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야철신(3)  

 

[어이~, 심부름 다녀와라]

   농기구 직공이 완성품을 가져다주라며 새 호미와 낫을 짚에 엮어 주었다. 이렇게 배달을 가는 건 귀족이나 부자들이 우리 대장간을 계속 이용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떡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여서 물품을 들고 대장간을 나섰다. 
 

   하늘이 흐린 게 비라도 오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길가에 사람은 별로 없고, 요괴들이 제 세상인양 돌아다닌다. 사람이 적은 날일 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사람이 그들을 통과하는 게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표정을 보면 과히 기분 좋지 않은 듯 싶어, 그들은 사람이 적을 때를 선호하는 게 틀림없다. 하여 정월 대보름 같이 거리거리마다 사람으로 가득한 날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온다. 잰 걸음으로 도착해 쪽문을 두드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담장이 끝나 꺾어지는 곳 쯤이 이상하다.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 하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항상 갖다 줘서 고마워]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여러 번 보아 얼굴이 익은 하인과 몇 마디 나눈 뒤에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뒤돌아섰다. 빨리 돌아가야 야단을 덜 맞기 때문에 뛰어가려는데, 한편으로는 소리가 들려오던 곳이 신경 쓰였다. 그냥 가자니 찜찜하고, 가본 들 내가 아는 척도 못할 것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그저 볼 수만 있을 뿐 옆 고을의 영험하신 법사님 같이 요괴를 쫓아낼 능력 같은 건 없다. 그 분은 오래도록 도를 닦아 그렇다는데 이참에 그분의 동자라도 되어 배워볼까 싶기도 하다. 대장간에서 심부름을 하나, 법사 밑에서 심부름을 하나 그게 그거니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시 망설이다가 호기심 때문에 결국 발걸음을 떼었다.

[흑흑..]

   우는 소리가 다가갈수록 커진다. 뭔가 기분 나쁘게 웃는 소리도 들린다. 이건 꼭 왈패들이 예쁜 삼월이를 놀릴 때 같다고나 할까. 식별이 될 만큼 근접해보니 말머리에 뿔이 달리고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몸집이 큰 요괴가 손바닥의 반만 한 크기의 새머리 요괴를 나뭇가지로 툭툭 치고 있었다.

[그냥 먹을까? 구워 먹을까?]  

[흑흑]
[좀 더 키워서 먹을까?]

   새머리야 울든지 말든지 말머리는 얄밉게 놀리듯 말한다. 내가 여기 조금만 더 서 있으면 분명 말머리가 고개를 돌릴 거다. 얼핏 보아도 힘이 쎄 보이는 게 한 대 맞으면 죽겠다.

[살려주세요~]

  땅바닥을 구르던 새머리는 나를 보았는지 비명을 지른다. 동시에 말머리가 고개를 돌린다.

[뭐냐, 넌~내가 보이는 것이냐?]

  눈이 마주친 순간 말머리가 우렁차게 말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아니고 도리질 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몸짓을 취했다.

[이 놈을 먹은 후에 너도 먹어야겠구나]

   숨 한번 들이킬 여유도 없이 말머리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래서 내가 관여를 안 하려고 하는 건데...자고로 호기심은 만사에 쓸모가 없다.

[이거 좀 놓고 말로 하면 안될까..요?]
[인간이랑은 말 안한다]
[지금 말하고 계시잖아...요]

   내 대꾸에 성질이 났는지 작았던 입이 박통 만하게 커지더니 물어뜯을 듯 으르렁 거린다.

[아얏!] 
 

   말머리가 신음소리를 낸다. 나를 잡은 팔이 따가운지 갑자기 펄쩍 뛰어, 덜미를 잡힌 채 흔들리던 내 몸도 같이 움직였다. 곁눈질로 보니 새머리가 그의 팔을 물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말머리가 나뭇가지를 든 오른 손으로 퍽하고 치자 새머리는 인형처럼 바닥으로 힘없이 널브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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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영 2009-10-2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주 흥미로운 소재의 글입니다. 고구려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지 궁금하네요.^^

최현진 2009-10-29 12:20   좋아요 0 | URL
고구려에 대해 우연히 공부를 하게 된 일이 생기면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happy 2009-10-3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마을이 끝나서 슬펐는데..어느새 연재를 다시 하시는군요.^^ 특이해서 기대가 되요. 작가님의 스타일을 상상해봅니다.

최현진 2009-10-30 16:05   좋아요 0 | URL
해피님..기대해 주시니 열심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