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유연하게, 
마음은 단단하게! 
오늘은 나의 심신 가꾸는 날  

외부로 향한 눈을 잠시 가리고 내 안에 있는 눈을 뜨고 그저 여기 있음에 집중하는 시간.
균형잡힌 삶을 위해 오늘도 나마스떼!!

-AM327 글•그림
생소한 이름의 작가, 피키캐스트 화제의 연재작이라는 궁금한 채널의 소개로 시작한다. 본명은 김민지. 상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의 책이라서 네 컷이나 여덟 컷의 웹툰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림으로 된 에세이는 처음이다. 글밥으로 가득 채워진 책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색감의 그림 안에 일상에 깃든 요가라는 장치를 소개하며 소소한  이야기들이 미소짓게 만든다. 자꾸 책장이 넘어가지 않고 멈추는 이유는, 따라하라는 안내는 어디에도 없지만 친절하고 자세한 그림설명에 요가 동작을 쓸데없이 따라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말 말도 안되게 뻣뻣한 내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도 요가를 하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지고 삶까지 유연해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 버렸다.

작가는 회사생활이나 사람으로 지친 몸과 끌려다니는 감정을 줄이고 나 자신과 친해지려는 노력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여전히 휘청일 때도 있지만 삶 속에 요가가 스며들어 일상의 중심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과연 어떻게 나를 보듬어 가는지, 나 자신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는지,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정답없는 게 인생이라도 나만의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줘요.
늘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네요.​
없던게 생겨나는게 아니라 늘 있던 걸
발견하고 깨달을 뿐.
p.53

빈 말을 많이 한 날은 마음도 텅텅 비어버려서 집에 오는 길도 긴 밤도 허전하게만 느껴져요.
그런 날 나는, 가장 소중한 친구 대하듯 나를  다독입니다.
마음의 구멍은 제때제때 메워요
p.238

덜컥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둘 수 있었던 것, 자리잡을 때까지 월세를 선듯 내주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던 용기 메이트, 반려견 민구와의 일상이나 엄마와 딸의 흔한 이야기들을 작가만의 감성으로 가만가만 읊조리듯 들려준다. 다른 것들이 침범하지 않게 온전히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나에게만 집중해 보는 시간을 날마다 반복하며 쌓아올린 요가를 통한 유연함을 전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꼭꼭 눌러 담겨져 있었다.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좋고 아무데나 보이는 요가 동작을 따라해 볼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날마다 요가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성취해가며  안팎으로 근육을 키워가는 모습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 자신을 다독다독하고 싶어지고 온전히 집중해 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언제나 내 안에 깃든 인생의 답을 길어 올리는 시간들을 즐기며 나마스떼~인사하는 날이 오기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과 못 다한 삶을 후회하는
한 남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안한
일생일대의 거래

[오베라는 남자]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감동소설의 대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다.

다산북스의 책인데 표지가 너무 이쁘다. 겉표지를 벗겨내니 보랏빛 양장본의 동화같은 표지가 마음에 든다. [일생일대의 거래]에는 배크만이 가족에 대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실제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크리스마스 이브 밤, 잠든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쓴 소설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 형식의 책이다. 처음과 마지막 장의 그림은 동화같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소설 속으로 이끌고 들어 간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할까요?"하고 누가 물으면 대다수가 우렁찬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의 생명은요?"라고 묻기 전까지의 얘기지.
일생일대의 거래(p.11)

병원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보게 된다. 겨우 다섯 살에 암에 걸린 아이. 다가오는 죽음이 무섭지만 본인을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애써 엄마에게 맞춰주는 아이. 사랑스러운 아이와 맞닿은 생과 (죽음이 아닌) 목숨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서 내가 죽으면 그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다섯 살짜리의 죽음은 기사로 다루어지지 않고, 석간신문에 추모사가 실리지도 않는다. 그 아이들은 아직 발이 너무 작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발자취를 남길 시간이 없었다.
일생일대의 거래(p.26)

할 수만 있다면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본인이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인 걸 깨닫는다. 아이를 살리려면 그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이룬 업적들, 남긴 발자취... 모두 포기해야 한다.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0초쯤 서 있을 거다.
p.34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오랜 세월 쌓아온 이야기를, 아버지는 곧 죽을, 아니 사라질 마당에 아주 담담하게 그린다. 오랫동안 본인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본인이 중요하다고 여긴 모든 것들을 두고 가야 하는 씁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쉽고 슬플 뿐이다.

