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하루키의 글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심신이 피곤하다 싶을 땐, 줄거리를 따라갈 필요 없는 하루키의 수필을 펼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쉼이란 결국 읽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하루키의 글은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금세 집중하게 된다. 하루키의 정서가 나와 비슷한 주파수인지는 몰라도 애써 읽어도 곧바로 흩어져버리는 단어의 낭비 없이, 물 밑에서 고요히 유영하듯 나른하고 편하게 읽힌다.



자신의 취항과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지만 웅변가라기보단 차분한 관찰자에 가까워서 설득하려거나 강요하지 않는 소박하고 명료한 문체를 지녔다.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밀착되지 않으면서 내면의 섬세한 정서를 반응시킨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 의식이 고양되는 느낌이 아니라 진공 상태에 머물거나 또는 수면 밑으로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지극히 고요함 속에서 낯섦을 통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심신이 무겁고 피로해지면 이런 느낌이 그리워진다. 많은 것을 묘사하면서도 수다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하루키식 표현법은 꽤 매력 있다. 그리스와 터키의 여행 에세이 우천염천 역시 읽는 재미와 쉼을 준다. 여정을 동반하며 '마쓰무라' 씨가 촬영한 흑백사진들도 소박하고 조용한 여운을 남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5-05-09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심신이 피곤할 땐
하루키의 에세이를 펼칩니다^^

물고기자리 2015-05-09 20:05   좋아요 0 | URL
저랑 똑같은 분이 있네요 좀 전에도 하루키의 <일상의 여백>을 읽고 있었어요 ㅎ

고양이라디오 2016-02-01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 이 에세이도 너무 좋아하는 에세이 중에 하나랍니다. 사실 하루키 에세이는 다 좋아하지만...

물고기자리님의 글에 공감합니다ㅎ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 고요함.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침잠하다가 문득 여행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루키의 놀라운 성찰을 접하게 되면, 의식이 고양됩니다^^ 그게 너무 좋아요. 한번씩 하루키씨가 보여주는 진지한 성찰이요ㅎ




물고기자리 2016-02-01 13:20   좋아요 1 | URL
헉! 이렇게 오래된 글에 댓글이^^ 덕분에 제 글을 다시 읽어 봤어요ㅎ

맞아요. 고양이라디오님 말씀처럼 고양을 시켜주기도 하지요. 제 느낌으론 높은 곳에서 요란스럽게 펄럭이는 고양이 아니라 차분하고 명료해지는 느낌이랄까요, 고양마저도 강요당하지 않는 그 느낌이 참 좋아요.

저는 외출할 시간이 길어지면 틈틈이 읽으려고 하루키 에세이를 꼭 들고나가요!!ㅎ

고양이라디오 2016-02-01 13:37   좋아요 1 | URL
물고기자리님 글들 중 하루키에 관련된 글들 먼저 읽어보려고요ㅎㅎ

제가 느꼈지만 언어로써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렇게 물고기자리님의 글을 통해 확인하니 너무 좋네요ㅎ

물고기자리 2016-02-01 13:48   좋아요 1 | URL
고맙기도, 부끄럽기도 하네요^^ 근데 제가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건 이미 하루키를 거의 읽고 난 후라서 썼다고 할만한 것도, 읽을만한 것도 없을 거예요;;

가끔 휴식처럼 하루키를 다시 읽으려고 하고, 그땐 좀 더 성숙한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지만 제 생각엔 처음 읽을 때의 느낌이 더 중요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다른 책들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는 반면 하루키에 대한 리뷰만큼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제가 마침 힘든 시기를 겨우 통과하고 읽었던 글들이라 애착이 남다르거든요ㅎ

고양이라디오 2016-02-01 17:30   좋아요 1 | URL
물고리자리님 말씀에 저도 공감이 가네요. 저는 예전에는 하루키 책에 대한 리뷰를 싸이월드에 남겼었습니다. 그걸 다시 보고 싶은데 싸이월드가 이상해져서 잘 안되더군요ㅠ

물고기자리님의 하루키 리뷰들은 제 생각에는 읽은만할 것 같습니다ㅎ
이 리뷰가 좋았으니깐요^^

좋은 저녁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