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에 손발이 묶여 벽에 세워져 있다보니 쇠사슬과 마찰이 일어난 부분이 벗겨져 피가 맺혀있었다. 바닥에 묻은 피가 그의 것임을 알자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바보같이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빼내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준비된거야?] 

기웅이가 들어와 내 옆에 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승님께 다가갔다. 기웅이가 스승님의 몸을 붙들자, 나는 젓 먹던 힘까지 쥐어짜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열려 있는 문 너머로 내가 들어오면서 던진 연막탄의 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들어오며 매운 냄새를 풍겼다. 또한 머리 속으로는 프릭스들의 전파가 헤일처럼 밀어닥쳤다.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다가오자 나는 깨질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이를 악 물고 버텼다. 마침내 왼쪽 손에 묶인 마지막 쇠사슬을 끊어내자 스승님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육중한 무게에 기웅이의 작은 신음 소리가 방에 메아리쳤다. 나는 다가가 발 쪽을 들어올렸다. 내가 먼저 문을 나섰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복도 안 쪽에서 프릭스가 내는 끔찍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순간 움찔하며 멈춰섰다. 내가 가장 원치않던 죽음이 생긴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단을 노려보다가 다시 올려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로 안 가는 게 좋을텐데..] 

쇠소리가 섞인 말이 들리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현관문을 나와 나무들 쪽으로 몇 미터 쯤 갔을 때 생각도 못했던 그레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 멈쳐 서서 다가오는 그를 쳐다보았다. 

[1킬로미터 앞에 뱀파이어들이 모여있다. 네가 그들을 뚫고 갈 수 있을까?]
[원하는 게 뭐에요?] 

나는 꽉 다문 이사이로 말을 내보냈다. 그는 내 옆으로 다가와 스승님의 늘어진 몸을 힐끔 쳐다보았다. 기웅이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이내 눈을 돌렸다.
그의 막강한 힘에 기가 눌린 것이다.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스승님의 다리를 톡톡치다가 나에게로 다시 돌아섰다.  

[지금은 특별히 원하는 게 없어]
[그럼 비켜주세요] 

나는 그가 내뿜는 힘에 두려움을 느끼며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지만, 이를 악물고 그와 눈을 맞추친채 거칠게 말했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내 도움 없이는 절대 여길 빠져나가지 못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수정 2011-03-2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재미있어 단숨에 읽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여 뱀파이어의 사랑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네요. 앞으로 기대됩니다.

최현진 2011-03-28 08: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장르소설이 뿌리 내리기 참 어려운 여건인데도..이렇게 읽어주시는 분이 있어서 유지가 되나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끝까지 좋은 이야기가 되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