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의 새로운 상상력
국내 최초 재난•공포 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역작!

둥근 달에게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듯한 보랏빛 표지 그림이 몽환적이다. 김유정 소설 문학상 수상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이경 작가의 소개가 짧게 있었다. 소재가 특이하고 스토리는 박진감 넘치는 색다른 장르의 신선한 소설이었고 마지막까지 궁금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허물을 벗지 않으면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온 몸이 허물에 덮이는 피부병으로 밤의 도시 속 D구역에 격리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설 속의 거대한 뱀 '롱롱'이 허물을 벗게 될 때 자신들 몸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는 전설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전설 속의 뱀 '롱롱'을 찾아 나선 파충류 사육사 '그녀'와 방역 센터의 입소자들. 허물에 덮인 그들이 롱롱과 마주치는 순간,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 제약회사의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작가의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구축된 거대 도시. 재난과 질병에 포위된 인간의 극한 공포,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간절한 '소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을 나와야 했을 때 후원금 통장을 털어 동물원 근처에 방을 얻었다. 동물원은 보육원과 비슷했다. 새끼들은 어미와 떨어져 사육사의 손에 자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뱀을 지켜보다 돌아왔다. 뱀은 고요했다. 그녀처럼.
p.24

숭배의 대상이었던 뱀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공포의 대상이 됐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타이어 동굴을 지키던 사람들이 갑자기 빠져나던 이유를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사육장에 있는 뱀을 이용해 공포를 부풀리는 이유가 고작 프로틴을 팔기 위해서라니. 납득하기 힘들었다.
p.146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하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과 잉여 생산물을 교활하게 연결시키는 전략을 활용한다. 우리 자신의 분명한 분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풍문에 의해서 쫓게 되는 허상과 실재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튀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제 손으로 터를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는 것이지. 너는 스스로 허물을 벗으면 마땅히 다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게지.
p.201

이런 소설을 상상 속에서 끄집어 내어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를 보면 비상한 천재들 같다. 언제나 별거 아닌 생각을 특별한 시선으로 달리해 보는 실험정신과 많은 가설들을 내세운 스토리 전개가 흥미롭다. 

파충류를 신으로 숭배하는 둣한 토테미즘에 빗댄 이야기와 혼자 벗겨내기 힘든 허물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격리되어 사는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을 현실처럼 혹은 가상의 세계처럼 마음껏 상상하게 만든다. 

어떤 사회에서든 특정 부류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함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또 어떤 부류는 희망을 조성한다.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선택에 따른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그 불안과 공포를 악용하는 사회와 기업의 윤리와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적인 풍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에 기인한 소망이라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의 간절한 이야기 전개는 끝까지 박진감 넘친다. 그리고 마지막이 궁금해져서 끝을 행햐 읽게 만든다. 열린 결말을 맺음으로 더욱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공포가 이념이 되고, 이념이 공포를 강화시켰다. 그 불행한 순환 속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허물 뿐이었다. 공박사는 시민이 아니라 시민들의 허물이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 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p.2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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