 약한 나는 점점 심해지는 아버지 방의 악취 때문에 친정에 가도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이기적이고, 고집도 세고, 다혈질이고, 구두쇠여서 평생 가족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 어느 모로 보나 최악의 남편이고 최악의 아버지였던 사람. 그렇게누워서 보내는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날도 친정을 갔었다는 작가의 고백은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평생 딸바보 사랑하는 나의 아빠를 아직도 난 떠나보낼 준비를 하지 못한다. 주위에서 아빠연세의 어른들이 이미 하늘나라에 가시기도 하고, 내 친구들도 친정 아빠가 계시는 나를 부러워한다. 아직은 친정이 있어 그나마 갈 곳이 있다. 그 곳이 사라진다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바람이 일어난다. 아직도 받고있는 아빠의 사랑을 내 딸은 일찍부터 받지 못해서 늘 미안한 자리를 내 아빠가 채워주고 계시기 때문일까.

작가의 아빠처럼 힘들게 한 아빠도 아니고 가장으로서 든든한 버팀목이고 큰 산이셨던 아빠를 나는 아직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특유의 투명한 언어들로 그려놓았다. 조금은 멀게 느껴지던 번역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리고 싱글맘으로서 딸과 지내는 모습들이 나와 다르지 않아 더욱 소중하게 귀 기울여 읽게 되었다. 작가가 아닌 번역가의 고된 작업으로 우리가 세계의 문학들을 손쉽게 접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앞으로는 작가이름 소개와 더불어 변역가의 이름도 올려야겠다.
작가로서, 번역가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의 삶 속에 배어있는 시시콜콜하지만 공감이 되는 일상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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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 성장하고 기뻐하고 상상하라 김진애의 도시 3부작 2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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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김진애라는 건축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남성들 위주의 프로그램에 당당하게 출연한 첫 여성 출연자이기에 단연 눈길이 갔었다.
도시 건축가라고만 생각했기에 작가로서 집필한 책에는 그다지 기대가 크지 않았다. 도시에 관련한 책을 3부작으로 기획하고 책을 출간하는데 첫번째 책은 이벤트 참여도 안했을 정도였다. 두번째 책이 나에게 오게 되어 읽으면서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필력이 범상치 않은 분이셨다.

삶의 테마는 사람이고, 그의 지적 뿌리는 도시와 건축이라고 한다. 건축으로 시작해 도시로 넓혀 공부하고, 현장 실무를 넘어 다양한 저작 활동과 정치 행위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김진애 작가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활력적 사람'을 살아가려 애쓴다. 그래서 김진애 작가는 항상 사람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쓴다고 한다. 일 년에 한 권 꼴로 책을 쓴다고 하는데 처음 접하게 된 책이다.

'도시의 이야기가 그렇고 그럴테지.'하고 지레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도시 속에 들어간 모든 것을 통찰하며 도시를 해부하고 도시의 풍광을 충분히 즐기고 누리는 모든 방법들을 적어 놓았다.

모든 도시들을 꿰뚫고 있는 해박함이 멋있었고 여행을 다니며 보고 느낀 도시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 주는 역사의 흐름과 도시 건축가로서의 전문성이 겸비되어 있어 유익했다.
이 책은 1주일정도 오래 갖고 다니며 읽은 책이다. 단순히 스토리를 읽듯이 넘길 수도 없고 도시의 설명이 사진과 더불어 김진애 작가의 철학이 담긴 메세지들이 울림이 컸다.

"도시를 읽으면 인간의 본성이 보인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도시>라는 주제에만 포커스가 집중된 것이 아니라서, 읽기 어렵게 만드는 전문적인 표현보다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세심함도 보인다. 오히려 도시를 설명하는 어떤 딱딱한 전문서적보다 더욱 전문적이며 어떤 여행 서적들보다 세세한 설명은 도시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삶의 냄새를 포착해 주어 더욱 세련된 안목으로 안내하는 책자이기도하다.

도시 전문가로서 김진애는 종로통 거리를 설명하며 전차구경을 하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변두리에서 살다가 도시를 보고 놀라던 시절이지만, 나는 작가와 반대의 경험을 했다. 어릴 때 그나마 도시였던 인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2학년 그 당시엔 시골이나 다름없던 수원으로 오게 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공기가 어찌나 맑고 좋던지 이사하던 날 활짝 열어제낀 베란다 창으로 불어오는 신선하고 시원한 그 바람과 공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하수를 먹던 수원에서 살다가 방학에 인천 고모댁을 갔는데 물을 마시다가 뱉어 버렸다. 비위가 약했던 내가 지하수를 먹다가 수도물의 소독약 냄새를 참지 못했던 것이다.