...(생략) 항상 네 눈에 비치던 헬싱보리가 아주 찰나의 순간 내 눈에도 보였다. 네가 아는 어떤 것의 실루엣처럼. 고향. 그곳은 마침내 그제야 우리의 도시가 되었다. 너와 나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일생일대의 거래(p.105)

목숨을 맞바꾼다는 것은 대신 죽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왔던 인생 전체를 삭제 당하는 것. 즉 존재 자체가 없어짐을 뜻한다. 남자는 두렵지만, 이제 일생일대의 거래를 하려고 한다.
사업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완전히 실패한 남자가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고 싶다.
바로 지난 시간을 어리석게 흘려보낸 자신과 화해하고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는 것.

사람이란 누구나 미련해서인지 바빠서인지 죽음을 코앞에 두고 마주해야만 살아온 인생을 함축적으로 반추하게 되고, 사는 동안 애써 눈감았던 진실을 현실 속으로 데려온다. [일생일대의 거래]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사색적 질문을 담고 있어서 여러 번 읽을수록 곱씹게 되는 시처럼 서정적인 소설이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이 이야기는 마지막 그림처럼 크리스마스 선물같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부모로서의 무게감, 성공의 가치,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파적이겠지만 부모의 부담감과 책임감, 성공을 향하던 젊음 뒤에는 결국 자식을 위한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부모님의 일생을 나 역시 가고 있음을 직감하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런 편지같은 소설을 남기는 작가가 부러웠다. 이해할 듯 못할 듯 새로운 형식의 짧은 동화같은 소설은 다 읽은 후에 다시 한번 읽어도 여전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만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년, 
가장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책표지에 캐리커쳐처럼 새겨진 고복희의 인상은 깐깐하고 원리원칙 주의자로 보인다.
겉표지를 거둬내고 속표지를 펼치니 파스텔  톤으로 은은한 감성의 양장본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든다. 겉모습과 달리 따스하게 물들이는  고복희의 속 마음을 대변해 주는 장치라도 된다는 둣이.^^
누구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의 속내를 구석구석 알아내는 것은 시간과 애정이 필요한 일임을 소소하게 그려낸다.

추천사를 두른 띠지의 소개처럼 재밌고 따뜻한 소설이다. 「오베라는 남자」는 아직 읽지 못해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집어든 책이 가독성이 뛰어나서 무리없이 읽었다.
그럼에도 마음 속으로 아프게 쿡쿡 찔러대는 소설이었다. 모두가 살기 힘든 팍팍한 현실에서 조금만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도전하려는  사람들의 의지, 희망의 삶을 꺾는 사람들의 불편한 관계나  사기행각은 속상하고 원통한 일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까칠한 고복희의 숨은 사랑 이야기가 마음 아팠다. 사람들은 왜 보이는 것만으로 그 사람 전부를 안다고 단정짓고, 자기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는지 모르겠다.

원더랜드를 점검하며 101호를 살펴보니 박지우는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아 더울텐데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달씩이나 이곳에 오는 것도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저 멍청한 짓을 벌였을 줄이야. 
상상 그 이상의 멍청이다.
장영수라면 말했겠지. 세상을 바꾸는 건 이런 멍청이들이라고.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잘도 했다.
p.56

