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 거울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하기를 변화시켜 보자.

말과 글에는 힘이 있다. 또한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평상시에 매일 사용하는 말의 양에 비해 말에 대한 고민은 현저하게 적다.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들이 나를 규정짓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 특별한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나라는 사람의 생각이다. 그러기에 내가 하는 말을 거울 앞에 비춰보고 되짚어 다듬어 나가는 용기를 위해 작가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한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변화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분명 힘들지만 나라는 존엄성을 버리지 않는 값진 행위이다. '변화'에 앞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조심스레 두드려 보는 일이다.
p.28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전달과 설득이다.
나 역시 말에 대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경우, 어조나 표정은 부드러운 편이지만 말의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은근히 급한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나의 말이 빠르다보니 의사 전달이 잘 되지 않거나 상대가 흘려 듣는 경우가 있었다. 친한 사람들과 편한 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발표를 하거나 대중 앞에 서야 할 때에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려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해야 하지만 상황과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하는 부분도 있다.

사실 우리는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끌리지만,
솔직하고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더 오래 끌린다.
p.88

말의 기본은 편안함과 자신감이다. 편안하고 긴장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을 말하기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정보는 귀와 뇌를 피곤하게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주구장창 길게 늘어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말하기 전에 뚜렷한 주제를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가 쉽게 설명하는 것은 전문 지식이 많다고 말의 질이 높아지는 아니다. 상대를 향한 친절함과 존중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혼자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말에 깊이 들어주고 표정으로 반응해 주는 것은 공감의 노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설득의 세가지 수단
■에토스:인상, 목소리,태도, 자신감, 호감도
■파토스;인상, 연민, 감상, 경험
■로고스: 수치, 기사. 통계
에토스(60%)>파토스(30%)>로고스(10%) 

생각이 정리된 문장들을 머릿 속에서 끄집어 내다보면 말도 조리있게 잘하게 된다. 겉멋에 찌든 알맹이 없는 말보다는 진솔한 말과 나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나의 표정과 말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는 말거울에 비춰보자. 관찰은 자신을 고민하고, 변화를 위해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누구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피치를 강의하는 강사답게 다양한 콘텐츠로 설명하는 책이었다. 평상시에 말하기가 자신이 없는 사람, 말로 고민하는 사람이나 강의 혹은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언어 연습 지침서로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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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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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는 것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작가 소개를 보니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이름이었다. <미저리>와 <쇼생크 탈출>을 쓴 작가라니...!!
나는 사람 이름을 정말 잘 외우는 편인데 희한하게 외국 사람들 이름은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들어본 것 같기도하다. 어쨌든 너무도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표지도 이쁜데 속표지는 더 근사했다^^
사람에게도 첫인상이 있듯이 책을 처음 만나는 그 느낌도 독서할 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한다. 궁금해지는 멋진 창공의 사진 디자인으로 소설을 만났다. 사실, 책으로 만난 적이 없는 스티븐 킹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겉표지 띠지에 두른 설명이 와닿지 않는다. (아시는 분 계시면 부연추가 설명 좀 부탁드림☞☜)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전에 없던 상냥함"

사전 정보없이 읽게 된 책이 궁금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잠시 알아보니 ‘나는 전설이다’로 잘 알려진 SF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줄어드는 남자’(1956)를 오마주해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물론 이 소설도 읽지 못했으니 다른 설명은 미루어 놓는다. 소설은 점차 몸무게가 줄어드는 남자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124킬로 나가는 거구의 남자는 점차 체중이 감소하는 것을 느낀다. 하루에 0.5킬로씩 매일 빠지는 설정이 특이했다. 처음엔 가벼워진 몸이 만족스럽겠지만 매일매일 줄어서 0이 되는 그 시간을 맞이하게 될 때 어찌할 것인가ㅜ

기이한 상황에 처한 어느 평범한 남자 스콧은 삶의 재치와 존엄을 지키며 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스콧의 체중이 0에 가까이 근접할수록 점차 걱정이 된다. 몸이 가벼워지는 무중력 상태처럼 걷게 되는 사내의 일상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중량도 시간처럼 기본적으로는 한낱 인간이 만든 생각 아닌가? 시계의 바늘, 욕실 체중계의 숫자, 그것들도 가시적인 영향력이 있는 비가시적 힘을 측량하려는 노력의 수단에 불과하지 않나? 미천한 우리 인간들이 실재라고 여기는 것을 초월한 보다 높은 실재를 손안에 넣어보겠다고 애쓰는 미미한 노력 아닐까?
p.33

