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이 년 전 당신의 글들과 단상을 적은 공책들로 가득 찬 작은 여행가방을 제게 주셨습니다. 평상시처럼 장난스럽고 짓궂은 말투로, 당신이 떠난 후, 그러니까 당신 사후에 이 글들을 제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 (p43)

 

 

 

아버지의 여행가방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집으로, 1957년에 수상한 알베르 카뮈부터 2008년의 J. M. G. 르 클레지오까지 모두 열한 분의 수상 연설이 수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여행가방'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터키 이스탄불 태생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연설인데, 이 책의 제목으로도 인용되고 있다. 최근에 읽었던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 회고록인 「이스탄불」에 의하면 파묵의 아버지는 권위와는 무관한 분으로,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해 기회가 될 때마다 집에서 도망치길 반복하셨다. 파묵의 수상 연설 도입부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여행가방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익숙한 것이었지만 그 가방에 감히 손을 댈 수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의 집필실을 찾으셨던 날 이후로 며칠이 흘렀지만 가방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그 주위만 서성거렸다는 것이다.

 

 

 

˝왜였을까요? 물론 그건 가방 안에 숨겨진 물건의 신비스런 무게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그 무게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방 안에 자신을 가두고 책상에 앉아 구석에 틀어박혀서 종이와 펜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창조해낸 것, 즉 문학의 의미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 (p44)

 

 

 

파묵의 아버지는 당신이 한창때이던 1940년대 후반에 이스탄불에서 시인이 되고 싶어 하셨었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시를 쓰며 고단한 문학적 삶을 살고 싶어 하진 않으셨다. 아버지는 큰 서재를 가지고 계셨고, 때로 서재 앞에 있던 긴 의자에 누워 사색과 공상에 빠지곤 하셨다.

 

 

 

˝제게 진정한 문학의 출발지는 책들로 둘러싸인 방에 자신을 감금하는 것입니다. ˝ (p51)

 

 

 

하지만 파묵이 겪었던 아버지는 외로움을 피해 친구, 사람들, 모임, 농담, 그리고 집단에 섞이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서재는 이 세상의 작은 그림처럼 느껴지곤 했지만 그것은 이스탄불에서 본 세계였다. 세계문학은 존재하되 그 중심은 자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터키인은 그 경계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서재 한 귀퉁이에는 이스탄불의 책과 문학이 있었지만 이것과는 상이한, 고통과 희망을 주는 서양문학 책들이 있었다.

 

 

 

"저는 아버지 역시, 후에 제가 나이 들며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삶에서 탈출하여 서양으로 도망치기 위해 소설을 읽었다고 느꼈습니다. " (p54)

 

 

 

파묵의 아버지는 단조로운 가정생활을 지루해하다가 가족을 떠나 파리로 가서는 자신을 호텔 방에 가두었고, 그곳에서 쓴 것들을 터기로 가져왔다. 아버지의 가방을 보며 이것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는 것을 느꼈다. 작가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쓰는 것은 사회, 국가, 민족의 눈을 피해 비밀스럽게 행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가방을 보면서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이유 때문에 화가 났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고, 무언가를 위해서 아주 작은 충돌조차 참아내지 않으시고,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사셨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화가 났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화가 났다'기보다는 '질투했다'고 말할 수 있고, 어쩌면 그 표현이 더 적확했기에 내적으로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그럴 때면 분노에 찬 목소리로 ˝행복은 무엇인가? ˝ 하고 자문하곤 했다고 한다. 홀로 방에서 심오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인지, 모든 사람과 조화롭게 사는 척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몰래 글을 쓰는 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이나 신문들 모두 삶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행복인 것처럼 떠들어 댑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 정반대의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연구하는 일은 가치 있지 않을까요? 가족들로부터 수없이 도망쳤던 아버지를 제가 얼마나 알고 있고, 그분의 내적 혼란을 얼마나 감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 (p56)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열고, 그 안의 공책들을 읽기 두려웠던 진짜 이유는 아버지가 훌륭한 작가 일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여행가방에서 위대한 문학이 나온다면 아버지의 내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아버지는 작가가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로서만 남길 바랐다는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가방을 처음 연 것은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불행이나 비밀을 알고자 했던 충동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는 없으리란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진짜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 목소리는 저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던 인물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 (p57)

 

 

 

오르한 파묵이 수상 연설에서 아버지의 가방을 이야기했던 이유는 그 가방을 통해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던 데 있었고, 파묵에게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변방에 있다는 것과 진정성 이 두 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는 중심부가 있고, 그것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고, 깊은 모멸감, 자신감 부족, 무시당한다는 두려움과 싸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학이 진정으로 설파하고 연구해야 할 것은 인류가 느끼는 두려움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이와 연관 지어 자신을 평가절하하는 두려움입니다. ˝ (p59)

 

 

 

˝단지 제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세상에 중심부가 있다는 생각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 (p60)

 

 

 

˝도스토옙스키가 평생 서양에 대해 느꼈던 사랑과 분노의 감정을 저 역시 여러 차례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에게서 진정으로 배운 것, 진정한 낙관주의의 원천은 이 위대한 작가가 서양과의 애증 관계에서 출발해 이 애증의 다른 쪽에 세운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 (p61)

 

 

 

그렇다면 오르한 파묵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진솔한 고백을 읽자니 코 끝이 찡해졌고, 아버지의 여행 가방 이야기로 담담히 시작되는 파묵의 수상 연설은 겉치레 없이 아름다운 한 편의 문학 그 자체로 여겨졌다.

