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죽음은 낮선 것이 아니다. 인간에서 뱀파이어로 변할 때, 나는 죽음을 경험했다. 내 몸에 들어오던 낮선 피의 냄새와 목을 뚫고 박히던 송곳니의 차가움. 그 첫 번째 죽음을 다시 보고 있다. 내 몸이 검고 딱딱한 소파 위에 단정히 누워 있었다. 이미 약물로 정신을 잃어 누가 내 옆으로 다가오는지,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인형이다. 공중에서 그를 지켜보던 나는 누군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몸을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아마도 나는 영혼의 상태라 생각 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는지 그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각도에 자리를 잡았다. 내 얼굴 위로 몸을 숙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레고리였다.  

까아아아악..... 

나는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의 앞에 무방비로 놓여진 나를 깨우고 싶어 목이 쉴 때까지 지르고 또 질렀지만, 내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을 깨우려 달려들어도 젤리 속을 통과하듯 흐물거릴 뿐 다시 튕겨 나왔다. 그레고리 역시 듣지 못하는지 입을 벌려 송곳니를 내 목에 박았다.  

내 몸이 들썩 거린다. 내 발끝이 하얗게 변해간다. 내 손가락들의 피부가 어린 아기의 것처럼 맑고 깨끗해지고 있다. 갑자기 부릅뜬 눈이 검은 색 대신 소름끼치는 붉은 색으로 보인다.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느낌일 뿐, 실재로 액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레고리는 입가에 피가 묻은 채로 내게서 떨어졌다. 나를 잠시 바라보며 혀로 입가를 핥은 뒤, 혈색 없는 뺨을 만진 후 어딘가로 사라졌다. 내 몸은 계속 들썩거렸다. 폐에서 숨이 모두 뿜어져 나오며 하얀 연기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움찔거리며 뼈가 다시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와르르 부셔졌다가 재생 되는 과정이 이어질 동안 내 눈은 무섭게 흔들렸다. 나의 첫 번째 죽음이 마무리 되어감에 따라 내 몸은 완전한 흰색으로 변했고, 소파 위에 처음처럼 단정하게 눕혀졌다. 부릅떴던 눈도 감겼다. 그제야 내가 두 번째 죽음에 임박했을 때, 처음처럼 이라고 한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때 뱀파이어로 완성되었고, 눈을 뜬 순간 나를 뱀파이어로 만들어준 그레고리 대신 스승님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바라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승님을 처음 보았던 바로 그 때, 내 삶의 태양과 마주친 그 순간. 내 영혼은 마지막 선물로 이 기억을 준 것이다. 나는 단정한 내 몸 위로 자신의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키스 하는 스승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체취를 맡았다.  

[언젠가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그는 처음 본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할까? 혹시나 우린 처음이 아닌걸까?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우리 사이에는 더 있는 걸까? 혼란스러운 기분에 그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붙잡고 전부 대답하라고 다그치고 싶어졌다.  

그가 살짝 한 숨을 쉰 뒤,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가는데 점차 모든 것들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볼 수 있는 전부인가보다. 내 영혼이 이제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지만, 괜찮다. 완전한 소멸에 이르러도 두렵지 않다. 나는 뱀파이어가 된 이래 처음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행복과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차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부신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내 영혼은 그 빛을 향해 헤엄치듯 올라갔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빛 속에 감기는 순간, 그 빛은 예상과 다르게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북극의 빙하와 부딪혔을 때처럼 온 몸이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아픔에 깜짝 놀라 고통에찬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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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읽기 2011-04-2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는 내내 가슴이 떨려서 원.. 그래도 스승님의 사랑을 알았으니 다행이예요.. 설마 이게 끝은 아닐꺼야..그쵸?

최현진 2011-04-22 08:28   좋아요 0 | URL
제 글에 관심가져주시고 즐겁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끝이 어떤지에 대해 미리 말을 할 수는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