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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텍스트 파도에 떠밀리다
최근 읽은 프랑스 소설로 내게 좋은 인상을 남긴 카롤린 봉그랑에 <밑줄긋는 남자>와 같이 발랄하거나 사랑스럽지는 않을 지언정 가끔 접한 프랑스 영화의 황당함과 독창성에 혀를 차는 경우가 생기듯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결코 만만치 않은 소설일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왠걸 서술이나 형식기법이 기존에 접해보지 못한 생소함과 이렇게 텍스트의 절제미는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로인해 인해 2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자그만치 2주라는 시간을 소요하고서야 완독하였지만 그동안 나는 올가미에 갇혀 있었다. 처음 몇페이지를 읽으면서 신선함과 텍스트의 매력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대로 덮고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도무지 책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않고 뽐므라는 사과같은 여성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또다시 책을 집어들고 어떻게든지 <레이스 뜨는 여자>의 의미를 찾고 이해해보려는 지금의 내모습이 어릴적 처음으로 같던 피서지 바닷가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면서도 헤엄쳐보려던 그때처럼 텍스트 파도에 떠밀려 버둥거리면서 간신히 육지에 닿았지만 다음에 재독하게 된다면 제대로 유영해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영화도 찾아보아야 할듯 싶다. 그러나 당장은 영화까지 받아들이깅는 과부하가 일어날것만 같기에 당분간은 자제하려 한다.
뽐므는 사과같이 겉과 속이 반들반들한 여자이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수 없으나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뽐므는 꽉찬 느낌을 준다. 아버지는 어릴적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술집에서 일했으며 열여덟살이 된 뽐므는 시골을 떠나 파리에 와서 미용일 보조가 되고 술집을 그만둔 어머니는 유제품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생활을 이어나간다. 같은 미용실 동료 마릴렌과 함께 떠난 여름 휴가에서 미래의 박물관장을 꿈꾸는 에므리를 만나 사랑을 하고 동거를 하게 되지만 처음 뜨거웠던 감정도 순종과 순응만 알고 자기주장이라고는 없는 뽐므에게 차츰 싫증을 내었면서 예정된 이별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이별하는 순간조차도 "아, 좋아요!"에 이어 "알고있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짐을싸서 그 집을 나온다. 이제 뽐므는 사랑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스스로의 미숙함과 무가치함에 수치심을 느껴버린 그녀는 거식증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세상과 단절을 시도한다.그리고 몇년후 정신병원에 에므리와 뽐므는 재회하게 된다는 통속적인 연애소설의 맥을 잇는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스포일러가 될수 있는 줄거리를 나열함에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닌 철학적이고 사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인간에게 있어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어릴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수동적인 모습에 길들여져 있었고 스스로는 침묵하고 있을지언정 대화가 오고가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짚어내는 소통방식을 가진 뽐므와는 반대로 연인인 에므리는 귀족집안 출신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지니므로써 본연의 뽐므보다는 자기식대로 변화시키려는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행동과 그녀의 소통방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소통이란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향 통행으로 시작되어 지는 것이다. 한쪽은 침묵이 배려라는 일방성과 또 다른 한쪽은 자기식대로 길들이려는 일방성은 제대로 소통을 이루어 내지 못하였고 소통단절은 뽐므에게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