 

 

 

˝저는 쓰고 싶어서 씁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씁니다. 제가 쓴 것 같은 책들을 읽고 싶어 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많이 화가 나기 때문에 씁니다. 방에서 하루 종일 앉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씁니다. 오로지 현실을 바꾸었을 때에만 그것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씁니다. 저 자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이 이스탄불에서, 터키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지를 전 세계가 알았으면 해서 씁니다. 종이, 연필 그리고 잉크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에 씁니다.



문학을, 소설을 무엇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에 씁니다. 저의 습관과 열정이기 때문에 씁니다. 잊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씁니다. 문학이 제게 가져다준 명성과 관심이 좋기 때문에 씁니다. 홀로 있기 위해 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제가 왜 그토록 화가 많이 나 있는지를 어쩌면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씁니다. 제 작품이 읽히는 것이 좋아서 씁니다. 한번 시작한 이 소설을, 이 글을, 이 페이지를 이제 끝마쳐야지 하는 생각에 씁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게서 이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씁니다.



도서관들이 영원할 것이며, 저의 책들이 그 서가에 꽂힐 것이라는 것을 순진하게 믿기 때문에 씁니다. 삶, 세계, 모든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롭기 때문에 씁니다. 삶의 그 모든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단어들로 표현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씁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씁니다. 항상 갈 곳이 있는 것 같지만 마치 꿈속에서처럼 도저히 그곳에 갈 수 없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씁니다. 도무지 행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씁니다. 행복하기 위해 씁니다. ˝ (p64)

 

 

 

사실 이 리뷰를 쓰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고, 파묵의 정신에 좀 더 공감케 하고자 그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게 되었다. 오르한 파묵이 내 생에 최고의 작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문학에 대한 경험 역시 짧지만 가독성과 상관없이 그의 글에선 그가 그토록 우려하던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라는 사실을 떠나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알아가다 보니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책을 읽는 이유와 같았다. 쓰는 사람의 고통과 행복을, 읽는 사람으로서의 고통과 행복으로 코 끝이 찡해지도록 교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가방의 주인공인 파묵의 아버지는 외로운 문학의 길보단 행복한 일상을 선택하신 분이셨지만 파묵이 작가가 될 수 있는 환경과 자극을 주셨다. 그에게 강한 신뢰를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어느 날엔가는 이 상을 받을 거라고 오랜 세월 동안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2002년 12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제게 이 커다란 상과 영광을 주신 한림원 위원님들 그리고 귀빈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계셨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 (p67)

 

 

 

파묵의 아버지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가방을 꾸려 세상의 중심을 향해 떠나는 실질적인 여행을 했다면, 오르한 파묵에겐 아무 때고 훌쩍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는 자신의 내면이 바로 그의 여행가방이자 중심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그의 가방을 열어 보며 그 속에서 자신과 같이 세상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다는 소외감을 만나기도, 결국엔 변방을 자신의 중심으로 만드는 희망을 만나게도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저는 읽고 싶어서 읽습니다! 도무지 행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읽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읽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조금은 행복해졌습니다.. 라고. 자신을 잃기 위해 책을 읽지만 결국 잃어버린 나를 찾게 되는 독자로서의 여정을 사랑한다고 나 역시 고백하고 싶어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8-22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묵의 ˝아버지의 가방˝은 마치 오에 겐자부로 <익사>의 파묵판 같아요.
파묵의 아버지가 상을 받을 거라 격려하던 부분은 에밀 아자르와 (푼수같은) 엄마의 모습 같기도 하고^^...
인간은 참 멀면서도 비슷하단 말이죠.
올리버 색스의 일기장은 천 권이 넘는다고 하죠. 환자를 진단하고 사색한 많은 글...우리는 글(일기 외 기타 등등)을 `나`라는 지향점에서 출발하고 모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렇게 `수많은 외부성`이 공존해야만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걸 쉽게 잊는 듯.
결국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물고기자리 2015-08-22 18:31   좋아요 1 | URL
인간은 비슷하단 말도, 나와 밖의 공존이란 말도 공감합니다^^ 파묵은 자신을 스스로 외롭게 만들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내적, 외적 요인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일상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한편으론 부러웠을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가거든요. 오로지 자기 자신의 것으로만 살 수 없기에 인간은 불행하기도, 행복하기도 한 것 같고요. 나이 들수록 작가에 대한 동경보단 인간적인 연민이나 이해를 하게 되고 사람으로서 알게 되는 의미에서 책 읽는 것이 좀 더 즐거워지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글만 달랑 던져 놓고 정신없이 다른 일을 하다가 달려와서 그런지 제 댓글도 정신 사나운 것 같네요 ㅋ

보물선 2015-08-22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하기 위해 읽습니다! 좋네요!!
나이들어도 눈이 온전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읽고 싶어요.

물고기자리 2015-08-22 21:21   좋아요 0 | URL
네 ^^ 읽고,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평생 눈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