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흐름이 보이는 회계 이야기 - 회계의 탄생부터 이론, 재무제표 속 회계용어를 한 권으로 읽는다
구상수 지음 / 길벗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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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어렵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회계학적 사고를 통해 기업의 재무재표 분석과 삶을

살아가는 경제 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있다고 말하며 딱딱한 숫자 이야기가 아니고 역사,

인문, 사회를 연결해서 쉽고 익숙한 회계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하지 못한다'

말에서 있듯이 기업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가치와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회계이다. 회계는 재무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재무회계와 세금을 계산하기 위한

세무회계, 조직의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회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관리회계로

나뉜다. 기업은 재무, 세무, 관리회계를 통해 항상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한다.


회계는 재무상태를 파악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것이 어떻게 변동해 가는지를 기록및 관리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기원전 2040년경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조의 재무상태표가 발견됐을 정도로 회계의

역사는 깊고, 13세기부터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이탈리아 상인들 보다 200년이나 앞선 11세기 부터

개성상인들은 '사개치부법'이라 불리는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 등장하는 개성상인이 선조로 부터 배운 복식부기를 그들에게 알려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책은 회계에 대한 기초부터 고급까지를 망라한다. 그동안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에 배울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던 복식부기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 진작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마저 가질

정도로 쉽다. 차변은 받을 (자산)이고 대변은 갚을 (부채)이라는 파치올리의 도식을 통해 쉽게

이해할 있었고, 차변을 굳이 왼쪽에 두는 이유는 대부분 시계를 왼쪽에 차는 오른손 잡이의 습관처럼

자금의 흐름이 오른쪽(대변)에서 시작(조달)해서 왼쪽(차변)으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일거라는

저자의 설명이 쉽게 수긍이 간다. 


또한 하나의 상품이라 하더라도 쓰임새에 따라 회계처리가 달라진다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닭이라는 상품이 회사가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재고자산, 달걀이라는 수확물을 얻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생물자산, 동물원 등에서 입장 수익을 얻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유형자산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 역시 회계는 어렵다. 친절한 설명으로 조금은 이해하는 싶었는데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다. 


회계는 차변과 대변의 평형(균형) 추구한다. 그리고 복식부기는 대차평형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알랭 보통(Alain de Botton, 1969-) 그의 저서 '우리는

사랑일꺼'에서 다변하고 급변하는 우리의 모순적인 마음을 차변과 대변에 비유하며 친절하게 설명하고

우리의 삶에도 평형(균형)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차의 균형을 요구하는 회계학적 사고는 인생을 보다

균형적으로 살기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것이며 균형을 요구하는 판단과 결정의 순간에 유용한 수단이

될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것을 '진리의 대차 균형'이라고 말한다. 


책은 어렵다. 비록 저자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친절을 베풀지만 사실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읽어보면 술술 읽혀진다. 말은 우리가 굳이 회계사가 되거나 회계관련 업무를 할것이 아니기에

암기를 하거나 완벽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읽으면 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황적 요구를

알기에 친절하게도 무수한 예와 첨언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경제활동가들이 한번 읽어 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적어 본다.

'인간은 회계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함으로써 종교의 영역에서 계속 머물 계기를 찾듯이,

기업들은 회계를 통해 과거의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존속할 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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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5
서유구 외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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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멋을 아는 민족이었다. 멋은 자체로 이미 품격을 드러내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이고 이는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최선의 태도이기도 하다. 뚜렷한 사계절과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자연으로 인해 음식문화를 발달된 우리 민족은 잘차려낸 음식상과 멋스러운 음식을

상대방에 대한 예로 여겼을 정도로 맛을 아는 민족이었고 맛은 주로 상류층에서 누리는 '사치'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맛과 멋을 담은 우리의 전통음식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고 대량 생산된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모든것이 흐르고 반복되는 것처럼 여전히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근래에 들어 자연과 멋을 동시에 담은 '꽃음식' 주목 받기 시작 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정조지' 속의 꽃음식을 통해 매화부터 국화에 이르는

20가지의 토종 꽃으로 만든 꽃음식을 찾아내는 보물찾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꽃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에 더해져서 '자연주의' 동력이 되며, 꽃음식은

자체를 생으로 또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하여 먹거나 기존의 음식에 더해서 만드는데 효용 범위가

광범위하다. 책에는 정조지 39가지의 꽃음식, 전통 꽃음식 13가지, 정조지 속의 꽃음식을 재해석한

꽃음식 32가지. 도합 94개의 꽃음식이 소개된다. 