고복희는 올해 오십 살이 됐고 중학교에서 로봇같이 말하고 행동해서 인기도 없는 전직 영어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민박에 가까운 호텔 '원더랜드'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반면에 흥이 많아 춤추는 것을 즐기고, 낯간지러운 소리도 곧잘해서 인기많은 장영수는 고복희와 같은 학교로 발령받아 함께 교직생활을 한다. 그 청춘들이 서로 다름에 이끌려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짧고 시크하게 지나가며 나의 시린 추억까지 곱씹게 만든다.
방에만 처박혀 있지말고 좀 나가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박지우는 한국을 떠나 한달 살기로 정하고 떠난다. 그 곳이 캄보디아 프롬펜의 원더랜드. 고복희에게 오랜만에 온 한국 손님 스물여섯의 백수 박지우는 첫인상이  멍청이였다. 염치없는 투숙객 박지우는  남편에게만 잠깐 열었다가 굳게 닫아버린 고복희의 마음을 들쑤시고 다니며 성가시게 굴어댄다.

 린은 많은 것을 일러준다. 옳다고 믿었던 것이 어쩌면 옳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다고. 그저 싫어만 했던 것에서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대표적으로 원더랜드가 그렇다.  안대용에게 원더랜드는 성격나쁜 사장님이 있는 호텔에 불과했다. 하지만 린을 만나고 원더랜드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했다. 대문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조각상, 은은한 레몬그라스 향기, 열대나무 위로 뚜렷하게 순환하는 해와 구름, 환하게 웃고 있는 린의 미소.......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p.77

사람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마음은 그 주변의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달라지게 만든다. 원더랜드의 사랑스럽고 정많은 직원 린과 나약함에 무시받고 이용당하는 안대용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고복희도 박지우도 조금씩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고 살아가는 법과 잘하는 것 등을 걸러내며 유쾌해지기도 하고 괜찮은 사람들이 되어간다.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하게 엮이면서 전혀 이상하지 않은 스토리들이 서로의 교감을 만들어 가고 잔잔한 서사 안에 감동을 묻어 놓았다.

"일을 안합니까?"
"해야죠. 해야하는데."
박지우는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한국은 망했어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고 고복희는 생각했다.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p.93

고복희는 장영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
다양한 것들을 고려하면서 살아야 한다.

장영수는 자유라든가 행복, 평화나 사랑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붙잡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문학을 전공해서 그런 것이 틀림없다. 고복희는 문학이 삻다. 세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수학이나 과학이다.  시나 소설에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다분하다. 순식간에 들어와 감정을 난도질하고 도망가 버린다.  명확한 답을 내려줄 것도 아니면서.
p 176-177

그러고보니 맞는 말도 같다. 문법이라는 것에 예외가 빈번해서 어려운 영어보다는 명확한 공식에 맞아 떨어지는 수학을 푸는 것이 더 편리한 이치라고 고복희의 단호함에 한 표를 던진다. 생각하게 만드는 힘은 문학이지만 늘 질문을 하고 상상을 하게 만들 뿐 명확한 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있을 때 또 다른 나에게로 가는 여행을 끊어낼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불거사의한 일을 경험 중이다. 그 혼돈마저 즐기는 것이 문학이니까~^^

 "나는 당신이 걱정이에요."
한참만에 장영수가 말했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만 하며 산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니까.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당신의 도덕성을 시험하려 들 거예요. 부당한 상황에 밀어놓고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겠죠. 좌절하는 당신을  조롱하고 헐뜯을지도 몰라요."
상관없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은 아니니까. 자신에게 떳떳하면 그걸로 족하다.
고복희가 그런 대답을 할 줄 알았다는 둣이 장영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무엇보다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p.205

인간관계에 원활하지 못한 고복희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 장영수의 진심어린 말이 가슴을 후빈다. 정말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때때로 엄청난 외로움을 수반하는 것이므로.

