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야철신(5)
 


[너 왜 여기 있는 거야?]
[생명의 은인이신 도련님께 의탁하려고요. 다른 반찬 좀 가져다 드릴까요? 저기~저 놈이 먹는 게 좋아 보이네요]

  새머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무기 직공의 밥상이다. 나야 짠지 하나로 밥 먹는 게 다지만, 그 정도의 지위면 최소한 3가지 찬은 가능하다. 내가 뭐랄 사이도 없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새머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찬 그릇 하나를 공중에 띄웠다.

[으아아악~]

   반찬을 집으려던 무기 직공이 뒤로 넘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다들 밥 수저를 내팽개치고 도망간다. 아주 잠깐의 순간에 대장간에 딸린 부엌이 휑해졌다. 나는 얼른 쫓아가 새머리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찬 그릇도 붙들었다.

[오오~역시 도련님! 재주가 보통이 아니시네요]

   새머리는 머리통이 작아서 그런 건지 도무지 눈치란 게 없다.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벌린 건지 생각도 안 하고 내 손에 있는 찬 그릇에만 정신을 쏟는다. 

[사람들 앞에서 그런 짓을 하면 어떡해!]
[그 놈만 반찬을 맛있는 걸 먹으니까 그렇죠. 도련님은 그런 거나 드시고..공평하지 않잖아요]
[공평은 무슨..난 원래 그렇게 먹어! 하여간 너 다시는 이러지 마라. 아니...너 빨리 가라!]

   열심히 도리질을 치는 새머리. 그 때쯤에 부엌문이 빠끔히 열리며 떡보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이~, 괜찮냐?]
[네. 들어오세요]

   떡보가 주변을 한 번 살펴본 뒤에 들어섰다. 그 뒤로 짚에 엮인 굴비처럼 나머지도 한 명씩 따라온다. 쭈뻣쭈뻣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밥을 입에 쑤셔 넣는다. 빨리 먹고 일어서려는 것이리라.

[너는 귀신이 안 무서워?]

  떡보가 소곤소곤 물어본다. 무기 직공은 밥 먹을 때 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 아무 것도 못 봤어요. 다들 갑자기 뛰쳐나가서 오히려 놀랐다고요]
[그래?]

   고개를 갸웃하던 떡보는 나머지 몇 수저 남은 밥을 대충 먹고는 대장간으로 가버렸다. 그 동안에도 나는 손에 든 새머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도련님~숨이 막힙니다요. 이러다 죽겠습니다]
[요괴 주제에 내 손에 죽으면 넌 사람만도 못한 거지]
[천주를 물리치신 도련님이신데, 저를 죽이시는 건 일도 아닐거라구요]
[천주? 그게 뭐야?]

   새머리의 설명에 따르면 물을 관장하는 하백의 동자라고 한다. 하백이라면 동명왕의 할아버지였던 거 같은데...맞나? 그 왜 우리나라를 세웠다는 동명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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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터매니아 2009-11-0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않죠.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세상 이치를 깨닳았네요.

최현진 2009-11-04 12:07   좋아요 0 | URL
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인것 같습니다.
 

        

 

 

1부. 야철신(4)  

 

  바닥을 딩굴던 새머리가 벌떡 일어나 이번에는 다리를 물었다. 말머리가 춤을 추듯이 다리를 흔든다. 오른쪽 왼쪽으로 휘젓는데도 끈질기게 붙어있다. 역시 요괴든 사람이든 쓸모없는 건 없는 법이다. 말머리의 주의가 분산되자 이때다싶어 급소를 발로 찼다.

[으으으윽..흐흐윽..]

  말머리는 나를 놓치면서 뒤로 나동그라졌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딩굴거리며 노랜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낸다.

[너..너 이놈~]

  말머리가 딩구는 와중에도 나를 노려보며 손을 뻗었다. 순간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어 급소를 한 번 더 찔렀다.

[아아아악~]

  말머리는 박통만한 입을 더 크게 벌리며 죽을 것처럼 와들와들 데다 쏜살같이 도망갔다. 놀랍게도 그저 보기만 하는 게 전부였던 내가 요괴를 이긴 것이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발이 간지러워 내려다보니 새머리가 발 등에 올라와 통통 뛴다. 도련님이란 말은 너무 쑥스러웠다. 고작해야 심부름꾼인 것을..

[다친 데는 없니?] 

