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생 새움 세계문학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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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883년에 처음 출간되고 톨스토이로부터 [래미제라블]이 후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인물, 사건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다. 너무나 뻔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다음 장면을 보게되어 끝까지 읽어 나간 드라마 같은 소설..

하지만 삶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기막힌 일들이 포진해 있음을 나는 안다.

잔느라는 시골 여성 귀족 여성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다른 현대 소설처럼 복잡한 장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지루하기도 하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작은 마을에는 등불이 켜졌다. 하늘에도 총총한 별들이 빛난다. 불밝힌 집들이 드문드문 한 점 불처럼 어둠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갑자기, 언덕 너머, 전나무 가지 사이로, 커다랗고 붉은 달이 졸음에 겨운 듯 솟아올랐다.
p. 24 알퐁스도데의 <별>처럼 풍경묘사가 아름답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잔느는 수도원에서 나와 미래 계획에 들떠있다.
그러다 우연히 젊은 귀족 쥘리앵을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바로 결혼하게 된다.

그는 여자들이 꿈꾸고 모든 남자들이 불쾌해 할 그런 행복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가 가무잡잡하고 매끈한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보일만큼 반듯한 눈썹 때문에 검은 눈매는 더 깊고 부드러워 보였고 흰 눈동자에는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듯했다. 번민하는 듯한 그 눈의 매력은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사소한 말조차 중요하게 느껴지게 했다.
p.52-53

딸을 순수하게만 키우려고 했던 아버지 덕분에 잔느는 세상을 모르고 수도원에서 지냈다. 처음 다가온 멋진 남자의 외모에 반하고 첫인상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된다 . 아름다운 사랑에 나까지 설레는 기분~ 사랑의 시작.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음에 탄식이 나왔다.
신혼여행 이후 그들에겐 사랑이 없었고 사랑하던 사내는 차츰 변해갔다. 그 이후의 생활은 잔느라는 여자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반복이었다.
과연 이 남자는 변한걸까?
본래의 마음을 숨기고 사랑을 가장한 접근이었을까?
잔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이 있을까?

네가 살아가는 일을 얼마나 알지 모르겠다. 특히 딸애들에게는 조심스럽게 감추는 비밀들이 있단다. 딸애들은 우리가 딸의 행복을 책임질 남자의 품에 안겨 줄 때까지 정신이 순수하게, 한 점 오점이 없도록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에 씌워진 베일을 걷는 건 그 남자의 몫이란다....(중략)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거라.
너는 온전히 네 남편의 소유라는 점 말이다.
p.94

그렇게 아끼던 딸의 순수함을 자키려던 이유가 고작 남편될 사람에게 오점없이 주기 위함이라니.. 이 문구가 답답하고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정확히 무엇을 알았을까?
무얼 짐작했을까?
어떤 예감처럼 우울하고 고통을 느꼈을까?

이 말을 듣는 나조차 압박에 짓눌려 숨이 막혀버릴 듯했다. 남자가 여자의 행복을 책임져 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편의 소유라니...
그때까지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한다는 말도 잔느를 불행하게 몰았다.

잔느가 그에게 애정어린 징책을 하려고 들면 그는 아주 거칠게 응수했다.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겠어?"
그녀도 스스로 놀랄 만한 태도로 체념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 영혼도 마음도 그녀에게 닫혀 버린 사람이었다.
p.137

만나서 사랑하고 애정하는 마음과 프로포즈로 결혼했던 그들이 갑자기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되었을까?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어떻게 괴로워하지 않을까?
이런게 인생일까?
그들이 사랑이라고 착각한 걸까?
그녀에게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감각이 꺼져 버린 잔느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고, 상처입은 그녀의 마음, 감상적인 영혼만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둣했다. 욕정 없이 들뜨고, 꿈에는 열정적이지만 육체적 욕구에는 죽어버린 그녀의 마음은 증오심 어린 혐오감에 가득 차서 그 추잡한 동물성에 질겁했다.
p.231

이렇게 굴곡있는 서사가 갑갑한 이유는 주인공 잔느의 삶에 대한 태도가 정말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삶을 바꾸려는 의지 없이 시골에서 정해진 대로만 살아가는 운명론적 인물이다. 정말 평면적인 인물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사건이 있든 성격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

남편에게 애정을 쏟지 못하자 아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도 필요 이상의 것. 도를 넘치는 어긋난 사랑으로 아들마저 떠난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전형적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아들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결국 자신이 내쫓은 하녀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귀족의 처참한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존재가 고유의 냄새를 지녔듯이 그 방의 냄새, 그 방이 간직해 온 냄새, 낡은 거처의 모호하고 감미로운 냄새, 흐릿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냄새가 잔느에게 스며들어 추억들로 감싸고 그녀의 기억을 취기에 빠뜨렸다. 그녀는 두 의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 과거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숨을 헐떡였다.
p.374

이 책의 원문 제목은 <Une Vie>로, 사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번역이 잘못됐으며 [어떤 인생]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지만 옛날부터 이렇게 표현한 관례상 여자의 인생이라고 제목을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물론 책 내용을 미루어 봤을 때 주인공 잔느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이 좀 더 직관적이고 와닿긴 하지만 모파상이 의도한 것은 한 '여성'이 아닌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러면 작품의 배경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자연에 비해 인간 생의 허무함을 그리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작품해설을 읽으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더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테스>에서 사생아를 낳은 그녀가 어머니에게 왜 남자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냐고 원망하던 구절이 생각난다. 부모는 자식에게 행복이 보장된 길만을 안내해 주고 싶지만 그 미래는 아무도 점칠 수 없다.

여자의 인생이, 어떤 일생이 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예기치 않게 들려올 때는 무심했다가 소설 속 이야기를 읽다보니 우리네 인생도 그다지 다를게 없다. 어쩌면 삶이란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고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행복에 눈을 뜰 때면 지난 고통이 사라져 버린다. 잔느는 힘겨운 인생 뒤에 떠나버린 아들의 딸을 안고 마지막으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생에 무한한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낀다.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들이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쁜지도 않답니다.

인생에 아무런 환상이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이 어느 틈엔가 바늘구멍만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나의 인생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인생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순수했던 잔느처럼 꿈꾸고, 현실은 하녀 로잘리처럼 당차게 살고싶다. 현실의 삶은 순수한 사람이 살기에는 벅찬 곳이라 잔느처럼 사람애게 세상에 속아 초라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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