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작은 섬 알래스카에서
박은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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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알래스카.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척박하고 낯선 그곳은

이방인의 접근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 동토이지만 여전히 그곳엔 사람이 살고 저자는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이 책에는 그곳에서 치열하게 그리고

고마움과 감사함을 가진 저자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미지의 땅인 그곳의 환경과

문화 생활은 고립과 생존이 동시에 찾아오고 저자는 얼음장 처럼 차가운 그들과의

공존을 통해 따스한 그들을 만나게 되고 점차 그곳의 생활에 적응하며 곰이 이웃이

되고 집 앞에서 오로라를 보게 되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겪어봐야 알 수 있다. 저자도 그랬다. 해가 떠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한국에서는 미처 몰랐던 소박한 감사를 찾아 낸다. 해를 기다리는 삶에 녹아들어

어느새 해가 떠 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말한다. ‘오늘 해가 떴어요. 너무 행복해요’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며 삶의 속도와 공존의 의미를 배우며

조금은 단단해져 ‘시베리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낯섦과 다름은 분명 이방인에게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알래스카의 속살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NO’를 배우게

된다. 말도 안되는 날씨를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그것에 순응하며 그곳의 일부가

되어 실이낸디. 낯섦과 당황이 어느새 익숙함과 행복을 넘어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남은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고 그 안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다름을 극복하고 동화되며 어느새 대화가 이어지고 그렇게

그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가는 것은 아마도 어디든 비슷한 것 같다. 굳이 사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미 그 안에 자신만의 사유의 창이 넓어지고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하는 저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인가 ‘삶이 메세지가 된다’는 저자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아직 가보지 않았던 또 다른 부르심의 자리인 그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저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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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다시 이름을 찾다
추성은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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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익숙함의 오해를 가장 많이 가져오는 성경의 부분이 바로 ‘룻기’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작 그 안에 흐르는 당시 고대 근동 지방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상실감과 절규와 탄식은 사실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흔히 고생 많이 하던

룻이 보아스라는 좋은 부자를 만나 잘 살았다라는 해피 엔딩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성경은 그 안에 남겨진 이의 고통을 취약하고도 척박한 생활을 제도가 가진 양면성과

야비함, 외국인 노동자로서 겪어야 하는 편견과 부당함을 지적하며 지금의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건넨다. ‘나그네를 잘 섬기는가?’



룻기를 가로지르는 ‘헤세드’는 종교적 사랑의 차원을 뛰어 넘는다. 그것은 삶의

돌봄이며 함께함이며 동행이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통해 보여지는 돌봄과 함께함은

고부간을 뛰어 넘는다. 그 방법이 아니어도 되는데 선택함 함께함은 끝까지 곁을

지키며 함께 하는 연대와도 같다.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go'el 제도’는 공동체의

결속을 위하여 친족들 사이에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한 규칙들로 속량하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룻의 경우엔 신명기의 ‘수혼법’에 더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저자는 여기에서 고엘제도를 이갸기하는 점도 흥미롭다. 당시 여성이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상실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위치와 보호, 생게에 대한 모든

수단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데 이런 상황을 보완해주는 제도가 ‘고엘’이다. 남겨진

이들인 나오미와 룻의 모습은 고부간을 넘어서 동반자와 같다.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고 조언하고 존중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가득한 지금의 모든 관계들을 생각해 보았다.



저자는 각장의 말미에 그때의 질문을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며 진지하게 다가온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이

스쳐 지나간다. 남겨진 이들의 아픔과 이방인들이 겪는 편견, 젠더 간의 갈등, 소외된

이들을 향한 시선, 관계 속에 벌어지는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룻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나오미의 이름이 제목으로 사용된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네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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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고요함을 좋아한다 - 고요한 마음을 가꾸는 지혜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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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침묵 속에서 깊은 고요함을 경험합니다. P16

경청한다는 것은 잘 듣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P107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들음과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설명되어 있는 경청은 둘

다 집중해서 듣는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대화는 혼자 하는것이 아니기에 타인의

말을 잘 듣는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말과 중요한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자신이 말하는 입장이라면

상대방의 불성실한 경청태도는 그에 대한 불신과 불쾌감을 가져 올 것이다. 이처럼

대화의 시작은 들음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말만 줄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뜻을 관찰하기 위한 들음이

아닌 ‘순종’이 전제된 들음이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훈련하라고 조언한다. 일상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면 매 순간 집중할 수 있다.



말씀 묵상의 비밀은 반복에 있다. 좋은 반복이 기적을 낳는디. 저자는 여호수아 1:8의

말씀을 인용해 반추(rumination)라는 단어를 설명한다. 반추는 소가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는 되새김질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머리에

새겨지고 그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면 마음으로 내려와 마음판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눅6:45)고 말씀하신다. 다만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짓이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단순한 반복이 아닌 좋은 결과가 나오는 ‘창조적 반복’을 해야 한다. 반복은 배움과

가르침의 원리이며 탁월함과 통달에 이르는 원리이다.