[네, 도련님, 괜찮습니다]
[다행이다. 조심해라]

  발을 들자 새머리가 내려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어느새 서쪽으로 좀 움직인 것이 생각보다 지체한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점심도 없겠다 싶어 전속력으로 뛰었다. 나 같은 막내는 늦으면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다들 한번에 4-5번씩은 밥을 가져다 먹는데 순서에 늦으면 남은 게 없다. 세상에서 밥 못 먹는 일 만큼 괴로운 것도 없는 법이다. 차라리 잠을 안자고 말지...그리고 혹시라도 반찬이 남으면 살짝 싸가야 한다. 자리 보전한지 오래되신 아버지의 저녁 때문이다.

[아아..다행이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 보니 아직 밥을 먹는 중이었다. 내 몫의 보리밥을 주걱으로 담았다. 입맛이 없으니 물에 말아 먹으려고 큰 그릇에 담아 구석에 앉았다.

[물 말아 드시면 빨리 배고파져서 안 돼요, 도련님. 배 속에서 퉁퉁 불어버리거든요]

  한 숟가락을 막 입에 넣는 찰나에 주머니에서 소리가 들렸다. 입에 밥 수저를 문채로 들여다보니 아까 그 새머리다. 뒷골이 뻑뻑해졌다.

[니가 왜...]

  새머리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요괴가 미소를 지으니 좀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웃고 있다. 게다가 넉살도 좋다. 물 말아 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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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야철신(3)  

 

[어이~, 심부름 다녀와라]

   농기구 직공이 완성품을 가져다주라며 새 호미와 낫을 짚에 엮어 주었다. 이렇게 배달을 가는 건 귀족이나 부자들이 우리 대장간을 계속 이용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떡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여서 물품을 들고 대장간을 나섰다. 
 

   하늘이 흐린 게 비라도 오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길가에 사람은 별로 없고, 요괴들이 제 세상인양 돌아다닌다. 사람이 적은 날일 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사람이 그들을 통과하는 게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표정을 보면 과히 기분 좋지 않은 듯 싶어, 그들은 사람이 적을 때를 선호하는 게 틀림없다. 하여 정월 대보름 같이 거리거리마다 사람으로 가득한 날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온다. 잰 걸음으로 도착해 쪽문을 두드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담장이 끝나 꺾어지는 곳 쯤이 이상하다.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 하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항상 갖다 줘서 고마워]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여러 번 보아 얼굴이 익은 하인과 몇 마디 나눈 뒤에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뒤돌아섰다. 빨리 돌아가야 야단을 덜 맞기 때문에 뛰어가려는데, 한편으로는 소리가 들려오던 곳이 신경 쓰였다. 그냥 가자니 찜찜하고, 가본 들 내가 아는 척도 못할 것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그저 볼 수만 있을 뿐 옆 고을의 영험하신 법사님 같이 요괴를 쫓아낼 능력 같은 건 없다. 그 분은 오래도록 도를 닦아 그렇다는데 이참에 그분의 동자라도 되어 배워볼까 싶기도 하다. 대장간에서 심부름을 하나, 법사 밑에서 심부름을 하나 그게 그거니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시 망설이다가 호기심 때문에 결국 발걸음을 떼었다.

[흑흑..]

   우는 소리가 다가갈수록 커진다. 뭔가 기분 나쁘게 웃는 소리도 들린다. 이건 꼭 왈패들이 예쁜 삼월이를 놀릴 때 같다고나 할까. 식별이 될 만큼 근접해보니 말머리에 뿔이 달리고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몸집이 큰 요괴가 손바닥의 반만 한 크기의 새머리 요괴를 나뭇가지로 툭툭 치고 있었다.

[그냥 먹을까? 구워 먹을까?]  

[흑흑]
[좀 더 키워서 먹을까?]

   새머리야 울든지 말든지 말머리는 얄밉게 놀리듯 말한다. 내가 여기 조금만 더 서 있으면 분명 말머리가 고개를 돌릴 거다. 얼핏 보아도 힘이 쎄 보이는 게 한 대 맞으면 죽겠다.

[살려주세요~]

  땅바닥을 구르던 새머리는 나를 보았는지 비명을 지른다. 동시에 말머리가 고개를 돌린다.

[뭐냐, 넌~내가 보이는 것이냐?]

  눈이 마주친 순간 말머리가 우렁차게 말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아니고 도리질 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몸짓을 취했다.

[이 놈을 먹은 후에 너도 먹어야겠구나]

   숨 한번 들이킬 여유도 없이 말머리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래서 내가 관여를 안 하려고 하는 건데...자고로 호기심은 만사에 쓸모가 없다.