책은 출발부터 신선하다. 세계 최고 요리사 10명이 운영하는 식당을 취재하며 그들의 삶과 요리에

대한 철학, 요리에 담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가던 , 결국 최고의 요리사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접시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담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작업은 숨이

멎을 엄숙하다. '화룡점정' 찍듯 더해지는 꽃의 마력은 자체로 이미 예술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꽃음식' 유행처럼 번지면서 무분별하고 무식(서로간의 상생도 모르는)하게 합해서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꽃음식들 때문에 '아무 음식이든 꽃만 넣으면 꽃음식이네'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일본여행에서 유명한 벚꽃빵을 먹고 호텔에서 한시적으로 판다는 벚꽃성찬을 즐겨야 일본 여행을

제대로 것이라는 기자에게 진달래화전을 먹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저자의 말은 속이다

시원하다. 그리고  '정조지' 담긴 꽃음식에서 작은것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중함, 소소함 속에 빛나는

찰나, 선인들의 멋과 낭만과 여유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나는 '조선셰프 서유구의 꽃음식

이야기'에서 멋스러움과 맛스러움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을 느끼며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다. 


우리나라 곳곳에 터를 가리지 않고 자라는 소나무는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자리에 서서 의연함을

가지기에 오래된 소나무를 노우(老友) 칭하며 가까이 한다. 송화는 소나무의 꽃가루이다. 늦봄이면

노란 송화가루로 계곡이 뒤덮히고 색이 수수하지만 고상하고 기품이 있어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본초강목> '송화는 맛이 달고 온하며 독이 없다. 심폐를 ()하고 기를 늘린다. 풍을

제거하고 지혈을 시킨다' 나와 있을 정도로 좋은 재료이다. 이런 송화로 송화다식, 송화주, 송화강정,

송화밀수등을 만드는데 정조지에서는 송화다식을 만드는 방법은 따로 기술하지 않고 송화가루를

효과적으로 얻는 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송화가루를 구하는 일이 송화다식의 전부일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어릴적 외가에 가면 해주시던 것이 '송화다식'이었는데 이렇게 귀하고 어려운 것인

알았다면 그때 궁시렁거리고 먹지 말고 한개라도 먹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나이가 들어 찾은 외가에서 있었던 것이 '송화주'였다. 이제 먹을 나이(아마 3 겨울

방학인것 같다) 됐으니 한잔 하라고 내주셨던것이 송화주였는데 국화향이 전혀 나지 않았던걸 보면

정조지에 나오는 방법인것 같다. 저온에서 침출해서인지 향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나 역시 술은

술이다. 나는 송화주 잔에 만취했었다. 송화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어 마시고 신선이

있다는 것이 송화주라면 그날 신선이 되었다.

'정조지' 소개된 절기 음식 꽃을 사용한 음식에는 제비가 돌아 온다는 중삼절(음력 33)

진달래화전과 제비가 돌아간다는 중구절(99) 국화화전이 있는데 내가 처음 화전이

국화화전이다. 내가 맛본 화전은 저자의 생각처럼 노란 국화꽃이 올라간 것인데 정조지에서 소개하는

국화화전은 사뭇 다르다. 국화를 찧어서 노란물을 들이고, 당귀로는 짙은 녹색의, 대추꽃은 어두운

붉은 빛의 물을 들인 반죽을 지진 다음 팥소를 꽃심처럼 넣고 싸서 만드니 생각지도 않은 온갖 색의

국회가 피어난다는 저자의 표현처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서유구의 발상은 머릿속에 상쾌한 바람과

함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밖에도 요즘도 자주 마시는 국화차, 국화빵이 강해서 취기를 못느끼는

국화주, 말린 국화꽃을 묻힌 경단 등은 강원도 산골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지인 덕분에 보았던

것들이라 더욱 반가웠다. 


책에는 자연이 주는 멋스러움과 날것 그대로가 주는 소박함,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아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꽃이 삶기고, 절여지며 다른 아름다움을 갖게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꽃음식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밀가루에 연꽃잎, 참외즙과 약대를 넣어 만든 누룩으로

빚는 '만전향주' 원추리꽃 잡채, 상추꽃대로 만든 우아하고 감탄할 만한 음식인 상추꽃대볶음은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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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아보는 낮은 생각
한성욱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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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이 제대로 묵상일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이고 흔적이기 때문이다. 책이

그런 책이다. 저자의 삶의 순간순간의 조각들이 주님으로 인해 합해지고 모아져서 하나의 묵상을

만들어 내고 그런 묵상들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함께하심의 기쁨을 맛보는 자리에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에게 돈이 없지 예수가 없냐'

영화의 대사를 패러디한 글이지만 왠지 가슴이 뜨끔하다. 우리에겐 돈도 없지만 예수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말로는 'Coram Deo' 외치면서 정작 삶의 자리에

예수가 머물 곳은 치워버려 예수가 들어설 공간 조차 허용하지 않고 자기팔을 열심히 흔들며 사는

무늬만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가.(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가 있는 사람이란 예수의

흔적을 가진 증인일텐데 보고 들은 대로 사실을 말해야 할텐데 우리 입에 걸린 자물통은 견고하다

못해 무적이라 감히 입을 벌려 말하지도 못하거나 입만 살아 있다. 