벽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벽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는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몸을 숨길 장소가 필요했다. 세찬 비가 내린다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니까. 지난함을 견디는 것이 인생이니까.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성가신 남자는 매일같이 찾아와 조금씩 그녀의 벽을 허물었다. 어떤 날은 달콤하게. 어떤 날은 아프게.
p. 206

책 속에 들어갈수록 고복희에게 자꾸 마음이 가버린다. 장영수를 사랑했고 그를 잃은 자리에 벽이 생겨버린  이별의 상실감과 쓸쓸함 앞에서 나는 고복희가 되어버렸다. 옆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던 사람이 먼저 가버리는 이별이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이별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ㅠ

무심한듯 써내린 글 속에 인간의 내밀한 감정들을 섬세하고 유쾌한 문체로 담아내 문은강이라는 작가를 기억하게 만든다. 교민들의 생활에서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인간의 본성들까지 드러낸다. 원리와 원칙대로 융통성이 없어보이는 고복희라는 인물을 내세워 단순히 고지식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내면의 그리움과 잔잔한 정을 발랄한 감동으로 마무리한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차츰 변화하는 고복희의 모습은 그 말투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드라마로 나와도 흥미로울 것 같은 캐릭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담긴 수수께끼,
조선의 운명을 예측하다!

작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꼭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혼불 문학상"은 <토지>못지 않게 우리나라 대표소설로서 최명희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며 전주 문화방송이 제정한 문학상이 이라고 한다.
제9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답게 장엄하고 문체는 수려했다. 긴장감이 도는 서학과 정치판의 종교와 이념의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김훈의 소설 <흑산>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흥과 전율이 느껴졌다. 이 소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과 함께 정약용과 홍대용, 장영실과 정조, 김홍도 등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천주실의]를 통해 서학을 접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국문으로 소설은 문을 연다.

윤지충과 권상연을 옭아맬 죄상은 분명하지 않았으나 마대별정의 입을 타고 온 기도문만으로 과거는 보였다. 기도로 임하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삶이 얼마가 됐든 거센 피바람 앞에 모두는 헛것으로 보였다. 신앙은 개인사일 뿐이며 나라의이념과 사상 앞에 불화해도 치지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조상의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태운 데는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변명이 아닌 뚜렷한 마음으로 채워진 윤지충의 충과 권상연의 효만은 언제든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았다.
p.13

첫 도입부터의 글이 범상치 않았다. 김훈의 소설을 읽으며 천주교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했었고 정조와 정약용의 형제들이 궁금하고 안타까워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보기도 했었다. 안타까운 순교의 내용과 조선시대 배경의 역사소설이지만 서정적이면서 깊이 있는 필력이 이야기의 심연으로 이끈다.

약용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생각했다. 나무를 생각하면 십자자가 떠올랐다. 십자가로 건너갈 세상은 여전히 두려웠다. 약용은 갓 자란 초목으로 세상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풀잎 같은 기도문으로 지날 세상을 생각하면 눈썹이 떨렸고, 어느 새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땅에 사지를 딛고 바람에 휩쓸리는 믿음을 생각하면 눈이 감겼다. 감긴 눈 속에 암흑의 세상이 보였다. 그 너머 칠흑의 터전이 보였다. 눈을 뜨면 세상은 여전히 흔들리는 나무 같으며 나부끼는 풀잎 같았다.
"때가 되면 몸을 사려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먼 곳에서 피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p.43

짧고 투박한 기도문에 정약용의 신념이 물결처럼 출렁이는 표현과 십자가 앞에 서면 천주에 이르는 원대함을 품고 순교하는 윤지충의 순교의 모습이 고결하게 쓰여있다. 읽으면서 내내 그들의 언약과 생의 정면에서 오직 천주만을 떠올리는 깊고 선명한 기도와 죽음들이 숙연해진다.

"어렵구나..." 약용의 한마디 속에 세상의 희비가 보였고 수많은 인재들을 죽음으로 몰아낸 비극과 탐학에 굶주린 노론의 붉은 세상과 소론의 끈기로 이어지는 풍진 세상이 서러웠다.