여기서 돋보이는 것이 하루하루 몸무게가 바닥나 사라질 날을 앞두고 있는 스콧의 삶의 방식이다. 그 와중에도 스콧은 인생을 만끽하기로 했고,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다"

그가 불가사의한 미래를 역사적인 과거로 만드는 방법은 가슴 뭉클하다. 디어드리가 출전하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간 스콧은 자신의 줄어든 몸무게를 적극 활용해 디어드리를 우승자로 만든다. 그 덕에 회생 불가이던 이들 부부의 레스토랑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스콧은 자신의 소망대로 부부를 집에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고도를 향해 움직인다...

뿌리깊은 차별과 혐오를 넘어 화해와 포용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작가의 마음에 따스해고 뭉클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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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생 새움 세계문학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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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883년에 처음 출간되고 톨스토이로부터 [래미제라블]이 후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인물, 사건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다. 너무나 뻔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다음 장면을 보게되어 끝까지 읽어 나간 드라마 같은 소설..

하지만 삶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기막힌 일들이 포진해 있음을 나는 안다.

잔느라는 시골 여성 귀족 여성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다른 현대 소설처럼 복잡한 장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지루하기도 하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작은 마을에는 등불이 켜졌다. 하늘에도 총총한 별들이 빛난다. 불밝힌 집들이 드문드문 한 점 불처럼 어둠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갑자기, 언덕 너머, 전나무 가지 사이로, 커다랗고 붉은 달이 졸음에 겨운 듯 솟아올랐다.
p. 24 알퐁스도데의 <별>처럼 풍경묘사가 아름답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잔느는 수도원에서 나와 미래 계획에 들떠있다.
그러다 우연히 젊은 귀족 쥘리앵을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바로 결혼하게 된다.

그는 여자들이 꿈꾸고 모든 남자들이 불쾌해 할 그런 행복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가 가무잡잡하고 매끈한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보일만큼 반듯한 눈썹 때문에 검은 눈매는 더 깊고 부드러워 보였고 흰 눈동자에는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듯했다. 번민하는 듯한 그 눈의 매력은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사소한 말조차 중요하게 느껴지게 했다.
p.52-53

딸을 순수하게만 키우려고 했던 아버지 덕분에 잔느는 세상을 모르고 수도원에서 지냈다. 처음 다가온 멋진 남자의 외모에 반하고 첫인상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된다 . 아름다운 사랑에 나까지 설레는 기분~ 사랑의 시작.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음에 탄식이 나왔다.
신혼여행 이후 그들에겐 사랑이 없었고 사랑하던 사내는 차츰 변해갔다. 그 이후의 생활은 잔느라는 여자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반복이었다.
과연 이 남자는 변한걸까?
본래의 마음을 숨기고 사랑을 가장한 접근이었을까?
잔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이 있을까?

네가 살아가는 일을 얼마나 알지 모르겠다. 특히 딸애들에게는 조심스럽게 감추는 비밀들이 있단다. 딸애들은 우리가 딸의 행복을 책임질 남자의 품에 안겨 줄 때까지 정신이 순수하게, 한 점 오점이 없도록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에 씌워진 베일을 걷는 건 그 남자의 몫이란다....(중략)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거라.
너는 온전히 네 남편의 소유라는 점 말이다.
p.94

그렇게 아끼던 딸의 순수함을 자키려던 이유가 고작 남편될 사람에게 오점없이 주기 위함이라니.. 이 문구가 답답하고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정확히 무엇을 알았을까?
무얼 짐작했을까?
어떤 예감처럼 우울하고 고통을 느꼈을까?

이 말을 듣는 나조차 압박에 짓눌려 숨이 막혀버릴 듯했다. 남자가 여자의 행복을 책임져 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편의 소유라니...
그때까지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한다는 말도 잔느를 불행하게 몰았다.