지금 우리는 말씀의 홍수를 살고 있다. 분주함과 게으름이 동시에 우리의 조용한

시간을 침범하고 노략하는 지금 저자의 조언은 나무도 적절하다. ‘영혼은 고요 속에서

숨쉬고 고요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일상의 한 부분을 그분과의 시간으로 떼어 놓고

살았던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우리가 진보하고 발전하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 책은 저에게 적절한 책이고

신앙의 메너리즘에 빠진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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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본 적 있는가 단 한 번이라도 - 당당한 나를 만드는 손자병법의 지혜
이남훈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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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은 누군가를 이기는 여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기는 여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면 결국 아무도 이길 수 없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아무도

지켜 낼수가 없다. 때문에 현인들은 늘 잠언처럼 이야기 한다. ‘스스로를 이겨라’.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고 넘어지고 좌절한다. 문제는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좌절을 거울 삼아 힘을 내

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를 주저앉게 만든디. 이에 저자는

우리에게 ‘당당한 나’를 만들라고 주문한다.



누구나 실패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면서 실패가

두려워 주저하며 실패에 대한 핑계와 위안 거리를 억지로 찾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자위한다. 이에 저자는 전장을 누비는 장수들을 예로 들며 ‘이겨놓고

시작하는’ 전략을 제시하며 지루하고 단조로운 평범한 삶을 승리하는 삶으로 바꾸는

네가지 방법을 소개하는데 일에서 이기는 구조를 다루는 부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단지 열심히만 하라고 하지 않는다.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를 통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성공의 기틀을 완성하라는 내용인데 전쟁터와

같은 삶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아닐까 싶었다. 전쟁에서 적당히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저자가 삶에서 경계해야 할 일 중 하나로 꼽는 ‘나락의 사고법’이

가져오는 자기 합리화의 오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되었다.



변화는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수 없다.

변화는 인정에서 출발한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용납하고 수용할 떄 변화의 흐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겨본 적 있는가, 단 한 번이라도’라는 질문이 무겁게 다가온다.

결국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어떠한 삶을 살던 그 삶은 오롯이 자신이 주인이다.

승리를 고민하기 전에 이미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한다. 그 결과는 전리품과

같이 따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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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간관계론 - AI 시대, 왜 우리는 인간관계를 말하는가
제이한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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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군가는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온통 불통으로 가득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은 어떻게 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뤄 낼 수

있는지에 대해 AI에 의해 움직여지는 지금의 우리에게 진지한 질문과 더불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타임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기계발서’라고 했고 미국의회도서관협회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

가운데 하나라고 했고, 아메리칸 헤리티지는 ‘미국인의 사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책’이라고 했다.저자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을 배경으로 어떻게 하면 AI

사용이 확대되어 대화를 대신하는 지금 기술응 변해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 애쓰라' 참 어려운 주문이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자기 방어가 강하기에 먼저 자신을 생각하지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생각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카네기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주문한다. 사자성어 중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렇게하면 조금은 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만큼 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질수 있게 된다. 나의 입장, 나의 생각이 항상 옳고

항상 정답은 아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것, 이것은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고 만들어 진다. 그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두의 고민이고 관심거리였다. 책의 내용 중가장

하기 어렵고 가장 곤란한 내용이 하나 있다. '솔직하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라'.

쉽지 않은 주문이다. 솔직하게. 솔직함이 무기 일수도 있으나 솔직함은 바로 나에게

치명타로 날아 올 수 있는 부메랑이다. 나의 솔직함이 상대방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솔직함이 결국 이긴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는 시간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직함을 포기한다. 그런데 솔직하게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진심은 통한다. 분명 통한다. 다만 언제인지 모른다. 당장 내일이

될지 아니면 다음 세상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진심은 위험하다. 특히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 진심은 자신의 벌거벗음과 같다. 그런 수치를 드러내고 보여주면서까지

진심을 다할 사람은 별로 없다. 진심이 그대로 받아 들여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상은 항상 우리를 시험한다. 그래서 어렵다. 솔직하고 진심으로는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말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 멀다. 그래서 아쉽다.

인정과 아첨의 차이는 하나는 진심을 담고 있고 다른 하나는 진심이 없는 것이다.

하나는 마음에서 나오고 하나는 입에서 나오며 하나는 이기적이지 않고 하나는

이기적이다. 인정은 모든 사람이 칭찬하지만 아첨은 모든 사람이 비난한다. 다른 사람을

솔직하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할 때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소중하게 받아 들이고

인정하게 될것이다.



프로이트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라 칭하고 듀이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라 부르는 그것. 이 갈망은 누그러지지 않고 변함없는 갈망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이고 이 욕망은 사람을 미치게도 만든다. 그런데

이 욕망의 근원이 칭찬이라는 것이다. 칭찬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주목 받고 싶고,

잘나 보이고 싶고 이런 생각의 파편들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신적 육체적 자산의 지극히 일부만 사용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하면 인간은 자기 능력의 한계에 훨씬 못 미친 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가진 자산을 습관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배움이란

능동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배우고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알린다. 무언가

발견하고 배웠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AI에게 먹힐 것인가

지배하고 공존할것인지에 대한 전쟁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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