머리를 들어 올리자 중천에 오른 달이 보였다. 달은 공허한 대기를 가르며 무심히 지나는 듯이 보였다. 달 뒤편은 보이지 않았다. 선악이 겹치는 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마음 속에 둥근 달이 떠갔다. 달이든 별이든 불꽃이든 임금의 마음은 임금만이 알 것이다.
p.277

삶을 생각하면 가뭇없고, 죽음을 생각하면 꿈결같은 깊은 밤이었다. 밤기슭은 건조해 보였다. 삶과 죽음이 한데 뒤엉켜 흔하게 들려왔다. 성균관 전각 어느 숲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이 밤에 또 누군가 생을 버리고 저승길로 걸어가는 모양이었다.
p.363

작가가 보여주는 문장의 힘과 깊은 사유에서 발현하는 내면의 힘으로 밀어내는 서사가 아름답기까지하다. 모든 문장이 수려해서 일일이 적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만에 품격높은 시적 문장이 드러나는 소설을 만났다. 천주교 탄압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많은 등장 인물들을 통해 각기 시대적인 상처를 보여준다. 중세 로마의 다빈치 불후의 작품 <최후의 만찬> 그림에 머나먼 조선에서 온 불우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흔적을 발견하는 발상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가볍지 않은 묵직한 이야기 속에 가미된 로맨스와 역사소설의 형식같지만 익히 들어 알고있는 역사 속 인물들이 작가만의 새로운 창작으로 재탄생된다.

살면서 죽음으로 가는 길
죽음으로써 삶으로 가는 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인 오스틴부터 프로이트까지
책으로 위로받는 사람들

책 제목과 표지에서 오는 느낌 좋은 책이 있다. 그 느낌이 책장을 펼쳐서 마지막 덮을 때까지 오래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첫인상은 별루지만 의외로 좋은 내용의 책도 있다. 대행히 이 책은 첫인상만큼 내용에도 만족했던 경우에 속한다.

지은이는 엄청난 독서광으로서 작가와 방송 편집자, 진행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두 개의 현실을 살고 있는 그리고 잠시나마 현실에서 도망칠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대체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독서하는 뇌와 그를 통해 대화하며 치료받는 독서, 책에 미쳤다고 할 수 있는 도서 수집가와 탐독가의 독서가 주는 다양한 아야기를 펼친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독서가들의 다양한 경험들과 추천 책들을 모두 담을 수 없어서 아쉬울만큼....
책읽기는 숨쉬기와 같다. 환자들의 경우에 책을 읽으며 아픔을 잠시 잊는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영혼을 치유받는다. 또 소설은 마음이 메마른 사람들을 감정의 세계로 인도한다.
책에는 우리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을 움직이는 마법의 힘이 있다.

찰스디킨스의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주인공은 자존, 존엄, 공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배을 수 있는 좋은 역할모델을 발견한다. 잔인한 계부가 아무리 심하게 그를 괴롭혔더라도 그의 영혼은 다치지 않았다.
소설 친구들이 소중한 보물을 지키는 경비대처럼 그의 영혼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책은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며 자아를 마주하게 한다. 또한 피난처가 되어주고 경험을 전달하며 관점을 바꾸고 의미를 부여한다.

 시 창작은 내면에 울림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굳어 있던 뭔가를 움직이거나 닫힌 공간을 열 수 있다. 단어 하나하나가 기억의 잡동사니에서 빠져 나오고, 기억은 다시 거주 가능한 곳이 된다.
오르트하일의 소설 <가까운 사랑>에 나오는 서점의 주인 카타리나는 다양한 사람에게 환상적이며 감동적으로 적용한다. 카타리나는 함께 소리내어 책을 읽음으로써 남편 게오르크가 자신의 감정을 말하도록 한다.
p.56

자기와의 문학적 대화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책이란 삶으로 돌아가는 길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책에 잠겼다가 
다시 온전한 사람이 되어 
책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된 단체 독서의 효과나 독서 모임에서의 책읽기는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데 시간은 걸리지만 혼자 읽으면 종종 지나치는 것들을 이끌어 내는 묘미가 있다. 환자들의 치료에도 독서가 이용되는 것은 어휘력이 크게 확장되고, 감정을 흔들어 실제로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작가들이 힘든 시기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독서는 어떤 것인지 감정을 돌아보고 문학적인 치유의 효과들을 오래 두고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