잔느가 그에게 애정어린 징책을 하려고 들면 그는 아주 거칠게 응수했다.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겠어?"
그녀도 스스로 놀랄 만한 태도로 체념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 영혼도 마음도 그녀에게 닫혀 버린 사람이었다.
p.137

만나서 사랑하고 애정하는 마음과 프로포즈로 결혼했던 그들이 갑자기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되었을까?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어떻게 괴로워하지 않을까?
이런게 인생일까?
그들이 사랑이라고 착각한 걸까?
그녀에게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감각이 꺼져 버린 잔느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고, 상처입은 그녀의 마음, 감상적인 영혼만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둣했다. 욕정 없이 들뜨고, 꿈에는 열정적이지만 육체적 욕구에는 죽어버린 그녀의 마음은 증오심 어린 혐오감에 가득 차서 그 추잡한 동물성에 질겁했다.
p.231

이렇게 굴곡있는 서사가 갑갑한 이유는 주인공 잔느의 삶에 대한 태도가 정말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삶을 바꾸려는 의지 없이 시골에서 정해진 대로만 살아가는 운명론적 인물이다. 정말 평면적인 인물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사건이 있든 성격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

남편에게 애정을 쏟지 못하자 아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도 필요 이상의 것. 도를 넘치는 어긋난 사랑으로 아들마저 떠난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전형적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아들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결국 자신이 내쫓은 하녀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귀족의 처참한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존재가 고유의 냄새를 지녔듯이 그 방의 냄새, 그 방이 간직해 온 냄새, 낡은 거처의 모호하고 감미로운 냄새, 흐릿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냄새가 잔느에게 스며들어 추억들로 감싸고 그녀의 기억을 취기에 빠뜨렸다. 그녀는 두 의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 과거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숨을 헐떡였다.
p.374

이 책의 원문 제목은 <Une Vie>로, 사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번역이 잘못됐으며 [어떤 인생]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지만 옛날부터 이렇게 표현한 관례상 여자의 인생이라고 제목을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물론 책 내용을 미루어 봤을 때 주인공 잔느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이 좀 더 직관적이고 와닿긴 하지만 모파상이 의도한 것은 한 '여성'이 아닌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러면 작품의 배경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자연에 비해 인간 생의 허무함을 그리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작품해설을 읽으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더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테스>에서 사생아를 낳은 그녀가 어머니에게 왜 남자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냐고 원망하던 구절이 생각난다. 부모는 자식에게 행복이 보장된 길만을 안내해 주고 싶지만 그 미래는 아무도 점칠 수 없다.

여자의 인생이, 어떤 일생이 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예기치 않게 들려올 때는 무심했다가 소설 속 이야기를 읽다보니 우리네 인생도 그다지 다를게 없다. 어쩌면 삶이란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고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행복에 눈을 뜰 때면 지난 고통이 사라져 버린다. 잔느는 힘겨운 인생 뒤에 떠나버린 아들의 딸을 안고 마지막으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생에 무한한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낀다.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들이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쁜지도 않답니다.

인생에 아무런 환상이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이 어느 틈엔가 바늘구멍만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나의 인생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인생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순수했던 잔느처럼 꿈꾸고, 현실은 하녀 로잘리처럼 당차게 살고싶다. 현실의 삶은 순수한 사람이 살기에는 벅찬 곳이라 잔느처럼 사람애게 세상에 속아 초라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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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노래
김창기.양희은 지음, 키큰나무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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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양희은이 부르는 노래를 원래부터 너무 좋아한다. 고요하고 적막하게 화려한 기교없는 창법으로 듣는 이의 마음과 향수를 불러오는 탁월한 음색.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즐겨 부르던 그 시절의 음악들.
역시 난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모양이다~^^

이 곡은 양희은과 후배 가수의 콜라보 곡으로 여러 번 들었다. 김세정과 악동 뮤지션의 이수현과도 함께 부른 이 곡은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에 묻어두었던 모성과 함께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추억과 사랑이 애틋해진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양희은이 담담하게 부르는 가사의 내용이 사춘기 딸을 키울수록 더욱 마음에 와 닿아 뭉클하다. 더구나 좋은 노래를 따스한 그림과 색채로 가사를 담아 책으로 만들었다. 김창기님께서 작사를 할 때에는 아들에게 주는 곡으로 쓰셨다고 한다. 양희은님이 노래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딸에게>가 되었고 2절 가사는 양희은님께서 직접 쓰실 정도로 애착을 가진 노래이다.♥

