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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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를 벗겨낸 블랙의 양장본 표지가
더 깔끔하고 심플해 보인다.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 "
-소설가 한강 추천-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굉장히 끌렸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슬픔을 그려낸 아름다운 서사로 가득한 소설일거라고 상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감정이 충만하지만, 결코 감상적이지 않은 소설 속에서 낯선 슬픔을 만난다. 슬픔을 다루지만 아이들과 아빠 각자가 그것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엄마를 떠나보내며 온전히 사랑만이 남는다. 초반에 등장하는 까마귀가 이해되지 않아 작품 설명을 읽고 다시 펼쳤다.

여섯 살 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 이후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써 나갔다고 한다. 2015년 발표한 첫 소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으로 딜런 토머스 상과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2019년 출간된 두번째 소설 <레니>는 부커상과 웨인라이트 상 후보에 올랐으며 고든 번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5년 발표된 이 소설을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책인 것 같다.
아내이며 아이들의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들부터 천천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작별 의식을 치루는 과정을 그렸다. 16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지만 페이지마다 시적인 표현이 가득하고 까마귀, 아빠, 아이들이 오가는 이야기가 혼란스럽고 낯선 구성이었다. 풍부한 공백으로 스미는 슬픔들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다.

제목에 대하여
작가 맥스포터는 에밀리 디킨슨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유명한 시의 첫 구절 "희망은 날개 달린 것"에서 따온 문장이다.
제목이 멋스러운 이유는 시의 첫 구절을 인용한 거였다. 역시!!^^

그 다음 궁금증은 "까마귀"의 라는 존재의 등장이다. 마지막까지 읽고 가장 첫 장의 인용문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까마귀가 내포하고 감추고 있는 것들..

작가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여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에 남은 자국의 깊이 또한 사랑일수 밖에 없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우린 원격조종 자동차와 스탬프 세트를 가지고
노는 꼬맹이들이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알았다.
우린 "엄마 어디 있어요?'하고 물을 때
아빠가 솔직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아빠가 우리를 우리 방으로 데려가서는 침대에 앉아 자기 양옆으로 앉아 보라고 말하기 전부터 뭔가가 변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이제
아빠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용감한 아이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짐작했고 이해했다.

우린 거울을 치약으로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고 엄마한테 엄청 혼이 나곤 했다.
우린 몇 년동안이나 거울에 치약을 묻혔고
침을 뱉었고 게다가 양치질은 너무 자주 했고, 그래서 우리집 거울은 새하얀 반점들로 얼룩덜룩 엉망이었고, 우린 둘 다 그것으로부터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을 느꼈다.
슬쩍 빼놓고 말하지 않은 다른 일들도 많다. 우린 의자에 오줌을 쌌다. 우린 서랍을 절대 닫지 않았다. 우린 엄마를 그리워하려고, 계속 엄마의 손길을 원하기 위해 이런 짓들을 했다.

아빠에 대해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진지파였다. 조용하고 의뭉스러웠으며, 쿨한 것과는 애처로울 만큼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가능한 최고로 심하게 아빠를 놀려줘야 했다. 엄마도 그러길 원했을 거라고, 우리는 확신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최선의 방식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의 비통한 나날들이 까마귀의 깃털이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표현되는 시적인 감성이 충만한 소설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를 생각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가며 엄마를 기억한다. 그리고 슬픔의 근원으로 부터 서서히 이별하려 애쓴다.

처음 읽을 때 방해스럽던 까마귀의 존재는 마지막에 사라지고 나서야 그 동안의 어두운 분위기를 담당하는 하나의 매개로 사용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을 알았다. 추락하는 삶을 붙잡기 위해 사랑을 남기는 따스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슬픔을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문장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시처럼 노래처럼 잦아드는 작은 슬픔 가운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다. 사랑한다는 말로서 온전해 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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