고모가 웃으시며 하신 말씀도 생각난다.
"촌년이 다 돼서 왔네."..ㅋㅋ

어찌됐건 작가의 첫 번째 도시는 종로통이었고 나의 첫번째 시골은 수원인 셈이다. 그러다가 63빌딩이 처음 세워지던 해 중학교 2학년 즈음, 아빠께서 데리고 간 서울의 63빌딩이야말로 내가 처음 경험한 도시의 기억이다.

"인생에서 첫 경험이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앞에도 무수한 첫 경험이 놓여 있다. 비단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감수성이 살아 있는 한, 첫 경험은 언제 어디서 다시 운명처럼 찾아올 지 모른다. 새로운 첫 경험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의 감수성에 불을 켜자."

"이게 핵심이다. 길을 잃고 길을 찾는 과정은 당신의 무의식 속에 깊이 아로 새겨진다. 길을 찾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정신과 마음 전체가 작동하는 것이다. 길을 찾으려 애쓰는 몰입 단계에서 우리의 모든 감각이 발동하고, 머리가 풀가동되며, 사이에 벌어지는 작은 사건마저 모두 중요한 단서가 된다. 길을 잃어보지 않으면 얻기 힘든 완벽한 몰입의 체험이다. 길을 잃고 길을 찾는 그 집중 체험 속에서 우리는 남모를 지혜를 쌓는다."

"길을 잃어야 찾을 수 있는 보물들, 어떤 것들일까? 당신의 기억을 곰곰이 들추어보라. 길을 잃으면 진귀한 보물을 찾게 된다.
길을 잃기 위해서 길을 잃는게 아니라, 새로운길을 찾기 위해서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인생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사업이 궁리한 대로 순항하기만 한다면, 일이 척척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결국 진짜 보물은 찾지 못하고 말지 않을까?
당신의 방황을 축복하라. 그 축복의 순간을 위해서 때로 방황하라."

"런던과 파리는 그렇게 다르다. 런던은 속으로 압도하고, 파리는 겉으로 압도한다. 런던에는 기념비적 공간이 드문 대신에 공원이 많다. 공원 문화를 미국과 전 세계에 수출한 나라답다.
파리는 뻐긴다. 건물도 뻐기고 공원이나 광장도 뻐기고 하물며 새로 지어지는 건물 디지인도 어딘가 뻐기지 않으면 못 배기는 듯 싶다. 좋게 말하면 웅장하고 디자인이 전위적이라 할 수 있고 개중에는 정말 탁월한 디자인도 적지 않다. "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너진 일화를 통한 서울과 평양의 두 도시를 비교한 설명들도 놀라웠다. 보통 나라를 가로막는 일은 있어도 도시를 가로막아 장벽 하나로 분단된 나라를 중심으로 발달된 독일의 도시 이야기..

"도시를 읽으면 인간의 본성이 보인다"는 말로 압도하는 설명들에 매료된다. 해외의 다른 도시와 우리 도시를 나란히 두고보면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가 뚜렷이 보인다. 인간이 발명한 가장 복잡한 발명품인 도시를 통해 거꾸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탐구해 나가며 도시는 "오픈 북"이라고 설명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진과 도시들과 철학적 소양이 넘쳐서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오래 머물게 된다.
도시의 화려한 야경과 주변 조경이 아름다운 도시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걷고 싶은 도시가 가장 좋은 도시라는 작가의 말이 공감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주변도 제대로 걸어보지 못해서 아는 게 없지만 한평생 한 도시에서 사는 것도 재미없는 것 같다.

이 곳 저 곳 다양한 여러 도시과 시골에 살아보고 싶다.
제주도 "올레길"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다며 제주의 도시와 관광길을 설명하는 부분도 너무 흥미롭다.

"제주 올레는 걷기의 두 가지 기본 조건을 만족시켜서 좋다. 첫째, 홀로 걷기가 가능하다. 물론 여럿이 그룹 걷기를 해도 좋지만 혼자 걸어도 충분히 안전하고 충분히 뜻깊은 길이 많다. 여럿이 걷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홀로 묵묵히 온 사방의 바람에, 향기에, 땅의 기운에, 사람 내음에 자신을 맡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여러 종류의 다양한 길 체험이 가능하다. 바닷길, 오름길, 산길, 개울길, 논두렁길, 밭머릿길, 돌담길, 마을길, 도시길이 섞인다. 하루를 걸으며 이렇게 다양한 길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바닷길을 걸으면 속이 확 풀리고, 오름을 오르면 기대고 싶고, 산길을 걸으면 푸근하고, 개울길을 걸으면 찰랑찰랑 마음이 차오르고,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으면 생명의 힘을 느끼고, 돌담길을 걸으면 다정하고, 마을길을 걸으면 사람의 손길과 정을 느끼고, 도시길을 걸으면 사람이 모여 사는 맛을 느낀다."