유행하던 제목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나는 책을 보며 마음이 힘들고 불편했었다.

물론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주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안다. 그럼에도 ''라는 의문이 든다.

아프면 안되나. 조금 힘들면 청춘이 아닌가. 청춘이라는 계급장은 누가 얼마나 아프고

고생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닌데 '청춘이니까 아파도 '라는 처럼 들려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도 그랬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아프니까 청년이 아니라 청년이니까 아프지 '


자신들의 삶이 그랬기에 대리만족으로 하는 충고일수도 있고, 정말 힘겹게 살아온 자양분을 통해

쏟아내는 진심어린 충고일수도 있지만 사실 '라떼는 말이야' 꼰대질이다. 그냥 청춘은 청춘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를 들이대며 이러니저러니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의

청춘으로 인정하고 받아주면 좋겠다. 


'정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당시의 율법대로 돌로 죽이려고 하는 군중들에게 '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손에 '짱돌' 들고 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눈치를 보지만 손에

돌멩이는 결코 놓지 않는다. 여차하면 던질 태세다. 정말 죄가 없어서 일까, 아니면 최소한 사람 보다는

깨끗하다는 우월함에서일까, 그도 아니면 뭔가 분풀이 대상을 찾는 것일까. 우리에게 있는 비교의식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타인을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래도 저사람 보다는'

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은 결국 서로를 망가뜨린다.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비교하지도 평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며 상대방을 받아들이면 된다. 


책은 저자의 삶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초원이다. 그런 초원을 모두에게 공개하며 함께 기쁨과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맙다. 분명 누군가 책에 쓰인 묵상들을 보며 힘을 얻을 것이고 도전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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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눈물 - 개정판
김연정 지음 / 매직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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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데이트 하러 떠난 위에서' 이어 다시 김연정 작가를 만났다. 전작을 통해 작가의

의지와 노력을 보았기에 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고 설레임으로 읽어 나간다.


책은 초판이 아닌 개정판이다. 초판에서 쏟아졌던 질타와 오류들을 바로잡고 다시 읽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곱씹으며 담담히 놓은 책이다. 작가 스스로 '아픈 손가락'이라 칭하는

책의 시작은 조금 당황스럽게도 해동성국의 마지막 왕자 대광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발해라고 부르는, 드넓은 제국의 주인이었던 해동성국이 멸망해가며 쏟아내는 왕자의

절규와도 같은 그러나 결코 의기를 잃지 않고 의연한 면모를 지닌 대장부의 모습으로 발해의

멸망이 거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종산(祖宗山, 중국에서는 장백산, 우리는 백두산으로 부르는)

분노하여 폭발하고 여파로 무너질 대로 무너진 발해를 거져 먹다 싶이 했음을, 남은 발해의

사람들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하지만 신산의 노여움이 여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멸망했음을, 신령님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건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킬 있기에 신산이

원하는 대로 땅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했기에 해동성국의 마지막 기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사는 돌고 돌기에 갈라놓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야 한다고 절규하듯 말한다.


책은 2020 8 14일부터 12 29일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너무도 시간동안 치열한 사태의

현장의 주변을 서성인다. 작가의 상상력은 역시 뛰어나다. 누군가 그랬다. 상상력은 뛰어난 지적

능력이며 자신이 가진 지식에서 나온다고. 전작에서 느꼈던 작가의 지적 상상력은 8 전의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백두산의 이름이 화산이 폭발한 돌들이 정상에 쌓여 하얗게 보여서

() 머리 () 써서 백두산이라 불렸다는 사실과 숙종 세운 백두산 정계비, 일본이

청나라와 맺은 간도협약, 김일성과 주은래 사이에 천지의 45% 중국의 영토라고 확정해서 체결한

조중변계조약, 중국도문교두, 6300km였던 만리장성의 길이를 8851km 늘려 놓은 박작성((泊灼城)

등은 팩트다. 이렇듯 작가의 글은 픽션과 논픽선이 적절히 버무러져서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얼키고

설킨 등장인물들의 이해관계와 미묘한 갈등으로 이야기가 가끔 산으로 가긴 하지만 인물들의 심리나

감정 묘사는 언뜻 같은 자리에 있는 착각이 정도로 섬세하다. 


