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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ㅣ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워낙 유명하고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첫 문장부터 이정서 역자는 고민을 했다.
우리 정서에 엄마가 죽었다는 표현이 시크한 뫼르소라는 인물의 특징을 나타내기보다는 원래 의미를 살려 주는게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오늘 , 엄마가 돌아가셨다."라는 새로운 번역을 서슴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정된 문장을 바꾸는 것은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오래된 이 문장을 뒤집었다.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독자들이 무심하게 읽고 넘기는 문장과 단어 해석을 위해 번역자들의 고민하는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단어 사이에 찍는 문장 부호 하나까지 세심하고 완벽하게 번역하기 위해 애썼다.
이 책은 기존의 번역을 다시 새롭게 한 새움 출판사의 2020년 개정판이다.
다른 출판사의 번역과 비교해서 읽으려고 상호대차를 신청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당분간 도서관 대출이 어렵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방인>을 몇 년전에 처음 읽고는 여러 가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카뮈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병들기 전의 그놈을 모를 거요. 그놈은 더 멋진 털을 가지고 있었다오."
개가 피부질환을 앓았기에, 매일 밤낮으로, 살라마노는 피부연고를 발라 주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그것의 실제 병은, 늙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늙어 간다는 것은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치유가 불가능한 병, 늙어 간다는 것에 대한 카뮈의 생각이 드러난 문장이다. 노화란 어느 명의도 구원할 수 없는 치유가 불가능한 일.
한 발의 총알 외에 네 번의 총성을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짧은 노크'라고 은유한 부분도 뫼르소의 성격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소설가와 작가로 살면서 이런 문장 하나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몸둥이에 네 발을 더 쏘아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은 것이었다.
법정에서 자신의 편이 없는 엇갈린 진술, 그리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변호인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싶지만 포기한다.
정당방위로서의 첫발,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두고 발사되는 네 발의 총알. 그 네 발을 계속해서 쏘아대는 뫼르소를 이해시키기 위해 카뮈는 저 앞,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는 순간부터 지금가지 뫼르소의 심경을 치밀하게 그려온 것이다. 정당한 이유로서의 한 발, 위장된 도덕, 종교, 권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
정당방위였다고 법정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뫼르소 역시 나서서 주장하지 못한다.
자신의 변호를 포기하는 뫼르소를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내게 얼마간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크게 유용한 게 아니었고 나는 안일함으로 포기해 버렸다.
나는 하루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사는 것은 길었지만,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어가는 것으로 그렇게 팽창하는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이름을 잃는다. 어제 또는 오늘이라는 단어는 내게 의미가 지켜진 유일한 것이었다.
예전의 고전 책들을 읽으면 참 어렵다거나 정서가 안맞는다고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다. 번역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번역한 이정서님도 번역의 권위는 정확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프랑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해석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원문을 살리면서 직역이 아니라 읽기 편한 문장으로 살려내야 한다. 공들여 번역한 노력들로 책의 뒷부분 절반은 역자노트에 설명을 더했다.
이 부분때문에 비교를 해가며 읽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아쉽지만 역자 노트에 많은 문장들이 따로 비교가 되어있다. 어떤 번역이 옳은지는 모르지만 번역자들의 수고로움과 세심함에 존경심이 들었다.
문장 하나를 번역하는데도 다른 입장을 보이는 부분이 우리는 별 생각없이 읽어가는데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행위와 어투 등을 통해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번역이란 그야말로 원뜻을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이다.
많은 번역가들이 원뜻을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들이 돋보이는 역자노트까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