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부서진 인형처럼 보이는 스승님에게 다가가 몸 위에 걸터앉았다. 두 손으로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커다란 말뚝을 잡았다. 내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뛰고, 몸이 덜덜 떨린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워져 입술을 깨물었다. 단단하게 박힌 말뚝을 잡은 채로 몸을 숙여 스승님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짭짤한 눈물이 그와 나의 입술 사이로 흘러들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밀납 인형같은 창백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팔 근육에 뱀파이어로써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을 집어넣은 후 말뚝을 잡아당겼다.
크르르르르...
깊게 박힌 말뚝이 간신히 빠져나오자 나는 그 반동으로 침대 끝까지 굴렀다. 그와 동시에 스승님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가 마침내 뇌사에서 벗어나 눈을 떴음을 알았다. 말뚝이 박혔던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스승님은 힘들게 몸을 반쯤 일으켜 주변을 확인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붉디붉은 눈은 먹잇감을 찾는 게 분명하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킨 후, 그에게 다가갔다. 나의 움직임을 감지한 듯, 그는 몸의 근육을 경직시키며 순식간에 내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목 깊숙이 송곳니가 들어오는 느낌과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고통이 하반신까지 밀려갔다. 나의 눈동자는 멋대로 빙글빙글 돌며 팔이 흔들렸다. 흐릿한 눈으로 스승님의 심장을 바라보았다. 나의 피가 들어가면서 점차로 쏟아져 나오던 피가 줄어들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게 확인돼 행복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지금이라도 해주면 안 되나요?]
나는 본능만 남은 그가 이해할 리 없는 소망을 중얼거렸다. 그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흡혈로 내 머릿속은 점차 무너져 내렸다. 생각이 느려지고, 눈꺼풀의 움직임이 아기처럼 변했다. 손가락을 움직일 힘마저 사라져가니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다.
[처음처럼..처음..처럼..]
나는 말을 다 마칠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청력으로 그의 그르렁 거리는 신음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검은 장막이 거의 눈을 가려가고 죽음의 커튼이 몸을 거의 잠식 했을 때, 귓가에 문이 뜯어지는 굉음과 함께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남은 피가 사라지자 내 몸은 딱딱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