곧 데뷔 50주년을 맞이하는 가수 양희은의 이 노래 가사는 모녀를 끈끈한 애정으로 묶어주는 귀한 노래가사라고 생각된다. 처음 듣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던 노래.
엄마가 딸에게...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어느 새 나도 엄마가 되어 딸의 모습을 보고 있다. 늘 생각한다. 엄마라면 나에게 어떻게 했을까?
내가 딸이라면 어떻게 해 주는 것이 나을까?

엄마와 딸을 꽃과 나비로 표현해서 더욱 포근해지는 그림이 있는 책이다. 꽃과 나비는 언제나 함께 있어야 꽃울 피우고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운명같은 존재이다.

딸에게 노래도 들려주고 책도 보라고 슬며서 밀어 주었더니 딱 자기 이야기라며 웃는 그 웃음 뒤엔 다른 생각이 있을거라는 짐작이 든다. 책이란 겉으로 표현내지 못하는 내면의 울림이 있다.나는 음악과 책이 주는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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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의 새로운 상상력
국내 최초 재난•공포 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역작!

둥근 달에게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듯한 보랏빛 표지 그림이 몽환적이다. 김유정 소설 문학상 수상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이경 작가의 소개가 짧게 있었다. 소재가 특이하고 스토리는 박진감 넘치는 색다른 장르의 신선한 소설이었고 마지막까지 궁금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허물을 벗지 않으면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온 몸이 허물에 덮이는 피부병으로 밤의 도시 속 D구역에 격리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설 속의 거대한 뱀 '롱롱'이 허물을 벗게 될 때 자신들 몸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는 전설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전설 속의 뱀 '롱롱'을 찾아 나선 파충류 사육사 '그녀'와 방역 센터의 입소자들. 허물에 덮인 그들이 롱롱과 마주치는 순간,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 제약회사의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작가의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구축된 거대 도시. 재난과 질병에 포위된 인간의 극한 공포,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간절한 '소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을 나와야 했을 때 후원금 통장을 털어 동물원 근처에 방을 얻었다. 동물원은 보육원과 비슷했다. 새끼들은 어미와 떨어져 사육사의 손에 자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뱀을 지켜보다 돌아왔다. 뱀은 고요했다. 그녀처럼.
p.24

숭배의 대상이었던 뱀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공포의 대상이 됐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타이어 동굴을 지키던 사람들이 갑자기 빠져나던 이유를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사육장에 있는 뱀을 이용해 공포를 부풀리는 이유가 고작 프로틴을 팔기 위해서라니. 납득하기 힘들었다.
p.146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하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과 잉여 생산물을 교활하게 연결시키는 전략을 활용한다. 우리 자신의 분명한 분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풍문에 의해서 쫓게 되는 허상과 실재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튀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제 손으로 터를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는 것이지. 너는 스스로 허물을 벗으면 마땅히 다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게지.
p.201

이런 소설을 상상 속에서 끄집어 내어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를 보면 비상한 천재들 같다. 언제나 별거 아닌 생각을 특별한 시선으로 달리해 보는 실험정신과 많은 가설들을 내세운 스토리 전개가 흥미롭다. 

파충류를 신으로 숭배하는 둣한 토테미즘에 빗댄 이야기와 혼자 벗겨내기 힘든 허물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격리되어 사는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을 현실처럼 혹은 가상의 세계처럼 마음껏 상상하게 만든다. 

어떤 사회에서든 특정 부류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함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또 어떤 부류는 희망을 조성한다.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선택에 따른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그 불안과 공포를 악용하는 사회와 기업의 윤리와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적인 풍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에 기인한 소망이라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의 간절한 이야기 전개는 끝까지 박진감 넘친다. 그리고 마지막이 궁금해져서 끝을 행햐 읽게 만든다. 열린 결말을 맺음으로 더욱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공포가 이념이 되고, 이념이 공포를 강화시켰다. 그 불행한 순환 속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허물 뿐이었다. 공박사는 시민이 아니라 시민들의 허물이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 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p.2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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