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하루키의 글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심신이 피곤하다 싶을 땐, 줄거리를 따라갈 필요 없는 하루키의 수필을 펼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쉼이란 결국 읽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하루키의 글은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금세 집중하게 된다. 하루키의 정서가 나와 비슷한 주파수인지는 몰라도 애써 읽어도 곧바로 흩어져버리는 단어의 낭비 없이, 물 밑에서 고요히 유영하듯 나른하고 편하게 읽힌다.
자신의 취항과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지만 웅변가라기보단 차분한 관찰자에 가까워서 설득하려거나 강요하지 않는 소박하고 명료한 문체를 지녔다.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밀착되지 않으면서 내면의 섬세한 정서를 반응시킨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 의식이 고양되는 느낌이 아니라 진공 상태에 머물거나 또는 수면 밑으로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지극히 고요함 속에서 낯섦을 통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심신이 무겁고 피로해지면 이런 느낌이 그리워진다. 많은 것을 묘사하면서도 수다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하루키식 표현법은 꽤 매력 있다. 그리스와 터키의 여행 에세이 「우천염천」 역시 읽는 재미와 쉼을 준다. 여정을 동반하며 '마쓰무라' 씨가 촬영한 흑백사진들도 소박하고 조용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