[이거 좀 놓고 말로 하면 안될까..요?]
[인간이랑은 말 안한다]
[지금 말하고 계시잖아...요]

   내 대꾸에 성질이 났는지 작았던 입이 박통 만하게 커지더니 물어뜯을 듯 으르렁 거린다.

[아얏!] 
 

   말머리가 신음소리를 낸다. 나를 잡은 팔이 따가운지 갑자기 펄쩍 뛰어, 덜미를 잡힌 채 흔들리던 내 몸도 같이 움직였다. 곁눈질로 보니 새머리가 그의 팔을 물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말머리가 나뭇가지를 든 오른 손으로 퍽하고 치자 새머리는 인형처럼 바닥으로 힘없이 널브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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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영 2009-10-2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주 흥미로운 소재의 글입니다. 고구려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지 궁금하네요.^^

최현진 2009-10-29 12:20   좋아요 0 | URL
고구려에 대해 우연히 공부를 하게 된 일이 생기면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happy 2009-10-3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마을이 끝나서 슬펐는데..어느새 연재를 다시 하시는군요.^^ 특이해서 기대가 되요. 작가님의 스타일을 상상해봅니다.

최현진 2009-10-30 16:05   좋아요 0 | URL
해피님..기대해 주시니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1부.야철신(2)  

 

  내가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것들을 보게 된 건 10살 때 부터였다. 그해 정월에 마마를 호되게 겪으면서 사경을 헤매다가 사흘 만에 깨어난 후부터 그랬다. 그 때 나는 정신은 들었으나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낮인데도 해가 들지 않아 어둑어둑한 방안에는 나 혼자 인데도 귓가에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깨어날까?]
[오늘까지 눈 못 뜨면 내가 먹어야지]
[에에~또 그러면 잡혀갈 텐데..]
[그러니까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먹고 튀는 거지. 넌 어디를 먹을래? 다리?] 
[거긴 뼈가 두꺼워서 먹을 게 없어, 엉덩이를 줘]
 

   그들은 내가 죽을 거라 단정하듯이 말하며 고깃간의 쇠고기 처럼 내 몸을 토막토막 골랐다. 기분이 점점 나빠져서 눈을 살짝 뜨니 언젠가 칠성당 그림에서 본 도깨비들이었다. 
 

[도깨비가 정말로 있었구나!]

  희안하게도 곧 생으로 해체당할 상황인데 별로 두려움이 없었다. 마음 한 켠에선 지겨운 병마보다는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이 돌림병은 한 번 걸리면 무섭게 고생을 하는데다가 살아도 병신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아 살 마음이 없었다.

[으윽, 으윽]

  그들이 내 다리 위에 올라왔는지 무게감이 느껴져 다리가 저리고 아팠다. 신음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삼키다가 살짝 움직였다.

[앗! 깨는 거 같아!]
[에에~이 놈 목숨도 질기네. 다 죽어가서 잘 되었다 했더니..쩝쩝]

   정말로 아쉬운 듯한 탄식이 들리다가 방 안은 곧 고요해졌다. 좀 있다 눈을 떠보니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는 세상, 사방이 요괴 투성이다.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다. 불 속에도, 물 속에도, 심지어는 뒷간에도 없는 데가 없다.  지난 해 겨울엔, 똥 살 때 하도 뒷골이 뻑뻑해서 목을 주무르다 뒤로 꺾었더니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요괴랑 눈이 마주쳐 똥간에 빠졌다. 
 

   물론 이제는 하도 봐서 별 느낌이 없다. 게다가 요령이 생겨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그들은 내가 볼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어차피 딴 세상에 가서 살 게 아니라면 어쩌겠는가..그냥 보면서 살아야지..그렇게 결론짓고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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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2009-10-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 연재 시작하셨군요~즐겁게 읽고 갑니다. 똥간에 빠졌다는데서 웃었어요.

최현진 2009-10-28 20:3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최고의 대장장이를 꿈꾸는 도련님과 신이 되고 싶은 겁장이 요괴" 

 

1.배경 

 고구려 제 15대 왕인 미천왕이 재위 중인 시기로 그 중 313년~319년 사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시기의 백성들은 생애에 2-3번은 전쟁을 겪은 경험을 가질 정도로 북쪽의 오랑캐 및 백제, 신라 등과의 충돌이 많았다.   