"살고싶은 도시를 꿈꾼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희망을 아직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도망가고 싶지만은 않은 것이다. 아직도 살고 싶은 도시를 열심히 꿈꾸어 보라. 왜 그 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가 잘 들여다보자. 그리고 지금 살고있는 도시를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보자. 이러한 꿈이 있는 한, 우리 도시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동서고금의 인류 문명사를 통해 모든 인간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미래의 인간에게 장밋빛 미래의 삶이나 잿빛 미래의 삶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과 악으로 확연히 구분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의 삶이 맹목적 탐욕 때문에 자칫 악순환으로 치닫지 않도록 우리의 지혜를 가동해야 한다. 인간의 지식은 놀랍도록 발달해왔고 더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한 지식이 지혜롭게 쓰이느냐 아니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의 현재가 우리의 과거에 맞닿아 있듯이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현재와 맞닿아 있다. 인류의 미래에 축복이 있기를, 인류가 스스로 우울한 미래를 향해 치닫지 않기를, 도시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지 않기를, 우리의 도시가 인류를 구원하기를 기원한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읽는 듯한 느낌인데 김훈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우리 나라의 숨은 정취를 담은 에세이라면, 김진애 작가의 글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속깊은 이야기들이 가득한 인문학 에세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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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워낙 유명하고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첫 문장부터 이정서 역자는 고민을 했다.

우리 정서에 엄마가 죽었다는 표현이 시크한 뫼르소라는 인물의 특징을 나타내기보다는 원래 의미를 살려 주는게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오늘 , 엄마가 돌아가셨다."라는 새로운 번역을 서슴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정된 문장을 바꾸는 것은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오래된 이 문장을 뒤집었다.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독자들이 무심하게 읽고 넘기는 문장과 단어 해석을 위해 번역자들의 고민하는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단어 사이에 찍는 문장 부호 하나까지 세심하고 완벽하게 번역하기 위해 애썼다.

이 책은 기존의 번역을 다시 새롭게 한 새움 출판사의 2020년 개정판이다.
다른 출판사의 번역과 비교해서 읽으려고 상호대차를 신청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당분간 도서관 대출이 어렵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방인>을 몇 년전에 처음 읽고는 여러 가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카뮈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병들기 전의 그놈을 모를 거요. 그놈은 더 멋진 털을 가지고 있었다오."
개가 피부질환을 앓았기에, 매일 밤낮으로, 살라마노는 피부연고를 발라 주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그것의 실제 병은, 늙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늙어 간다는 것은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치유가 불가능한 병, 늙어 간다는 것에 대한 카뮈의 생각이 드러난 문장이다. 노화란 어느 명의도 구원할 수 없는 치유가 불가능한 일.

한 발의 총알 외에 네 번의 총성을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짧은 노크'라고 은유한 부분도 뫼르소의 성격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소설가와 작가로 살면서 이런 문장 하나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몸둥이에 네 발을 더 쏘아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은 것이었다.

법정에서 자신의 편이 없는 엇갈린 진술, 그리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변호인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싶지만 포기한다.

정당방위로서의 첫발,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두고 발사되는 네 발의 총알. 그 네 발을 계속해서 쏘아대는 뫼르소를 이해시키기 위해 카뮈는 저 앞,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는 순간부터 지금가지 뫼르소의 심경을 치밀하게 그려온 것이다. 정당한 이유로서의 한 발, 위장된 도덕, 종교, 권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

정당방위였다고 법정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뫼르소 역시 나서서 주장하지 못한다.
자신의 변호를 포기하는 뫼르소를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내게 얼마간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크게 유용한 게 아니었고 나는 안일함으로 포기해 버렸다.

나는 하루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사는 것은 길었지만,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어가는 것으로 그렇게 팽창하는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이름을 잃는다. 어제 또는 오늘이라는 단어는 내게 의미가 지켜진 유일한 것이었다.

예전의 고전 책들을 읽으면 참 어렵다거나 정서가 안맞는다고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다. 번역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번역한 이정서님도 번역의 권위는 정확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프랑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해석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원문을 살리면서 직역이 아니라 읽기 편한 문장으로 살려내야 한다. 공들여 번역한 노력들로 책의 뒷부분 절반은 역자노트에 설명을 더했다.

이 부분때문에 비교를 해가며 읽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아쉽지만 역자 노트에 많은 문장들이 따로 비교가 되어있다. 어떤 번역이 옳은지는 모르지만 번역자들의 수고로움과 세심함에 존경심이 들었다.

문장 하나를 번역하는데도 다른 입장을 보이는 부분이 우리는 별 생각없이 읽어가는데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행위와 어투 등을 통해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번역이란 그야말로 원뜻을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이다.
많은 번역가들이 원뜻을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들이 돋보이는 역자노트까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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