결국 백두산은 분노의 불을 뽑아내며 천지의 눈물과 마주한다. 지옥이 되어 버린 북한, 기능을

상실한 대한민국, 한반도는 검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 해동성국의 마지막 왕자인 대광연의

절규인 '갈라진 허리를 펴고 당장 일어서야 '이라는 경고를 무시한 한반도는 그렇게

어둠으로 덮힌다.


여전히 동강난 허리를 가진 한반도, 그리고 1 백두산은 다시 화산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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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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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환상을 가진다. 환상은 대부분 그냥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파편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파편을 부여잡고 여전히 살아간다. 


자그마치 1932년이라는 아득한 기억의 저편의 언젠가에 출간된 책은 미래 과학 운명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이야기하며 당시에 상상할 없었던 미래를 향한 발을 내딛으며

세대에 만연한 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자책감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유혹에 저항하며,차라리 좋은점과 나쁜점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쪽을

선택한다. 물론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다. 


34층짜리 잿빛 건물, 잉태, 탄생. 여기까지는 정상적이다. 그런데 난자가 움트고, 발육하고, 분열한다.

난자 하나에 태아 하나라는 일반적인 공식이 아닌 무더기로 싹이 생겨나고 태아가 되고 어른이 된다.

인간은 모든 인간을 공유한다는 지침과 태어나면서 이미 어떻게 성장하고 교육할지가 정해진 사회.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다만 만들어진 물건이며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된 세계. 모든 인간을 공유한다는 개념에 따른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지만 어디에서도 생명에

대한 존엄과 가치 그리고 무게감은 보이지 않는 세계. 스스로 의식과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마'라는

약물에 의지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계. 세계는 태어 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계급이 부여되는 아이러니한 세계이다. 어차피 기계적 생산에 의해 태어나는 것인데

여기서 계급이 나뉜다는 것은 무작위 추출인가 아니면 동일생산체계 속에 발생되는 우성과 열성의

차이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계급사회의 신분 구조는 기계화 문명에서도 어쩔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마음이 착잡해졌다. 


여기에 이방인이자 이질적 존재인 그들에 의해 '야만인'이라 불리는 존이 찾아온다. 인간의 본성을

대로 간직한 존은 그들에게 '진기한 구경거리'였고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존은 '야만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게 세익스피어와 성경을 읽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위험과 죄악을

탐닉하며 인간 본성대로 살며 죽음마저 선택할 있는 자유를 원한다. 어쩌면 존의 등장부터 불행은

시작된것일수도 있다. 


책의 절정에 해당하는 존과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존에게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라고 대답하는 무스타파 몬드, 여기에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습니다'라고

담담히 그러나 당당하게 말하는 . 이들의 대화에서 물질 만능과 쾌락에 빠진 우리에게 던지는

저자의 메세지를 읽었다. 자유를 위해 안락함을 포기하는 용기와 진정한 행복을 위해 기꺼이 불행을

선택하는 결단력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찾기위해 스스로를 포기하는 존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무엇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고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광기서린 축제의 현장은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의 '도살제'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장면 전에 등장하는 '멕베스', '햄릿', '리어왕' 구절들은 도살제의 전주곡인양 절묘했고 군중들의

'채찍질을 보고 싶다' '죽여라' 외침은 예수를 십자가에 받으라고 소리치던 유대인들의 광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광기의 희생양으로 사라지며 또한 여운을 남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은 1932 그때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갈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 스스로 자존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경고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예전에 비해 많아

달라졌고 훨씬 편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잡을데 없이 완벽하고 너무 멋진 신세계지만 이마저도

정답은 아니다. 현대 문명은 우리가 꿈꾸던 것들을 벌써 이만큼 가까이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문명은

우리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다. 책은 분명 1932년에 2540년을 꿈꾸며 허구적인

소설이지만 풍자와 사실적 묘사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거듭 경고한다. 우리 선조들이 달을 보며

속에 토끼가 살고 있을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던것 같이 막연한 미래이지만 영화 이퀄리브리엄

(Equilibrium, 크리스찬 베일 주연, 커트 위머 감독, 2003)처럼 벌써 이만큼 앞에 와있는 가까운 현실이

될것 같다.

 

솔직한 심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상실된 세상을 맞이할 자신이 없기에 변화의 시기를 보기 전에

생을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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