  삼국 중 철기 기술이 가장 발전하여 대장장이의 위신이 높았으며, 대장장이의 신인 야철신을 숭상하여 벽화를 그렸으며, 다양한 신들을 위한 사당이 존재하는 무속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야기에 나오는 전쟁은 중국 선비족(鮮卑族)의 일파인 모용부(慕容部)와 고구려 간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사건으로 고구려의 패배로 기록되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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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장인물 <사람> 

최정진(14), 건장하고 무기를 잘 다루는 아버지와는 달리 약하고 겁 많은 선비 형으로, 서책을 읽는 재미로 살았다. 그러나 잘나가던 것도 잠시, 11살에 아버지가 모함으로 귀족 지위를 잃고 가산을 빼앗긴 후 초가집으로 이사했다.  


 겁이 많고 여리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성격을 지녔다. 품을 팔아야 하루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어도 좌절하지 않으며, 복수보다는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장간에 들어가 공짜로 밥을 먹고, 월급도 타게 되자 매우 기뻐하며 나아가 고구려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고자하는 희망을 품는다. 
 

  더불어 그는 남들이 모르는 특기가 한 가지 있다. 10살 무렵에 마마를 무섭게 앓아 죽을 처지에 놓였다가 살아난 후로 도깨비 등의 각종 요괴들이 사람들처럼 일상 속에서 보인다.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고, 보며 느낄 수 있다.

최무신(40), 정진의 아버지. 대장군을 역임한 무관이나 전쟁에서 패한 후 모함을 받았다. 삭탈관직 후 모진 고초로 깊은 병환을 얻었다. 정진을 믿어주는 성격으로 지혜가 많고 심지가 곧은 사람이다.

신 씨(36), 정진의 어머니. 귀족의 여식으로 고된 품팔이 생활을 하다가 급사했다.

대행수(40), 최무선이 목숨을 구해준 인연이 있어 그의 아들을 대장간에 취직시켜 주었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최무선을 찾아가 의논한다.

무기직공(53), 20년 이상 대장간 일에 몸담았다. 현재 고구려의 실력자로 알려져 있는 직공이다. 정진에게 애정이 있으나 겉으로 표현을 안한다.

농기구직공(48) 무기직공과 더불어 대장간의 이름난 직공이다. 과묵한 성격으로 대화가 거의 없다.
 
떡보(22), 대장간 견습생 3년차로, 서열은 끝에서 두 번째다. 심성이 착하기는 하나 막내 정진을 부려먹는다.

오월이(14), 정진에게 마음이 있는 대장간 부엌대기로 정진을 대신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식사를 챙겨주기도 한다.

법사(45), 수많은 요괴들을 사역하는 도가 높은 법승. 최초의 마음과는 달리 점차 요괴를 부리는 힘에 빠져 금단의 일을 저지른다.  

도승(40), 모용부에서 사신들과 함께 고구려를 방문한 인물. 과거 요괴였으나 오랜 세월을 살면서 삶에 대한 생각의 변화로 불교에 귀의하였다.

예지(15) 벼랑 밑의 오두막 집에 사는 아가씨. 아버지의 요력을 약간 받았으나 특별한 능력은 없다. 요괴와의 싸움에서 병을 얻고 깊은 잠에 빠진 아버지를 간호하며 산다. 아버지가 남겨놓은 서책들을 보며 연구와 정진을 거듭해 결계나 진에 대해 지식이 있다. 또한 요괴들에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


기타: 의원, 농기구 직공, 마을 주민, 하인, 장군, 병사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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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등장인물 <요괴>


새지. 팔색조라는 요괴의 새끼. 일생 동안 2번의 대변신을 한다. 첫 번째 변신에서는 팔색조가 된다. 마지막 변신의 결과는 알려져 있지 않다. 팔색조는 햇빛을 받으면 수만 가지의 색이 나타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팔색조의 고기는 온 세상을 통틀어 가장 맛있다. 또한 완전한 능력을 갖추면 주작, 현무, 백호, 청룡의 사신들보다도 월등한 존재이다.  

  그러나 새지는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으며, 팔색조로 변신할 때의 고통을 참지 못하여 기절을 하는 문제가 있어, 그를 태어나게 해준 사람으로부터 버림 받았다.  


마루. 능력이 부족한 하급의 요괴. 진과 결계에 관심이 많아 항상 공부를 하는 스타일.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성격이나 체력이 매우 떨어져 싸움에서는 불리하다. 요괴로 태어난 이상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천주. 물의 신인 하백의 동자. 막 세상에 나온 새지를 괴롭히며 잡아먹으려고 한다.

