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을 열기 직전에 피를 마셨는지 양 볼은 분홍색이고, 눈은 반짝거리는 검정 앵두같다. 게다가 옷이 참...스트리퍼가 오면 동료라고 부르고도 남겠다. 다시 눈을 들어 붉고 탱탱한 입술에 시선이 가는 순간, 그녀는 공짜로 피를 마실테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여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 고개만 까딱한 후, 편의점 중앙에 전시된 냉장 혈액팩들 쪽으로 걸어갔다. 요즘 유행이 유기농이라 그날 짠 피만 판다는 플랭카드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약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런식이라면 곧 혈액팩에 생산자 추척 시스템도 붙지 않을까..바코드를 찍으면 이게 몇 등급이고, 어디 사는 인간의 것인지 알고 먹을 수 있게. 윽. 너무 배고파서 그런가..지나치게 시니컬해졌다는 반성을 하며 눈 앞에 있는 1+1 세일 혈액팩 15개를 바구니에 담았다. 제대로 사는 건지 개수를 세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엎드려!] 

갑자기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순간, 나는 잽싸게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웠다. 고개를 살짝 돌렸지만 진열장에 가려 누가 총질을 하는지 볼 수 없어 답답했다.  

[여기에 모두 담아! 빨리]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게 초보인 듯 하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진열장 끝부분까지 전진했다. 머리의 1/3만 내밀어 건너편 바닥을 보니 한 명이다. 고개를 조금 위로 올렸다. 시야가 더 넓어져 총을 살살 흔들어대는 남자를 확인했다. 물이 빠진 청바지에 곤색 잠바를 입었고 머리에는 검정 모자를 썼다. 그는 내가 바라보는 걸 모르는지, 혹은 신경 안쓰는 건지 편의점 주인 여자만 닦달하는 중이었다. 그가 뱀파이어인 건 맞는데, 뭔가 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풍기는 기가 순수하지 않고 뭔가 뒤섞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정체는 뭘까? 

[너! 여기에 혈액팩 담아!]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또 다른 검정 가방을 내게 던졌다. 그 가방을 얼굴에 맞고 나서야 그가 내 움직임을 이미 느끼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말 없이 일어나 냉장 혈액팩들을 쓸어담았다. 그에게 가방을 던져주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 바구니에 있는 것도 담아야지] 

윽. 살 짝 발로 밀어 진열장 안 쪽으로 숨겼는데도 그는 내 양식마저 요구했다.  

탕..... 

그는 재빠르게 내 쪽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총구가 돌려지는 순간, 옆으로 비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바닥에 흉터를 남긴 셈이지만 상당히 소름끼쳤다. 뱀파이어라서 총에 죽는 건 아니지만, 총의 종류에 따라서는 회복되는 동안 고통이 심각하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내 음식들도 고스란히 담은 뒤 던져주었다. 주인 여자가 돈을 담는 일을 끝냈는지 두 개의 가방을 한 손에 쥔 남자는 우리 둘을 향해 총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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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읽기 2011-05-2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뱀파이어들도 강도짓을 하는 구나..인간사 나 그들이나 별반 사는게 다르지 않네..쩝!!!

최현진 2011-05-26 09:04   좋아요 0 | URL
제가 설정할때...가난한 뱀파이어도 있고, 부유한 뱀파이어도 있는 걸로 했고, 또 기본적으로 인간과 같은 커뮤니티에서 생활해요..그러니..도둑도 있겠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