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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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아파서요. 책을 읽으면 좀 덜 아프거든요. " (p11)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위로를 찾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늘 서점으로 향하곤 했다. 지금은 온라인 서점을 훨씬 많이 이용하지만 공간이 있는 서점에서 직접 맡을 수 있는 종이 냄새와 책의 밀도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은 그 자체로 이미 위로와 치유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엔 오랫동안 서점에 머물며 책과 책 사이를 서성이고 손이 닿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만져보고 읽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이 왜 그렇게 좋은 걸까 생각해보지만 그냥 좋기 때문이란 답이 제일 어울리는 것 같다. 단지 머릿속의 충만함이 아니라 향기와 감각으로, 감정과 생각으로, 나의 온몸이 함께 동참하는 즐거움 중 하나이니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장르를 떠나 저자마다 나에게 주는 것이 다르고, 그 다름을 좋아한다. 소설의 경우엔 작가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교훈은 이거야!라고 확언하는 작가보단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던 내면의 깊이를 이야기꾼이 되어 다만 전달하는 것이 좋다. 자신도 왜 그런 이야길 쓰는지, 쓰고 싶은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쓸 수밖에 없어 쓰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작이 아닌 장르에선 생각을 뚜렷하게, 노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좋다. 눈치 보지 말고, 배려하지 말고, 자신의 색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를 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정희진도 그런 사람이었다. 정희진은 조심조심 속삭이지 않았다. 이런 글을 만나면 내용에 동의를 하든, 안 하든 읽는 것이 즐거워진다. 좀 더 분명히 전달되는 생각을 통해 나에게 없던 다름을 만나게 되고,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나에게 책 읽기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극, 상처, 고통을 해석할 힘을 주는, 말하기 치료와 비슷한 '읽기 치료'다. " (p14) 

 

 

 

읽는 것이란 나를 흐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다시 읽고, 나에게 없는 새로운 시선을 경험하며 고여있지 않게 해주는 것을 치료라고 말한다면, 독서는 분명 나를 환기시켜 주는 '읽기 치료'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쓰는 것' 역시 치료라고 말하고 싶다. 때론 읽기보다 더 강력한 치료라고 말이다. 읽는 것이 담는 것이라면, 쓰는 것은 구체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표현되어 어떤 의미를 갖게 된 활자는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생각에서 몸으로 이동하는 것이 쓴다는 것의 의미이고, 그렇게 육화되고 정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이 쓰고 또 쓰는 것이 아닐까..

 

 

 

정희진의 독서 노트를 읽는 건 새로웠다. 내가 읽은 책의 리스트와는 겹치는 부분이 지극히 적었지만 그나마도 감상은 조금씩, 또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감상의 차이를 읽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고 정희진이 읽은 모든 책들을 나도 똑같이 읽고 싶진 않았는데 그 책이 아니더라도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읽어가는 사람인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의 리스트 자체보단 어떻게 읽는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나의 관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읽지 않은 책의 감상을 읽는 것도 즐거웠다. 나는 이렇게 할 말을 해야 할 바엔 용기 있게 직설적으로 해나가는 사람이 좋다. 

 

 

 

정희진은 책 읽기에 대한 방향이 뚜렷한 사람이다. 정확히 말해 '자극적인 책'만 읽는다고 말한다. 예상 가능한 내용이나 가독성이 지나치게 좋은 책은 읽지 않는다고 하고, 읽고 난 후의 감상에도 모호함이 없었다. 실제로 어떤 것에 대해서든 감상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 자체를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정희진의 글에선 치열했던 독서의 흔적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책은 피사체를 내가 모르는 위치에서 찍은 것이다. 하늘 위에서가 아니라 건물 옆에서, 지하에서, 건물 뒤에서, 아주 멀리서, 혹은 나와 완전히 다른 배경에 있는 사람이 찍은 것이다. 건물 안에서는 건물을 볼 수 없다. 즉 피사체, 문제 대상(사회)을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그 안에 있으면 자신을 알 수 없다. " (p23)

 

 

 

