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 성장하고 기뻐하고 상상하라 김진애의 도시 3부작 2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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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김진애라는 건축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남성들 위주의 프로그램에 당당하게 출연한 첫 여성 출연자이기에 단연 눈길이 갔었다.
도시 건축가라고만 생각했기에 작가로서 집필한 책에는 그다지 기대가 크지 않았다. 도시에 관련한 책을 3부작으로 기획하고 책을 출간하는데 첫번째 책은 이벤트 참여도 안했을 정도였다. 두번째 책이 나에게 오게 되어 읽으면서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필력이 범상치 않은 분이셨다.

삶의 테마는 사람이고, 그의 지적 뿌리는 도시와 건축이라고 한다. 건축으로 시작해 도시로 넓혀 공부하고, 현장 실무를 넘어 다양한 저작 활동과 정치 행위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김진애 작가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활력적 사람'을 살아가려 애쓴다. 그래서 김진애 작가는 항상 사람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쓴다고 한다. 일 년에 한 권 꼴로 책을 쓴다고 하는데 처음 접하게 된 책이다.

'도시의 이야기가 그렇고 그럴테지.'하고 지레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도시 속에 들어간 모든 것을 통찰하며 도시를 해부하고 도시의 풍광을 충분히 즐기고 누리는 모든 방법들을 적어 놓았다.

모든 도시들을 꿰뚫고 있는 해박함이 멋있었고 여행을 다니며 보고 느낀 도시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 주는 역사의 흐름과 도시 건축가로서의 전문성이 겸비되어 있어 유익했다.
이 책은 1주일정도 오래 갖고 다니며 읽은 책이다. 단순히 스토리를 읽듯이 넘길 수도 없고 도시의 설명이 사진과 더불어 김진애 작가의 철학이 담긴 메세지들이 울림이 컸다.

"도시를 읽으면 인간의 본성이 보인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도시>라는 주제에만 포커스가 집중된 것이 아니라서, 읽기 어렵게 만드는 전문적인 표현보다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세심함도 보인다. 오히려 도시를 설명하는 어떤 딱딱한 전문서적보다 더욱 전문적이며 어떤 여행 서적들보다 세세한 설명은 도시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삶의 냄새를 포착해 주어 더욱 세련된 안목으로 안내하는 책자이기도하다.

도시 전문가로서 김진애는 종로통 거리를 설명하며 전차구경을 하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변두리에서 살다가 도시를 보고 놀라던 시절이지만, 나는 작가와 반대의 경험을 했다. 어릴 때 그나마 도시였던 인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2학년 그 당시엔 시골이나 다름없던 수원으로 오게 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공기가 어찌나 맑고 좋던지 이사하던 날 활짝 열어제낀 베란다 창으로 불어오는 신선하고 시원한 그 바람과 공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하수를 먹던 수원에서 살다가 방학에 인천 고모댁을 갔는데 물을 마시다가 뱉어 버렸다. 비위가 약했던 내가 지하수를 먹다가 수도물의 소독약 냄새를 참지 못했던 것이다.

고모가 웃으시며 하신 말씀도 생각난다.
"촌년이 다 돼서 왔네."..ㅋㅋ

어찌됐건 작가의 첫 번째 도시는 종로통이었고 나의 첫번째 시골은 수원인 셈이다. 그러다가 63빌딩이 처음 세워지던 해 중학교 2학년 즈음, 아빠께서 데리고 간 서울의 63빌딩이야말로 내가 처음 경험한 도시의 기억이다.

"인생에서 첫 경험이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앞에도 무수한 첫 경험이 놓여 있다. 비단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감수성이 살아 있는 한, 첫 경험은 언제 어디서 다시 운명처럼 찾아올 지 모른다. 새로운 첫 경험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의 감수성에 불을 켜자."

"이게 핵심이다. 길을 잃고 길을 찾는 과정은 당신의 무의식 속에 깊이 아로 새겨진다. 길을 찾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정신과 마음 전체가 작동하는 것이다. 길을 찾으려 애쓰는 몰입 단계에서 우리의 모든 감각이 발동하고, 머리가 풀가동되며, 사이에 벌어지는 작은 사건마저 모두 중요한 단서가 된다. 길을 잃어보지 않으면 얻기 힘든 완벽한 몰입의 체험이다. 길을 잃고 길을 찾는 그 집중 체험 속에서 우리는 남모를 지혜를 쌓는다."

