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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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고, 생각까지 올바른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작년 한 해 작가들과 만나는 강의에서도 느끼고, 블로그를 하면서도 종종 부딪치는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쌓아 올린 방송작가 박애희의 필력은 소소한 에세이에서도 힘을 발한다. 전문적이거나 문학 작가가 아니어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정혜윤 피디의 책도 그랬고, 얼마 전 읽은 김진애 건축가의 글이 그랬던 것처럼..
박애희작가는 방송작가였으니 얼마나 글맛이 좋을까.^^

표지는 봄을 만끽하는 벚꽃의 향연이었다. 중간에 엽서같은 속지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벚꽃을 연상시키는 표지가
봄처럼 따스하고 화사하게 마음을 밝게 해 준다.
책을 읽다보면 갈피에 엽서 몇 장이 감춰있다.

"파도가 인생을 삼키는 시간을 통과하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후회와 자책의 시간을 애도하고 다정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법을 대화하듯 소곤거린다. 내가 함께 보았던 드라마나 방송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방송작가로서 마주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흥미로웠다. 어떤 부분에서는 새로움이 깃들어 읽다가 공감도 하고, 아는 아야기에는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나 눈물도 맺혔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소설도 좋고, 사람 냄새나는 일상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에세이도 즐겨 읽는 편이다.
작가의 이름을 잘 모르지만 방송에서 보이는 연예인의 뒤에서 이름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물 속에서 숨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냐. 물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간단다"
<엄마는 해녀입니다> 고희영

해녀들의 숨의 길이는 날 때부터 달라지고 수확하는 해산물이 달라지고 수입이 달라지기에, 바다에 들어가면 '조금만 더' 숨을 참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욕심이 난다. 야속하게도 숨의 한계는 절대 노력하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자신의 한계를 잊고 숨을 참는 순간, 물숨을 먹게 되고 바다는 목숨을 앗아간다. 해녀들은 그것을 보고 자란다. 이 때문에 나이든 해녀들은 후배들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
해녀도 아닌 나는, 그말이 어쩐지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어쩌면 어른이란, 강철처럼 단단한 존재가 아니라 삶의 한계와 나약함을 껴안은 채 그 안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다는 일이 그런거라면 조금 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징징거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다.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유쾌하지 않고 씁쓸할 때, 나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질 때 하소연을 하고 싶어지는 거다.

"다 큰 당신이 징징거리며 엄마를 찾느다면 000은 당신의 옷장에서 꺼낸 스키니진과 스니커즈를 신고
"그만 징징거리고 맛있는거나 먹으러 가자"라고 한마디 툭 내뱉을지 모른다. 타박하지도 야단치지도 않고 말이다.-----
'어른아닌 어른,71살의 청춘 윤여정을 만나다' 김도훈 <허프포스트코리아>편집장, <<한겨레>>

나도 누군가 나이든 내게 징징거린다면 다 들어 주고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는 말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 살고싶다.
박애희 작가의 글이 내 마음같아 내 글인지 작가의 말인지 모르게 뒤섞이는 재미에 빠져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이 즐겁다.
조금은 어긋나야 묘한 긴장감에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하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언급했던 영화와 방송, 그리고 음악과 책들이 궁금해진다. 방송과 인터뷰를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공감이 되는 책이었다.
예를 들면 배우 이정은이나 슈가맨의 양준일의 이야기, 그리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눈이 부시게>의 아야기를 들추니 다시 감정이입이 되어 버린다. 누구나 사랑을 받으며 당당하게 살고 싶은 삶이기에..
<비긴 어게인> <윤식당>,<물 속에서>진은영의 시, 영화<위아영> 장한나 인터뷰 등..
장한나가 스승으로 받은 큰 가르침이야말로 인생의 올바른 지혜를 터득하게 한 것같아 부럽고 위대해보이고 존경스러웠다.

방송 작가로서 경험했던 일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살아오면서 줄줄이 사탕처럼 매달린 이야기들이 소복소복 담아져 있다.
표지부터 제목 그리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써 내린 에세이 덕분에 안온한 봄으로 가득찬 기분이다.

"누군가를 지켜내는 순간,
인간은 가장 강해진다.
그 일이 너무 아프고 쓸쓸한 일이어도,
설령 자신의 생을 내주는 일일지라도,
그 순간 우리 삶은 비로소 가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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