나는 위의 문장에 격렬히 공감한다. 나와 다른 위치에서 본 세상을 읽는 것, 그것이 책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글 역시 나에게 새로운 시선을 주었고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방향에서 바라본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어찌해도 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에 깊이를 더하거나 정화시켜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것, 익숙한 행복을 느끼는 것도 좋다. 나에게 책은 끝없는 배움이자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정희진처럼 생각하고, 읽고, 쓰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책과 사람의 만남은 내가 좋아하는 표현으로 말하면, 철저히 발효하여 제3의 물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 (p28)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읽는 사람과 글이 만나면 새로운 물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의 수만큼 서로 다른 물질들을 만들어낸다. 같은 것을 읽더라도 각자의 경험이나 지식, 기질에 따라 모두 다른 감상들을 말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자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즐겁다. 그러니까 나에게 읽기란 책 한 권에 대한 나의 경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책과 다른 이의 경험으로까지 확장된다. 나와 다른 위치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시선에 새로운 시선이 더해져 발효는 더 깊어진다. 세상에 반응할 수 있는 감각들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어찌 보면 모든 글은 감상문인 것 같다. 자신의 위치에서 본 세상과 삶을 다양한 장르를 통해 묘사하거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왜 읽는지, 어떻게 읽었는지, 왜 쓰는지에 대해서 늘 궁금해한다. 삶에 대한 애정이 있는 한 계속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책이란 '갈증'인 것 같다. "우리가 찾는 것은 물이 아니라 강력하고 생명에 찬 갈증인지 모른다"는 말 역시 어느 책에서 읽은 문장인데 정희진처럼 슬픔이나 아픔, 어두운 감정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사람들이 나는 좋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이 바로 삶에 대한 추동력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몸이 슬픔에 '잠긴다', 기쁨에 '넘친다', 감동에 '넋을 잃는다'..... 텍스트를 통과하기 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 " (p19)

 

 

 

나는 '통과'라는 단어의 의미를 늘 체험하고 있다. 단지 머릿속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몸을 반응시키는 경험을 하고 있어서다. 좋은 책을 만나면 실제로 감각 세포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때로는 환희의 전율이고, 때로는 절절한 통증이다. 그렇게 온몸으로의 체험은 경험이 된다. "삶의 결이 달라진다"는 어느 책의 문장처럼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것이다. 반응 요소가 많아지는 건 내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것, 그러므로 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터득한 것은 실제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책 한 권으로 삶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내 세포들 중 상당 부분은 활자의 영향으로 춤추고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없이 감사하다. 서로를 발효시킬 수 있는,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역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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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0-25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읽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 , ˝모든 글은 감상문˝ - 물고기자리님 문장홀릭 독자 A씨의 밑줄

`자극을 주는 책` 이 아니라 `자극적인 책`은 너무 자극적인 표현같은데, 그런 문장을 만드는 걸로만 봐서도 정희진 씨는 방향이 뚜렷한 분이군요.
˝책은 피사체를 내가 모르는 위치에서 찍은 것˝ , ˝제3의 물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밑줄~

저는 `통과`보다 `관통`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기도 하죠^^; 거기에 새 살이 들어차는 과정이 독서 이후이기도 하고...물론 관통할 만한 책을 찾는 건 어렵지만 심마니가 산을 타며 삼을 발견하듯, 농부가 밭을 일구어 자신이 원하는 수확을 얻듯.

도서관에서 이 책 대출을 놓치고는 여직 못 읽고 있었는데, 너무 자극하시는 거 아닙니까^^!

물고기자리 2015-10-25 16:21   좋아요 1 | URL
저는 독자 A 씨의 직관과 감성 홀릭입니다^^ㅋ /정희진 씨는 방향이 확실한 사람이었어요. 가끔 저는 그런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부럽기도 해요. 저는 모든 방향을 기웃거리는 형편이라 말이죠ㅎ
관통이란 표현이 더 강렬하네요. 이렇게 단어의 맛을 음미하는 거 너무 좋아요. 새살이 들어차는 것도요~

살리미 2015-10-25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진 리뷰네요^^ 저도 물고기자리님 문장홀릭중입니다^^

물고기자리 2015-10-25 18:02   좋아요 0 | URL
과분한 칭찬이라 부끄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위에 아갈마님의 댓글에 대한 제 반응은 굉장히 뻔뻔했네요ㅋ(독자 A 씨에 대한 칭찬은 완벽한 사실이니 오해 마세요 아갈마님~)

저도 물 흐르듯 편안한 오로라님의 리뷰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