"길을 잃어야 찾을 수 있는 보물들, 어떤 것들일까? 당신의 기억을 곰곰이 들추어보라. 길을 잃으면 진귀한 보물을 찾게 된다.
길을 잃기 위해서 길을 잃는게 아니라, 새로운길을 찾기 위해서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인생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사업이 궁리한 대로 순항하기만 한다면, 일이 척척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결국 진짜 보물은 찾지 못하고 말지 않을까?
당신의 방황을 축복하라. 그 축복의 순간을 위해서 때로 방황하라."

"런던과 파리는 그렇게 다르다. 런던은 속으로 압도하고, 파리는 겉으로 압도한다. 런던에는 기념비적 공간이 드문 대신에 공원이 많다. 공원 문화를 미국과 전 세계에 수출한 나라답다.
파리는 뻐긴다. 건물도 뻐기고 공원이나 광장도 뻐기고 하물며 새로 지어지는 건물 디지인도 어딘가 뻐기지 않으면 못 배기는 듯 싶다. 좋게 말하면 웅장하고 디자인이 전위적이라 할 수 있고 개중에는 정말 탁월한 디자인도 적지 않다. "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너진 일화를 통한 서울과 평양의 두 도시를 비교한 설명들도 놀라웠다. 보통 나라를 가로막는 일은 있어도 도시를 가로막아 장벽 하나로 분단된 나라를 중심으로 발달된 독일의 도시 이야기..

"도시를 읽으면 인간의 본성이 보인다"는 말로 압도하는 설명들에 매료된다. 해외의 다른 도시와 우리 도시를 나란히 두고보면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가 뚜렷이 보인다. 인간이 발명한 가장 복잡한 발명품인 도시를 통해 거꾸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탐구해 나가며 도시는 "오픈 북"이라고 설명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진과 도시들과 철학적 소양이 넘쳐서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오래 머물게 된다.
도시의 화려한 야경과 주변 조경이 아름다운 도시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걷고 싶은 도시가 가장 좋은 도시라는 작가의 말이 공감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주변도 제대로 걸어보지 못해서 아는 게 없지만 한평생 한 도시에서 사는 것도 재미없는 것 같다.

이 곳 저 곳 다양한 여러 도시과 시골에 살아보고 싶다.
제주도 "올레길"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다며 제주의 도시와 관광길을 설명하는 부분도 너무 흥미롭다.

"제주 올레는 걷기의 두 가지 기본 조건을 만족시켜서 좋다. 첫째, 홀로 걷기가 가능하다. 물론 여럿이 그룹 걷기를 해도 좋지만 혼자 걸어도 충분히 안전하고 충분히 뜻깊은 길이 많다. 여럿이 걷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홀로 묵묵히 온 사방의 바람에, 향기에, 땅의 기운에, 사람 내음에 자신을 맡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여러 종류의 다양한 길 체험이 가능하다. 바닷길, 오름길, 산길, 개울길, 논두렁길, 밭머릿길, 돌담길, 마을길, 도시길이 섞인다. 하루를 걸으며 이렇게 다양한 길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바닷길을 걸으면 속이 확 풀리고, 오름을 오르면 기대고 싶고, 산길을 걸으면 푸근하고, 개울길을 걸으면 찰랑찰랑 마음이 차오르고,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으면 생명의 힘을 느끼고, 돌담길을 걸으면 다정하고, 마을길을 걸으면 사람의 손길과 정을 느끼고, 도시길을 걸으면 사람이 모여 사는 맛을 느낀다."

"살고싶은 도시를 꿈꾼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희망을 아직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도망가고 싶지만은 않은 것이다. 아직도 살고 싶은 도시를 열심히 꿈꾸어 보라. 왜 그 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가 잘 들여다보자. 그리고 지금 살고있는 도시를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보자. 이러한 꿈이 있는 한, 우리 도시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동서고금의 인류 문명사를 통해 모든 인간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미래의 인간에게 장밋빛 미래의 삶이나 잿빛 미래의 삶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과 악으로 확연히 구분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의 삶이 맹목적 탐욕 때문에 자칫 악순환으로 치닫지 않도록 우리의 지혜를 가동해야 한다. 인간의 지식은 놀랍도록 발달해왔고 더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한 지식이 지혜롭게 쓰이느냐 아니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의 현재가 우리의 과거에 맞닿아 있듯이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현재와 맞닿아 있다. 인류의 미래에 축복이 있기를, 인류가 스스로 우울한 미래를 향해 치닫지 않기를, 도시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지 않기를, 우리의 도시가 인류를 구원하기를 기원한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읽는 듯한 느낌인데 김훈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우리 나라의 숨은 정취를 담은 에세이라면, 김진애 작가의 글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속깊은 이야기들이 가득한 인문학 에세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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