화소이. 불 속에 사는 요괴들. 물을 두려워하며 물이 닿으면 고통스럽다.

도깨비. 정진이 아파 누워있을 때 먹으려고 했으나 실패한 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비소. 법사가 구해준 후, 그를 주인으로 모시는 요괴로 상급 능력을 지녔다.

사신. 주작, 현무, 백호, 청룡을 말하는 것으로 동명왕의 무덤을 지키며 사악한 무리를 벌하는 최상의 요괴이다. 이들 중 현무가 가장 인간에 가까운 심성을 지녔다.

죽음의 요괴. 죽음을 따라다니며 시체를 먹는다. 사람이 죽는 곳에는 반드시 나타난다.

숲 속의 요괴. 선비들처럼 부채질을 하며 유유자적하는 성격의 요괴로, 몇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 인간보다 더 생각이 깊다. 인간과 요괴의 사이가 벌어진 것을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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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야철신(1) 

 

   대장간 일을 하기 시작한지 몇 달 밖에 안 되어 나는 이곳의 막내다. 내 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말은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루가 500시간이어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어~이, 물이 비었다, 빨리 새로 부어!]
[야~, 나무 더 가져와]
[네~곧 가져갈게요!]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말들에 일단 대답부터 하고 뛴다. 내 이름은 바를 정, 보배 진, 최정진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어이] 내지는 [야]가 대부분이며, 그나마 좀 나은 게 [꼬마]다. 아, 물론 행수님은 [정진아]라고 해주시는 유일한 분이다. 그 분 덕분에 들어왔으니 나를 뭐라고 부르든 괜찮은데 오히려 제대로 말씀하시니 참 기분 묘하다.

   바가지로 얼른 빈 물통에 한가득 물을 채우고서 물레방아 뒤쪽에 쌓여있는 나무토막을 들을 수 있는 만큼 가득 들고 뛰어왔다. 눈짓에 따라 나무를 화롯가에 두고는 한숨을 쉬며 싸리 빗자루를 들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물 길어다 통에 채우기, 나무 가져다주기, 바닥 쓸기, 밤에 불 지키기. 이것들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불을 지키는 일이다. 대장간에서 불이란 귀족집의 아궁이 불씨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는 살다보면 불씨가 꺼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지만, 여기서는 절대로, 절대로 있으면 안 된다. 일단 불이 꺼지고 나면 화로를 다시 데우는데 반나절은 꼬박 걸리는 고로, 그런 일이 생기면 쫓겨날 수도 있다. 하여 요즘은 나랑 3년 선배 떡보가 하루씩 번갈아 밤을 새며 지킨다.

[뒷간 다녀올 동안에 불 좀 봐라]
[네에..]

   화로 옆에 앉아 불길을 살피던 떡보가 갑자기 소피가 급하다며 바지춤을 잡고는 나를 불렀다. 바닥에 흩어진 철 부스러기들을 쓸어 모으다가 잽싸게 달려갔다. 요즘은 춘절이 다가오는 시기라 겨울이 다 끝나가는 길목이기는 하나, 어쨌든 아직은 겨울이다 보니 따뜻한 불 옆에 갈 일이 생기는 게 너무 좋다. 불은 화로 안에서 붉게 타오른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날름날름 혓바닥을 보이는 개처럼 춤을 춘다. 얇은 홑저고리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굳은 몸을 푸는데 불씨가 팅긴다. 자세히 보니 불씨라고 생각했던 것은 화소이들이다. 작은 화소이는 불 속에서 종종 보이는 요괴다. 만세를 부르듯이 손을 번쩍 들어도 내 무릎보다 키가 작으며, 팔과 다리가 뭉퉁뭉퉁해서 초보 목수가 대충 깎아놓은 상다리 같다.  

   오늘은 불길이 좀 센 편인지 화소이가 5마리나 보인다. 눈은 이미 한 참 전에 내리깔아 그들을 쳐다보지 않지만, 귀를 기울여 동태를 살핀다. 그들은 내가 볼 수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인지 꽤나 야단스럽게 통통 뛰어다니며 자기네들 끼리 떠들었다.
 

[삼일 뒤 밤이지?]
[응. 갈 거야?]
[술은 안 마셔도 싸움은 꼭 봐야지. 진짜 장관일 거야!]
[가자!]
[가자!]
[가자!]

   그들은 합창을 하듯이 똑같은 말을 외쳤다. 다만 시간차가 있어서 메아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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